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4
제644장 천제현의 위력
정면 공격이든, 공중에서 내리찍는 공격이든, 흑응군단은 기적성 군단 진형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기적성 군단은 질서정연하게 포탄과 총으로 흑응군을 소탕했다. 전투라 할 수 있을까? 마치 거대한 금속과 고깃덩어리가 뒤섞여 고기 분쇄기에 갈아지는 것 같았다. 마력포에 의해 죽은 자들은 온전한 시체도 남지 않았다.
숫자로 가늠할 수 있는 전투가 아니다.
실력으로는 흑응군단이 더 강했지만, 그럼에도 기적상회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전쟁무기를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은 철옹성 같은 방패에 막혀 더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나도 강력한 화력을 뽐내는 마력무기의 위력 앞에서 정교한 장비와 훌륭한 마력, 강력한 마수 탈것들 모두 종잇장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강력한 요새.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요새다.
흑응왕은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공격! 공격하라!”
근위부대를 포함한 흑응군단의 남은 병사들이 봇물 터지 듯 달려들었다. 기적성 군대의 방패가 견고하다지만, 아무리 강력한 방패도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이 정도 맹공이라면 방패를 뚫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기적성의 광전사 부대는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마력 기술로 만들어진 방패와 소형 무기들, 마력엔진을 동력으로 하는 전차 등이 그렇다. 모든 병사들은 기적상회의 최신 전쟁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간단한 제어시스템이 갖춰진 기갑 장비로, 휴대용 무기와 통신 설비를 연결할 수 있다. 즉 이 시대 최고 선진화된 정보화 작전부대인 셈이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도 사태를 빨리 파악해 정확하게 공격하고 방어한다. 전혀 빈틈이 없으니 어찌 쉽게 돌파할 수 있겠는가?
십여 척의 전차가 갑자기 발사기를 열었다.
미사일 수백 개가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미사일은 거대하고 화려한 곡선을 그리며 흑응왕 주변부대로 향했다. 일부 미사일은 흑응군단의 공중부대에 요격됐지만, 나머지는 순조롭게 땅에 떨어져 강력한 빛과 열기를 뿜어내며 폭발했다. 공격을 당할 때마다 흑응군단 근위병 수백 명의 생명도 함께 날아갔다.
흑응왕은 이미 낙담한 상태였다. 그의 마력이면 충분히 폭발 중심지를 벗어날 수 있고, 충격 여파도 그를 다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이 온통 불빛과 연기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다!”
“호위병! 호위병!”
흑응왕은 위험한 기운을 알아차리고 바로 큰 소리로 외쳤다. 흑응왕의 친위대가 소리를 듣고 모여들었다. 혼성 7성 정도의 고수가 2천 명이나 되는 친위대니 진령 강자들의 습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연기 사이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흰 도포를 걸친 평범한 차림의 사내였다. 그는 매우 당당하게 목에 힘을 주고 흑응왕이 있는 곳으로 걸어 왔다.
“흑응왕 폐하를 보호하라!”
흑응왕 친위대 한 명이 소리치며 하늘로 뛰어 올랐다. 강하고 용맹스러운 이 매족 전사가 두 날개를 퍼덕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천제현 앞으로 순간이동했다. 날카로운 발톱 10개가 공기를 가르며 열 개의 강력한 마력으로 변해 덮쳐왔다.
이 발톱에 맞으면 아무리 강한 지룡의 몸체라 해도 그 자리에서 찢겨질 것이다.
그러나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이 그의 모든 공격을 무시하며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열 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인간의 몸에 떨어졌지만, 어떤 저항도 없이 그대로 통과하고 말았다.
‘이건, 육신이 찢겨지는 느낌이 아니다.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다!’
친위대장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천제현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마력도, 무공도 시전하지 않은 채 주먹 한 방을 날렸다. 단순하지만 빠른 일격이었다. 친위대장은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
‘그저 한 방 날렸을 뿐인데. 혼성 9성 정점의 친위대장이 이렇게 처절하게 패배하다니!’
그 인간은 어떤 무공도, 마력도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주먹을 한 번 날렸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 기이한 장면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중에는 흑응왕도 포함됐다.
“저놈을 죽여라!”
수백 명의 흑응친위대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칼과 총, 검과 방망이는 물론이고, 얼음과 불, 물과 흙 등 모든 속성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갔다.
천제현은 조무래기들의 공격 따위 안중에도 없이 여유 있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바로 한 가운데서 보호받고 있는 흑응왕이다.
“저놈은 대체 뭐지?”
“왜 공격할 수 없는 거야?”
친위대는 최고의 정예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은 이들은 아무리 강력한 상대를 만나도 머뭇거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런데 느릿느릿 다가오는 천제현 앞에서는 하나씩 동요하며 망설이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유령처럼 공격이 불가능했다. 마력 공격도, 일반 공격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친위대장을 한방에 죽이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그저 환영이라 생각했으리라.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천제현은 벌써 흑응왕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실력이 뛰어난 친위대장 두 명이 좌우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가 한걸음 더 내딛자 검이 그의 몸을 갈랐다. 매서운 검기가 천제현을 덮쳤지만,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고, 도리어 주변에 있던 흑응친위병 5~6명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아무 소용이 없다!’
두 대장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손 하나가 그들의 가슴을 향해 뻗어 나왔다. 옥처럼 반짝이는 그 손은 여인의 손보다 더욱 매끈했고, 근육의 결은 엘프가 조각한 조각상 같았다. 힘과 아름다움이 완벽히 결합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팔은 본 적이 없다.
이것이 두 대장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두 대장의 머릿속에 이 생각이 떠오른 순간, 천제현의 두 눈이 광포한 힘을 뿜으며 붉은 색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완벽했던, 예술가가 조각한 것 같은 팔목의 핏줄이 튀어 나오며, 순수한 힘이 뼈, 근육에서부터 어깨, 팔뚝, 팔목으로 퍼져나가 손바닥에 이르렀다.
펑!
두 대장은 포신에서 쏘아 올린 포탄처럼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십여 명의 흑응친위병과 부딪쳤다. 순수하고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뼈와 살, 갑옷과 무기까지 한데 섞여 곤죽이 되어 버렸다.
천제현의 눈은 다시 평소의 색으로 돌아왔다. 그는 파리 두어 마리를 죽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네다섯 걸음을 더 걸어 흑응왕 앞에 이르렀다. 흑응왕은 그보다 머리 두 개 만큼 더 컸지만, 천제현은 그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태도로 바라봤다.
“네놈들에게 정보를 흘린 놈이 누구지?”
흑응왕은 눈앞의 나이 어린 인간을 바라보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죽여라, 죽여, 죽여라!”
친위대가 불나방이 불에 뛰어들듯 달려들었다. 흑응친위대에는 고수들이 즐비했다. 그들이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천제현의 허공둔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공둔을 무너뜨린다 한들 천제현을 죽일 수 있을까?
천제현의 육신은 이미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성광불멸체와 공간이동능력도 갖고 있다. 수적 우세로 덤벼 봤자 목숨을 버릴 뿐이다. 하지만 그는 조무래기들까지 일일이 상대할 기분이 아니었다. 단번에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정신폭발.
천제현의 정신력이 천지를 뒤덮을 듯 쏟아져 나왔다. 데빌앤트 협곡에서 배운 집단형 정신공격이다. 그의 신식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기 때문에 정신폭발의 위력도 더 강해졌고, 범위도 넓어졌다.
흑응친위대는 머리가 쿵 하고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뇌에 폭탄과 엔진을 쑤셔 넣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생각과 지각이 무너졌다. 그들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딱딱하게 굳어 땅에 쓰러졌다.
‘충격적이다. 이 인간의 힘은 상상 이상이야! 정신력으로 순식간에 모든 흑응친위대를 쓰러뜨리다니!’
천제현은 땅에 쓰러진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흑응왕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동공 깊은 곳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다시 묻겠다. 누가 너희들에게 정보를 흘렸나!”
“그 어떤 것도 장응국 용사를 위협할 순 없다!”
경악에 빠져 있던 흑응왕은 다시 흉악한 얼굴로 외쳤다.
“죽어라!”
흑응왕이 정령의 힘을 펼치자, 두 날개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검고 긴 창이 손에 나타났다. 너무 빨랐다. 천제현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창끝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쾅!
긴 창이 공간장벽을 뚫고 천제현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잠시 멍해져 있던 흑응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공격 불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격력이 부족했을 뿐.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얼굴이 금세 다시 굳어졌다. 창은 천제현의 몸에 조금도 박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동으로 흑응왕이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천제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흑응왕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 감히 나와 대결하겠다는 거냐?”
흑응왕은 조금 전의 공격으로 이 인간의 마력이 진령 8성 수준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아주 기이한 무공을 수련하고 상상 이상의 강력한 방어력을 갖고 있을 뿐, 무적은 절대로 아니다.
흑응왕은 진령 9성 정점의 강자이다. 게다가 매신족의 혈통까지 더해져 같은 수준의 술사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한다. 그런 그가 겨우 이 정도 인간을 두려워 할 리가 없다.
천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 내면 내가 패배한 것으로 하지!”
“허튼 소리! 어디 덤벼 보시지.”
분노에 가득 찬 흑응왕이 덤벼드는 것과 동시에 천제현이 허공에서 손을 흔드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날카로운 공간마력이 몸을 갈랐다. 흑응왕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몸이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무상검!”
흑응왕은 생각도 못했다. 천제현의 비장의 카드는 회피능력도, 방어능력도, 정신능력도 아니었다. 바로 공간속성의 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