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23화 (723/729)

# 723

제723장 대통령 선출

기적연방 초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후보는 전원 숲 연맹 소속으로, 기적성 성주 천제현, 부성주 공화련, 비비안, 생산 및 자원부장이자 성주 부인 신분의 공서련, 엘프왕 랜스로드, 용의 영주 니드호그, 왕국 연맹 맹주 심빙우 등이었다.

대건제국은 패전국인 데다 신규 가입국이라는 특성상 이번에는 입후보 자격을 얻지 못했다. 선거는 정식 등록된 후보끼리의 경쟁이었다. 사실상 결과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 굳이 절차를 하나하나 다 밟는 데는 연방 체제의 기초를 제대로 닦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기적연맹 내부는 시큰둥한 분위기였으나 연방 차원에서는 선거 소식이 대단히 소란스러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그랬듯 대건제국 제1종속국 천룡전국의 공주인 낙유연 역시 대건제국이 기적성과 마찰을 빚기 전부터 기적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대건제국의 연이은 참패는 낙유연의 의식 속에 기적성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켰다. 거대한 대건제국이 어째서 근본도 없는 소형 세력에 속절없이 당하는지,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대건 황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낙유연은 대건제국에 철저히 실망하고 말았다. 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인 황제마저 끌려간 마당에 대건제국이 무슨 염치가 있어 대륙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버틴단 말인가?

낙유연은 각종 루트를 통해 기적성에서 만든 제품들을 입수하면서 기적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그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토록 창조력으로 충만한 세력이라니. 기적성은 대륙의 새 미래였다.

낙유연의 눈에 비친 대건제국은 이후로도 계속 불안하게 흔들렸다. 대건 황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은 본래 대건제국 고위층의 통제 하에 비밀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계기로 인해 제국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이는 금세 온갖 유언비어를 양산해냈다. 대건 황제가 마력을 모조리 잃은 채로 기적성에 갇혀 밤낮 고문에 시달리는 중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 패전으로 전사한 제국군이 200만 명에 달하며 도시 100개를 기적성에 넘겨야 할 판이라는 말도 나왔다. 대건제국이 전쟁에서 완패한 것을 계기로 그간 충성을 다하던 종속국 십여 곳도 등을 돌렸을 뿐더러 몇몇 다른 제국들이 이참에 대건을 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얘기마저 나돌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흉흉한 소문을 따라 민심마저 어수선해진 건 사실이었다. 상인들은 장사를 접었고 약초 농사꾼들은 밭을 가꾸지 않았다. 이주를 준비하는 가문들이 속속 늘더니 한때는 행정체계까지 마비됐다.

천룡전국 내에서도 대건제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낙유연은 이러한 주장의 열띤 지지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건제국이 종속국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지금이 바로 놈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기적성에 의탁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으니.

천룡전국이 막 대건제국을 떠나 기적성 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바로 그때 중대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건제국이 기적성과의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대건제국은 기적성 관할로 편입됐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 전환이었다.

그나마 대건 황제가 중앙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대건 황제가 만약 연방 대통령이 되기라도 했다면 대건제국을 배반한 천룡전국은 앞으로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기적연방 선거는 지방과 중앙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지방에는 지방 대통령이, 중앙에는 중앙 대통령이 존재하는 체제로, 물론 지방 대통령은 지방정부의 행정 수반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의 진짜 핵심은 중앙 정부였다. 이는 곧 대건제국이 더 이상 온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위풍당당하던 제국을 이토록 철저히 무릎 꿇리다니.

대체 기적성은 무슨 수를 쓴 걸까?

낙유연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적성과 대건제국이 전쟁을 종식하고 손을 잡으면 서대륙을 주름잡을 거두가 탄생하는 셈. 앞으로는 천룡전국 같은 나라들도 대건제국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연방 구성원의 하나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연방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적성은 대통령 후보 명단과 신상 자료를 연방 각지에 뿌려 유권자들이 열람하도록 했다. 상회 고위층 인사들에 대해 알리는 동시에 기적성과 기적상회까지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천제현이 맨땅에서 시작해 대륙을 제패하기까지의 연대기를 훑으며 낙유연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이토록이나 전설적인 인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과학기술을 비롯한 기적상회의 저력 뒤에는 최소 수천 년의 역사가 있으리라 여겼건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년이 안 됐다.

고작 5년도 안 걸려서?

5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폐관실에 한 번 들어갔다 하면 5년쯤은 훌쩍 보내고 나오는 술사들도 많았다. 무공 고수들이나 힘 있는 종족들에게 5년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천제현은 5년 만에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변방 국가 소도시에서 시작한 구멍가게가 이제는 전 대륙에 유일무이한 초대형 기업으로 거듭났다.

낙유연은 천제현 회장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하지만 혜성처럼 나타나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남자는 알면 알수록 더 미스터리였다. 그 방대한 지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어떻게 항상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넘치는지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 출생부터 그간 걸어온 길에 이르기까지 천제현에 관한 모든 것은 수수께끼였다.

열흘 후.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낙유연은 왕가 식구들을 따라 천룡전국 왕성에 위치한 선거소로 향했다. 이때 즈음에는 왕성 한 군데만도 이미 1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위해 몰려든 뒤였다. 선거소에 도착한 낙유연은 눈앞에 펼쳐진 인산인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버지, 이게 무슨 상황이죠?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무슨 수로 투표를 하나요.”

50대 즈음으로 보이는 천룡왕 역시 왕성의 투표 열기가 이 정도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터였다. 공주의 질문에 천룡왕이 하늘을 가리켰다. 낙유연이 올려다본 곳에는 거대한 비행선 한 척이 떠 있었다. 길이 500m가 넘는 비행선의 표면에는 기적상회와 기적연방을 상징하는 표식이 뚜렷했다. 거대 비행선은 미끄러지듯 왕성 중앙광장에 착륙했다.

엄청난 크기.

실로 놀라웠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저 덩치가 대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단 말인가?

기적상회의 걸작품이 처음으로 천룡전국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기적상회의 작품은 현실세계는 물론 상상력의 한계마저 초월한, 평생 믿었던 상식을 뒤엎는 ‘그 무엇’이었으니 다들 얼빠진 얼굴인 것도 당연했다.

“기적연방 제1회 대선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보시는 함선은 천망급 대형 정신정보함입니다. 제1회 기적연방 대선은 정신투표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개개인의 선택은 정신력 식별을 거쳐 선거 시스템에 저장됩니다. 여러분이 행사하신 한 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과에 반영되어 민주적인 기적연방의 영원한 번영에 밑거름이 될…….”

군함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멘트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신력 투표? 살다 살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정신력은 개인별로 고유한 특징을 갖는다. 완전히 똑같은 두 개의 정신이 존재할 확률은 20억분의 1 미만, 세상 모든 선거를 날조할 수 있다고 쳐도 정신투표 방식만은 절대 예외였다. 기적연방은 표 한 장 한 장의 출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으며 선거 과정에서의 정신 모니터링을 통해 투표자가 공정한 선택을 했는지까지 확인이 가능했다. 개인의 견해는 정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매수 또는 강압에 의한 투표가 이루어졌을 경우 정신 모니터링에 백발백중 포착되는 것이다.

이는 곧 기적연방 대통령직이 단순히 힘만 세다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뜻이었다.

진정 민주적이고 선진화된 선거가 아닐 수 없었다.

기적연방 대통령의 임기는 10년으로 당연히 무제한 연임이 가능했다. 단, 10년마다 치러지는 선거는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기간 행보에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했다. 백성을 무자비하게 수탈하거나 악독한 정치로 민심을 잃은 자는 결국 옥좌에서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능력과 인품이 출중한 인물은 하급 관원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지방 대통령 선거 출마는 물론 더 나아가 중앙 대선 후보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역량이 된다는 전제하에 누구에게나 무한한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지방 관원에서 중앙정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원칙을 적용받았다.

대륙에서 역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정치제도였다.

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동기를 부여했다. 관직은 더 이상 귀족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무능한 관원은 언제라도 그 자리를 갈망하는 다른 이에게 밀려날 수 있었다. 경쟁과 감독, 그리고 투명성이 보장된 정치체계는 기적연방의 안정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연방 휘하로 편입된 국가들에게도 희망이 됐다.

대건제국 일부 세력은 기적성이 연방을 총괄하는 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보장된다면 그들에게도 희망이 남은 셈이었다. 10년 후 차기 대선 때는 대건 황제도 얼마든지 후보 출마가 가능했다. 대건국 인구를 생각하면 대건 황제는 분명 강력한 당선 후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정반대로 대건제국이 기적연방을 삼킬 수 있지 않겠는가?

언뜻 허황된 욕심으로 들릴지 몰라도 기적연방의 체제에 비춰보면 정말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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