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9
제719장 혼란 야기
대건 황제는 모욕감과 분노로 몸을 떨며 말했다.
“천제현, 주제를 알거라! 대건제국은 역대 선제들의 선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몇 번의 전투로 대건제국을 삼킬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말에 어폐가 있으시군요. 전 대건제국을 삼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건제국과 백성들, 그리고 황제 폐하 모두 건재하실 겁니다. 대건제국의 명맥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그저 더 과학적이고 완벽한 권력 구조를 만들려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완벽한 통합을 이루면 저는 기적상회의 과학기술과 제품들을 모두 대건제국에 투입할 겁니다. 그럼 십억 백성들이 전례 없던 부와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겠죠. 그게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거라곤 권력을 쥔 자들의 일부 이익뿐입니다.”
“허튼 소리!”
“동의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폐하께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25만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천천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릴까요? 지금 대건제국은 풍전등화 상태입니다. 모든 속국들이 공납을 중단했고 고원연맹과 소천제국은 기적성과 동맹을 맺었으며 대건제국을 칠 준비를 하고 있죠. 대건제국 내부는 어떨까요? 엉망진창입니다. 5억이 넘는 백성들이 제국 통치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고, 각 성에 자리 잡은 15개 이상의 가문들이 독립을 선언하려 하고 있죠. 황족들은 귀족들에게 황궁을 빼앗겼고, 황궁은 아비규환이 된 상황입니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천제현이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신제품 투구를 대건 황제 폐하께 씌워드려라. 폐하, 그럼 2천 년 뒤에 뵙겠습니다!”
죽음의 현자가 새로 개발된 투구를 대건 황제의 머리 위에 씌우려 했다.
“잠깐!”
대건 황제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요구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모든 이의 동의를 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알았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
이런 결정을 내린 대건 황제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로서도 벼랑 끝에 몰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천제현의 수법이 너무나 악랄했기 때문이다. 그의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감옥에 25만 년 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
25만 년.
대건 황제는 세상의 모든 잔혹한 고문을 받다가 죽을지언정 외로움과 어둠 속에서 홀로 25만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 개발됐다는 정신투구의 25만 년 수금은 고사하고, 앞서 겪은 25년의 독방 생활로도 그의 정신과 마음가짐, 사상은 거대한 변화가 생긴 상태였다.
천제현은 팔짱을 낀 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대건 황제를 쳐다봤다.
“제가 폐하를 어찌 믿어야 합니까?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동의하셨다가 뒤돌아서 모른다고 잡아떼시기라도 하면 전 바보 꼴이 되는 것 아닙니까?”
대건 황제는 천제현이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게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지고 와라!”
“좋습니다.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더는 눈치 보지 않겠습니다.”
천제현이 단약 몇 알과 정신계약서를 들고 왔다.
“이 단약들은 정신감지 계통의 독약입니다. 복용하는 순간 체내 깊숙이 자리 잡아 그 어떤 제약사가 와도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죠. 이 독약은 폐하의 생각에 반응합니다. 폐하께서 약속을 저 버리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순간 약효가 활성화되어 폐하를 삼켜 버릴 것입니다. 이 정신계약서는 만일을 위한 것이고요.”
단약과 정신계약으로 이중 장치를 해둔다면 대건 황제의 배신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리라.
대건 황제는 무슨 수를 써도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저항도 헛수고에 불과할 테니 괜한 힘 빼지 않고 받아들여야겠지. 그는 독약을 삼키고 정신력 일부를 계약서에 봉인했다.
“좋습니다.”
천제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건제국을 손에 넣든 넣지 못하든 적어도 제국의 황제는 손아귀에 쥔 것 아닌가. 이자가 그의 손바닥 위에 있는 한 대건제국은 영원히 숲의 연맹을 적으로 돌리지 못할 것이다.
천제현은 이 기쁜 소식을 대건제국에 있는 공화련에게 보고했다.
천제현이 이렇게 쉽게 대건 황제를 요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공화련은 깜짝 놀랐다.
대건 황제는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제왕들 중 한 명이다. 그를 무릎 꿇리는 것은 대건제국의 수많은 오합지졸들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지 않는가. 천제현이 하기 힘든 일을 공화련이 해냈듯, 공화련이 하기 힘든 일 역시 천제현은 손쉽게 해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데 대건 제국 하나 수습하지 못하겠는가?
계약을 맺은 대건 황제는 감옥에서 나와 자유를 되찾았다. 천제현은 전통적인 수법으로 그를 굴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 측면에서까지 그를 완전히 제압했다. 어쨌든 이제 대건 황제는 자유롭게 숲 연맹 구역을 돌아다니며 기적성의 과학 기술을 구경하게 되었다. 천제현은 그에게 기적투구까지 하나 선물했다.
기적성의 진정한 면모를 본 대건 황제는 그제야 기적성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건제국과 기적성의 거대한 격차를 체감하게 되었다. 지난날 기적성을 이기지 못했으니 지금은 더더욱 희망이 없었다. 그러니 무릎을 꿇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리가.
굴복하면 최소한 부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은가.
저항을 해본들 죽음과 파괴밖에 얻을 것이 없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대건제국에서의 일을 거의 끝마쳤으니 대건 황제를 복귀시키라는 공화련의 통보가 왔다. 천제현은 두말 않고 연맹의 사대 거물들을 불러 사절단을 꾸린 뒤 대건 황제를 대건제국까지 호위하도록 했다.
양측은 공동으로 환영식과 협상식을 준비했다.
진실을 모르는 다른 세력들에게는 기적성과 대건제국 간에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였다. 대건 황제를 돌려받는 대가로 대건제국이 배상금이나 토지 분배 등 막대한 대가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기적성은 여전히 기적성이었고, 대건제국 또한 여전히 대건제국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일국의 제왕을 죽이고 싶다고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건 국제 관행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현재 대륙인들의 시선은 기적대륙과 기적성의 새로운 과학기술에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에 기적성의 언론 통제까지 더해져 대건제국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무사평온하게 보름이 지나갔다.
공화련과 천제현은 수시로 기적대륙에 나타났으며, 대건 황제도 기적대륙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두 세력이 완전히 화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적성과 대건제국 간에 이뤄진 보상 협의에 대해선 추측이 난무했으나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대건제국은 숲의 연맹에서 아주 먼 곳에 위치해 있고, 두 세력 사이에는 수많은 중소형 국가들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대건제국이 숲 연맹에 영토를 떼어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배상금 정도가 지불됐겠지. 하지만 기적성은 부유한 도시 아닌가. 그들에게 100억, 200억 마석이 대수랴.
그런데 이때, 전 대륙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이 공포되었다.
천제현, 대건 황제, 연맹의 6대 거물, 해양종족 대표, 지하세계 대표 등이 기적성에 모여 기적연방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기적연방은 대륙 최초의 연방제 국가로서 총 300개 주와 군으로 이루어지며, 기적성이 이 국가의 수도가 될 예정이었다. 연방국 최고 지도자는 연방의회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대륙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누구도 일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대륙인들은 천제현이 연맹 지역을 통일한 후 새로운 제국 세력을 형성할 거라고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재 기적성의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해 봤을 때 제국급 세력으로 발전하다 한들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모두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연방국가라니! 그것도 대건제국까지 포함해서!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기적성이 기존에 형성한 연맹 세력은 제국급 세력으로 부상할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건제국이 포함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들의 연합은 서쪽 대륙 전체를 아우를 초대형 세력으로 거듭난다는 말과 같았다. 대륙의 그 어떤 제국급 세력보다도 상위에 있는 슈퍼 제국.
기적성 연맹 지역과 대건제국 지역, 서해는 전부 제국으로 성장할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세 지역이 통합되면 그들 사이에 있는 수백 개의 중소 왕국들도 그들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방국은 최소 4~5개 제국이 합병된 것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되리라.
대륙에서 기적연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각지의 제왕들은 공황에 빠졌다.
기적성의 야심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났기 때문이다.
현재 대륙 각지는 기적성의 기술이 가져온 혜택을 누리며 기적성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적성이 이런 수를 내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압박감을 느낀 다른 세력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유사 이래 가장 어려운 선택임이 분명했다.
일부 제국 세력들은 기적성의 이번 조치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은 기적성이 독재를 꿈꾸고 있으며,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마수를 드러낸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제국들이 함께 연합하여 기적성의 야심을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이러한 목소리는 아주 빨리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모두가 몸집을 키운 기적성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제국들이 그러한 주장에 동조했지만, 더 많은 제국들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특히 기적성과 관계가 돈독한 6대 제국 세력이 그랬다. 그들 역시 기적성의 행보를 수용하기는 힘들었지만, 기적성과 반목할 여건은 더더욱 안 됐다.
기적성과 대건제국이 합병하면 서해에서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대륙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 공격할지라도 기적성은 최소한 명맥 보전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럼 그전쟁은 몇 십 년, 몇 백 년 동안 이어지는 세기의 전쟁이 될 것이다.
게다가 기적성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 우주와 지하세계의 자원은 물론이고, 전송, 물류, 통신 시스템 등이 모두 끊기게 된다.
공화련은 대륙 전체가 술렁거리는 걸 지켜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제왕들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 범주 안에 있었으니까. 이렇게 큰일을 웃으면서 받아들이고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