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9
제639장 단약
천제현의 눈앞에 놓인 커다란 수정 용기에 서로 다른 색의 두 용액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백금색이고 하나는 흑자색이다. 두 액체는 부글거리며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액체에는 번개처럼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마력이 녹아 있었다.
두 용액은 고대신과 악마의 몸에서 추출한 정수이다.
천제현은 이 두 물체에 담긴 마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단약을 만들려는 화로조차 썬더에게서 사온 것이다. 화로는 최고의 4급 재료로 만들어서 타이탄의 뇌전(雷電)으로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
이번 단약 조제에 사용하는 진법은 십여 개에 이른다. 천제현이 직접 조종하는 가장 핵심인 연성진 외에도 안정, 지속, 강화, 축복류의 진법이 사용된다. 이 진법들은 마석이 마력을 공급하고 알파브레인이 통제한다.
준비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어.”
천제현이 비용은 상관없다는 듯이 진귀한 재료 열 가지를 화로에 마구잡이로 넣었다. 사방에서 마력진이 동시에 가동되면서 주문이 차례로 빛을 뿜기 시작했다. 주문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마력진 도안으로 변했다. 마력진이 잇달아 빛을 방출하며 더 커다란 마력진을 만들었다.
훅! 훅! 훅!
실험실에 강력한 마력 파동이 몰아쳤다. 수많은 주문들이 벌레처럼 꿈틀대며 매우 빠른 속도로 화로의 표면을 덮었다. 여러 보조 진법이 완전히 배치된 후에 천제현은 연성진을 가동했다. 화로 안의 재료들이 정제되기 시작하면서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각종 진귀한 재료들 속의 마력이 연성진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천제현은 진지한 얼굴로 십여 분 동안 단약을 조제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오색선과 한 알을 화로 안에 넣었다.
오색선과가 화로에 들어간 순간 순식간에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났다. 오색구름이 자욱하게 깔리더니 학의 울음소리가 나면서 신령의 힘이 쏟아져 나와 온 실험실을 휘감았다. 단약 화로의 진동이 조금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단단한 재질이 아니었다면 벌써 폭발했을 것이다.
화로 안의 약재들, 특히 3급 중품 선약인 오색선과는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최상품이었다. 모두 주재료가 될 수 있는 이 약재들을 모두 보조약재로 사용하니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겠는가?
천제현은 점점 피곤함을 느꼈다. 화로의 진동이 점점 더 강해졌다. 화로는 우리에 갇힌 고대의 흉수가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이 정도 힘은 진령 9성 정점의 강자가 흥분한 상태와 맞먹는다. 다행히 천제현은 미리 충분한 진을 배치하여 가까스로 이 힘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힘과 직접 충돌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단약 조제 속도가 느려져서 품질이 떨어진다. 천제현이 두 손으로 화염을 일으켰다. 푸른빛 화염은 교룡처럼 쉼 없이 흔들거리는 화로를 거칠게 휘감았다. 화염이 화로의 틈으로 스며들었다. 강력한 유명화에 화로는 얼어붙은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유명화가 선단이 제련될 때 발생하는 힘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천제현이 서둘러 연화진을 가동시켜 화로의 약재들을 제련시켰다. 마침내 화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천제현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화로 덮개가 열렸다. 찬란한 오색 광채가 눈을 찔렀다.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온 연구기지를 가득 메웠다. 교룡들이 허공에서 서로를 휘감으며 울부짖었다. 주위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키는 우렁찬 소리였다.
‘너무 강하다. 이건 선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품질은 중품이지만 상품에 거의 근접한 3급 선단이 탄생했다. 진령 9성 정점의 강자가 복용한다고 해도 정체기를 깨고 마력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 대단한 선단을 화령기에도 못 미친 천제현이 복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력이 2성 이상 급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천제현이 정련하고자 한 것은 선단 한 알이 아니었다.
이 선단은 그에게 반제품에 불과했다.
천제현은 선단을 곧바로 꺼내지 않았다. 유명화로 선단을 감싼 후 다시 화로 깊숙이 넣은 다음 양손을 흔들어 설비를 조종했다. 두 용기에 담긴 신마의 정수가 화로 안으로 쏟아지면서 세 가지 재료가 순식간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화로가 다시 닫혔다.
다시 제련이 시작되었다.
대륙의 제약사들이 천제현의 제약 방법을 본다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이다. 어떤 제약사도 이런 방법으로 단약을 만들지 않는다. 천제현은 먼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절세의 단약을 제련했다. 그런데 이 단약은 완성품이 아니라 반제품에 불과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재료였다.
천제현은 이 단약을 주재료로 삼고 신마 용액을 부재료로 삼아 셋을 섞고 다시 제련했다. 단약으로 단약을 제련하는 이런 파격적인 방법은 기상천외하고 실력이 뛰어난 제약사가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다.
단약 제련의 본질은 이물질 제거, 정수 융합, 성질 변화, 승화, 이렇게 네 과정에 있다. 평범한 약재에서 정수를 추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복잡한 일이다. 그러니 융합과 성질 변화, 승화의 과정은 얼마나 더 복잡하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단약은 복잡한 여러 성분이 이미 안정된 상태이다. 완성된 단약을 분해하고 이를 재료로 삼아 다시 제련하는 방법은 금시초문이다.
천제현은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다.
단약이 쪼개지더니 화로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화로가 세차게 요동치면서 거센 마력이 견고하기 그지없는 화로의 몸체를 뚫고 나왔다. 실험실의 각종 기기들이 잇달아 폭발했다. 뒤를 이어 실험실 벽이 쩍쩍 갈라졌다.
천제현은 성광불멸체의 방어력으로 이 충격파를 힘겹게 막아냈다. 그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화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연성진을 계속 가동했다. 신마의 골수가 화로 안에서 쪼개진 단약과 융합하더니 믿기 힘든 변화가 일어났다. 단약 파편이 녹기 시작하자 신마의 골수가 응고하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세 약재는 신생아의 태반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했다.
화로에서 ‘빠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화로 몸체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천제현은 신식을 통해 화로에 대량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화로에 쌓인 마력이 흩어지게 되면 실험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구기지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반드시 안정시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된다.
천제현의 몸에서 폭발음이 울리며 강력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은 하나가 되어 분신으로 변해 화로를 향해 돌진했다. 분신은 유명화와 천제현의 신식을 전부 응집시켜 화로에 뛰어들었다. 화로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유명화가 화로 틈새로 스며들어 화로와 약재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화로는 화염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천제현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신식으로 화로를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마력으로 연성진을 가동했다. 화로 표면에 계속 가는 금이 생기면서 화로 속 마력이 더 강해졌지만 연화 과정은 점차 느려지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마력 파동이 수차례 온 지하기지로 퍼졌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힘이었다.
이 힘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데스윙 같은 거물도 놀랄 정도였다.
‘성주님이 대체 무슨 끔찍한 실험을 벌이고 있는 걸까? 자칫 실수하거나 실패한다면 지하기지는 완전히 박살 날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성주님 생명도 위태로워진다고.’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천제현의 단약 제련 과정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화로에는 이미 거미줄처럼 금이 자글자글했다. 유명화가 힘겹게 막아주고 있었지만 기력이 거의 다한 것 같았다.
‘안 되겠어. 이러다가는 분명 폭발한다.’
제련 작업이 거의 다 진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단약 모양이 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로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화로 안 약재들의 마력은 너무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쉽사리 단약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단약이 되지 못한 상태로 화로를 열면 성분이 전부 흩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약재들은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단약으로 응고되는 이 단계에서 실패란 말인가?
‘여기서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돼.’
그러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약이 될 때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어쩌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니 바로 결정해야 했다.
천제현은 마음을 정하고 유명화를 일으켜 전부 화로 속으로 침투시켰다. 거센 유명화는 화로 속의 약물과 결합하여 타들어갔다. 천제현은 화로 속의 약재와 정수를 연소시켜 유명화와 결합시켰다.
“바로 지금이다!”
화로가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기 시작했다. 사방에 엄청난 충격파가 몰아쳤다. 실험실의 기기들은 전부 바스라지고, 특수한 자재와 부적으로 폭발을 견디게 만든 벽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쾅!
온 실험실이 순식간에 박살 났다.
화로가 폭발했지만 화로 속 약재는 유명화에 휩싸여 날아가지 않았다. 백금색과 흑자색이 뒤섞인 기운이 주위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유명화가 거품처럼 이 기운을 감싸고 있었다.
천제현이 쏜살같이 날아와 양팔을 벌리고 거품 같은 화염의 중앙으로 돌진했다. 천제현의 정령은 완전히 방출된 상태였고, 그의 눈동자는 칠흑처럼 까맣게 변해 있었다. 천제현의 몸은 블랙홀처럼 강한 인력으로 주위의 마력을 체내로 끌어당겼다.
순간 바다 같이 거대한 힘이 몸 안으로 밀려들었다.
천제현은 단약을 응고시키지 못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방법으로 모든 약물을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