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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51화 (651/729)

# 651

제651장 푸른제국

서해성주의 생신연회는 서해성 최고의 축제이자 기념일이다.

서해성 주민들과 외부인들 모두 종족 고유의 전통 의상을 입고 외출했으며, 큼직한 술통과 산해진미를 실은 배들이 하나 둘씩 항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불꽃들이 밤하늘을 장식했고, 수정등은 도시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서해성 어디를 가든 맛난 음식의 향기와 즐거운 노래 소리가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서해성주가 500세 생일을 맞는 날이니만큼 축제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서해성의 역사는 몇 백 년에 불과하기에 용의 고개나 용성과 비교할 때 축적된 재물은 많지 않았다. 용의 영주 데스윙 니드호그는 만 년 이상 살아온 늙은 용이었고 그 거대한 시간의 차이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서해성의 번화함은 혼돈의 숲 그 어떤 도시에도 뒤지지 않았다. 거대한 항구에는 해상무역센터가 있어 대륙 각지의 상인들이 찾아오곤 했다. 향후 서해성의 재력이 용성을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해상무역이 발달한 서해성이기에 성주의 생신연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각지에서 귀한 선물을 보내왔다.

1년에 한 번 있는 서해성주의 생일은 서해성에 연줄을 대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막로는 천제현과 함께 서해성의 화려한 인어궁전으로 들어갔다. 천제현은 서해성의 지배층이 인어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흔하지 않은 해양종족인 인어족은 신비로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천제현이 살던 미래에 인어족은 이미 멸종된 지 오래였다.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인어궁전의 연회장은 수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손님들은 신분고하에 따라 분류되었는데, 항구에서 약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인 막로는 말석인 가장자리 구역으로 안내되었다.

“성주님 납시오!”

소라나팔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수십 명의 인어 시녀들이 두 줄로 걸어 나오자 연회장에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에 있는 듯 흉포한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진짜 파도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천역 6성 이상의 초고수가 내뿜는 기운과 위압감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고수는 대륙 전체로 눈을 돌려도 손에 꼽힐 것이다. 서해성에서 그런 자는 오직 한 명, 서해성주뿐이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기운을 뿜고 있는 것이 왜소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저 사람이 서해성의 성주라는 거예요?”

천제현도 백발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듯 내뱉었다.

“전설 속의 서해성주는 끝내주는 인어 미녀 아니었어요? 저런 할망구일 줄이야!”

“자, 자, 자, 자네…….”

막로는 기함할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황급히 사방을 둘러본 후 천제현에게 말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천제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뭘 그리 겁내요.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텐데!”

막로는 갑자기 이 자를 데려온 것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워졌다.

“서해성주가 어떤 분인데 못 들었을 거라 확신하는 겐가?”

“서해성주는 이미 죽을 날을 받아놓은 몸인걸요.”

“대체 무슨 망언을 하는 게야!”

그러나 천제현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인어족의 수명은 아주 길죠. 보통 인어들은 400~500년, 천역 경지의 인어라면 그 두 배는 더 살 수 있을 거예요. 인어들은 일생 대부분을 젊은 상태로 사는데, 생명의 등불이 꺼져갈 때쯤이 되어서야 한 번에 노화가 진행돼요. 500살밖에 안 됐는데도 저렇게 늙었다면 뭔가 외부적인 힘이 작용했을 거예요. 대부분의 정력을 체내의 상처를 억누르는 데 사용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을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어리석은 소리하지 말게!”

막로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그게 자네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계속 이런 식으로 군다면 자네를 내쫓는 수밖에 없네.”

“네, 네, 알겠습니다요!”

천제현은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사람을 들이는 건 쉬워도 내보내는 건 어렵다지 않은가. 여기 들어온 이상 그렇게 쉽게 내쫓길 생각은 없었다. 심사가 뒤틀린 그는 투덜거렸다.

“늙은이가, 잔소리하고는!”

성주가 천천히 상석에 앉자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용응상회에서 오색성석 백 개를 생신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대원국 상회에서 용가죽 열 개를 가져왔습니다!”

“…….”

손님들이 하나씩 선물을 바치자 연회장은 순식간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보물들로 가득 찼다. 선품급 물건만도 8~9개나 되었다. 막로가 바친 선물은 그 안에서 중간 수준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눈으로 막로를 바라봤다.

3급 반선품 영약을 내놓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엄청난 기회와 실력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는 보물이니까.

막로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한껏 고무되었다. 그가 이번 연회에 참석한 이유는 물론 어떻게든 덕을 보려는 심산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이번 기회를 통해 평소에 접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연을 대는 것이었다. 상인의 사교관계는 벌어들이는 돈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한편 천제현은 서해성의 힘을 이제야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성주에게 선물을 바친 자들 중에는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상회와 왕국 세력들이 있었고, 대형 왕국에서 소규모 왕국, 심지어 전국에서 온 세력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왕국의 상인들이 이렇게 먼 서해까지 와서 무역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터였다.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하나가 연회장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대건제국의 호국현자, 우문희가 불멸 혼기 100개와 3급 선약 20개를 선물로 바쳤습니다!”

연회장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대건제국의 호국현자 우문희가 직접 서해성까지 와서 선물을 바쳤다고?

제국이라 불리는 세력 중 만만한 세력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대건제국은 인간족의 나라 중 가장 강력한 나라 아닌가. 대건제국이 움직이면 전국 5~8개 정도는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 있다.

우문희는 대건제국의 호국현자이자 국사라는 존귀한 직위에 올라 있는 자다. 보통 왕국의 국왕들도 그에게는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다. 그런 자가 성주의 생일을 축하하겠다고 직접 서해성까지 오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주의 면을 크게 세워준 셈이다.

반쯤 감겨 있던 노성주의 눈이 그 말에 번쩍 뜨였다.

“과한 선물이구려. 나는 작은 성의 주인일 뿐이니, 대건제국의 선물을 감당하기 힘들 듯하오.”

“하하하!”

우렁찬 웃음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서해 푸른제국의 사대 총사 중 하나인 파샤 총독께서 이 늙은이의 보잘것없는 선물이 성에 차기나 하시려고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전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와 작열하는 화염처럼 사방을 뒤덮더니 서해성주의 기운을 반 이상 밀어내버렸다.

그와 동시에 빛무리에 뒤덮힌 노인 한 명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빛무리는 더욱 강해져 하늘나라의 선인이 하계에 내려온 듯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천제현은 그것이 천역 경지에 속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역 경지에 이르지 못한 술사들은 절대로 그 힘에 대항할 수 없으리라.

‘저 자가 바로 그 유명한 현자, 우문희인가?’

현자란 학자에게 내려지는 봉호이다.

학자 칭호를 받은 학자치고 평범한 인물은 한 명도 없다. 하물며 우문희는 천역 경지의 고수 아닌가. 그의 실력은 서해성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역시 대건제국의 국사라는 지위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문희의 말을 통해 서해성주가 푸른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점이었다.

천제현은 답답한 듯 물었다.

“푸른제국이 유명합니까?”

“푸른제국도 못 들어봤나?”

막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푸른제국은 한때 서해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해양종족 제국이었네. 백 년 전에 내분으로 와해된 뒤 지금은 몇 개의 세력으로 분열됐지. 푸른제국의 이름 또한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고. 푸른제국에는 네 명의 총사가 있었다고 들었네. 서해성주가 그중 한 명이었다니. 정말 놀랍군!”

한때 대해를 호령하던 푸른제국이 내란으로 사분오열될 거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푸른제국이 분열된 후 서해의 세력들은 장수 잃은 병사들처럼 뿔뿔이 흩어졌고, 정국은 엉망이 되었으나 오직 서해성만이 그럭저럭 질서를 유지했다. 그 서해성의 성주가 지난날 푸른제국을 호령하던 총사였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말이 다른 이의 입에서 나왔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우문희가 말한 이상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우문희 같은 자가 헛소리를 할 리 없으니까.

성주 파샤의 눈에 순간 한기가 떠올랐으나, 바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파샤는 처음처럼 눈을 반쯤 감은 채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우문 국사께서 서해성까지 온 이유가 이 늙은이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오. 푸른제국은 이미 멸망한 지 오래거늘, 아직도 뭔가 못마땅한 게 있는 거요?”

“오해십니다!”

우문희는 큰 소리로 몇 번 웃은 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파샤가 느끼는 위압감은 점점 더 커졌다. 호위병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우문희는 압박을 늦추지 않으면서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 대건제국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서해성에 청혼하러 왔습니다!”

‘청혼이라고? 누구한테?’

어안이 벙벙해진 천제현은 입을 헤 벌렸다. 설마 저 할망구한테 청혼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비위가 좋진 않을 테니까.

우문희는 계속 말했다.

“푸른제국에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공주가 있었다 들었습니다. 그 분을 파샤 총독님께서 데리고 나와 보살펴 주셨다고요. 지금은 경국지색의 미인으로 자랐다죠? 마침 저희 제국에 귀비 자리가 비어 있는지라 그 공주님께 청혼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서해성은 대건제국의 비호를 받게 될 것이며, 다시 한 번 푸른제국을 수복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파샤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건제국 황제 폐하의 뜻은 잘 알겠으나, 푸른제국의 공주를 시집보낼 수는 없소. 단념하시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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