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화 (2/197)

2화.  1. 1교시

교수1.

일단 그렇게 칭하기로 한 사내의 뒤를 따라 도착한 교무실은, 강민혁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라?’

교무실.

보통은 책 냄새를 풀풀 풍기는 딱딱한 공간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건 마치 해리X터의 한 장면이라도 연출해놓은 것처럼 ‘마법사들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한편에 정리된 마법 도구들과 로브를 질질 끌고 다니는 교수들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 드르륵.

교수1의 손짓 한 방에, 멀리 떨어져 있던 의자가 단번에 딸려 왔다.

‘히익.’

당황스러웠다.

물체를 움직이는 마법?

그건 분명히 염동력(念動力)을 말하는 것일 텐데, 강민혁의 세상에는 저런 고난이도의 마법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막말로 강민혁이 알고 있는 마법이란 한 번의 마법에 엄청난 마나와 체력을 소모하는 것인데, 몇 걸음 걷기 귀찮다고 염동력을 사용할 미친놈은 없다.

그런데.

“클리스만.”

교수1의 반응은 덤덤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강민혁을 올려다보았다.

“난 아직도 네가 어떤 방법으로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더블 캐스팅과 같은 기본적인 이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얼빠진 녀석이라면, 나는 어떻게든 너를 이 아카데미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건 네 출신에서 비롯된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네가 이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결론에 의한 선택이야.”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교수1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더블 캐스팅이 기본적인 이론이라고?’

‘왕실 아카데미는 또 뭐야?’

‘나를 왜 계속 클리스만이라고 부르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수1은 경고성의 발언을 계속 내뱉었고, 강민혁은 한참 시달리고 나서야 교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히 이학범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던 자신이, 대체 어디에 떨어졌던 말인가.

지금 필요한 건 정보다.

강민혁은 서둘러, 자신이 처음 깨어났던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

이름 클리스만.

나이 14세.

나이도 교수1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지, 사실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잔재는 전혀 없었다.

결국 강민혁은 동급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야 했고, 그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이면서도 몇 가지 정보를 던져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너 정신 나갔냐? 영국에 위치한 가장 권위 있는 교육기관인 왕실 마법 아카데미잖아.”

“한국? 설마 몬스터 랜드(Monster Land)를 말하는 건가? 한국은 아주 오래전에 멸망한 국가야. 네가 왜 한국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땅덩어리는 모두 몬스터들의 땅으로 변했어. 그러니 잠꼬대는 그만하고 수업 준비나 하시지? 또 혼날라.”

“강화 문명? 무슨 헛소리야. 이 세상에 ‘기사’는 없어. 가끔 마검사라면서 설치고 다니는 녀석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간트(Gigant)와 강력한 마법이 있는데 굳이 직접 싸울 필요가 없잖아.”

충격의 연속이었다.

동급생들의 입을 통해서, 강민혁은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은 지구가 분명해. 국가의 명칭과 언어가 그를 증명하지만,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달라.’

평행우주(平行宇宙).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문명을 갖추고 있는 이 세계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가 살던 지구는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강화 문명이 발달되었어. 몬스터들에게서 추출한 마정석으로 인간의 육체를 강화하고, 몬스터들과 직접 싸우면서 자신의 영토를 지켰지. 그런데 여기는 강화 문명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아니, 애초에 문명의 체계가 달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평행우주의 한 세계인 이곳은, 강민혁이 살던 곳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명이 꽃을 피웠다.

궁금한 것은 많았다.

그런데, 일단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교수님이 염동력을 사용하시던데. 혹시 영국을 대표하는 대마법사, 뭐 그런 건가?”

조심스러운 질문.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했다.

동급생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더니, 귀찮은 벌레를 쫓아내듯이 말을 툭 내뱉었다.

“대체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염동 마법은 대중화된 마법이잖아. 그게 뭐 특별한 마법이라고 대마법사라고 표현해? 대마법사는 신성한 칭호야. 적어도 8서클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허락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5서클 마법사인 앨버트(Albert) 교수를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어?”

쿵!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만 같았다.

엄동력이 대중화 된 마법이고, 5서클 마법사인 앨버트는 마치 ‘하위 클래스’를 칭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건, 강민혁의 세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5서클 마법사면 충분히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엄청난 경지인데.’

확실했다.

강민혁은 강화 문명에서 살았다.

하지만 평행우주의 한 세계인 이곳은.

‘마법 문명이 꽃을 피운 세계구나.’

마법 문명.

전혀 생소한 단어가, 강민혁의 가슴에 콱 박혔다.

***

자리에 앉은 강민혁은, 앨버트의 수업에 사용하던 책의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초등 마법]

앨버트는 5서클 마법사.

마법사로서는 실패한 사람이며, 그는 아카데미에서 마법사들의 기본기를 다지는 역할을 맡는다고 했다.

고로.

‘이게 마법 문명에서는 엄청 낮은 난이도의 이론이라는 거지.’

사락.

책장을 넘겼다.

시작부터 임팩트 있게, 강민혁을 당황에 빠트린 ‘더블 캐스팅’에 대해 있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처음 마법이 탄생한 시기만 하더라도 더블 캐스팅은 미지의 세계였으나, ‘오토 캐스팅’이 발명된 이후로는 캐스팅은 사실상 인간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멀티 캐스팅(Multi casting)으로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가, 마법사의 정신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었다.]

‘·········오토 캐스팅이라고?’

오토 캐스팅.

멀티 캐스팅.

모두 낯선 단어다.

강민혁은 책장을 넘겨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살폈다.

[오토 캐스팅은 마법의 체계를 마나에 기록해두는 형태다.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의 변형된 형태이며, 마나를 일정한 형태로 분배해서 반복적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해당 형태의 마나를 사용할 경우 자동으로 마법이 발휘된다. 이는 마나의 ‘기억력’을 이용한, 이 세계가 괴물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해준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으나,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강민혁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이학범 교수는 더블 캐스팅이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라고 했어. 동시에 같은 마법의 수식을 계산하면, 더블 캐스팅이 실제로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만약 마법의 형태를 기억하는 오토 시스템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혁명이야.’

몸이 덜덜 떨렸다.

야만인이 신세계를 접했을 때의 기분이 이러할까.

눈을 팽팽 돌게 만드는 엄청난 지식에, 강민혁은 두툼하게 남아있는 페이지를 넘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저 뒤에는 어떤 지식이 있을까.

더블 캐스팅이 초등 과정의 이론이라면, 분명히 남은 페이지에도 엄청난 지식이 숨겨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핑-

‘·········?!’

현기증이 일었다.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 세상에, 강민혁은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그리고.

“강민혁. 수업 도중에 자는 것까지는 용서하겠지만, 그래도 코를 고는 것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이학범 교수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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