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22화 (722/729)

# 722

제722장 연방

며칠 후.

비공개회의의 결과가 전 대륙에 공표됐다.

19개 제국은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한 왕국을 주소지로 연합의회가 이끄는 국제연합을 세웠다.

연합의회는 총 19석으로 구성됐고 제국 지도자들은 각자 자신의 최측근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의회의 설립 목적은 대륙의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이제 국가 간 협의 불가능한 갈등이 발생할 시 연합의회에 개입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의회는 요청 접수 또는 자체 의지로 국제 분쟁에 개입해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대상 국가가 판결에 불복할 경우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제재할 권리를 가졌다. 이때 다른 회원국들 역시 평화유지부대 파견에 협력해야 했다.

이렇든 연합의회의 표면적 설립목적은 평화 수호였으나 사실 그 진짜 출발점은 곧 탄생할 기적연방을 견제하려는 의지였다. 기적연방이 발톱을 드러낼 그날 전 대륙을 하나로 묶어 그들에게 대항할 기구가 바로 연합의회인 것이다.

기적성은 반대는커녕 되레 연합의회 출범 당일 군함 5척, 전투기 100대, 대포 1,000문에 마력 무기 수만 정을 선물했다. 거기에 모든 비용을 자체 부담해 공간문 1개와 전송탑 4개를 만들어주고 각국 수뇌에게 전달할 전송두루마리도 500장이나 제작했다. 어디 그뿐이랴, 기적대륙 세인트캐슬 도심지에 위치한 궁전 하나를 연합의회 가상세계 사무처로 제공해 대륙에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하든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제아무리 눈부신 문명을 쌓았다 해도 이 세계는 결국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강력한 힘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연합의회는 허울뿐인 허수아비로 전락하거나 있으나 마나 한 병풍 신세가 될 게 뻔했다.

전폭적인 무기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전송탑, 공간문, 전송두루마리, 통신설비, 가상세계 사무처, 기적성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로 제공했다.

기적성이 6대 동맹국과 함께 대건제국을 박살 냈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대륙 어디로든 눈 깜짝할 사이에 군대를 전송할 수 있는 ‘공간문’이라는 장치가 온 세상에 알려졌다.

대륙 전역을 실시간 타격 범위로 만들어주는 문이라니, 실로 위협적인 장치였다. 기적성이 대규모 무기 지원에 이어 공간문까지 만들어준 덕분에 연합의회는 정식 출범 전부터 상당한 권위를 갖출 수 있었다.

물론 기적상회의 원조가 결정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연합의회의 독립성을 완벽히 보장받기 어려웠다. 연합의회 가입의 첫째 조건은 대륙 정상급 제국이어야 할 것, 회원국들은 가입과 동시에 본국에서 최정예 병력 10만씩을 차출해 연합의회 휘하에 약 200만 명 규모의 초거대 무력집단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밖에, 회원국들은 매년 연합의회에 회비를 납부해야 했다. 기적상회가 각종 공장을 건설해 자체 산업사슬을 만들어주기로 약속은 했으나 국제연합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발생하는 적자는 각 제국이 공평하게 나눠 메꾸기로 합의됐다.

연합의회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중립’에 있었다.

절대적인 중립은 연합의회가 갖춰야 할 핵심 조건이었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의회는 3만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저승바다의 망령현자에게 초기 의장직을 맡기기로 했다. 그는 깊은 지혜와 연륜을 지녔으나 자아를 이미 상실한 존재로, 미리 설정된 정신술법에 걸린 채로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이었다. 그가 의장직에 있는 한 연합의회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여지가 없었다.

훗날에는 기적상회에 요청해 연합의회 전용 슈퍼 알파브레인을 제작할 가능성도 있었다. 다른 의회 구성원들은 상황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감정이 없는 알파브레인은 그럴 염려가 없었다. 게다가 알파브레인의 분석력과 처리능력은 쟁쟁한 참모단 하나가 통째로 와도 못 당해낼 만큼 뛰어났다.

국제연합의 출범은 세계정세를 뒤흔들 일대 사건이었다. 직속 군대와 압도적인 군사 장비로 무장한 연합의회는 향후 대륙 평화의 버팀목으로 굳건히 설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번 회의가 낸 최대 성과였다.

모든 준비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기적연방 건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왔다.

천제현은 막판 정리를 위해 공화련과 함께 대건제국으로 향했다. 공화련의 끈질긴 개입과 조정 덕에 이제 대건제국은 평민에서 귀족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90%가 기적연방 편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화련의 수완이 아무리 뛰어난들 반대파는 존재하게 마련이었다.

반대파를 이끄는 건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휘하의 사병과 일반 민중들을 선동해 기적연방 성립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을 조직했다. 천제현이 그들을 상대하는 방식은 간단명료했다. 일단 매수를 시도했다가 안 되면 겁을 주고, 으름장도 안 통하면 흠씬 두들겨 패주고, 그것도 안 먹히면 깔끔하게 죽여 버리는 식이었다.

기적성 소속 전투기 전체가 대건제국 상공으로 이동했고 우주무기 역시 속속 발사구를 대건제국 방향으로 돌렸다. 국토 어느 구석에서 머리를 내밀든 반군은 절대 기적성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기적성은 우주무기와 신속대응부대를 이용해 그야말로 질풍 같은 기세로 저항세력을 토벌했다.

약 보름 후.

저항세력은 대건제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보름간 기적성은 반대파만 제거한 게 아니라 대건제국과의 공동 출자로 제국 내 36개 지역에 전송탑을 세웠다. 또한, 초고강도 신호를 송출하는 최신형 천망급 군함을 띄워 제국 전역에서 통신 신호가 잡히도록 했다. 첨단 과학기술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봤던 폐쇄적 제국이 단 며칠 만에 기술의 편리함을 한껏 향유하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앞으로 전송탑이 속속 들어서고 공간창고를 기반으로 한 물류시스템에 기적상회 제품이 하나둘 진입하게 되면 제국인들도 기적연방 가입이 얼마나 큰 이득인지를 체감하게 되리라.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반대파도 더는 도리가 없을 수밖에.

천제현과 공화련은 큰 어려움 없이 대건제국을 평정했다.

정확히 이즈음, 대륙 중앙에 연합의회가 구성됐다. 천제현은 기적성 성주 자격으로 연합의회에 연방 설립 허가를 신청했다. 기적연방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새로 출범한 연합의회에 공신력을 실어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기적연방 성립은 내부적으로 합의가 끝난 일이었다. 천제현이 불필요한 수고로움을 감수한 건 기적연방에 합법적인 지위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다수의 대제국이 참여한 연합의회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건 곧 전 대륙의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기적연방의 정체성에 대해 뒷말이 나올 걱정은 없어진다.

연합의회 또한 공신력을 얻으려면 기적연방 같은 거물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세 중의 대세, 한창 잘 나가는 기적성마저 연방 설립에 연합의회의 허가를 구하는데, 어느 누가 감히 연합의회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각자 원하는 바를 얻는 거래였던 것이다.

천제현이 연합의회에 제출한 신청서는 분석과 토론을 거쳐 최종 표결을 무사히 통과했다. 연합의회가 인정한 기적연방의 영토범위 안에는 숲 연맹, 왕국 연맹, 지하 연맹, 서해 연맹, 대건제국, 이렇게 5개 지역이 들어갔다. 지역마다 독자적인 행정권과 치안권을 소유한 지방정부를 두되 가장 중요한 군사권한은 기적성이 총괄하기로 했다.

연합의회와 기적연방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기적연방이 앞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담겼다. 절대 규모를 확장하지 말 것, 침략 전쟁을 벌이지 말 것, 성벽을 쌓지 말 것, 자발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타국 영토를 공격하지 말 것 등등. 이러한 내용은 연합의회 명의로 세상에 공개됐다. 전 세계가 공증인인 동시에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공화련의 교섭은 승리로 끝났다.

제국들은 기적연방 탄생을 두 손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기적연방은 규모로 보나 힘으로 보나 대륙 역사상 그 어느 제국보다도 우월했다. 대륙의 왕좌를 차지할 신흥 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연방 설립이란 게 어디 그리 말처럼 뚝딱 되랴.

기적상회가 혼돈의 숲에 자리를 잡은 지는 이제 고작 수년. 엄밀히 말해 기적상회는 혼돈의 숲조차도 완전히 손에 넣지 못한 상태였다. 연방 설립을 선포하기 직전까지도 혼돈의 숲 내 도시들 중 상당수는 명확한 의사 표시를 보류한 채였다.

혼돈의 숲 하나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광활한 다섯 지역을 통합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가능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연방은 이미 만들어졌는데 지도자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라는 사실이었다.

기적연방은 대륙 그 어느 국가와도 다른 체제였다. 제국이 아니었기에 황제라는 호칭을 쓸 수도 없었다. 기적연방의 지도자는 거대한 다섯 지역을 통솔할 자리. 그 직위명은 ‘대통령’으로 지어졌다.

대통령은 세습이나 직접 임명으로 정할 수 없었다. 기적성은 가장 좋은 출발을 위해 기적연방 전역에서 대통령 경선을 벌이기로 했다. 물론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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