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1
제681장 영토할양과 항복
흡사 금속으로 된 요새를 연상케 하는 미사일모기 두 척이 만교군도 상공에 그 육중한 몸체를 드러냈다.
공중전함으로는 기적성의 첫 작품인 관계로 용접 자국이 선명한 동체에 높은 미적 점수를 줄 수는 없었지만, 빽빽하게 튀어나온 포신과 각종 무기 발사구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천제현이 갑판에서 내려다본 만교군도는 상당히 광활했다.
전체 면적은 대하, 대주, 북융 세 왕국을 합친 것보다도 넓었으나 다만 그중 90% 이상이 바다였다. 육지라고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섬들이 전부였는데, 언뜻 보면 누군가 종이를 잘게 찢어 수면 위에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해양종족에게 있어 육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땅을 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해양세력의 역량을 판단할 때 봐야 할 건 그들이 소유한 바다의 면적이었다.
만교전국은 만교군도뿐 아니라 주변 십여 개 부속 세력의 주인이기도 했다.
만교군도에 거주하는 해양종족은 2억 이상.
반면 서해성 인구는 고작 5~6천만에 지나지 않았다.
만교군도의 핵심 지배계층인 교룡인은 서해에서 가장 강인한 전투민족이었다. 푸른제국이 해체된 이래로 서해에는 더 이상 만교군도의 적수가 없었다.
알파브레인이 생성한 지도를 살펴보던 천제현이 말했다.
“이 많은 섬을 일일이 격침하는 건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곧장 본섬으로 가야겠어!”
기적성의 공중전함은 설계단계에서부터 강풍층을 뚫고 우주공간을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항해고도가 수천km 상공일 경우 만교군도는 그저 넋 놓고 미사일모기가 본섬을 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척의 미사일모기는 5천 미터가 채 안 되는 비행고도를 유지하며 보란 듯이 만교군도 상공을 가로질렀다. 적의 움직임을 감지한 만교군도 외곽 방위섬들이 발칵 뒤집혔다. 비행마수며 바다교룡에 올라탄 정예 왕국군이 공중전함을 막기 위해 새카맣게 날아올랐다.
그러나 공중전함의 강력한 방어력 앞에서 이들의 공격은 무용지물이었다. 무시무시한 무기시스템, 그리고 전투기와 비룡으로 조직된 호위대가 만교전국 왕국군을 금세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만교전국의 비루한 공군력으로 숲 연맹에 덤비는 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천제현은 여봐란듯이 만교군도를 가로지르며 무지막지한 힘으로 앞을 가로막는 방어선을 하나하나 찢어발겼다. 결계와 환각진을 포함 그 어떤 방어수단도 기적성 연맹군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숲 연맹의 위엄은 몹시도 폭압적인 방식으로 만교전국 국민들의 뇌리 깊숙이 각인됐다. 다시는 감히 숲 연맹에 맞서겠다는 생각을 못 할 만큼.
본성 영해에 진입한 미사일모기는 파벽자 수십 발로 본섬의 방어결계부터 뚫었다.
무기는 전부 조준을 마친 상태, 천제현의 명령 한마디면 본섬은 재난에 가까운 융단폭격을 경험할 참이었다.
“그만!”
짙은 푸른색 바다교룡을 탄 만교왕이 결국 참지 못하고 수면 위로 솟구쳐올랐다. 기적성 연합군이 이렇게 빨리 본섬까지 들이닥칠 줄이야. 그건 곧 아군의 외곽 방어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두려울 지경이었다. 기적성 군대는 이미 제국급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건제국 황금용응수 기사 8만조차 참패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후회막급이었다. 기적성에 이런 힘이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대건제국의 손을 잡지 않는 거였는데. 제아무리 강대국이라 한들 대건제국은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인 반면, 숲 연맹은 바로 옆 동네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달려와 만교전국을 칠 수 있었다.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과연 대건제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건제국이 정말 와준다고 해도 그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남은 일은 시체수습이 고작일 터.
만교왕 루카스는 침착하려 애쓰며 미사일모기 안까지 또렷이 전달되도록 목소리에 묵직한 마력을 실어 얘기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전부 다 설명하겠습니다!”
천제현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기적성과 숲 연맹은 만교전국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었다.
강한 국력과 풍부한 인구, 막대한 병력을 보유한 만교전국은 이 지역 힘의 균형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한 축이었다. 이렇게 큰 세력이 와해됐다가는 서해 전체가 혼란에 빠질 터, 그건 천제현에게도 좋을 게 없는 결과였다.
“만교왕께서 대화를 원하신다면야 그래야죠.”
천제현이 혼돈의 숲 사대 거물과 서해성주 파샤까지 대동한 채로 공중전함에서 내려왔다. 그들이 본섬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만교왕 루카스는 엄청난 위압감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천제현 옆에 선 자들이 결코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비룡 수십 마리가 주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비룡의 등에 올라탄 숲 연맹 절정고수 중에는 심지어 천역급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런 진용은 제국급 세력이라 해도 함부로 동원하기 힘들었다.
루카스는 이들 앞에서 자신이 철저한 약자임을 절감했다.
“다들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우리라고 숲 연맹을 적으로 돌리고 싶었겠습니까? 전부 대건제국의 위협에 못 이겨 한 선택입니다. 아직 양측 사이에 대대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도 아니니 이 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합시다. 만교전국 군대가 서해안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겁니다.”
“태세전환이 대단히 빠르시군요.”
천제현이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 우리 선박을 납치해 서해성을 협박하려던 일을 벌써 잊지는 않았을 테고, 그것도 대건제국의 사주였다고 하시렵니까!”
“그건…….”
난처한 기색이던 루카스가 재빨리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천제현이 곧장 대답했다.
“항복과 동시에 영토를 좀 할양받아야겠습니다!”
루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항복이야 기정사실이라 쳐도 영토 할양? 땅을 떼어달라니?
천제현이 노골적으로 요구사항을 설명했다.
“이번에 서해성 휘하로 들어간 부속왕국과 씨족들은 어떤 수단으로든 되찾을 생각 마십시오. 그리고 만교군도 방위섬 중 스무 개를 떼어서 숲 연맹에 넘겨주셔야겠습니다. 그 섬들에는 해상 방어선 구축의 일환으로 우리 기지를 건설할 생각입니다. 만교전국이 나중에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요.”
만교왕은 순식간에 벌레 씹은 얼굴이 됐다.
‘매년 부속왕국과 부족에서 들어오는 공물이 얼마인데? 그 짭짤한 수입원을 당장 내놓으라고? 방위섬 20개는 또 어떻고,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만교군도에 속한 섬은 수천 개지만, 어디나 방위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방위섬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면적과 함께 핵심적인 지리적 위치도 갖춰야만 했다. 방위섬 20개를 한꺼번에 숲 연맹에 넘긴다면 만교왕은 그 순간 자기 안방에 시한폭탄을 떠안게 되는 셈이었다.
둘 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물론 만교군도 역시 얻는 게 있어야죠. 숲 연맹에 합류해 앞으로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겁니다. 또 하나, 연맹은 만교군도를 먼바다 진출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육성할 예정입니다.”
천제현은 당근과 채찍을 교묘히 쓸 줄 아는 지도자였다.
“협상의 여지 따위는 없는 제안입니다. 5분간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만교군도가 거부한다면 우리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요.”
만교왕 루카스는 격렬한 내적갈등에 휩싸였다.
천제현이 내건 보상은 매력적이었으나 감수해야 할 희생 역시 그만큼 컸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만교군도의 절반이 숲 연맹이나 기적성에 넘어간다. 오랜 역사 동안 한 지역의 맹주로 군림해오던 만교왕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전함을 흘긋 쳐다본 만교왕이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하십시다!”
숲 연맹이 내건 조건이 아무리 터무니없다 해도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괜한 아집을 부렸다가는 저들이 대동하고 온 무력에 본섬이 당장 아작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만교왕이 이번 일을 계기로 숲 연맹의 강대함과 그들이 가진 기술력의 경이로움을 절감했다는 점이었다. 투항과 함께 치러야 할 대가는 막대했으나 이로써 만교군도는 해양 개척의 중심지로 거듭날 것이다.
잃어버린 바다?
그야 더 넓은 새 바다를 정복하면 된다.
잃어버린 섬 몇 개?
그야 더 많은 새 섬을 점령하면 된다.
만교전국의 병력에 숲 연맹의 강력한 과학 무기가 합쳐진다면 서해에서 그들을 당해낼 자는 누구도 없으리라.
천제현은 루카스의 빠른 상황 판단력이 꽤나 흡족한 참이었다. 덕분에 대건제국은 정예 군단 몰살에 이어 서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자까지 잃은 꼴이 됐다. 대건제국이 만교군도에 손을 내민 목적이야 뻔하지 않은가? 혼돈의 숲과 가깝다는 만교군도의 지리적 이점을 숲 연맹을 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리라.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고 제국으로서의 체면은 전례 없이 처참하게 짓밟혔다. 천제현은 대건 황제가 격분해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눈앞에 생생히 그려볼 수 있었다.
이때 공화련이 통신채널을 통해 말을 걸어왔다.
“회의에 초청받은 제왕과 맹주들이 곧 기적성에 도착할 모양이야. 돌아가서 준비를 서둘러야겠어.”
“네? 이렇게 빨리요? 타이밍은 좋네요!”
대건제국의 콧대를 꺾은 직후, 지금 기적성은 어느 때보다도 기세가 올라 있었다. 천제현이 지시를 내렸다.
“만교군도 일은 파샤 성주님께 전권을 위임하겠습니다.”
이번 무력시위의 최대 수혜자인 파샤가 대답했다.
“걱정 말고 가보시구려. 여기 일은 이 늙은이가 잘 단속할 테니.”
“그럼 가보겠습니다!”
천제현은 부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귀환길에 올랐다.
이번에 열릴 정상회의는 의미가 아주 컸다. 기적성이 혼돈의 숲을 벗어나 대륙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전대미문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