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78화 (678/729)

# 678

제678장 격돌

전 대륙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이미 대륙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달 탐사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기적성이 이번에는 거창한 회의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숲 연맹이 대체 뭐나 되길래?

정식 국가에도 못 끼는 집단이.

근본도 없는 온갖 숲 속 도시와 지하성이 판을 치던 혼돈의 도가니가 겨우 몇 달 전에 연맹 하나 만들었다고 수천수만 년 역사를 지닌 제국급 세력과 같은 레벨이 될 수 있다던가?

어디 그뿐이랴.

숲 연맹의 리더라고 해서 기적성이 다른 도시나 거대 세력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니었다. 한낱 도시 주제에 천하의 우두머리 흉내를 낼 권한 따위는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 대체 뭘 믿고 대륙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군주와 맹주들을 자기네 성까지 오라 가라인가? 지위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기적성과 이들 진짜 거물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다. 그건 고작 달 탐사 한 번으로 메울 수 있는 간극이 아니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제국급 세력 대부분이 회의 참석에 응한 것이다.

제왕급 인물들이 속속 기적성으로 향했다. 황제가 행차에 나서면 화려한 볼거리가 따르는 건 당연한 일, 이 또한 기적 정상회의의 화제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설사 기적성이 회의를 조용히 치르고 싶다고 해도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적성과 천제현의 파워는 숲 안팎을 막론하고 연맹에 속한 모든 집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지난 천 년 동안 대륙에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천제현이 보낸 초대장 하나에 온 대륙의 거물들이 움직이다니.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밤의 숲이며 용들의 땅, 저승바다까지 간 초대장이 유독 혼돈의 숲에서 가장 가까운 대건제국에만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감히!”

보고를 들은 대건 황제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황궁 기둥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분천, 풍월, 용들의 땅, 밤의 숲…… 손바닥만 한 성 주제에 그들을 등에 업고 이 몸에게 맞서려는 속셈이렷다!”

우문희와 형무영을 비롯한 대신들은 진노한 황제 앞에서 서로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때 형무영이 말했다.

“이게 다 만교전국 놈들 탓이 아니겠습니까!”

만교군도에서 협력을 논의하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정보를 흘린 만교왕 덕에 숲 연맹이 대건제국을 잔뜩 경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이번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대건제국만 난감하게 된 꼴이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우문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

“만교전국은 아직 이용가치가 높으니 잘 달래서 계속 함께 가야 합니다. 이번 일은 신중히 처리해야 할 사안입니다.”

형무영이 앞으로 나섰다.

“황제 폐하, 기적 정상회의가 저대로 열리게 둬서는 안 됩니다! 소신에게 황금용응군 5만을 내어주십시오. 아니, 3만이면 충분합니다. 혼돈의 숲에 가서 기적성을 폐허로 만들고 오겠습니다!”

거대 세력들을 등에 업고 더 설치시겠다?

그렇다면 목적을 이루기 전에 없애 버리는 수밖에.

다른 제왕과 맹주들이 알면 좀 어떤가. 불만은 품을지 몰라도 당장 대건제국과 각을 세우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기적 정상회의가 예정대로 열려 기적성이 대륙의 거물들과 협력관계를 다지는 날에는 함부로 건드리기가 어려워지리라.

우문희가 반대하고 나섰다.

“부적절한 발언이구려.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한낱 기적성이 아니라 혼돈의 숲에 도사리고 있는 다른 세력들이오. 황야고원이든 영원의 숲이든 대륙에 갖다 놓으면 어지간한 중급 전국에도 밀리지 않을 터, 혼돈의 숲 전체를 합치면 상급 전국을 훌쩍 넘어서는 전력이 완성되오. 황금용응군 3만으로도 아마 힘들 것이외다.”

형무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가 숲 연맹 전체를 치겠다고 했소이까? 목표는 기적성 하나요. 혼돈의 숲이 얼마나 넓은데, 지원군을 보낸들 무슨 수로 재깍 도착하겠소? 기적성만 처리하고 곧장 복귀하면 설마하니 혼돈의 숲 오합지졸들이 감히 대건제국까지 쫓아오기라도 할 거란 말이오?”

우문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알기로 기적성에는 강력한 원거리 통신능력이 있소. 대규모 비행부대가 접근하는데 눈치 못 챌 리가. 탐지와 동시에 지원요청이 전달될 것이오.”

“황금용응군의 기동력이라면 숲 연맹 지원군이 집결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적성에 도착할 테고 그들이 왔을 때쯤 기적성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을 걸, 무엇이 걱정이오?”

형무영은 기적성의 기술력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였다.

“게다가 환신수의 엄호를 받으며 접근할 테니 기적성은 절대 눈치챌 수가 없소!”

우문희는 여전히 반대였다.

대륙인들은 혼돈의 숲 깊숙이 파묻혀 있는 기적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스러운 능력이 과연 얼마나 더 되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른 제국들의 빈축을 사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섣불리 덤볐다가 만약 지기라도 하면? 제국으로서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거야말로 진짜 낭패였다.

형무영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일국의 제왕에게 어찌 그 정도 패기가 없겠는가. 하물며 대건 황제는 천제현을 발톱의 때만큼도 안 쳐주는 자였다.

“황금용응군 8만과 환신수 백 마리를 내어주겠다. 열흘 안에 성을 함락하라!”

“명 받잡겠습니다!”

우문희의 입에서 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오만한 황제가 기적성을 얕잡아보고 있는 것이다.

황금용응군은 대건제국 최강의 부대 중 하나로, 지금의 대건제국을 있게 해준 정예 중의 정예군이었다. 게다가 황금용응수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3급 마수였다.

그렇다면 3급 마수란 어떠한 존재인가?

술사로 치면 진령 경지.

작은 왕국에서 진령급 술사는 그야말로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선 존재였다. 물론 큰 왕국에서도 존귀한 신분이긴 마찬가지였다. 전국급 국가에서조차 진령술사는 고위 장교로 대접받았다.

황금용응수가 무려 8만.

이는 진령술사 8만 명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게다가 황금용응수 한 마리당 진령술사 한 명씩이 배정되는 체제이니 8만 규모의 황금용응수 부대는 사실상 진령급 장수 16만 명에 해당하는 전력인 셈이었다. 전국급 국가들로서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를 칠만 한 파괴력, 이게 바로 진정한 제국급 세력의 위엄이었다.

이런 군대가 설마하니 느슨해 빠진 숲 연맹 하나를 못 당할까?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래도 대건제국을 통틀어 20만이 전부인 황금용응군을 보냈으면 기적성의 체면은 살려준 셈이었다.

우문희는 마음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황금용응군 8만으로도 기적성을 함락 못 할 거라는 주장은 입 밖에 내봐야 헛소리 취급이나 당할 터였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형무영이 군대를 이끌고 출발한 건 황명이 떨어진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부대에는 형무영 말고도 천역급 고수 열여덟 명이 더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형무영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대부분 천역 2~3성에 달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거기에 환신수 백 마리 역시 배치됐다.

환신수는 정신 속성을 지닌 3급 희귀마수였다.

전투능력은 없었으나 대규모 신기루를 생성해 아군을 엄호하는 동시에 적군 정찰수단 절대다수를 무력화시키는 특성이 있었다.

환신수가 있는 이상 소리소문없이 적진에 침투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남은 건 기적성에 불벼락을 내리치는 일뿐이었다.

계획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기적성을 너무 얕잡아본 게 문제라서 그렇지.

황금용응군이 미처 혼돈의 숲에 진입하기도 전, 기적성 외곽의 공중탐측소가 그들의 출현을 포착했다. 사령탑의 원리를 활용해 생명파동을 직접 감지하는 기적성 탐측소 앞에서 정신유형 환술로 만들어낸 엄폐물은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남측 탐측소에 고강도의 생명파동이 대규모 감지되었습니다!”

“분석 결과 고위급 마수와 술사들의 조합으로 추정되며, 마수의 특징은 황금용응수에 부합됩니다. 황금용응군의 소속을 감안할 때 접근 중인 부대는 대건제국에서 왔을 확률이 99%, 기적성을 공격할 가능성이 99%입니다. 방어 태세를 갖추십시오!”

갑작스러운 소식에 회의 준비로 한창 바쁘던 공화련 역시 당황했다.

대건제국이 대놓고 군대를 보냈다고?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짓이 아닌가.

공화련이 황급히 천제현을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사실 대책이랄 게 뭐가 있겠나?

놈들이 왔으면 맞서 싸우는 수밖에.

천제현은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 참이었다. 서해성 수정만에서 올리려던 결혼식도 대건제국 진상 놈들 때문에 미뤄졌겠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 마침 분풀이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엘프왕, 데스윙, 클로, 썬더, 파샤, 그리고 천역급 이상인 엘프 성주, 비룡, 리치, 베헤모스, 타이탄, 인어 모조리 다 기적성으로 소집해!”

“무기 시스템 전부 대기시키고 순찰 중인 비행선과 전투기 복귀시켜!”

“결계 마력 게이지 높이고 최고 단계 방어 준비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공화련은 즉각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기적성이 보유한 슈퍼 알파브레인 십여 대가 한꺼번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전투 준비만이 아니라 황금용응군의 이동경로, 속도, 전술을 예측 및 분석한 뒤 기적성 현황을 반영해 최적의 대응책을 찾는 작업 역시 동시에 진행됐다.

예전의 기적성을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공화련은 무척이나 치밀하고 조심성 많은 성격이었다. 기적성이 기적연맹 전체의 근간임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4개 성 연합 공격을 경험한 후로 그녀는 줄곧 방어시스템과 무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그동안 쏟아부은 마석만 해도 수천만 개.

그 뒤로는 한 차례도 침공이 없었기에 공화련 본인도 기적성의 현재 방어능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테스트해 볼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제국과의 정면대결은 기적성이 명성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요, 이번에 적군의 기를 확실히 꺾어놓는다면 원래 대건제국에 붙어 기적성을 압박하려던 세력들도 아마 생각이 많아지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