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6
제656장 우주개발계획
천제현과 함께 전송지점을 출발한 카라는 드디어 말로만 듣던 기적성을 마주했다.
기적성은 서해성 못지않게 번화한 도시였다. 양쪽 다 무역의 중심지였지만, 차이가 있다면 서해성은 해상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거의 100%인 데 반해 기적성은 공간무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관련 자료를 이미 접해 본 카라는 기적성의 공간무역이 세상 그 어떤 무역 형식보다 선진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공화련을 비롯한 실무진의 노고 덕택에 기적쇼핑몰은 이미 혼돈의 숲에 자리 잡은 도시 대부분에 진출했다. 무엇이든 눈 깜짝할 사이에 원하는 지점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적성은 거대 상단도, 대규모 선단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공간창고만 잘 깔아놓으면 모든 지점이 공간물류허브를 중심으로 연결됐다. 거리라는 개념은 무의미했다. 효율은 최대치로, 비용과 리스크는 최하치로 조정됐다.
비비안이 남하국에 만든 첫 번째 공간창고를 시작으로 현재 기적상회가 소유한 공간창고는 무려 천 개에 달했고, 하루에 3~5개씩 계속해서 증가 중이었다. 그중 70%는 기적상회 전용, 나머지 30%는 개방형 창고였다. 개방형 창고는 협력 파트너 또는 민간에 제공됐다.
한편, 공서련의 리더십 하에 기적상회는 공업 3.0 시대를 맞이했다. 과거 한 시기를 풍미했던 일반공장은 서서히 도태되는 반면 최근 들어 지능공장의 점유율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기적상회에서 말하는 3세대 공장이란 공간지능화공장을 가리켰다.
공간지능화공장은 일반 지능공장보다 강점이 많았다.
이미 공간지능화공장 시스템이 적용된 일부 핵심생산기지가 좋은 예였다. 이러한 공장들은 따로 자재운송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공장 내 창고 자체가 공간창고이기 때문이었다. 광석이 채굴되는 시점에서부터 제련, 가공을 거쳐 완제품 공장에서 다른 자재들과 결합해 완성품으로 거듭나기까지, 그 중간중간 발생하는 산업폐기물과 완제품 운송 문제 역시 완전무결한 하나의 사슬 안에서 처리됐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건 공간창고와 알파브레인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기적상회의 경쟁력이 나왔다.
그렇다면 서해성은 어떠한가? 해상무역은 느리고 위험한 데다 물자 소모까지 컸다. 공간운송보다 나은 점이라면 살아 있는 생물을 실어나를 수 있고, 1회 적재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정도였다. 따라서 해상운송은 중·단거리 무역이나 각종 가축과 저렴한 원자재를 옮기는 데 적합했다.
독보적인 운송능력에 도시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선 기적은행과 숲의 의회까지. 혼돈의 숲을 밝힐 미래의 경제중심, 금융중심, 정치중심은 필연적으로 기적성일 수밖에 없었다.
살짝 서로에게 빈정이 상한 상황이긴 했지만, 천제현은 탈출을 도와준 카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천제현은 카라에게 기적성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동시에 생활에 필요한 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분간 서해성에 돌아갈 생각은 말아요. 없는 게 없는 곳이니까 분명 서해성에서보다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기적성의 놀라운 풍경에 카라는 벌써부터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놀라워.”
“당연하죠, 누구네 동네인데.”
천제현이 말했다.
“기적성에서 지내려면 몇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어요. 주민증이라든지 휴대전화라든지.”
카라가 전혀 감을 못 잡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민증?”
“기적성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신분증이에요. 기적성 거주민들의 정보가 전부 데이터화되어 있거든요. 정신력과의 연계라는 특성 덕에 위조도 불가능하고 남과 겹칠 수도 없어요. 주민증을 만들면 기적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있고 숲 연맹에 소속된 다른 도시에서도 마석 대신 주민증으로 상점에서 편하게 결제가 가능해요.”
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에도 무척 편리한 기술이었다.
“휴대전화는 일종의 통신기구인데, 기적성에서는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필수품으로 갖고 다녀요. 요즘은 기능이 많이 좋아져서 기적성 정보망에 접속해 기적쇼핑몰 신상품을 구경하고 곧장 구매할 수도 있고요.”
그간의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휴대전화는 이제 상당한 고도화를 이뤘다.
최신 모델의 경우 운문의 근래 연구성과를 적용해 더욱 빠른 연산속도와 대폭 커진 저장용량, 향상된 신호 감도를 구현해냈음은 물론 엘프족이 개발한 운영체제까지 탑재해 기능의 다양화를 이뤄냈다.
카라를 공화련에게 데려간 천제현이 공화련 앞에서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공화련은 카라의 정체에 깜짝 놀라면서도 재깍 그녀의 가치를 간파했다. 푸른제국의 공주가 기적성에 있는 이상 서해성도 행동에 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카라는 중요한 손님이었다.
“기적성 첫 방문인데 접대에 신경 써야죠.”
호출을 받고 온 비비안에게 공화련이 말했다.
“그간 네간계에서 공간요새 짓느라 수고도 많았는데 이참에 휴가 넉넉하게 드릴 테니 카라 공주님과 함께 놀러도 다니고 그러세요.”
놀기 좋아하는 비비안으로서야 입이 찢어질 수밖에 없는 임무였다.
“카라 언니, 따라와. 내가 기적성을 사랑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두 공주가 성주 집무동을 떠난 뒤.
공화련이 천제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
“서해성 한 번 다녀오랬더니, 그사이를 못 참고 인어공주를 꾀어서 달고 와?”
천제현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큰아가씨, 이건 어디까지나 돌발사태였어요.”
“됐어, 파샤 성주가 한 약속도 있고 푸른공주도 우리 기적성에 머무르는 중이니 서쪽 해양종족은 당분간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공화련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기색이었다.
“후방 걱정도 덜었고, 이제 가쿠계와 네간계 적대 세력을 상대하는 데 집중해야겠어. 사대 거물이 힘을 합치면 제아무리 가쿠계라도 숲 연맹을 흔들지는 못할 거야.”
반박의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가쿠계 곤충령들에게 숲 연맹을 위협할 힘이 없다고는 해도, 언제 말썽을 일으킬지 모르는 놈들을 발밑에 두고 살자면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거예요.”
천제현이 문득 말을 멈췄다.
“우리 땅에서 해충이 설치는 꼴은 못 봐요. 숲 연맹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위협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만 해요!”
“뿌리 뽑는다고?”
공화련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무리야. 우리 군대를 무슨 수로 지하 깊숙한 가쿠계까지 보내겠어. 그때그때 습격에나 잘 대응하면 다행이지.”
“글쎄요, 공간문을 만들면 될 것 같은데요.”
공화련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공간문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도 천제현의 입에서 나온 적이 있는 말이었다. 기능만 놓고 보면 공간문은 전송탑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전송탑이 개인용으로 자주 이용된다면 공간문은 단체용이라는 게 차이점이었다. 전송탑은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건설할 수 있는 반면 공간문 건설에는 거금이 들었다.
“공간문 전송진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성안이 최소 백 개야!”
공화련이 난색을 표했다.
“알다시피 창고에 있는 성안을 탈탈 털어도 겨우 한 개나 만들 수 있을 텐데, 차라리 그 성안으로 전송탑을 지어 봐. 연맹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어!”
천제현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손톱 아래 박힌 성가신 가시를 뽑는 데 겨우 그 정도 투자도 못 해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앞으로는 성안도 대량 채굴이 가능해질 거예요.”
공화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성안은 하늘이 허락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자원이야. 그런데 대량 채굴이라니?”
천제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살다 보니 큰아가씨도 답답할 때가 있네요.”
천제현을 세게 한 번 꼬집어준 공화련이 안달을 냈다.
“얘기해 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성안은 기적상회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었다. 현재로서 성안을 구할 방법은 유적지에서 발굴하거나 다른 종족에게서 비싼 값에 사들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손에 들어오는 양은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전송탑은 기적성의 핵심이었다.
정말로 천제현에게 성안을 대량 채굴할 방도가 있다면 기적상회는 순식간에 혼돈의 숲을 넘어 대륙 구석구석까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천제현은 말 돌리기에 취미가 없었다.
“성안의 출처가 어디죠?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아닌가요? 우리가 땅에서 찾아내는 성안은 전부 별똥별이 실어다 준 것들이에요. 그러니 드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어차피 능력도 되는데, 차라리 하늘 밖으로 날아가서 우주광산을 개척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우주광산? 우주광산!’
공화련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기적상회가 그간 우주광산 개발에 도전하지 않은 건 기술 미달도 기술 미달이거니와 비행선이나 마수의 비행능력으로는 하늘 밖으로 나간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간 기적상회의 설비는 나날이 발전했고, 이제는 공대함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갖춰졌다. 강력한 엔진과 연료가 준비 완료 상태인데 우주 진출이라고 못 할 건 또 뭔가?
천제현의 입가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어떤가요, 천재적이지 않아요?”
“까불지 마!”
천제현을 흘겨본 공화련이 말을 이었다.
“공간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유일해. 난 다른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은 안 되는 상황이고, 우주개발계획은 누구한테 맡기지?”
“비비안한테 맡기죠. 보조역으로는 카라 공주를 투입하고요!”
천제현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실컷 즐기고 오면 임무를 맡기세요. 비비안 성격이면 아마 당장 우주로 날아오를 기세로 신나서 방방 뛸 테고, 카라 공주에게는 기적상회의 능력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될 거예요. 서해성은 숲 연맹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저한테도 의미가 크거든요. 작은 아가씨랑 식 올리기로 약속한 장소인지라.”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눈빛이 일순 흔들리는가 싶던 공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번 일은 아주 잘 처리했어. 인어공주의 유혹도 이겨내고 말이야. 서련이한테도 꼭 전해 줄게!”
“하여튼 말씀도 참.”
천제현이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