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0
제680장 압도적 승리
기적성 공중부대는 대륙 그 어느 나라와도 달랐다.
기적성은 마수를 대량으로 사육하지도 않았고 거기 태울 기사를 대대적으로 모병하지도 않았다. 십여 개 왕국과 혼돈의 숲, 거기에 지하 네간계까지. 인간 정예며 온갖 숲의 종족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강력한 악마군단도 꾸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긴 했지만, 대규모 군단을 육성하기에는 기적성의 역사가 아직 너무 짧았다.
그 대신, 기적성에는 강력한 과학기술이 있었다.
기적성 공군은 오로지 과학기술에 기대어 조직됐다.
방금 모습을 드러낸 부대는 크게 세 개의 조직으로 나뉘었다.
첫째는 미사일모기.
부단한 기술력 발전으로 마력진과 마력과학의 활용이 숙련 단계로 접어듦에 따라 천제현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미사일모기 제작이 비로소 현실화됐다. 제작은 순조로웠으나 시간 관계상 현재 기적성의 1세대 미사일모기는 두 척이 전부였다.
800m 길이의 미사일모기는 적수가 없는 괴물에 가까웠다. 선체 표면에는 미사일 발사구가 벌집처럼 뚫려 있었고, 내부에는 마력중형포, 마력연사중형포, 마력레이저포 등 천여 개에 달하는 무기가 실려 있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한 만큼 설비 탑재 공간도 충분했기에 미사일모기는 강력한 마력 공급능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무기시스템과 방어시스템의 대폭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져 레이저포처럼 마력 소모가 큰 무기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체 자체의 방어력이 워낙 뛰어나 적의 집중포화에도 쉽게 선체 손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미사일모기는 그야말로 떠다니는 요새였다.
둘째는 전투기였다.
흑뢰 전투기는 이미 공장화 생산이 가능해졌다. 음속의 열 배에 달하는 순항능력은 흑뢰의 기동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미사일모기에 탑재된 흑뢰 전투기는 언제든 적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비수였다.
셋째는 기갑병사였다.
기적상회의 공군병사는 여타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수를 타고 다니는 것도, 태생적으로 비행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특수제작된 비행전투갑옷을 입고 자유롭게 하늘을 누볐다. 이 기갑병사들은 과거 북융국에서 흑응군단을 상대했던 부대의 업그레이드판으로, 향상된 전투력과 비행능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력해진 방어력으로 진령급 적수의 연속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다.
황금용응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기적성을 뒤덮은 검은색 결계는 사령탑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혼돈의 숲 안에서는 약한 축이 아니었으나 대건제국 군대의 공격에는 몇 분을 채 버텨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몇 분은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기적성 공군 전력이 완벽히 전개된 것이다.
비행선, 전투기, 기갑병사가 다가 아니었다. 주변 산봉우리를 빙 둘러 배치된 지대공중형포와 중형총기 등 각종 방공자산을 비롯해 니드호그가 용의 고개에서 데려온 비룡 수십 마리, 엘프 성주와 의원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탄, 베헤모스, 인어, 엔트를 가릴 것 없이 숲 연맹의 최상위급 실력자들과 여타 도시에서 파견해온 고수들도 전투에 합류했다.
기적성은 연맹의 심장.
기적성이 무너지면 연맹도 끝이었다.
연맹이 제공하는 혜택을 맛본 도시들은 이제 기적성 없이는 못 산다는 소리가 나올 판국이었다. 그러니 습격 소식에 만사 제쳐두고 달려온 것도 당연했다.
대건제국 군대와 기적성 연맹군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쯤 되니 형무영도 자기가 완전히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적성 내부의 방어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고위급 천역술사만도 벌써 몇 명을 마주쳤는지 몰랐다. 제국에서도 최상위 강자로 군림할 만한 이들이 하급 천역술사들을 무더기로 이끌고 무섭게 돌진해왔다. 애초에 용응기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형무영은 알았다.
이들이 바로 혼돈의 숲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 세력의 실력자들임을.
엘프왕, 용의 영주, 타이탄 썬더, 베헤모스 클로, 인어 파샤. 그들 중에 형무영보다 약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 한 수 위일 공산이 훨씬 컸다. 등에 업은 세력 또한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숲의 거물들이 각각 천역급 고수 15~20명씩만 데리고 나왔다고 쳐도 다 합치면 상당한 숫자였다.
그렇다면 기적성 자체 경비병력을 얕잡아봤던 형무영의 당초 생각은?
빗나가도 완전히 빗나갔다.
기적성에는 공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은 숲의 수호자 세나리우스를 필두로 한 엔트들의 대규모 주둔지였다. 세나리우스라 하면 엘프왕 랜스로드보다도 강력한 마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던가.
수천에 달하는 엔트 무리는 최약체마저도 정상급 진령술사였다.
현재 남은 황금용응군은 5만.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덤벼서 요행히 승리한다고 쳐도 결과는 사실 공멸이나 진배없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군사를 잃은 상황, 이대로 돌아가서 황제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황금용응수 8만보다는 제국의 체면이 훨씬 중요했다. 기적성 하나 함락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대건제국의 위엄이 땅에 떨어질 텐데, 그건 병력 손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도시를 함락한다!”
형무영이 명령했다.
지금은 오로지 기적성을 함락하는 것만 생각한다.
이 성을 잿더미로 만드는 게 그 무엇보다 먼저다.
황금용응군이 공격에 나서려던 그때, 더더욱이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기적성 한복판에서 찬란한 녹색섬광이 폭발한 것이다.
강력한 고순도 마력이 서서히 창공을 향해 퍼져나가더니 녹색 결계 형태로 기적성 도심을 감싸 안았다.
결계가 한 겹 더 있었을 줄이야. 형무영이 다시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네다섯 차례에 달하는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결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대체 저게 뭐지?
대건 황성 결계에 맞먹는 위력이라니.
결계의 핵은 기적화원에 있었다. 그랬다, 이 강력한 마력의 출처는 다름 아닌 고대 생명수였다.
짧은 생육기간이었지만, 그간 고대 생명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홍황시기에는 신이며 악마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던 존재인만큼 아직 어린나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황금용응군은 공격목표를 코앞에 두고도 결계에 막혀 속수무책이었다.
각지에서 모인 군단과 기적성 자체부대가 속속 성을 빠져나와 황금용응군과 뒤엉켰다. 강력한 공중전력과 동시에 전개되는 지상군의 화력까지, 황금용응군의 수는 시시각각 급감했다.
“제길, 후퇴, 후퇴하라!”
남은 기사단의 수는 이제 고작 3만이었다. 형무영은 더는 무리임을 깨달았다. 용응기사 군단의 패배가 확실한 상황, 계속 싸워봐야 결과는 전멸이리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너무나 선명했다.
황금용응군이 패했다.
대건제국이 진 것이다.
공화련은 알파브레인의 실시간 감시기능을 통해 대건제국 군대가 물러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녀의 입꼬리에 승리의 미소가 걸렸다.
“적이 철수하고 있어. 외곽 무기시스템 세팅이 완료된 상태라 퇴각하는 길에 또 한 차례 맹공을 받게 될 거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고 지시할까?”
“얼마 되지도 않는 패잔병들을 뭐 하러요.”
천제현이 말했다.
“대건제국을 물리친 건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에요. 추격에 힘 쏟을 게 아니라 이 기세를 몰아 서해 만교군도까지 우리 손에 넣어 버리죠.”
공화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이야!”
기적성을 빠져나오던 형무영 일행은 외곽에서 다시 한 번 대규모 폭격을 당해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았던 병력 중 상당수를 더 잃고 말았다. 마지막에 혼돈의 숲을 살아서 나갈 수 있었던 인원은 2만여 명이 고작이었다.
미사일모기는 추격 대신 기수를 서해 방향으로 돌렸다.
기적성은 적극적인 홍보활동도 잊지 않았다.
대건제국을 대표하는 황금용응군이 숲 연맹의 손에 박살이 났다는 소식이 숲 전체와 왕국 지역, 서해까지 순식간에 전해졌다.
만교군도에서는 생난리가 났다.
기적성의 힘이 이 정도일 줄 이들이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제국 최정예 군단마저 참패했다니, 그럼 대건제국과 손잡은 만교군도의 앞날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서해에 전해진 기적성의 승전보는 즉각적인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대형 해양종족 부족과 해양왕국 등 만교군도 부속해역 내의 세력들이 만교전국과 선 긋기에 나서는가 싶더니 돌아서자마자 잽싸게 서해성 쪽에 붙었다.
만교왕이 분개할 겨를도 없이 무시무시한 소식이 전해졌다.
기적성 군단이 기세 등등하게 만교군도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황금용응군의 콧대를 꺾은 김에 대건제국이 서해에 심어 놓은 끄나풀인 만교군도까지 손봐줄 계산인 모양이었다.
만교전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전투 준비태세에 들어갈 틈도 없이 불쑥 만교군도 상공에 출현한 거대 비행선 두 척이 어마어마한 수의 흑뢰 전투기를 쏟아냈다. 미사일모기 주변을 선회하기 시작한 전투기 뒤로는 니드호그가 이끄는 비룡 수십 마리가 각 세력의 정상급 실력자들을 태운 채 비행하고 있었다.
파샤 또한 서해성 병력 수십만을 동원해 해상에서 만교군도를 포위하고자 나섰다.
아무리 장응전국보다도 강력한 나라라지만, 그렇다고 만교전국의 무력이 전지전능한 건 아니었다.
이처럼 온갖 거물이 총출동한 초거대 규모와의 전면전을 무슨 재간으로 당해낸단 말인가?
평소의 자신감과 결단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만교왕은 일이 터지자마자 나라 전체에 저항하지 말라는 지시부터 내리고는 당장 천제현에게 사자를 보내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옛말에 처마 밑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대건제국마저도 우습게 보는 기적성이 만교군도 따위를 겁낼 리가. 고분고분 기지 않거든 날려 버리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