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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89화 (689/729)

# 689

제689장 대결

거인의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대략 50미터 정도에 불과한 거인은 신식으로 만든 바다의 마력을 전부 빨아들였다. 거인의 몸에서 날카로운 은빛 광채가 분출되었다. 거인이 분출한 빛은 강력한 마력으로 가득했다. 거인의 몸은 전설의 고대 달의 신이 부활한 것처럼 온통 눈부신 빛에 휩싸여 있었다.

“제기랄!”

의식체가 이런 수를 쓰다니,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의식체가 조금 전까지 천제현의 신식을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힘이 너무 분산되어서 마력을 응집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어도 천제현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기 힘들었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의식체의 마력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은빛 거인이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거대한 은빛 보검이 조금씩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보검은 빛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표면에 신식을 멸하는 부적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은빛 거인은 광분하여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보검을 내리쳤다.

은빛 검광이 번득거리며 천지를 밝혔다.

거대한 힘이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의 파도처럼 솟구쳤다.

천제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런 공격은 피할 수 없다. 금빛 쪽배가 순식간에 금빛의 거대한 방패로 변하여 공격을 막아냈다. 은빛 파도 같은 검광이 다시 한 번 은빛 방패에 거칠게 부딪쳤다. 방패의 앞면은 움푹 들어가고 일부분은 떨어져나갔다.

안 되겠다.

둘의 힘은 애초부터 같은 급이 아니었다.

천제현의 신식은 이미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의식체에게 조금 전 공격은 그저 손을 가볍게 휘두른 것일 뿐이었다. 이 의식체의 능력은 천제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힘으로 맞붙는다면 절대 이길 수 없었다.

은빛 거인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칼날에서 폭풍우가 몰아쳤다.

천제현은 검의 힘이 폭발한다면 그 위력이 조금 전 공격보다 몇 배나 강하여 신식으로 만든 방패가 가루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신식의 방패가 파괴된다면 천제현의 의식은 달빛검에 의해 흔적도 없이 박살 날 것이다.

목숨을 걸고 공격할 수밖에 없다.

은빛 거인이 폭풍우를 일으키는 동안 천제현 역시 행동을 개시했다.

금빛 신식 방패가 저절로 녹으며 금색의 기다란 창으로 변했다.

천제현이 한 손으로 창을 잡았다. 천제현이 창을 움켜쥐자 손 주위에서 사방으로 빼곡한 주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신식과 신식의 비술 및 정령의 힘을 파괴할 수 있는 모든 주문을 신식의 창에 끌어모았다.

확.

금색 창 표면이 금빛 화염으로 타올랐다.

이 화염은 평범한 화염이 아니라 신식 본연의 불이었다. 천제현은 신식 본연의 힘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쏟아 부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천제현이 지닌 신식의 힘은 이번 공격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은빛 거인이 공격 준비를 완료했다.

거인이 거대한 보검을 치켜들려 했다.

천제현은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공격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방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창에 불어넣었다.

천제현이 창을 휘둘렀다.

금색 창이 은빛 거인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치자 금빛 광채와 은빛 광채가 격렬하게 부딪쳤다. 거인은 창의 힘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거인은 고통과 분노로 으르렁거렸다.

쿵.

굉음이 터졌다.

금색 신식의 창이 거인의 가슴을 관통하여 등 뒤로 나왔다. 거인은 척추가 부러진 것처럼 산이 무너져 내리듯 바닥에 쓰러졌다.

천제현은 크게 기뻐했다.

놈을 해치운 건가?

놈을 해치울 수만 있다면 신식의 힘을 전부 소모해도 아깝지 않아. 달의 신의 의식체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상관없지. 신식의 힘이야 다시 키울 수 있어.

천제현이 이런 착각을 하고 있을 때 눈앞에 다시 현실이 펼쳐졌다.

은빛 거인이 몸을 몇 번 부르르 떨고 나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슴에 난 지름 1미터가 넘는 구멍에서 금빛 화염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지만 거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발이 걸려 넘어진 것처럼 거인은 태연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슴에 난 구멍의 금빛 화염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구멍에서 은빛 광채가 다시 응집되기 시작했다.

거인의 몸은 믿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천제현의 목숨을 건 일격은 거인에게 극히 미미한 상처만을 남겼을 뿐이다. 거인이 다시 양손을 치켜들자 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검에서 폭풍같이 거센 힘이 흘러넘쳤다.

망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천제현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천제현은 아홉 가지 능력을 지녔지만 이제 의식체에 대항할 신식 외에 다른 힘은 사용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일격에 신식의 힘 전부를 써 버렸기 때문에 거인의 공격을 막는 것조차 버거웠다.

안 돼.

이러다간 죽는다.

이때 천제현의 뇌리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구목마신의 아홉 가지 힘 이외에 아직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힘이 하나 더 있잖아.

그건 바로 중주탑에서 고대신이 그에게 이식한 힘이었다. 바로 이 고대의 힘으로 구목마신에게는 눈이 하나 더 있었다.

구목마신의 눈은 각기 다른 아홉 가지 힘을 의미한다.

열 번째 눈은 열 번째 힘을 뜻한다.

열 번째 눈은 한참 전에 생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제현은 한 번도 이 눈을 뜨게 할 수 없었다.

은빛 거인이 빛나는 검을 치켜들었다. 눈부신 빛이 범람하는 강물처럼 천지를 가득 메웠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검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힘이 천제현을 압박해왔다.

쿵쿵쿵.

산이 잇달아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천제현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웠다.

거인이 몸 안의 거대한 힘을 전부 양손에 쥔 검으로 집중시켰다. 마침내 거인의 힘이 반짝이는 은하로 변했다. 거인이 빛나는 검을 휘두르자 찬란한 빛이 공간을 파열시켰다. 하늘마저 두 쪽으로 갈라진 듯했다.

이건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거인 모습의 의식체가 전력을 다 실어 펼친 공격이었다.

의식체는 달의 신의 신식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진화를 거쳐 이제 완전히 신의 신식을 지배했다. 의식체는 신의 힘을 마음껏 휘둘렀다. 다른 능력은 말할 것도 거인의 신식은 거의 신에 가까운 경지였다.

신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고대신은 천제현에게 열 번째 눈을 억지로 뜨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눈을 억지로 뜨게 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천제현에게 다른 방도가 있는가?

신의 신식이 응집된 의식체는 상상보다 훨씬 강했다. 아직 신식이 눈곱만큼 남아 있다고 해도 현성에 불과한 신식으로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받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맞서야 한다.

“네놈이 이렇게 나오니 나도 이판사판이다!”

천제현의 의식이 천천히 정령 안으로 스며들었다. 열 번째 눈의 힘은 봉인된 상태였다. 천제현은 반드시 정령 깊은 곳으로 진입하여 열 번째 눈을 깨워야 한다.

신식 세계가 전부 사라졌다.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전각들이 대지에 우뚝 솟아나면서 웅장한 신전이 들어섰다. 모든 전각들은 색과 모양이 다 달랐다. 녹색 신전에는 생명의 기운이 왕성했다. 검은색 신전에는 블랙홀 같은 인력이 가득했다. 흰색 신전에는 공간 파동이 넘실거렸다. 은색 신전에는 시간마력이 용솟음쳤다. 보라색 신전에는 영혼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붉은색 신전에는 거친 힘이 넘쳤다.

물론 이곳은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신전의 모든 전각은 정령이 구현된 모습이었다.

천제현의 정령 세계에는 열 개의 신전이 서 있었다. 신전은 저마다 천제현이 가진 열 가지 능력을 대변했다. 그중 대문이 열려 있는 아홉 곳에서 끊임없이 드넓은 바다 같은 마력이 분출되었다.

그러나 한 곳은 달랐다.

아홉 신전은 각기 달랐지만 서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 곳은 단독으로 떨어져 있고 규모도 다른 신전보다 훨씬 작았다. 이곳의 대문은 녹이 가득 슨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었다.

이 신전이 바로 열 번째 눈이 지닌 힘이다.

사슬을 부수고 신전을 열어야 해.

천제현의 손에서 푸른 화염에 휘감긴 칠흑같이 까만 보검이 나타났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검광이 잇달아 녹이 가득한 쇠사슬을 내리쳤다. 그러나 검광에서 분출된 힘은 강철로 만들어진 쇠사슬에 미미한 흠집만을 내고 튕겨 나왔다.

망할.

약해 보이는 쇠사슬이 왜 이렇게 안 끊어지지?

천제현은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천제현이 양손으로 화염에 휩싸인 흑자색 보검을 높이 들었다. 그의 등 뒤의 아홉 신전이 잇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홉 신전에서 신마의 힘이 방출되었다. 신마의 아홉 가지 힘이 교룡이 똬리를 틀 듯 머리 위에서 서로 엉켜 전부 흑자색 보검으로 흘러들었다.

“끊어져!”

천제현이 구목마신의 힘을 모아 내리치자 쇠사슬에 결국 금이 갔다. 안에서 강력한 마력이 방출되어 천제현은 수십 장 멀리 튕겨 나갔다. 아홉 신전도 전부 흔들릴 정도였다. 극강의 힘을 지닌 정령이니 망정이지, 이 정도의 힘이면 평범한 신급 정령은 그 자리에서 파괴되고 말았으리라.

“열려라!”

어쨌든 칼을 뽑았으니 돌이킬 수 없었다.

천제현이 빠른 속도로 신전에 달려들어 양손으로 묵직한 대문을 밀쳤다. 문 안쪽에서 무거운 기운이 엄습하며 실 같이 가는 틈이 벌어졌다. 이 좁다란 틈 사이로 수만 개의 강철 바늘이 찌르는 듯한 무시무시한 힘이 천제현을 공격했다.

무시무시하다.

너무 강해.

천제현은 수백 미터를 밀려났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 정령 세계가 흔들리며 대지가 수천 갈래로 갈라졌다. 천제현은 영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문틈으로 빠져나온 힘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홉 신전에서 동시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가까스로 땅이 갈라지는 현상이 멈췄다. 정령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셈이었다.

천제현은 어렵사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이 상처는 앞으로 수련과 전투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억지로 열 번째 신전을 열고자 한 대가였다.

이렇게 참혹한 대가를 치렀지만 천제현은 신전의 문을 조금밖에 열지 못했다.

천제현은 정령의 세계에서 이탈하여 다시 신식의 세계로 돌아왔다.

신전의 문을 여는 과정에 긴 시간이 흐른 듯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거인이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눈앞으로 다가왔다. 거인의 손에 들린 것은 이제 검이 아니라 거칠게 일렁이는 은하였다.

천지를 뒤엎을 기세인 이 신식참은 제왕 반열에 오른 거물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천제현이 신식참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려던 찰나에 계속 눈을 감고 있던 구목마신 정령이 갑자기 가늘게 실눈을 떴다. 천제현의 눈동자가 사라진 것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눈동자는 사라진 게 아니라 만물을 포용하고 통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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