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7
제637장 규칙
며칠 후.
공화련의 사무실은 몇 차례의 확장 끝에 전 대륙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정보화 전략 센터로 거듭났다. 그녀는 1500미터에 달하는 사무실에서 기적성 전체와 기적상회의 상황을 파악하여 즉시 인력을 배치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공서련은 공화련 곁에서 최신 생산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다. 현재 대주국과 대하국 전역을 넘어 북융국의 일부 지역까지 기적성 공장이 들어섰다. 숲에도 아주 완벽한 공업단지가 세워졌다. 그중 수십 곳은 엘프족과 함께 운영하는 지능공장이다.
공서련은 기적성의 생산부장으로 공장들의 생산 진도와 제품 품질, 원료 배분, 기술 지원 등을 전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알파브레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만만치 않게 부담이 되는 업무다.
“정신 연구소에서 최근 큰 성과가 있었어.”
공화련이 동생에게 말했다.
“정신탑 건설 속도를 높여야 해. 정신기술은 우리 기적상회에 엄청난 변혁을 일으킬 거야.”
공서련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신기술은 정말 끝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련장과 경기장 모두 이 기술을 토대로 만들었다. 정신기술에 큰 성과가 있다니 정말 기대되는 일이었다. 공서련이 가슴을 치며 큰소리쳤다.
“언니, 걱정 마. 내가 직접 관리할게.”
“그래, 네가 있어서 마음이 놓여.”
기적연맹에서 공화련의 지위는 날로 높아졌다. 비비안뿐만 아니라 남궁혜, 델로리스 및 다른 일원들도 모두 그녀를 어려워하며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천제현 외에 공서련뿐이라는 사실에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기적상회라는 배를 몰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했다.
“서련아, 요새 천제현과는 진전이 좀 있니?”
공서련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얼굴을 붉혔다.
“흥, 똑같아. 지하세계에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반나절 곁에 있더니 또 무슨 일이 있는지 폐관에 들어갔어.”
공화련은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녀석이 원래 그런 거 몰랐어?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고 사실 정말 진지하고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잖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뭔가 큰 꿈이 있을 거야.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꽉 붙잡아야 해.”
공서련이 공화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세상에서 천제현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언니 같아.”
공화련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천제현이 적당한 때에 혼례를 올릴 생각이라고 그랬어.”
공서련은 누가 들을까 봐 언니에게 바싹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언니 나와 같이 그 녀석과 결혼하자. 우리는 한 몸이나 다름없잖아. 언니와 떨어질 수 없어.”
“같이 그 녀석에게 시집가자고? 말도 안 돼! 난 절대 그리 못 해!”
공화련이 성질을 부리며 간만에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
“그 녀석이 아무것도 안 하는데 나까지 덤으로 얹어주자는 거야? 그 녀석만 땡잡는 거잖아!”
공서련이 소리쳤다.
“언니 얼굴 빨개졌어!”
“이 계집애, 언니한테 혼 좀 나야겠구나!”
자매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기적성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차갑고 도도한 부성주에게 이런 아이같이 귀여운 면이 있나 하고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뜰 것이다.
이때 갑자기 남궁혜가 들어왔다.
“공화련 언니, 엘프왕이 도착했어요. 이제 시작할까요?”
공화련은 그제야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곧장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었다.
“네 분을 주성 회의실로 모시세요. 10분 후에 바로 갈게요.”
혼돈의 숲은 점점 질서가 잡혀갔다.
사대 세력이 할거하던 판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넘치는 힘을 종족 간의 싸움이 아니라 숲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 써야 한다. 예전에는 그럴 만한 힘과 여건이 없었지만 이제 기적상회가 등장했다. 혼돈의 숲은 처음으로 대변혁을 맞이하게 될 때가 된 것이다.
이번 회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대 세력 간의 분열과 반목은 종식될 것이다.
균형 있고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판도가 시작될 것이다.
이번 회의를 성사시킨 건 기적상회이다. 그러니 기적상회는 반드시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 성주 천제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네간에서 돌아온 후 천제현은 뭘 연구하는지 두문불출이었다.
천제현이 없었지만 공화련을 필두로 공서련, 남궁혜, 델로리스 등 중요한 고위 간부들이 모두 참석했다.
“숲의 발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와주신 네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화련은 평상시처럼 노련한 모습으로 간단히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데이터를 수집해 보니 혼돈의 숲에는 총 300여 개의 성이 있습니다. 성의 인구는 혼돈의 숲 총인구의 25% 정도로 대략 6억 가까이 됩니다.”
공화련은 여기까지 말을 마친 후 허공에 걸린 거울에 표를 띄웠다. 부채꼴 모양의 표에는 혼돈의 숲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영원의 숲과 황야고원, 타이탄산맥, 용의 고개의 통치를 직접 받는 성은 모두 합해 100곳이 안 됩니다. 성을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용의 영주께서 통치하는 성은 42곳에 불과하죠. 즉 대략 2/3에 달하는 성이 독자적인 세력이거나 다른 세력의 통치를 받고 있거나 아니면 권력 투쟁 중입니다.”
근거가 있으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혼돈의 숲은 내부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력 구조로 혼돈에 빠졌다. 사대 세력은 숲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들은 숲 전체의 절반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세력은 사대 세력 틈에서 완충 역할을 하거나 이들의 세력 범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또 일부는 사대 세력이 알 수 없게 지하에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까닭에 숲에는 종종 변고가 발생한다. 숲은 여러 세력으로 분리되어 강도가 판을 치면서 무질서한 혼돈에 빠졌다.
공화련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원과 인구, 실력, 기타 분야로 따지면 혼돈의 숲은 제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늘 기적성을 중심으로 사대 세력이 연합하여 이점을 바꿔야 해요.”
“부성주의 말이 맞소.”
공화련의 발표를 듣던 랜스로드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허나 혼돈의 숲은 오랫동안 이런 상태였소. 우리 연맹이 만 년 넘게 이어온 상태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오.”
“맞소. 혼돈의 숲에는 백여 종족이 살고 있지. 모두 다른 생활습관과 신앙을 가지고 있소. 종족 간이나 마을, 부족, 성 사이에는 갈등과 원한이 가득하오. 이걸 풀려면 한참이 걸릴 거요.”
용의 영주는 이 문제에 가장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동족은 수가 매우 적다. 그러나 그는 가장 많은 성을 휘하에 두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이족의 성이라 수시로 반란이 일어나는 탓에 그는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전쟁으로 숲을 청소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그러나 10억이 넘는 인구를 쓸어버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오? 숲이 너무 커서 빠져나가는 놈들이 많을 거요. 그렇게 되면 숲은 수백 년 동안 더 시끄럽겠지.”
썬더와 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데스윙과 같은 생각이었다.
혼돈의 숲은 제국이 될 만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영원히 제국이 될 수 없다.
단지 실타래처럼 엉킨 세력 구도 때문만은 아니다. 사대 세력끼리의 관계도 매우 복잡하다. 이들은 이익 앞에서 손을 잡을 수 있지만 완전히 하나로 융합할 수는 없다.
엘프족이 어떻게 마수령과 하나가 된단 말인가?
용의 고개의 리치가 어떻게 생명을 섬기는 엔트족과 함께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공화련은 이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숲은 통일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 숲은 도약할 수 없다. 이건 공화련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자신이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방해 요소가 수없이 많지만 밀고나갈 수밖에 없다.
“혼돈의 숲에서 기적상회의 통신과 물류, 전송 같은 기술을 최대로 활용하려면 반드시 통일되고 단합된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공화련이 말을 이어나갔다.
“네 분께서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네요. 기적성은 제국 같이 중앙집권적인 방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각 부족의 이익과 풍속을 지키는 선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 공동의 이해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최대한 전쟁과 분쟁을 막자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숲을 더 잘 개발할 수 있어요.”
사대 거물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통일된 통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합의점을 찾고자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이미 모두의 이익이 하나로 묶여 있는 상황이다. 혼돈의 숲이 안정된다면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에 누구도 이 제안에 어깃장을 놓지 않았다.
데스윙이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우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화련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규칙이 없으면 큰일을 해내기 어려운 법이지요. 오늘 회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연맹의 기본 규칙을 상의하여 통일된 법률을 세우는 겁니다. 앞으로 법의 제약을 받고 법에 의거하여 합의점을 도출하고 우리 다섯 세력의 이익과 지위를 확정하는 거죠.”
“합의점을 도출하여 법으로 모두의 행동을 규제하겠다고?”
그렇다. 공화련은 오늘 규칙을 세우기 위해 오늘 사대 세력의 지도자를 불러 회의를 연 것이다.
규칙이 없는 곳은 질서가 없고 영원히 큰일을 해낼 수 없다! 공화련은 기적성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사대 세력의 지도자라고 해도 규칙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공화련에게는 이 일을 밀고 나갈 힘이 충분하다.
기적성에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
랜스로드가 가장 먼저 입장을 밝혔다.
“난 찬성이네!”
원래 민주적인 법치로 유명한 엘프족은 기적성의 이번 결정을 크게 반기며 쌍수를 들고 지지할 것이다. 영원의 숲이 지지하는데 다른 세 곳에서 반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