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7
제717장 단계 돌파
기적대륙에 밤의 어스름이 깔리자 세인트캐슬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세인트캐슬의 기적대주점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기적대륙의 설정은 현실세계와 매우 흡사하지만, 100%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기적대륙에서도 현실세계에서처럼 허기가 찾아오지만, 환상과 현실은 어디까지나 차이가 있었다.
현실에서는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강력한 술사라도 죽음을 면하지는 못하지만, 기적대륙에서는 밥을 먹지 않는다고 굶어 죽는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배고픔이 가져오는 불편함과 고통만 참을 수 있으면 그 안에서 5년이고 10년이고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기적대륙과 현실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물론 부자들은 기적대륙에서도 상다리가 부러져라 주문한 후 마음껏 먹고 마셨고, 일반인들은 현실에서 엄두조차 못 냈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며칠에 한 끼, 아니, 몇 달에 한 끼만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배고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기 힘들어하는 것이지만, 사실 기적대륙에 들어온 사람치고 끼니조차 거를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허기진 상태에서는 마력이 크게 떨어지고 각종 모험이나 전투, 생산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기적대륙의 시간은 현실 세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 세 끼를 먹는 동안 기적대륙에서는 아홉 끼, 열 끼를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요식업은 기적대륙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향후 기적대륙의 인구가 억 단위를 넘어서면 요식업만으로도 엄청난 돈벌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세인트캐슬은 기적대륙이 오픈되는 순간부터 모든 부대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요식업과 숙박업, 여가사업 등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어디에나 똑똑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상인들은 벌써부터 기적대륙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거액을 들여 세인트캐슬의 상점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 팔아서 시세 차익을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요식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의 마석으로 기적대륙의 시장을 선점할 수만 있다면 향후 엄청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 테니까.
기적대륙을 한 번 이용해 본 사람들은 짜릿한 자극과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수가 되는 방법도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특수 던전이나 유적을 탐험하면서 몬스터들을 죽여 귀한 보물이나 비급을 손에 넣은 뒤 단번에 고수가 됐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이룬 뒤 공성전을 통해 한 지역의 세력가로 성장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오직 상업에만 몰두해 자원을 판매하고 부동산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큰돈을 번 후 다른 모험가들에게서 약재며 단약을 사서 최강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다원화된 세계를 즐기는 방법은 이토록 다양했다.
모험, 세력 양성, 상업은 많은 이들이 걷는 주요 노선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기적대륙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고 이 세 가지는 가장 일반적인 사례일 뿐이니까.
세인트캐슬에는 문화나 엔터테인먼트, 유저 간 경쟁과 관련된 건물들이 많았고, 최근에는 프로 검투사들까지 등장했다.
검투사들은 가상 경기장에서 결투를 벌였다. 결투에서 적에게 이기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푸짐한 전리품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검투사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시련에 참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수가 될 수 있었다.
검투사들의 경기는 뛰어난 오락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멋진 경기는 수많은 관중을 끌어 모았고, 현실 세계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새로운 스타 양성소가 생겨난 셈이었다. 각 세력들은 재능 있는 검투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검투 경기 외에도 학문 연구나 뛰어난 영상물, 혹은 예술작품을 창작해서 이름을 알리고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들 또한 그렇게 번 마석으로 단약이나 약초를 사서 실력을 키웠다.
종합적으로 보면.
모험, 세력 확장, 상업, 검투, 창작, 학문 등 모든 분야가 매우 복잡하면서도 공정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된다면 이 가상의 세계에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기적대륙이 열렬한 환영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천제현은 기적대륙에서 나와 일련의 데이터들을 훑어보았다.
기적대륙의 인구는 수백만 명에 달했다. 그 사람들이 며칠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5억 마석 이상의 돈을 사용했다. 주요 소비 품목은 부동산, 식음료, 보조형 아이템, 쇼핑몰 구매 및 각종 서비스 등이었다.
기적대륙에 들어온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그들의 소비력은 엄청났다. 게다가 그들은 잔존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풍월여제, 광수대제와 같은 제왕급 인물들은 기적대륙의 열성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실 세계의 제왕들치고 무공이든 세력이든 정점에 오르지 않은 자는 드무니까. 그들은 더 성장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그들 앞에 갑자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졌으니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통계를 보던 천제현은 제왕들이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기적대륙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실세계에 비상사태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 기적대륙 안에 있었던 셈이다.
이제 제왕들은 세인트캐슬 안에 가상 부동산과 왕궁들을 짓고 있었다.
업무를 보는 장소를 아예 기적대륙으로 옮겨갈 생각인 듯했다.
기적대륙의 부동산 역시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세인트캐슬의 면적은 매우 컸고, 호화로운 궁전이나 아기자기한 주택들은 제왕들은 물론이고 일반 이용자들까지 혹하게 만들었다. 이는 향후 기적대륙에서 가장 크게 이윤을 창출할 분야로 손꼽히고 있었다.
보고서를 보던 천제현은 기적대륙의 전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때 슈퍼 알파브레인, 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주님, 주문하신 재료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장 사용하시겠습니까?”
“벌써 배달됐다고?”
천제현은 깜짝 놀랐다. 그가 주문한 것들은 일반적인 재료가 아니어서 보통은 수급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부 내 실험실 공간창고에 갖다 놔. 지금 바로 사용할 테니까.”
천제현은 자신의 전용 실험실로 가서 공간창고를 열고 재료를 전부 꺼냈다.
십여 개의 정교한 선옥보석함에 담긴 최상품 약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하나가 천역 고수라면 눈이 벌게져서 덤벼들 정도의 귀한 물건이었다. 수백만 리 떨어진 대륙 각지에서 하나씩 구매해 이틀 안에 가져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적상회의 저력이며, 기적성의 힘이었다.
새끼 여우가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허튼 생각 말고 저쪽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 네가 기적대륙에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게다가 네놈이 평소에 기적화원을 비롯한 곳곳에서 훔쳐 먹은 약초며 재료들의 값을 다 더하면 못해도 3~5억 마석은 될 거다. 이 선약까지 훔쳐 먹었다간 네 계정을 정지시키고 네가 번 돈 전부를 처분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 말을 들은 새끼 여우는 약이 바짝 올라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내가 내 능력으로 번 돈을 네가 왜.
화원과 창고에서 약재들을 훔쳐 먹긴 했지만, 그것도 다 능력이 되니까 가능했던 일 아닌가.
천제현은 성질을 부리는 여우를 보며 휘휘 손을 내저었다.
“알았다, 알았어. 어쨌든 난 이제 약초를 제련할 거야. 이번 제련은 아주 중요하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한쪽에 가서 놀고 있어.”
여우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오랜 시간 생사를 함께한 동료에게 이따위 취급이라니.
녀석은 팩하고 돌아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는 단맛을 본 기적대륙으로 들어갔다.
요즘 같이 돈 벌기 쉬운 시대도 없지 않은가.
새끼 여우는 기적대륙에서 직접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새끼 여우를 쫓아낸 천제현은 정신과 신식을 가다듬고 왼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러자 오래된 청동솥이 천천히 회전하며 떠올랐다. 천제현이 솥에 신식을 쏟아붓자 솥 겉면의 마력진 무늬에서 은은한 빛이 맴돌았고, 그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굉음과 함께 강력한 마력이 껍데기를 벗고 쏟아져 나왔다. 실험실에 있는 보조 제련장치가 사방으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몇 개의 힘이 동시에 움직이며 청동솥의 마력 제약진이 가동되었다.
천제현의 강력한 힘에 기적성 실험실 설비들까지 더해져 제련에 박차를 가했다. 제련장치에서 나오는 마력은 마석에서 직접 뽑아낸 것으로 인체와 100% 융합될 만큼 높은 순도를 보였다. 천제현의 마력은 모든 과정을 면밀히 제어했다.
그는 달의 신 궁전에서 가져온 신약의 윗부분을 조금 떼어 솥에 넣었다.
***
7일 후.
솥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솥 한가운데 놓인 단약이 발하는 빛이었다.
천제현은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기적성을 샅샅이 뒤져도 이 단약을 보관할 재료를 찾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약효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신약을 잃는다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그는 지체 않고 단약을 입에 넣어 삼킨 후 정좌한 채로 제련하기 시작했다.
몸 안에서 거대한 영력이 들끓었다. 천제현은 오랫동안 천역 1성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기적상회가 지닌 막대한 자원과 생산 우위 덕에 고위층 인사들은 각종 단약을 간식 먹듯 복용해왔고, 천제현도 매일 선약을 먹으면서 마력을 성장시켰다.
그런 날이 매일 지속됐으나 마력의 단계를 뛰어 넘는 것에 급급하지는 않았기에 천제현의 몸 안에 쌓인 마력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던 차에 신약을 복용하자 댐이 터지듯 체내의 마력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영기가 그의 몸 곳곳의 경맥으로 스며들면서 제련되며 극도로 순수한 원시의 마력으로 변했다. 천제현은 경맥 하나하나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마력을 느꼈다.
이윽고 천제현은 천역 1성을 뛰어 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체내에 축적된 마력 대부분이 아직 전부 소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단약에 맴도는 신성은 여태까지 복용한 단약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천제현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그의 마력은 무난히 두 번째 경지를 돌파했다.
천역 3성.
천제현의 마력은 아직 제왕들과 견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다양한 능력과 수단이 있으니 이제 제왕들과 겨뤄도 그렇게 쉽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연맹의 거물들과도 정면 대결이 가능해졌다. 대륙 최강자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