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01화 (701/729)

# 701

제701장 대비

공화련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적쇼핑몰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근간이에요. 과한 요구라는 생각 안 드시나요?”

용족 대장로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기적쇼핑몰이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플랫폼인 건 사실이지. 기적상회가 바로 그 잠재력에 기대 대륙 시장 전체를 집어삼키고 나면 우리는 기적성에 밥줄을 구걸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니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기적성이 기적쇼핑몰 주식을 독식하는 건 대륙 여타 세력들의 견제를 불러오는 일일 뿐이오.”

광수대제보다는 훨씬 논리적인 의견이었다.

기적쇼핑몰이 대륙 전역에 진출해 대륙 시장이 통째로 기적성의 손에 들어가고 나면 누구든 기적성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그대로 끝장이지 않겠는가? 어느 지도자도 기적성의 뜻이 곧 법도가 되는 세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공화련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번 기적투구 판매 수익의 10%를 양보하는 것 외에 또 하나, 기적성과 기적상회는 앞으로 투구 생산에서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기적투구 생산으로 발생하는 이익은 여기 계신 여러분이 누리시게 될 겁니다.”

엄청난 크기의 파이를 또 떼어줬다.

자체 투구 생산 중단 선언. 기술개발은 기적상회가 계속하되 생산은 온전히 6대 세력에게 맡기겠다는 말이었다. 이로써 6대 세력이 앞으로 얻게 될 이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풍월여제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처럼 이날 이때까지 세력을 키워왔을 정도면 아무리 곤궁한 축에 들어도 지난 수천 년간 대대로 쌓인 마석이 최소 천억은 된다는 걸 알아야지. 다른 게 아니라 마음 좀 편하게 해달라는 것 아니오? 나라는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 선조께서 이루신 대업이 우리 대에서 내리막길에 접어들게 둘 수는 없소.”

명왕은 줄곧 말이 없었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아무 진전없는 줄다리기가 두 시간가량 더 이어졌다.

다들 기적성을 벗겨 먹기로 아주 작정을 하고 온 듯했다. 결혼식을 겨우 며칠 앞둔 시점에서 기적성이 차분히 협상에 임할 여유가 없으리란 사실을 아는 것이다.

상대가 이토록 간사하리라고는 공화련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

어쩜 하나같이 그럴듯한 말만 쏟아내는지.

급기야는 오늘 이 상황이 미리 짜인 시나리오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자들은 대건제국이 다른 두 세력과 결탁한 것은 물론 언제 움직일지까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서해성이 입수한 첩보 역시 이들이 일부러 흘린 미끼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이들의 능력이면 기적상회 내부의 인물 관계도를 파악하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번 결혼식의 신랑 신부는 둘 다 공화련에게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게 마련, 공화련처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약점만 잘 파고들면 한몫 제대로 챙기는 건 간단했다.

공화련은 자신이 불리한 위치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절감했다.

기적성이 충분히 강하기만 했어도 뭐 하러 저들을 상대로 힘을 빼고 있겠는가? 그간 군사력 강화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던 건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정도 예산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공화련은 앞으로 투자를 더 늘리겠노라 다짐했다.

벌써 두 시간을 허비했다. 시간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공화련이 최후의 패를 던졌다.

“이번 투구 판매 수익의 10%와 앞으로 투구 자체 생산은 없을 거라는 약속에 더해, 여러분 각자 지역 기적쇼핑몰의 대리 운영권까지 드리겠습니다. 쇼핑몰 운영과 본토 거래망 관리를 여러분께 전적으로 위임, 기적상회는 이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매년 실질 수입에 따라 일정 비율의 수수료만 납부해주시면 됩니다.”

광수대제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수수료를 받겠다?”

“여기가 기적성의 마지노선입니다!”

공화련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쇼핑몰을 직접 관리하게 되면 아까 말씀하신 우려도 사라지겠죠. 이 조건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면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접을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말을 마친 공화련이 나이트 엘프왕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나이트 엘프왕 월나스가 두어 번 가벼운 기침으로 목을 푼 뒤에 입을 뗐다.

“서로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나머지들 의견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 밤의 숲은 동의요.”

서해성은 중요한 거점도시임이 틀림없었지만, 서해성을 잃는다고 당장 기적성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공화련은 지금 엄포를 놓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정말로 마지노선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는 게 천제현과 사랑하는 여동생만 아니었더라면 공화련은 절대 이 선까지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머지 동석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 정도면 얼추 목적은 달성한 셈.

이익 다툼으로 분위기를 너무 딱딱하게 만들어놔 봐야 향후 장기적으로 진행될 협력에 서로 좋을 게 없었다.

“역시 여걸 중의 여걸답게 감탄밖에 안 나오는 배포일세.”

풍월여제가 제일 먼저 동의 의사를 밝혔다.

“같은 여자로서라도 응당 힘을 실어줘야 할 터, 풍월제국은 동의하겠소.”

명왕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동의!”

6대 세력에서 벌써 셋이 찬성하고 나섰으니 나머지라고 어떻게 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기적성과 지나치게 각을 세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머지 셋 역시 그 자리에서 동의를 외쳤다.

***

공화련이 회의에서 된통 당했다는 소식에 공서련은 지붕이라도 뚫고 나갈 기세로 분개했다.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꼴이 칼만 안 들었다 뿐 그야말로 날강도가 아닌가.

협력 관계를 체결한 이후로 기적상회는 그들을 서운하게 대한 역사가 없었다. 전송탑 지어줘, 창고 만들어줘, 통신망 가설해 줘, 마석 한 톨 안 받고 온갖 잡일을 다 해줬는데 기적성 상황이 나빠지자 도움은커녕 돈 뜯어낼 궁리 하기에 바쁜 꼬락서니라니.

“큰아가씨, 작은 아가씨, 계세요?”

꽃다발을 든 천제현이 멋들어진 모습으로 현관에 등장했다. 두 자매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발견하고도 그저 씩 한 번 웃음 지은 그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기적화원에서 꺾어온 꽃부터 화병에 꽂았다.

“둘 다 표정이 왜 그래요? 오늘 뭐 기분 상하는 일이라도 있었어요?”

공서련이 천제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언니가 우리 때문에 괘씸한 작자들한테 단체로 농락당했다잖아!”

천제현이 일순 멈칫했다.

“농락이요?”

공서련이 손짓에 발짓까지 섞어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열 안 받게 생겼어?”

천제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당장 따지러 갑시다!”

공서련이 망설이는 투로 물었다.

“따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천제현이 말을 바꿨다.

“그럼 아예 한 판 붙죠.”

공서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쳤어? 상대는 제국이라고!”

천제현은 괘씸해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얼굴이었다.

“따지는 것도 안 통하고 싸워 봐야 이기지도 못하고, 그럼 어떡할까요? 앙갚음은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어디 생각 좀 해보죠.”

천제현이 또 무슨 해괴한 일을 벌일지 공서련은 이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기…… 복수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어차피 손해 본 거 일단 꾹 참고 도움부터 받자. 나중에 우리가 힘이 세지면 그때 혼쭐을 내주면 되지.”

천제현은 공서련이 결국 이렇게 나오리란 걸 진작부터 예상했다.

보복 생각을 안 하는 건 기적성의 능력 부족 탓도 있었지만, 실상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회의에서 오갔던 대화는 천제현도 이미 전해 들은 뒤였다. 상대방 입장에서야 그런 걱정이 생길 법도 했다. 만약 입장이 정반대였다면 천제현은 그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아쉬운 소리를 꺼낸 쪽은 기적성 아니었던가. 세상에 무료봉사가 취미인 호인이 얼마나 된다고.

“서련아, 그만. 손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마석 수입 좀 줄어든 거야. 우리 큰 그림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어. 기적상회에 제일 넘쳐나는 게 마석 벌어들일 루트니까 그냥 내버려 둬.”

공화련의 마음가짐은 역시 훌륭했다. 그녀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쪽도 얻은 게 있는 만큼 앞으로 우리와의 협력에 더 힘을 쏟겠지. 그러니까 꼭 손해인 것만은 아니야.”

공서련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대륙의 진짜배기 거물들에게 덤빌 만한 배짱은 없었다.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이때 실내에 알파브레인 제로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광수제국에서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초기 판독 결과 적의 분포와 동향에 관한 자료로 보이며 신뢰도는 80% 이상입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공화련의 눈빛에 즉각 생기가 돌았다.

“얼른 보여줘.”

프로젝터가 상세 내용을 띄웠다.

자료에는 대건제국, 고원연맹, 소천제국의 현황이 아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세 갈래의 군대는 이미 대건제국 영토 내에서 합류했으며 규모는 백만 명가량으로 기동성이 뛰어난 공군이 대부분이었다.

천제현을 비롯한 기적성 전체를 긴장시킬 만한 소식이었다.

백만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었다.

공서련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무슨 숫자가 저렇게 많아?”

“대부분 눈속임일 거야.”

공화련이 냉철한 분석을 내놨다.

“국운을 건 전쟁도 아닌데 서해성 하나 치겠다고 제국 세 곳의 핵심전력 대부분이 총출동했을 리가. 내 예상대로라면 60% 이상은 일반 정예군일 거야. 지난번 기적성에 쳐들어왔던 것 같은 군대는 저 중에 1/3이 고작이야.”

그렇다 쳐도 많은 수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기적성이 대건제국 용응기사 8만을 막아낼 수 있었던 데는 고대 생명수의 강력한 결계와 세나리우스를 필두로 한 엔트족 및 연맹군의 역할이 주효했다. 그들이 없었어도 과연 기적성이 무사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번에는 의지할 만한 요새조차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 보호막도 없는 상황에서 적과 곧장 대면해야 하니 지난번보다 훨씬 고된 전투가 될 게 확실했다.

정보도 이만하면 충분히 입수했겠다, 공화련은 즉시 연맹 대표들을 소환해 긴급 약식회의를 열었다. 일단은 상황설명이 먼저였다.

“대건제국이 작정을 한 모양이에요. 연맹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 바로 그들의 행동 개시일이 될 겁니다. 서해성은 잃어서도, 타격을 입어서도 안 될 거점이에요.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저지선을 혼돈의 숲 밖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어려운 임무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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