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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49화 (649/729)

# 649

제649장 서해성

서해에 인접한 서해성은 수정만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해성의 건물들은 만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맞은편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바닷물 안에는 오색찬란한 산호초가 반짝거렸고, 모래사장의 모래알들은 순도 100%의 수정을 갈아서 만든 양 투명했다.

서해성의 낙차는 500미터에 달했으며 모래성, 소라집, 거북이 둥지 등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이국의 풍취를 자아냈다. 그것은 대륙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서해성이 외딴 곳에 위치해 있지만, 그렇다고 외부와 단절된 건 아니었다. 몇 개의 항로를 통해 인접 해양국가의 상인들이 수시로 물건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해성에서는 해양종족들 외에도 다양한 대륙의 상인들과 여행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상인들이 배를 타고 바로 수정만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정만에서 200리쯤 떨어진 곳에 외국 상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대형 항구가 있는데 보통은 그곳을 통해서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항구는 인구 수십만의 마을로 성장했고, 장기간 그곳에 머무는 외부 상인들도 많았다.

어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을 밖 항구에는 암금색 갑옷으로 무장한 수많은 군사들이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다.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 쓰지 않고 날카로운 두 눈을 먼 곳에 고정한 채로.

그때, 옥처럼 부서지는 파도 사이로 철갑선 한 대가 나타났다.

새까맣고 거대한 함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엄을 뽐내며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느린 움직임에도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항구 주변에서 화물을 나르고 있던 사람들은 그 함선을 보고 하나 같이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검은색 함선의 골격은 교룡의 뼈로 만들어졌으며, 뱃머리에는 교룡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살기와 광기로 번뜩이는 교룡의 두 눈은 해일과 풍랑까지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서 한 번만 눈이 마주쳐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엄을 자랑하는 함선이었다.

“대건제국!”

“대건제국의 함선이다!”

항구까지 아직 수천 미터나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함선에서 갑자기 스무 명의 무사들이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소지한 무기들을 일제히 갑판 위에 내려놓고 나는 듯이 바다를 건너 왔다. 기운으로 추측해 보건대 진령 9성 정도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그들을 혼돈의 숲으로 데려가면 성주 자리는 힘들지 몰라도 한 성의 2인자 위치쯤은 충분히 꿰찰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이 함선에서는 길을 뚫는 호위병 역할이나 하고 있었다.

대건제국은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한 나라다.

검은색 함선의 표면에 새겨진 상처와 파괴의 흔적들이 그간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건제국의 인구는 최소 수십억으로 추정된다. 천역 경지의 고수들 또한 두 자릿수 이상 존재할 테니 진령 고수들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제국이었다.

혼돈의 숲이 온 힘을 모아도 대건제국과 간신히 힘의 균형을 이룰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까. 아니, 대건제국은 지금처럼 뿔뿔이 분열된 혼돈의 숲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검은색 함선이 천천히 항구에 들어서자 하인 행색의 늙은이 두 명이 배에서 내려왔다. 남루한 옷차림에 굽신거리는 태도였으나 눈빛만은 비할 데 없이 깊고 차가워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인들조차 저 정도인데 주인은 어떻단 말인가?

두 하인과 20명의 진령 호위병들이 길을 열자 거대한 갑판에서 수많은 영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400~500명의 기병 의장대가 진용을 갖췄고, 날개 달린 마수들이 마차를 끌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위풍당당하게 서해성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건제국의 현자, 우문희!”

항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그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소박한 회색 옷을 걸치고 머리에 짚으로 짠 모자를 쓴 청년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으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옥을 깎아 만든 듯 투명했고, 어깨에는 귀여운 새끼 여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불쾌한 듯한 마디 했다.

“흥, 대체 누구길래 저렇게 오만 방자한 거야?”

“조용히 하게!”

한 노인이 벌떡 일어나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우문희 선배님은 대건제국의 현자시네! 감히 불손한 언사를 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겐가?”

‘현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한때 대현자에 봉해진 몸인데.’

천제현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 시대의 현자 나부랭이가 수만 년 후의 대현자와 감히 비교나 할 수 있을까.

현자 우문희의 행렬이 멀어지자 항구는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천제현의 옆에 있던 상선 선장(船長), 막로는 천제현이 몹시 못마땅했다. 막로는 서해성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선상(船商)으로, 총 백여 대의 상선을 보유하고 해안가에서 장사를 하는 자였다. 우연히 천제현과 마주친 후 귀한 물건을 갖고 있다기에 옆에 있어도 된다 했는데 이렇게 안하무인인 놈인 줄은 생각도 못 한 터였다. 우문희와 같은 거물을 잘못 건드렸다간 그의 작은 상회는 입김 한 방에 산산조각 날 것이다.

천제현은 그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막로는 꽤 유명한 선상이었다. 서해성주의 500세 생일연회가 내일인지라 막로도 이번 연회에 초대 받았다. 천제현이 막로에게 접근한 이유도 서해성주와 만날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막로는 천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자네, 귀한 물건이 있다고 한 말, 진짜인가?”

“설마 제가 노인장께 거짓말을 했겠습니까요? 보십시오!”

천제현은 망설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옥함 하나를 꺼냈다. 그가 뚜껑을 열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는 금색 과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3급 반선급 영약인 금교선과입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됐겠습니까?”

그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영약을 알아본 모두의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반선급 영약이라니! 그것도 3급! 엄청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선약을 실제로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물건을 새파랗게 젊은 놈이 갖고 있다니.

선약을 본 막로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서해성주의 생신연에 초대받은 것은 둘도 없는 영광이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어찌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 한 번 보기조차 힘든 반선급 영약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이봐, 그 영약, 내게 팔지!”

한 거구의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이 인간족 늙은이가 얼마를 주든, 나도 같은 값을 주지!”

마음이 급해진 막로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쿠이칸, 대체 이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물건을 가져야겠다. 마석 천 개를 주지!”

쿠이칸이라고 불린 마수령은 몹시 난폭한 태도로 막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덧붙였다.

“내 반대편에 서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쇼. 다만, 앞으로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원망은 마시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막로는 화가 치밀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쿠이칸은 상인 신분이었지만, 마수령이 장사를 알아 봤자 얼마나 알겠는가? 실상은 이곳에서 악명이 자자한 해적단 두목에 불과했다. 누구든 그를 잘못 건드리면 밤에 발 뻗고 자기는 힘들다.

“마석 천 개라고?”

마석 천 개로 이 귀한 반선급 영약을 사겠다니, 날강도가 따로 없지 않은가.

그러나 쿠이칸은 천제현의 반응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는 처음 그 영약을 본 순간부터 그게 이미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놔!”

쿠이칸은 살기등등하게 천제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천제현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나한테서 물건을 빼앗아 가는 건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니오.”

“흥, 좋게 말할 때 내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지나 마라!”

쿠이칸의 일행 중 한 명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으며 옥함을 들고 있는 천제현의 팔을 잘라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천제현이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칼날을 잡자, 칼날이 용접이라도 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큰소리를 친 건가?”

천제현이 힘과 마력을 동시에 발산하자 날카로운 칼날이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 그 마수령에게로 날아갔다. 그자는 삽시간에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졌다.

또 다른 마수령 한 명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도망칠 태세를 취했으나, 천제현이 손바닥을 뒤집자 얼굴뼈가 부러지며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바다에 처박힌 놈의 시체에서 뇌수와 피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이칸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정령을 소환하려 했다.

그러나 천제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가슴을 가리고 있던 갑옷과 갈비뼈가 미지의 힘에 의해 부서졌다. 그는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주변에 있던 상인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령 술사인 쿠이칸이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그들의 앞에 있는 젊은이는 개미 몇 마리 죽이듯 쿠이칸 일행을 해치웠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려 막로를 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거래에 대해 재대로 얘기를 좀 해볼까요?”

사람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이 젊은이가 멍청해서 그 귀한 보물을 대놓고 보여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방금 전에 보여준 모습으로 보건대 그 자신감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막로는 쩍 벌린 입에서 흘러내린 침을 닦으며 말했다.

“너무나 귀한 물건이라 자세히 평가한 후에 값을 매겨야 할 것 같네.”

그러나 천제현은 고개를 저었다.

“반값에 드리겠습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부탁? 그게 뭔가?”

“오래전부터 서해성의 아름다운 인어들 얘기를 듣고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이번에 서해성 궁전에 들어가실 때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될런지요.”

“부탁이 고작 그거라고? 어렵지 않지.”

그렇잖아도 서해성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시종 하나 더 데려간다고 주목할 사람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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