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0
제650장 가격 경쟁
서해성의 경비는 천제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삼엄했다.
그래서 서해성주에게 접근하려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해성은 혈응왕의 진영과는 달랐다. 천제현이 위풍당당하게 혈응왕의 막사에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혈응왕의 실력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제현은 언제든 두루마리를 사용해 도망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서해성주는 달랐다. 구체적으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엘프왕이 제공해 준 정보에 따르면 사대 거물들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그 정도의 천역 고수를 만나는데 조심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전송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서해성주는 혈응왕과 다르다.
서해성은 한 지역을 대표하는 곳으로, 그들의 세력권에는 바다뿐만 아니라 혼돈의 숲의 일부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해성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숲 연맹은 향후 큰 골칫거리를 떠안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면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서해성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엄청난 염가에 거저 주다시피 영약을 팔기로 했고, 막로는 그 대가로 서해성 연회에 천제현을 데려가 주기로 했으나, 신신당부를 했다. 서해성에서 그 어떤 문제도 일으켜선 안 된다고, 그랬다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그것은 물론 천제현도 순순히 동의를 하는 부분이었다.
그날 저녁, 초대 받은 사람들이 서해성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해성의 경비와 검사는 매우 철저했다. 각종 방어결계와 금제만 해도 수십 종류는 될 것 같았다. 해양종족 전사들로 이뤄진 경비대를 지나면 또 한 무리의 경비대가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방어막을 뚫고서야 마침내 서해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해성은 해양도시로, 해양종족들이 해변을 따라 다양한 건물들을 지어 놓았고 일부 건축물들은 수중에 위치했다. 주민들의 조합도 매우 다양해서 강인하지만 느린 거북이족, 사납고 잔인한 상어족, 10미터 이상의 키를 자랑하는 고래족 전사들이 눈에 띄었으며, 새우 병사나 대게 장수들은 어딜 가나 있었다. 한 마디로, 쉽게 볼 수 있는 해양종족들은 모두 서해성 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마수령들처럼 해양종족들 역시 해양생명체와 몹시 닮긴 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인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물고기나 대게가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어색한 광경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양생명체와 인간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었다.
과연 혼돈의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도시였다.
서해성은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렇다고 용성처럼 지나치게 호화롭고 화려해서 천박한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서해성은 격조 있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고풍스러움이 있는 영원의 숲보다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이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무시지요.”
천제현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라집으로 안내되었다. 3미터 높이의 소라집 내부는 대륙 종족들의 주거생활을 반영해 인테리어 된지라 조금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서해성주의 생신연은 내일이다.
천제현이 주변이나 둘러볼까 하고 있을 때였다.
“앞쪽에 저 거대한 거북이 등딱지를 보았나?”
막로가 손가락을 흔들며 높이 수십 미터, 길이 수백 미터의 거대 거북이 등딱지를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서해성에서 가장 유명한 거북이거래소라네. 거북상회는 서해성에서 가장 큰 상회지. 인사나 하러 갈까 하던 참인데, 관심 있으면 같이 가서 거래소 구경이나 하지. 운이 좋으면 귀한 보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흥미롭군.”
천제현은 그들과 함께 거북이거래소에 들어갔다. 거북이거래소의 내부 공간은 밖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지만,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정신없는 느낌이었다. 거북이거래소는 거북상회 거래중개소와 대외에 개방된 자유거래소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거래중개소에서는 사람들이 팔고 싶은 물건을 가져와 위탁 판매를 할 수 있었고, 자유거래소에서는 자유롭게 원하는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었다.
거북이거래소에 올라온 상품들은 모두 심해의 자원들이었다.
전부 숲과 내륙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으므로, 서해성을 연맹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뭔가를 느낀 새끼 여우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좋은 물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뭘 본 거야?”
여우는 즉시 한 노점으로 달려갔다. 노점 주인은 우직해 보이는 거북이족이었다. 일반적으로 거북이족은 우람한 몸에 비교적 짧은 팔다리를 갖고 있다. 얼굴과 오관은 인간족과 비슷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단단한 등딱지를 갖고 태어난다. 그 등딱지는 거북이족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들의 골격만큼 중요하며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단단해져 나중에는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게 된다.
그 자가 팔고 있는 것들은 심해에서 건져온 잡동사니였다. 독특한 모양의 산호나 낡고 오래된 물건 등 언뜻 보기엔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새끼 여우는 그 물건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물건을 찾아냈다. 매우 평범하고 소박하게 생긴 구슬이었다.
천제현은 일부러 관심 없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구슬을 집어들고 신식으로 간단하게 훑어봤다. 그러자 느낌이 왔다. 고대 요수의 내단이었다. 요수는 마수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요수의 내단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뿜어내는 기운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내단의 주인은 천제현이 네간의 공간의 균열에서 죽인 허공수와 비교해도 결코 약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이 석화되었으므로, 신식의 수준이 낮았더라면 이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천제현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인간족 언어로 물었다.
“이 돌멩이, 얼마에 팝니까?”
거북이족 주인장은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듣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자 천제현은 주머니에서 마석 몇 십 개를 꺼내 보였다. 하지만 주인장은 고개를 저었다. 천제현이 다시 한 번 마석 몇 십 개를 더 꺼냈으나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조금씩 가격 흥정을 했고, 가격은 마석 200개까지 올라갔다. 거북이족 주인장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막 돈과 물건을 교환하려고 할 때였다. 그들 뒤에서 몹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그 요수 내단은 내가 사겠다!”
천제현은 화가 치솟았다.
대체 누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육감적인 여인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175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키에 풍만한 몸매, 눈처럼 새하얀 피부, 등에서 물결을 그리며 찰랑이는 금발을 가진 여인이었다. 분위기, 외모 할 것 없이 완벽한 미인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매력적인 부분은 두 긴 다리였다.
예술작품 같은 그녀의 뽀얀 다리는 적당히 근육이 잡혀 있었으며, 모양 또한 몹시 우아했다. 긴 다리가 큰 키와 어우러져 고귀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미인은 온 대륙을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뭡니까?”
미녀에 익숙한 천제현은 놀라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먼저 집은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몰라요? 이 돌멩이는 제가 먼저 샀다고요!”
그러나 금발의 미녀는 천제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8만 년 묵은 심해 팔조요수의 내단이다. 매우 진귀한 물건이지. 마침 내가 꼭 필요로 하던 것이다. 마석 5만 개를 줄 테니 내게 팔아라.”
“뭐라고? 5만?”
거북이족 주인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녀는 계속 말했다.
“저 교활한 조무래기가 순진한 주인장을 등쳐먹으려고 하니 속지 말고.”
천제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감히 날 무시해? 흥, 내가 너보다 돈이 없을까 봐?’
그는 여러 번 생각도 하지 않고 외쳤다.
“5만 마석이라고? 좋습니다. 그럼 난 1만 더하지. 내게 파십시오!”
천제현은 저장공간에서 묵직한 주머니 6개를 꺼내며 말했다.
금발의 미녀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네까짓 게…….”
거북이족은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 평범한 차림의 인간이 1만 마석을 애들 장난처럼 얘기하다니. 일반 술사에게 마석 1만 개가 있다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데.
천제현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제 거래는 성사된 거죠?”
“잠깐만. 그래 봤자 마석 6만 개일 뿐이잖아.”
금발의 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마석 주머니 7개를 꺼내 놓았다.
“7만 마석을 주지!”
그러자 천제현이 마석 주머니 한 개를 더 꺼내며 말했다.
“8만!”
금발의 미녀는 화가 나기 시작했는지 잡아먹을 듯 천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9만!”
“10만!”
“11만!”
“12만!”
두 사람이 경쟁이라도 하듯 가격을 올리는 통에 내단의 가격은 이미 적정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지만, 천제현은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있는 거라면 돈뿐인 그 아닌가.
‘감히 나랑 돈을 놓고 경쟁을 해? 제 무덤을 판 게지.’
미녀의 얼굴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눈앞에 있는 망할 인간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석 1만 개, 2만 개가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미녀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충동을 참으며 다시 한 번 마석 주머니를 꺼내 땅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석 15만!”
그녀가 처음 부른 가격의 세 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내단이 매우 귀한 물건이라고는 하나 그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다. 허공수처럼 희귀한 공간 속성 요수의 내단이라면 100~200만 마석을 부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이 물건은 물 속성 내단에 불과한 데다 그 효과도 이미 많이 약해져 있다. 지금의 가격도 액면가를 훨씬 초월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겨우 15만?”
천제현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저장주머니를 뒤졌다. 그러고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어…… 없어?’
천제현은 그제서야 기적성에서 나올 때 마석을 15만 개만 챙겨 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터였다.
‘하필이면 지금…….’
금발의 미녀는 궁지에 빠진 천제현을 보며 쏘아붙였다.
“돈 없으면 망신당하지 말고 썩 꺼져!”
“그럴 리가요!”
천제현이 참지 못하는 게 있다면 바로 여자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기다리시오. 시간을 하루만 더 주면 마석을 가져올 테니…….”
“누가 널 기다려준대?”
금발의 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팔 거야, 말 거야?”
그때 거북이족 주인장은 이미 정신줄을 놓아 버린 상태였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돈을 더 받는 게 아니었다. 빨리 돈을 받아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잽싸게 금발의 미녀에게 물건을 건네주었다.
물건을 받은 미녀는 멸시하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꼬나본 후, ‘흥!’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저런 싸가지 없는 여자에게 지다니.’
천제현에게 그건 엄청난 모욕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대체 누굴까? 외모는 인간과 비슷한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대번에 마석 15만 개를 내놓을 수 있는 여인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텐데.’
더 이상 구경할 마음이 사라진 천제현은 소라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을 청하며 내일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