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9
제699장 준비작업
이번 투구 경매에는 6대 제국급 세력과의 외교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을 터, 중간중간 조정에 나서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역시 공화련이었다.
6대 세력은 한몫 제대로 잡으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은 상황.
기적상회라고 저절로 굴러들어온다는 마석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사실 마석도 마석이지만, 기적상회가 진짜 노리는 건 이번 기회에 기적쇼핑몰 진출 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일이었다. 시간 제약 탓에 완벽한 기능을 갖춘 쇼핑몰은 구축하기 어렵더라도 협력 파트너들 통치하의 주요 도시에 임시 지점 정도는 오픈할 여유가 됐다. 물류 등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정식 상품 구매나 상점 입점은 무리겠지만, 정신투구 입찰 정도는 충분히 소화가 가능했다.
존재 목적 자체가 통신망 구축인 천망비행선이 있었기에 단순한 정보 전달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망비행선은 한 척만으로도 상당한 면적을 커버할 수 있는데다가 이미 양산까지 가능한 단계인만큼, 제국 내 거점 지역에 정보망을 구축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투구 300만 개의 기본가는 전부 마석 20개로 동일, 상한가는 없음.
평균 프리미엄이 정확히 얼마나 붙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지난번 경매는 넘어서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더 부유한 구매자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난 경매의 영향으로 대륙에서 시류에 민감하다 하는 지역에서는 전부 기적투구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적대륙 오픈이 목전이었다.
이야말로 사람들이 투구를 사기 위해 주머니를 여는 가장 큰 이유였다.
기적상회에서 밝힌 바 있듯이 기적대륙이라는 가상세계는 먼저 진입한 사람이 기회를 선점하는 땅이었다. 향후 그곳이 대륙인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는 날에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이익을 볼 터, 지금 마석 몇만 개 더 투자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한편 천제현은 다른 중요한 일을 위해 공서련과 카라를 데리고 하프엘프 지하연구기지로 향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곳 지하연구기지는 자금 부족으로 인해 센터 대부분이 운영 중단 상태였다. 그 당시에는 한 달에 몇만 마석 규모의 기본유지비를 감당 못 해 흔들리던 연구소가 이제는 100% 가동은 물론 규모 역시 예전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한 달에 소비하는 마석은 천만 개에 달했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었다.
지하연구센터 중앙은 거대한 마력 방패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 방패는 기적성 마력시스템에서 마력을 공급받았다. 침입자가 기적성 전역에서 모여드는 마력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절대 방패를 뚫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제국의 황제급 인물이 온다고 해도 방패에 타격을 주려면 한나절은 족히 힘을 빼야 할 터였다.
“이게 바로 정신접속 단말기구나!”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공서련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천제현에게 물었다.
“진짜 이거 하나로 전 대륙에 정신접속을 지원할 수 있단 말이야?”
천제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기적상회가 얼마나 긴 준비 기간을 걸쳤으며 마석은 또 얼마나 쏟아부어서 만든 건지 알아요? 이미 시장에 풀린 정신투구 수십만 개에 곧 판매될 300만 개까지 더해도 여전히 채 500만이 안 돼요. 겨우 그 정도 숫자도 감당 못 할 거면 애초에 기적대륙 따위 안 만드는 게 나았죠.”
일행이 결계 안으로 들어선 순간.
공서련은 정면에서 덮쳐오는 강력한 정신 마력을 느꼈다. 눈앞에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직경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 수정구였다.
그녀를 더욱 전율케 한 것은 그 수정구가 바로 정신 마력의 출처라는 사실이었다. 지름 200미터짜리 원형 구(球) 전체가 고강도 정신수정 덩어리였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정신재료가 들어간 작품일까? 수정구의 가치는 마석 억 개 단위를 넘어설 것으로 보였다.
거대한 수정구는 온갖 설비에 연결된 채 수천에 달하는 하프엘프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두 번째 수정구를 만들 준비가 한창이었다.
“성주님.”
책임자인 하프엘프 클라크가 다가왔다.
“첫 번째 정신구슬은 테스트에서 아무 문제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소 3000만 명의 정신과 연결이 가능하고, 약간의 과부하를 감수한다면 5000만까지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제작 중인 두 번째 정신구슬도 한 달 안에 완성될 것 같고요.”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서두르세요. 정신구슬 수량은 넉넉할수록 좋습니다. 당분간이야 용량 걱정이 없겠지만, 반년만 지나면 기적투구의 폭발적인 보급 시기가 올 겁니다. 그때는 다방면으로 험난한 과제들에 직면하게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성주님.”
“일단 한 번 살펴봐야겠군요.”
기적성이 기적대륙 오픈을 준비 중인 건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차질을 빚는다면 상회만이 아니라 천제현 개인의 체면도 땅에 떨어질 것이다.
공서련이 거대한 수정구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커다란 정신속성 수정이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됐을지. 그나저나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거야?”
“정신구슬 안에는 강력한 정신 마력이 들어 있어요. 한마디로 정신세계를 생성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기적대륙이 바로 이 안에서 만들어져요. 일종의 접속 포트로서 대륙 각지의 기적투구 사용자들을 기적대륙에 들여보내 주는 역할도 하고요.”
천제현은 신식을 발동해 정신구슬의 세부 운행 현황을 체크하는 와중에도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단말시스템 말고도 알파브레인 행렬시스템과 송출시스템이 한 세트예요.”
인공지능 행렬시스템은 기적성 내에 위치한 방대한 숫자의 슈퍼 알파브레인으로 구성됐다.
기적대륙 내부의 변화, 질서, 법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엄청난 데이터 처리 능력이 필요했다. 충분한 숫자의 고성능 알파브레인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송출시스템은 막대한 수의 송출탑으로 짜였다.
다른 마력과 달리 정신 마력은 거리에 따라 전달률이 급감하지는 않으나 강한 정신체 진법이나 광산 등의 간섭을 받을 가능성은 존재했다. 이를 피해 대륙 전체를 고른 신호권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신호의 송수신 능력을 강화해야만 했다.
천제현이 체크를 마쳤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역시 사소한 결함 몇몇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서련이 거대한 정신구슬을 바라보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기적대륙에 가보고 싶어. 우리 기적상회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다니, 이건 신의 업적보다도 더 위대한 일이야!”
천제현이 약혼녀의 손을 잡으며 미소지었다.
“뭘 그리 조바심을 내요? 가보면 분명 깜짝 놀라게 될 거예요.”
천제현이 기적대륙 오픈을 위한 막바지 테스트와 준비에 바쁜 사이 기적쇼핑몰 쪽은 이미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하루 이틀 가량 오롯이 정신구슬 제작과 보수에만 매달렸던 천제현은 지하연구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결혼식 준비에 돌입했다.
이때 정신투구 경쟁 입찰이 정식으로 막을 올렸다.
알파브레인으로 뽑아낸 1일 차 통계에 따르면 경매 참가자는 총 1,913만 명, 입찰 횟수는 총 8,960만 회였다. 통계 수치가 발표되자 모두가 놀라 자빠졌다.
1일 차 경매가 미처 끝나기도 전, 아직 임시 지점을 설치조차 못 한 지역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지난번 사흘 치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높은 통계수치가 나와 버린 것이다. 기적투구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현시점에서 기적투구는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만을 가지는 게 아니었다. 구매자들은 기적투구를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돋보이게 해줄 재력과 권력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공화련은 바로 이런 심리에 주목해 기적대륙 오픈 전에 판매되는 투구에는 한정 기념판으로서 앞으로 보급될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적용하겠노라 선언했다.
기본가의 3배 이상을 제시한 구매자를 위해서는 기념품이 준비됐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액수를 제시한 구매자에게는 차별화된 지위를 나타내는 고급 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최상위 1% 구매자에게는 직접 재료를 선택해 투구의 디자인과 품질을 커스터마이징할 특권을 주기로 했다.
이러한 방침은 기적상회에 투자 대비 놀라운 효과를 선물했다. 첫날 입찰이 완전히 끝난 후 다시 통계자료를 받아본 기적상회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찰 최고가는 마석 200만 개.
투구 300만 개의 최저 입찰가마저 무려 마석 200개였다.
이미 지난번 경매의 두 배를 뛰어넘은 수치였다.
공화련으로부터 자료를 전달받은 황제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날 나온 수치라면 그나마 납득이 갔으련만, 첫날부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의 가슴이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경메이나간 동안 과연 또 얼마나 경이로운 수치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경매 열기는 폭발적이었다. 모든 수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황제에서 평민 백성에 이르기까지, 정신투구 경매는 대륙 최대의 관심사이자 대륙인들 일상의 낙이었다.
매일 갱신되는 수치는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대륙인들은 이제야 알았다.
소위 부자라는 자들이 대체 얼마나 부유한지.
하지만 천제현은 경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과가 빤히 내다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추이를 뭐하러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고 앉아 있겠는가? 요즘 천제현이 하는 일이라고는 공서련 일행과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서해성에서 열릴 결혼식을 준비하는 게 다였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하던 어느 날.
파샤 성주가 돌연 기적성을 찾아왔다.
만교전국이 숲 연맹 휘하로 들어온 이후 그들이 원래 보유했던 해역과 부속세력 상당 부분이 서해성으로 넘어갔다.
‘지금쯤이면 서해지역의 맹호로 군림하며 나날이 호강에 겨워 지내야 할 파샤가 뜬금없이 기적성에는 무슨 일로?’
천제현은 나이 많은 인어 성주를 몸소 맞이했다.
“어떻게 기적성까지 들를 여유가 되셨습니까? 결혼식이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서해성 쪽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요?”
“서해성은 이미 준비를 마쳤소만.”
파샤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제현 성주, 오늘 온 건 긴히 알려줄 정보가 있기 때문이오.”
천제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파샤가 직접 걸음 한 걸 보면 가벼운 사안이 아님은 틀림없겠고, 좋은 소식일 리도 절대 없었다. 결혼식이 코앞인 시점에 문제가 생기는 건 정말 곤란했다.
한숨을 내쉰 파샤가 말했다.
“대건제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