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97화 (697/729)

# 697

제697장 죽음의 현자

소성주는 입찰 화면을 보며 땀을 훔쳤다. 현재 가격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 추세로 계속 입찰가가 올라간다면 아주 빨리 세 자릿수가 될 것 같았다.

마석 225개.

여기까지 생각한 소성주는 호기롭게 이 숫자를 불렀다. 지켜보던 관중들은 입을 쩍 벌렸다. 투구 하나 손에 넣겠다고 그 가격을 지불한단 말인가?

“현재가만 생각할 게 아니라오. 내가 보기엔 얼마 안 가 몇 배는 더 오를 것 같소.”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최저가 경쟁을 하느니 높은 가격을 선점하는 게 낫지. 그렇게 하면 누군가 나와 같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내가 더 위에 있을 테니 말이오.”

그의 말대로 투구 가격은 쉴 새 없이 올라갔다.

입찰이 진행된 사흘 동안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기적쇼핑몰 매장이 없는 일부 지역의 부호들이 전송 수속을 밟아 소국으로 이동한 후 은행카드를 발급 받고 입찰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거룡은행의 은행카드로 백만 마석을 내놓아 전 대륙을 깜짝 놀라게 한 구매자도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구매자는 용들의 땅 출신으로 이번 기회를 틈타 거룡은행을 홍보하려 했다고 한다.

어쨌든 폭풍처럼 지나간 3일이었다.

그 기간 동안 대륙인들은 부호들의 부와 재력에 대해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작가 20마석에 불과한 정신투구를 100만 마석을 지불하고 사려 하다니. 목적이 무엇이든 100만 마석은 그대로 기적상회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세간의 이목을 끌자고 그 거액을 지불하다니.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이성적인 입찰을 진행했다.

입찰 종료 시점에 최저가는 225마석이었다. 시작가보다 10배가량 높은 가격이었지만, 그 정도면 합리적인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하하!”

“손에 넣었다. 손에 넣었다고!”

소성주는 자신이 기똥차게 운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됐다. 최저가에 투구를 손에 넣다니. 225마석을 제시한 사람들은 수만 명 가까이 됐지만, 비교적 빨리 입찰을 한 덕에 그의 뒤에서 낙찰이 끊긴 것이었다.

“샀어! 샀단 말이다!”

소성주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대륙의 수많은 지역, 특히 제국 경내에서는 전송진이나 쇼핑몰이 없어서 돈이 있어도 투구를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곳에 투구를 가져가 판다면 10배 이상의 가격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익을 낸 후에 다음 판매 기간에 다시 사면 그만 아닌가.

소성주는 그 도시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는 동일한 질문이 떠올라 있었다. 이번 경매에서 기적상회는 얼마를 벌어들였을까?

***

기적상회의 전 직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입찰가 랭킹 형식의 판매는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대륙 전체가 그 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것이 기적투구의 홍보를 위한 전략이었다면 기획자는 만점을 받았으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이벤트가 홍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익을 거뒀다는 것이었다.

경매 종료일, 기적상회의 전 직원은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모두가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기대감에 가득한 표정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경매가 종료되는 순간.

쇼핑몰의 슈퍼 알파브레인이 일련의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사흘 동안 경매에 참여한 사람의 수는 1,213만 명에 달했으며, 총 입찰 횟수는 4,960만 번, 최고 가격은 100만 마석, 10만 마석 이상의 입찰자가 200여 명, 최저 입찰가는 225마석 등…… 경매 이벤트 관련 수치들이 일목요연하게 화면에 정리되어 있었다.

그 데이터들은 대륙의 빈부격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부호들은 수십만, 심지어 백만 마석을 동전 한 닢 쓰듯 대수롭지 않게 사용했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은 최저가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운을 시험할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기적투구의 총 판매액은 4억 831만 마석에 달했다.

투구 하나당 평균 930마석에 팔린 셈이다.

직원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들은 기적성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기적정신투구의 밝은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4억! 4억이라니!”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니겠지?”

기적투구 연구개발 부서는 판매 실적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그들 모두 투구의 원가가 상당히 낮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신투구 45만 개의 원가를 모두 더해도 200만 마석이 될까 말까였다.

원가 200만에 불과한 재료들로 4억의 가치를 창출하다니.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다. 이번 이벤트로 기적성의 재무 상황이 일시에 호전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여러분의 공로가 컸습니다.”

천제현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는 대륙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개업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우리의 신제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하는 의미로, 이번 수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려 합니다.”

10%라면 4천만 마석 아닌가.

이렇게 두둑한 성과급이라니.

공서련과 카라를 비롯한 일선 고위 임원들부터 연구개발 부서의 연구원, 쇼핑몰 직원 등 모두가 5~8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받게 된 것이다.

공화련은 천제현의 화통한 성과급 지급이 약간 못마땅했다. 기적성의 자금 상황은 아직 여유로운 편이 아니었고, 10%에 달하는 성과급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천제현의 성격을 잘 아는 공화련으로서는 조용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번 수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니 직원들에게 좀 나눠준다고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이번에 우리가 거둔 놀라운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겠습니다. 사흘 동안 4억 마석을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륙 전체가 시끌벅적해지겠죠.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투구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하는 한편, 협력 파트너들에게 더 큰 믿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투구의 잠재력을 보여주자고요!”

여기까지 말한 공화련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투구의 수익 창출력을 본 제국들은 눈이 시뻘개져서 달려들 거예요. 빨리 투구를 생산해내라고 안달을 하겠죠.”

투구의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투구가 갖는 의미 역시 더욱 커진다.

“성주님, 보고 드릴 상황이 있습니다.”

그때, 기적성 관리를 책임지는 슈퍼 알파브레인, 제로가 나타났다.

“성주님, 저승바다 전송탑에서 망령족 사람들이 왔습니다. 사전에 얘기가 된 학자팀이라고 합니다. 아직 전송탑 근처에 있으니 명령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학자팀이라고?”

잠시 멍하니 있던 천제현이 무릎을 탁 쳤다.

“생각났다!”

얼마 전에 명왕이 죽음의 현자 50명을 선물로 보내주겠다 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온 것이 분명하다. 천제현은 즉시 전송탑으로 그들을 맞이하러 갔다.

망령 학자들의 차림새는 기본적으로 판에 찍어낸 듯 똑같았지만, 유령, 리치, 해골, 데몬 등 종족은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강렬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 사람들은 쉽사리 그들의 주변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천제현이 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승바다에서 오신 현자님들이시죠?”

이 시대에서 학자의 칭호는 학사, 대학사, 국사, 대국사, 현자, 대현자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저승바다가 1년 365일 죽음의 기운에 휩싸여 있는 망자의 땅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각종 학문에 대한 연구가 대륙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망령들은 수명이 무한하고 육욕을 비롯한 기본적인 본능이 없는데다가 약초나 수련 등을 통해 마력을 높일 방법도 전무하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망령들 대부분이 연구자의 길을 걷곤 한다. 천제현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인간들이 대륙에서 빠르게 부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주요 이유도 망령족들로부터 대량의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식들은 망령족이 수천, 수만 년 동안 축적한 연구의 정수였다. 인간들은 그 엄청난 지식을 기반으로 마력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망령족의 지능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현자들은 셀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늙은 망령들이었다. 천제현은 망령들이 불로불사의 몸이지만, 불멸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 관리자 제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또한 한때는 리치였지만, 유구한 세월을 살아오며 이성과 의식이 사라져 정신의 노쇠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망령들은 그렇게 오래 살아온 만큼 대부분이 특별한 능력 하나쯤은 지니고 있었다.

데몬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명왕께서는 학술 교류를 위해 저희를 기적성으로 보내셨습니다. 저희는 향후 5년 동안 성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우는 받아야겠지만요. 모든 연구 재료와 비용은 기적성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망령들한테야 5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짧디 짧은 시간이겠지만, 천제현에게는 더없이 길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명왕이 어떤 목적으로 이 50명의 학자들을 기적성에 보냈든, 천제현은 5년 동안 이들에게 수많은 일들을 시킬 수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 자신이 있으신가요?”

천제현은 이 죽음의 현자들이 얼마나 귀중한 인재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공간 분야에 재능을 지닌 자도 있었고 정신능력이나 영혼능력이 뛰어난 자도 있었으며, 시간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자도 있었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유명한 인물로, 영생을 위해 망령의 의식을 진행하고 망령이 된 사람도 있었다.

“훌륭합니다. 마침 기적성에 인재들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때맞춰 잘 오셨군요. 절대 섭섭하게 대접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 합류하면 기적상회의 연구 개발 능력은 대폭 올라갈 것이다.

지금 천제현의 머리는 그들을 활용할 방법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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