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48화 (648/729)

# 648

제648장 서해로

천제현이 기적성으로 돌아왔을 때, 공화련은 몹시 지쳐 있었다. 정보를 수집하느라 며칠 연속 제대로 잠을 못 잔 여파인 것 같았다. 강력한 스마트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도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곳이 많았다.

“정말 중요한 정보를 가져와줬네. 기적상회의 정보수집팀을 총 동원해서 조사한 결과, 해양종족들이 이번 전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

공화련은 천제현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양종족 전사들이 몰래 숲에 잠입했는데도 몰랐다니. 수중에서 은밀하게 움직여서 눈에 띄지 않은 것 같아.”

해양종족들은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실력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계획에서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숲의 세력들은 대비를 할 테고 그런 상황에서 기습을 감행해 봤자 성공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숲 속에서 싸워야 하지 않는가?

숲의 세력들에게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과 꼭 싸울 필요는 없다. 생활 구역이 완전히 달라 직접적으로 충돌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이 없다면 내가 직접 서해에 한번 다녀오는 수밖에.’

천제현은 거미 여왕 엘리카시스가 어떤 방법으로 서해성을 설득했는지는 몰랐지만, 그가 줄 수 있는 거라면 기적상회와 숲 연맹도 얼마든지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들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줄 수도 있다.

“대주국 쪽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혈응왕이 부상을 당했으니 즉시 진군하지는 못할 거야. 게다가 소문을 퍼뜨린 효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어. 매황이 혈응왕을 의심하기 시작했거든.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진 못할 테니까 최대 열흘 정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열흘이면 충분해요!”

성주 집무동을 나선 천제현이 짐을 싸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꿍꿍이수작 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나와요!”

“흥! 그게 무슨 태도야?”

공서련이 씩씩거리며 뛰어들어왔다. 몸에 딱 맞는 엘프 스타일의 미니스커트를 입어 눈처럼 하얗고 긴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떠오른 홍조가 너무나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번엔 또 서해성으로 간다며?”

“저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니 감동인데요?”

천제현은 그녀에게 다가가 볼을 꼬집으며 시시덕거렸다.

“걱정 마요. 서해성보다 100배는 위험한 곳에서도 멀쩡하게 살아온 저니까요. 별일 없을 거예요!”

공서련은 그를 한 번 째려본 후 대꾸했다.

“누가 널 걱정한대? 서해성에는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족인 인어족이 산다고 들었어. 난 걔들이 걱정됐을 뿐이라고. 거기 가서 걔들 건드리지 마. 그랬다간 나랑 끝이야!”

그러자 천제현은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아, 여태까지 저 혼자만 아가씨를 좋아했나 보네요. 제가 정말 인어족 아가씨들한테 파렴치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절 그런 놈으로 생각하다니 정말 실망이에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냐. 난 그냥 혹시나 해서!”

조금 미안해진 공서련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천제현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사실 내가 널 얼마나 믿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이에요. 전 이미 상처를 받았는데요.”

천제현은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아가씨가 어떻게 해줘야 제가 괜찮아질까요?”

그러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공서련이 까치발을 들고 천제현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이제 됐지? 하루 종일 날 괴롭힐 궁리만 하나 봐! 언니한테 이를 거야!”

천제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공서련을 끌어안았다.

“그러게 왜 되도 않는 협박을 하고 그래요? 전 아가씨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고요. 화련 아가씨도 어쩌진 못할 걸요.”

“그건 모르지. 언니랑 나는 일심동체라고. 어쩌면 우리 둘 다…….”

“네? 잘 못 들었어요. 뭐라고요?”

공서련은 언니와 함께 천제현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하려다가 천제현이 그 말을 들으면 콧대가 하늘을 찌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콧방귀를 뀌며 그를 한 번 째려본 후 빚쟁이처럼 몰아붙였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나랑 결혼할 준비 중이라고 했잖아? 정말 뭔가 준비라는 걸 하고 있는 거야? 이 몸은 참을성이 많지 않다고!”

천제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온 숲이 진동할 정도로 뻑적지근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요!”

“뭐, 그렇다면야.”

공서련은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녀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오므리고 잠깐 뭔가 생각한 뒤 말했다.

“서해성은 혼돈의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더라. 이번 일을 처리하고 나면 우리 거기서…….”

“문제없죠. 아가씨가 원하는 거라면 서해성이 아니라 이 세상 끝이라도 좋아요.”

천제현에게 약속을 받아낸 공서련은 마음속에 있던 바위 하나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져서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약속한 거다!”

다시 한 번 다짐한 그녀는 등을 돌리고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다.

공서련의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제현의 마음은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두 번의 생을 살았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그였다.

공서련은 그가 만나본 여인들 중 가장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를 편하게 해주는 여자였다. 모든 것을 바쳐 지키고 싶은 여자를 만났다는 것은 더 없는 행운이리라.

천제현은 자신이 한 번 뱉은 말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다.

서해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하자 이번 일을 기필코 성사시키겠다는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기적성에는 산맥들 사이에 위치한 광장이 하나 있다. 광장의 지면은 석판이 깔려 반들반들하고 평평했으며 먼지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주변에는 대형 공장 여러 개가 들어서 있었으며, 대규모의 기적성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대장, 여기야!”

새빨간 머리카락과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한 미녀가 천제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삼각형 모양의 금속 기계가 매달려 있었다. 그 기계는 매우 가볍고 견고해 보였으며, 표면에 각종 주문을 새겨 넣어 강도를 높인 것 같았다. 앞부분은 바늘처럼 뾰족하고 뒷부분은 직사각형이었는데, 마력엔진으로 추정되었다. 최근에 개발된 비행선이었다.

남궁혜는 우렁찬 목소리로 그 기계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주선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어. 선체가 크진 않지만, 성능은 끝내준다고. 기적상회의 최첨단 엔진과 마력진 기술을 탑재했거든. 최고 속도는 마하 10 이상이야. 진령 고수의 반응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지. 천역 경지의 고수라도 공중에서 이 비행선을 가로막지는 못할걸. 어때? 끝내주지?”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렇게 빨리 개발해내다니. 정말 대단해요!”

“이건 테스트용이라서 무기를 탑재하진 않았어. 하지만 설계도에 적혀 있는 표준 탑재 무기에는 중형마력호 1문, 파괴자기관총 사대, 전방위 방어시스템 등이 있어. 엔진, 무기, 방어시스템 할 것 없이 신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업그레이드 될 거야. 기적상회 최고의 전력이 되겠지!”

“훌륭해요!”

천제현은 고생한 모두를 치하했다.

“그럼 제가 먼저 시험해 볼까요?”

남궁혜는 천제현에게 조작방법을 알려줬다.

“조종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수동, 또는 반수동 조작인데 전투기 전용 조작시스템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 인력이 부족해서 엘프족 상회에 의뢰해 둔 상태거든. 그래서 지금은 두 번째 방법인 정신력 조작만 사용 가능해. 물론 비교적 높은 정신력이 필요하지만, 대장이라면 문제없겠지. 안 그래?”

천제현은 조종대에 앉아 문제없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고는 마력진이 잔뜩 새겨진 헬멧을 쓰고 정신력을 가동했다. 그러자 그의 정신력이 순식간에 기내 전체로 퍼져나갔고, 제 몸을 움직이듯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마력진이 가동되면서 엔진이 하늘색 화염을 내뿜었다.

삼각형 모양의 전투기는 그 자리에서 음속 장벽을 만들어내더니 비스듬하게 하늘로 올라가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혜는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전투기는 기적상회가 개발한 걸작이었다. 이번 기회에 천제현에게 테스트해 보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충분히 테스트를 거친 후에는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전투기를 만 대만 갖고 있으면 대륙 어디를 간다 해도 기죽을 일 없을 것이다.

천제현은 조종대 앞에 앉아 정신력으로 전투기를 조종했다. 전투기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가속을 거듭하여 순식간에 마하 10의 속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특별한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엄청난 속도를 내면서도 탑승감이 뛰어났으며 공기와의 마찰로 인한 화염 같은 것도 발생하지 않았다. 표면에 새겨진 방진주문 또한 효과적으로 소음을 줄여주고 있었다.

기적상회의 연구개발팀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군.

지난날 중주에서 설립된 작은 운문이 이제는 대륙 최고의 기술을 갖춘 최첨단 연구기지로 변모해 있었다. 이 대륙 어디를 가도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연구팀은 없으리라.

천제현은 정신력으로 전투기를 조종하며 다양한 형태의 비행을 해보았다. 일부 작은 문제들이 발견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반응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이 전투기는 향후 대륙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수량만 충분하다면 어떤 공군도 제압할 수 있겠지.

광활한 숲 지역을 한동안 비행한 천제현은 시야에 바다와 강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시간 만에 서쪽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서해안은 대륙의 서쪽 끝이다.

서해안에서 망망대해로 나가면 수많은 대륙과 섬들을 만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사실 사람들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해양 생물들은 육지 생물들보다 수가 적지만 더 오래됐고, 더 강력하다는 것 정도가 일반적인 상식일 뿐이었다.

바다는 수많은 문명을 잉태했고, 그 문명들은 대륙의 문명들처럼 서로 대치하거나 자원전을 벌였다. 심지어 제국이 나타난 지역도 있었다. 사실 바다도, 육지도 자원은 충분했기 때문에 상호간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왕래가 줄어들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몇 천 년이 지나면 육지와 바다 세력 간에 몇 번의 중요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전쟁들은 육지 생명체와 해양 생명체의 교류를 촉진하는 한편, 대륙의 구도를 바꿔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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