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20화 (720/729)

# 720

제720장 평화회담

공화련은 대륙의 모든 제왕급 세력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기적성이 제국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으니 모든 제왕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으로 이번 일을 의논하자는 취지였다. 그녀는 대건 황제와 대건제국을 손아귀에 넣었지만, 외부 세계가 동조하지 않는다면 기적연방은 영원히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회담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전 세계의 구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이번 제국 정상회담의 주제는 ‘대륙 평화를 위한 토론’이었다.

회담의 주최측이 기적성이었기 때문에 회의장도 기적왕궁이었다. 기적왕궁은 건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기적대륙의 정상급 회의장소로 사용되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제국급 세력은 총 22개가 있었다. 그중 3개는 세상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특수 국가들이었다. 그들은 대륙에서 아무리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곤 했다. 이 3개의 국가를 제외한 19개의 국가 정상들이 이번 회담에 참석했다.

역사상 전례가 없던 최정상 회담으로, 참가자들 모두가 대륙에서 최대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기적연방의 설립과 대륙의 발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기적성과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기적성이 대건제국을 합병해 초대형 세력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제왕은 아무도 없었다.

“천제현 성주의 행보는 참으로 빠르구려. 얼마 전의 혼례로 대륙에 일으킨 풍파가 아직 잠잠해지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또 기적연방인지 뭔지를 설립하겠다니.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그대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조차 힘들 정도라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용들의 땅에서 온 용의 영주였다. 6대 동맹국 중 하나인 용들의 땅은 기적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기에 용의 영주 또한 대놓고 반대 의견을 펴지는 않았다. 그는 참을성 있게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기적연방을 설립하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 기적성의 명성과 지위, 영향력으로 얼마든지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보오. 문제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는 데 있소.”

“맞는 말이오!”

광수제국의 광수대제도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기적연방의 면적은 이미 제국의 수준을 넘어섰소. 이런 상황에서 대건제국까지 연방에 들어간다면 서쪽 대륙과 서해의 반 이상이 기적연방에 속하게 되오. 제국 세력 3~5개를 더해도 기적연방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할 테지.”

분천대제도 의견을 말했다.

“천제현 성주, 재차 생각해 보길 바라오. 이번 행보로 인해 대륙 각국과의 관계가 경색될 수도 있고, 여태까지 쌓아온 기적성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그리 점잔을 떨며 말하시오?”

한 제왕이 분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강한 위엄을 가진 자였다.

“대륙에서 인정받는 제국들치고 만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지 않은 곳이 없소. 그런 곳을 하루아침에 삼켜 버린다면 필시 혼란이 일어날 것이오. 그 혼란은 결국 대륙 전체로 퍼져나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겠지. 나는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소!”

“내 의견도 같소!”

또 다른 제왕도 벌떡 일어나 입을 열었다.

“현재 대륙의 세력 구도는 천 년 넘게 균형을 이루어 왔습니다. 각 제국 간에 이런저런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대륙의 형세를 바꿔놓을 만한 큰 전쟁은 없었지요. 기적성의 대건제국 합병은 현재의 균형을 흔들어놓는 행동입니다!”

“옳소!”

“나도 반대하오!”

“그런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소!”

천제현과 공화련이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회의실은 반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뭐,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담담한 표정으로 참가자들이 발언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제 입장은 단순합니다.”

천제현은 자리에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는 더 이상 무명의 애송이가 아니었다. 천제현은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쟁쟁한 인물들을 앞에 두고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 초대한 이유는 함께 이번 일의 해결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지, 중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천제현, 그게 무슨 소리냐!”

“아직 이해가 안 되십니까?”

천제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여러분이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이번 일을 취소하거나 중단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지요. 기적연방은 반드시 성립될 것입니다. 이것은 기정사실이므로 누구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정사실화된 일을 전제로 평화회담을 진행하고 향후 대륙의 100년, 1000년 발전에 대해 의논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번영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거라는 말이지요.”

참가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일부 제왕들은 화가 치미는 듯했다.

저 오만방자한 애송이가 해도 너무하는군.

이곳에 있는 제왕들은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넘게 이름을 떨친 자들이다. 이름을 알린 지 이제 채 2년도 안 된 놈이 그런 그들을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하다니, 모욕적인 일이었다.

물론 천제현은 확실히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기적연방의 성립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해서 중단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기적성은 대륙 최강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건제국은 서해 최강의 제국입니다. 우리 둘이 통합하여 기적연방을 성립한다면 서쪽 대륙 최강의 세력이 형성되겠지요. 기분 언짢으실 말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여기 모인 모든 분이 힘을 합해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겁니다.”

모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저 건방진 놈이 대륙의 모든 세력에 선전포고라도 하겠다는 건가?’

“천제현! 네 뜻은 잘 알았다. 이 정도의 야심가인 줄은 몰랐구나. 오늘은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옳소! 전쟁을 준비합시다!”

“우리 열아홉 세력이 기적연방 하나 상대하지 못할 성 싶으냐? 자만도 어지간해야지!”

제왕들은 분기탱천하여 자리를 뜨려고 했다.

“모두 진정하시오. 아직 천제현 성주의 말이 끝나지 않았소.”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승바다의 명왕이었다. 그는 이곳에 모인 정상들 중 무공이 가장 심후한 존재였다. 불사족인 그의 나이가 몇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명왕은 이번 회담에 참석한 제왕들 중 누구보다도 기적성과의 관계 단절을 원하지 않았다.

불사족은 언뜻 보기엔 불로불사, 영생을 사는 존재 같지만 그들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사족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일단 망령이 되면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생리기능이 정지한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며 번식을 할 필요도 없다. 망령들은 호롱에 갇힌 불꽃처럼 특수한 방식으로 외부세계를 감지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영혼과 정신이 점차 쇠약해지고 만다. 육신의 노쇠함은 약재를 통해 늦출 수 있다지만 영혼의 쇠약은 무슨 방법을 써도 멈출 수 없다.

그런데 기적대륙이 생겨나면서 저승바다의 수많은 망령들이 기적대륙에서 다시 한 번 육신을 갖고 다른 생명체들처럼 세상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망령들의 약점을 크게 개선해주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망령들은 욕구도, 본능도 없는 종족이다. 저승바다는 대륙에서 가장 신비롭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세력으로, 그들의 진정한 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저승바다는 대륙의 세력 쟁탈전에 시종일관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물도, 권력도, 힘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생이야말로 그들이 유일하게 추구하는 것이었다.

명왕의 말에 회의장을 떠나려던 몇 명의 제왕들이 움찔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기적성 연맹 6국의 태도였다.

저승바다는 기적성 연맹 6국 중 가장 강력한 힘과 오랜 역사를 지닌 세력이다. 만약 저승바다가 기적연방 쪽에 서기로 결정한다면 기적연방과 맞설 희망조차 없어진다.

게다가 천제현이 괘씸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현재의 기적성은 더 이상 쉽게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륙의 전송, 물류, 통신 시스템 전부가 기적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기적성과 적이 된다면 그들은 아주 빨리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적성을 함락하는 건 고사하고 1~2년 안에 자국의 영토가 초토화될 수 있었다. 기적성의 강력한 전송 기술이며 공간문, 그리고 얼마 전에 선보인 고공무기면 반대 세력이 병력을 모으기 전에 하나씩 격파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니, 반대 세력이 병력을 모은다 쳐도 정말 기적연방을 무찌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기적성의 과학기술은 너무나 뛰어났다. 매년 새로운 혁신의 흐름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로 인해 그들과의 전쟁에는 변수가 많았다. 대건제국이 기적성을 공격할 당시 기적성은 전국 세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약소 세력에 불과했다. 그때 대건제국이 패배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역사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 법이다.

지금이야 대륙 각국이 연합하여 기적연방을 친다면 충분히 기적연방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과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게다가 그런 전쟁은 일단 시작되면 중간에 멈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기적성을 함락한다 해도 기적상회는 잠깐 서해나 지하세계, 우주로 물러나 다시 힘을 키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연합군으로서는 추격이 불가능하다. 그 정도의 기술이 없으니까.

한 번.

단 한 번에 기적성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한다면 그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건 전 대륙의 악몽이 되겠지.

오늘 회담에서 어떻게 해서든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대륙은 전례 없던 대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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