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14화 (714/729)

# 714

제714장 정신감옥

대건 황제는 기적성이 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엘프왕 랜스로드의 도움으로 6대 제왕들이 대건 황제를 생포하였다. 그런데 대건 황제가 기적성으로 압송되어 갇혀 지낸 지난 이틀간, 천제현은 물론 기적상회와 기적성 고위급 인물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지하 감옥에 가둬둔 채 거들떠보지 않았다. 황제가 아닌 그저 좀도둑 하나 잡아온 것 같은 푸대접이었다.

대건 황제는 진법에 의해 마력이 진압된 상태였다.

손과 발, 허리와 목까지 모두 주술문 사슬에 묶여 있었다.

갈고리 두 개는 어깨를 파고들어 마력 경맥을 완전히 막았다.

그 곁에는 천역 경지 강자 7~8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감시했다. 24시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으니 탈출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지금 대건 황제의 꼴은 말이 아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얇은 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몸은 피로 가득했다. 세상을 뒤흔들 마력을 가졌건만, 지금은 완전히 무용지물이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제왕에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천제현은 오늘에서야 대건 황제가 갇혀 있는 게 생각나기라도 한 듯, 지하 감옥에 그를 보러 왔다. 지하 감옥의 철저한 보안을 지나고 나니 지하 감옥에 갇힌 대건 황제를 볼 수 있었다.

대건 황제는 마력을 억제하는 초대형 마력진에 완전히 제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대건 황제는 천지를 뒤흔들던 황제의 위엄은 고사하고 걸을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낀 대건 황제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선 청년을 바라보았다. 아주 젊어 보이는 생김새, 소박하고 단출한 옷차림의 청년은 왼손에는 투구를 들고, 오른편 어깨에는 여우 한 마리를 올리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대건 황제는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천제현은 벌써 수차례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천제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대건 황제 폐하, 그런 눈으로 절 바라보지 마세요. 사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반성을 안 하신 건가요? 지금까지 기적성은 한 번도 대건제국을 먼저 침략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대건제국이 여러 번 도발과 분쟁을 일으켰죠. 엄밀히 말해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다 폐하의 자업자득이랍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건 황제가 어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겠나?

대건 황제는 차갑게 웃으며 주변에 있는 사슬을 몇 번 흔들었다. 지금 발악할 힘도 없는 게 한이다. 그저 야수처럼 낮게 그르렁 소리를 내며 답할 뿐이었다.

“날 모욕하러 온 것인가?”

천제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대건 황제 폐하의 화를 좀 풀기 위해 특별히 뭘 만들어 왔지요.”

대건 황제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말했다.

“뭘 하자는 게야?”

“대건 황제 폐하의 노기가 넘치신다고 들었습니다.”

천제현은 손에서 투구를 꺼내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건넸다.

“이것은 대건 황제 폐하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정신투구입니다. 여봐라, 대건 황제께 씌워 드려라. 화를 좀 푸시게 말이야.”

간수들은 죽음의 현자들이었다.

이 죽음의 현자들은 천제현을 돕기 위해 명왕이 저승바다에서 기적성으로 보낸 것이다. 죽음의 현자는 박학다식한 데다 천역 경지의 실력자들이다. 덕분에 기적성 학자들의 실력도 크게 증진되었고, 기적성의 종합실력도 크게 향상했다.

유령현자 한 명이 허무 마력으로 투구를 받쳐서 천천히 감옥 안으로 들여보낸 후, 대건 황제의 머리에 씌웠다. 대건 황제는 천제현의 꿍꿍이를 알 수 없었지만, 천제현이 절대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대건 황제는 제왕 아니십니까. 육체적인 고통을 너무 많이 받으시면, 기적성이 손님 대접할 줄 모른다고 남들이 욕해요.”

천제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폐하는 너무 흥분한 상태시니까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실 필요가 있어요. 이 정신투구는 폐하를 위한 맞춤 투구랍니다. 이 투구가 폐하를 정신세계로 보내줄 거예요. 이 정신세계의 시간은 현실 세계의 300분의 1의 속도로 흐릅니다. 그러니까 정신세계에서의 300일은 현실세계에서 고작 하루라는 뜻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이 거대한 시간의 차이를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대건 황제 폐하의 정신이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시간동안 화를 잘 푸시기 바랍니다.”

천제현은 말을 마친 후 곧 자리를 떠났다.

“이 나쁜 놈아,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아!”

대건 황제의 고함소리가 감옥 안에서 울려 퍼졌지만 천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어깨위에 있던 새끼 여우만 황제를 향해 고개를 돌려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황제가 발버둥 치는 동안 죽음의 현자들이 투구를 가동시켰다. 대건 황제의 힘은 완전히 제압다안 상태다. 마력은 물론, 신식의 힘도 쓸 수 없다. 지금은 이 특수 제작된 투구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다.

대건 황제는 주변 광경이 크게 달라짐을 느꼈다.

몸을 둘러싼 사슬도, 앉아 있던 마력진도, 모조리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대건 황제는 자신이 평범한 집 안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텅 비어 있는 공간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대건 황제가 밀려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에 의자를 집어 던졌다. 의자는 산산조각 났지만, 3~5초 후 다시 조각이 모여들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건 황제는 이 정신공간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을 파괴하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도 변함이 없었다. 마치 수억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정신공간의 시간은 바깥세상, 현실 시간의 300분의 1의 속도로 흐른다.

즉 기적상회 감옥에 갇혀 있는 하루가 이곳에서는 300일이라는 소리다. 열흘이 지나면 3,000일! 한 달, 두 달은? 1년 반이라면? 10년, 20년이라면?

대건 황제의 마음 깊은 곳에 억제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천제현은 육체적인 고통을 면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건 대건 황제가 생각한 어떤 것보다도 더 심각한 처벌이다. 대건 황제는 세상을 뒤흔드는 인물로, 과거 대건제국을 다스리며 사방팔방으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얼마나 포악하고 방자한 인물이던가?

그런 그가 지금은 작은 방안에 갇힌 신세가 됐다. 어쩌면 수백 년, 수천 년을 갇혀 지낼지도 모른다. 누구와도 왕래하지 못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저항할 방법조차 없다. 손짓 한 번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던 제왕, 대건 황제는 순식간에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 화면 속에 홀로 갇힌 불쌍한 인생이 되었다. 그 간극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천제현!”

“날 빼내다오! 날 꺼내라!”

대건 황제는 정신공간속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욕을 해댔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천제현이 원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건 황제가 자신에게 얼마나 분노하는지 천제현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협상은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천제현은 아무 협상도 하지 않고 먼저 투구를 씌워 버린 것이다. 정신세계에서 십 년 이십 년 욕을 퍼붓고, 질릴 만큼 욕을 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진행할 생각이다.

아무리 화가 가득하고 포악한 자라 해도, 이 환경에서 10년,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다 사라지게 마련이다. 10~2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고 탈출도 못한다. 수련도 못하고 교류도 할 수 없다. 그저 이 낡아 빠진 곳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전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범한 인물을 대하려면 그에 맞는 방법을 써야 하는 법.

지금 공화련은 사절단을 꾸려 대건제국 귀족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 대건제국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가면 얼마 후에나 돌아올지 모른다. 다행히 기적성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최고급 알파브레인들이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 알파브레인들은 정책을 결정할 때 절대 오류가 나지 않는다. 다만 모험에 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그래도 괜찮다. 기적성은 지금 아주 안정적이기 때문에 어떤 모험도 필요 없다.

기적성의 위협요소는 이미 사라졌다. 이제는 기적성의 기술 투입 증가가 가장 큰 임무다. 각 지역의 공사 진행상황, 특히 새로 세워진 국가의 전송탑, 통신설비의 건설, 기적투구의 생산을 총괄해야 한다. 현재 기적성에서 수십 개의 생산라인이 함께 생산에 들어가다 보니 인력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알파브레인이 담당하기에 가장 적절한 상황이다.

천제현은 직접 알파브레인에게 명령했다.

“제로, 재료를 주문해야겠어.”

제로가 바로 대답했다.

“도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성주님. 어떤 재료가 필요하신가요?”

천제현이 바로 재료 리스트를 말했다. 선약급 물품만 20종류가 넘어서 대략 계산해도 10억 마석은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십억 마석이란 어떤 수준인가? 일반 왕국이라면 국고를 털어도 모으기 힘들 정도의 거금이다.

제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구매희망 정보를 각 채널을 통해 발송했습니다. 성주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천제현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상회를 만든 것도 다 이것을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모든 재료들은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기적상회가 없었다면, 공간창고와 강력한 통신능력이 없었다면, 제왕이라 해도 이런 재료를 다 모으는데 10년은 족히 넘게 걸릴 것이다. 게다가 비용 또한 어마어마했다.

천제현은 알파브레인에게 재료 리스트만 전해 줬을 뿐이다.

이제 앉아서 재료들이 하나씩 다 수집되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천제현이 서둘러 이 두 가지 일을 다 마친 후였다.

새끼 여우가 흥분해서 천제현 앞으로 달려왔다. 두 발로 뭔가를 감싸 안은 채 천제현을 향해 손짓 발짓을 했다.

“이건……기적투구잖아!”

새끼 여우의 손에는 주먹보다 작은 미니 투구가 들려 있었다. 천제현이 기적성에 없는 사이, 새끼 여우가 연구실로 달려가 자신만을 위한 투구를 만든 것이다. 새끼 여우를 위한 맞춤 투구였다.

“너도 기적대륙에서 놀고 싶은 거야?”

새끼 여우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투구를 머리에 썼다. 그러고는 천제현에게 이리 저리 발짓했다.

천제현은 새끼 여우가 기적대륙에서 어떤 모습일지 아주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의 투구를 쓰고 기적대륙에 들어가 장소를 지정해서 새끼 여우를 보러갔다.

“우와, 네가 여우라고?”

천제현은 입을 떡 하니 벌린 채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바라봤다. 한 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조각처럼 생긴 소녀였다. 양 갈래 머리를 한 아주 귀여운 모습이 인간 소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뒤에 5개의 흰 꼬리가 달려 있다는 게 하나 다른 점이었다.

“질서의 신이 날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숨겨진 종족, 요괴족이야!”

이제는 소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떠들썩한 말투였다. 다만 어린아이 목소리라 앳된 티가 났다.

“내 실력은 아직 부족해. 만약 꼬리 9개까지 수련이 되면,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어!”

천제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새끼 여우가 기적대륙에서는 말도 할 수 있다니, 게다가 숨겨진 종족인 요괴족을 활성화 시키다니, 정말상상 이상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