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9
제659장 공간문
남궁혜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전송진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 그녀는 적지 않은 부상에 옷매무새까지 엉망진창이었다. 남궁혜는 안도의 한 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순간 그녀의 몸에 불꽃이 번쩍이더니 모든 부상이 자연 치유되었다.
“그놈 진짜 대단한데?! 이 몸이 전송두루마리를 챙겨왔기 망정이지!”
남궁혜는 전황 보고를 위해 즉시 발길을 옮겼다.
그녀가 계획에도 없는 왕성 습격이라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나머지 흑뢰 전투기도 남궁혜의 엄호 속에서 장응전국을 순조롭게 빠져나왔다.
이번 일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사실 공화련의 정보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화련은 일찌감치 장응전국의 이상한 낌새를 포착했다. 그녀는 장응국이 왕국연맹을 공격하기 전에 각 채널을 통해 장응전국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이로써 장응전국의 주요 도시의 요새를 계획대로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급습 작전은 장응국 주력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장응전국이 입은 타격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컸다. 최소한 장응전국이 비축한 식량 중 절반 이상이 사라졌으니 이는 장응전국 내부에 큰 혼란은 야기할 게 분명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이제 좀 쉬어요.”
공화련의 계획이 이제 막 첫 걸음을 떼었다. 그녀는 곧바로 두 번째 계획에 착수했다. 그녀는 풍채향과 운요를 불러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이 있어요. 지금 장응국이 점령한 주변 왕국으로 가서 장응국으로 향하는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세요. 그리고 그 왕국들이 재건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고요.”
남궁혜는 공화련처럼 멀리 내다보는 식견까지는 없었지만, 적어도 공화련의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장응전국은 마수령의 나라이다.
저들은 농경과 재배에는 영 젬병이었다. 따라서, 장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주변에 있는 중소 국가를 정복했다. 군사 규모는 매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커져갔다. 엄청난 자원 소모가 있었지만, 전쟁을 통해 군사와 물자를 공수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계속 이어갔다.
이러한 장응국의 침략 전쟁은 몇 년이 흘러도 멈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된 이유를 꼽자면, 장응국은 침략과 약탈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나갔기에 전쟁 자체를 멈출 수 없었다. 지금은 새롭게 떠오른 왕국연맹을 상대하기 위해 장응전국도 어쩔 수 없이 각 나라에 대한 공격을 잠시 멈췄는데, 이는 그 자체로 위협이 되는 일이다.
공화련은 또 한 번 사람을 보내 장응전국의 10여 개 대형 식량 창고를 파괴하였다. 그녀는 무력으로 장응전국의 주변 물자 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장응국의 적대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응전국의 주력군과 직접적인 충돌을 하지 않아도 속빈 강정과도 같은 전국을 지치게 할 수 있었다.
천제현이 대주국에서 혈응왕을 설득할 때, 그가 언급한 오승오패론(五勝五敗論)은 그저 말재간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었다. 장응전국은 군사력만 막강할 뿐 경제적 능력과 물자 공급 능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라는 내부적인 불협화음만으로도 멸망에 이를 수 있다.
남궁혜는 재빨리 공화련에게 말했다.
“나 쉬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저도 같이 갈래요!”
공화련이 고개를 내저었다.
“남궁 아가씨, 걱정 마세요. 더 중요한 일을 맡길 테니까요. 지금부터 전투기 부대를 정비한 후에 제 지시를 기다려 주세요. 이제 곧 가쿠계를 공격할 거예요!”
남궁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알겠어요! 언니!”
풍채향과 운요는 서둘러 출발했다.
공화련은 사대 거물로부터 적지 않은 강자를 영입했고, 숲에서 고수들을 모집했다. 당초 견융초원에서 흑응군단을 패퇴시킨 기갑 광전사 보병단 2만 명은 장응전국이 대주왕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결정하기 전에 대주왕국에 도착했다. 전투력의 차이가 현저했으나 한동안 주변을 맴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저들은 지금 장응전국 내부에서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방왕국의 사태가 일단락되자 공화련은 지하 가쿠계에 대응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혼돈의 숲의 사대 세력은 이제 막 가쿠계와 전투를 벌였다. 전투력으로 봤을 때 가쿠계가 네간의 대부분 세력과 규합한다고 해도 숲 연맹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가쿠계와 네간계는 지리적으로 복잡하여 숲의 연맹이 여기까지 영향력을 미치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기적성도 짧은 시간에 가쿠계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없어 숲 연맹의 전사와 부대는 한동안 가쿠로 갈 수 없었다. 따라서 숲 연맹의 전략은 주로 방어와 교란 작전 위주로 흘러갔다.
공화련은 중요한 물자를 보호하고 도시를 곤충족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숲 연맹에 기적상회의 탐측 장비를 보내 지하 생물체의 움직임을 감시토록 했다. 한편, 엘프왕을 필두로 한 사대 거물이 네간에서 가쿠로 상륙하여 가쿠계 도시에 대한 공습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네 사람이면 천군만마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의 연맹은 경제적 손실과 인명 피해 상황을 계속 전해왔다. 심지어 숲의 도시 몇 개가 이미 함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 부분 습격을 막아내기도 했고, 일전에 습격해온 곤충령 부대를 궤멸하기도 했다. 네간에서 돌아온 소식통은 공화련에게 사대 거물이 가쿠계의 몇몇 도시를 순조롭게 함락했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계속된 교착상태는 양쪽이 상대방의 힘을 서로 갉아먹기만 할 뿐, 어느 쪽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되면, 결국 가쿠계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곤충령은 소모든 손실이든 두려워하지도, 개의치도 않았다. 곤충령 국가는 고도의 집단주의적 정서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곤충족의 천성 및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에 반해 숲 연맹은 지방 자치적 성향이 강했다.
가쿠계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도 최고 지도자의 의지만 변함없다면, 전사들은 지상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숲 연맹은 상황이 달랐다. 공격 받은 도시가 많아질수록 일부 성주들은 숲 연맹에서 탈퇴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이제 막 창설된 숲 연맹에 타격이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신생 연맹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공화련은 사태 진정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가쿠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국면을 전환시킬 만한 방법이 시급했다.
바로 이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공간문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공간문의 구축은 극비로 이루어졌다. 불필요한 관심과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공화련도 공사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공화련은 공간문의 공사 진행 상황을 알지 못했다. 공간문 제조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그저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막연하게만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제현과 공서련의 노력으로 공간문은 예상보다 이틀이나 일찍 완공되었다.
분지 전체에 석판이 깔려 있었다. 거대한 문이나 문틀처럼 보이는 공간문이 100미터 이상 되는 높이를 자랑하며, 분지 정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이 거대한 문은 수정석과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공간의 힘을 상징하는 주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무수히 많은 성안과 공간수정석이 박힌 채 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대형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공화련은 이 웅장한 건축물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공간문이야? 정말 장관이 따로 없네!”
“네, 그래요. 이게 바로 군대까지도 집단 전송할 수 있는 공간문이에요.”
지난 며칠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천제현과 공서련은 한눈에 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천제현이 공화련에게 말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기적성은 약 1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적상회의 최신 장비는 대주국의 기갑 보병단에 보급된 상태라 이 부대가 사용할 우수한 장비가 없었다. 게다가 기적성이 건립된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 사병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적군의 주력부대를 쓰러뜨릴 능력이 부족했다.
물론 공간문을 통해 대규모 전송이 가능해 졌다고 해도 규모 제한은 여전히 존재했다.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마력이 과부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 기적성이 보유한 마력 공급 능력으로는 도시 전체의 마력을 끌어 모은다고 해도 수십 만 명을 전송할 수는 없었다.
이에 천제현과 공화련은 정예군 3만 명을 선발하고, 나머지는 다른 도시와 사대 거물 쪽에서 충당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공격할 대상은 거미여왕의 도시로 다수의 세력이 연합해야만 승산이 있다.
타이탄 산맥에서 타이탄족 20명과 거인 2천여 명이 파병되었다.
용의 고개는 비룡 15마리와 리치 200명, 고수 1천 명을 파병했다.
황야고원은 거대 마수인 베헤모스 20마리를 보냈고, 클로의 직속 친위대 1만 명을 추가로 파병했다.
마지막 영원의 숲도 힘을 보태긴 했으나, 이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고지식한 숲의 원로들이 엘프 군단의 파병 결정에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동의를 거치려면 족히 일 년 동안 논쟁을 벌여야 했으므로, 엘프족 성주 10여 명이 개인 친위대와 함께 돕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군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투력만큼은 최강이었다.
각 부족에서 파병된 부대들이 이틀 동안 기적성으로 모여들었고, 무장한 기적성 정예군과 함께 공간문 앞에 운집해 있었다.
천제현이 공간문 앞에 섰다.
“여러분, 숲의 연맹은 숲에 사는 모든 부족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연맹은 숲 전체에 풍족함을 가져다줄 것이고, 대륙에서 우뚝 솟을 수 있는 근간이자 토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현재 숲 연맹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하에서 기어 나온 곤충들이 연맹을 붕괴하고 숲에 혼란을 일으키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여라! 죽여라!”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곤욕을 치렀고, 막중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줄 차례입니다!”
천제현이 뒤로 한발 물러나 큰소리로 말했다.
“기적성 성주로서 선포합니다! 공간문 가동!”
기적성 마력이 수천 개의 강줄기처럼 공간문 안으로 끊임없이 굽이쳐 들어갔다.
분지 전체에서 주문이 반짝이더니, 사방에서 중앙으로 퍼져나가 문 형태를 띤 거대한 건축물에 응집되었다. 뒤이어 거대한 힘이 이 건축물 중간에 모이자 날카로운 굉음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 공간이 마치 분수처럼 뜨거운 열에 의해 천천히 끓어오르는 듯싶었다.
드디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무수히 많은 균열이 서로 교차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초기라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소용돌이에 강렬한 마력 기류가 뒤섞이고 있었으나 대형 진법이 불안정한 마력 기류를 빠르게 분산시켰다. 이내 소용돌이 안에서 어떤 형상이 나타났는데, 바로 지하세계의 정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