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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34화 (634/729)

# 634

제634장 아도의 기연

동부의 왕은 2.5미터에 달하는 키에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했다. 전체적인 윤곽은 인간과 흡사했지만 팔이 네 개였고, 악마의 꼬리와 뿔은 없었으며, 심지어 입술, 코, 귀까지도 없었다. 목구멍은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 진동을 통해 소리를 내고 말을 할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이라곤 없었고, 칠흑같이 검은 피부에 금속광택이 났다.

마치 사람의 형태를 띤 검은 강철 조각상 같았다.

이 불운한 놈은 위세를 떨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목숨이 경각에 달린 포로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부의 왕은 말할 힘도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전신은 속박 주문과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메이나와 영이 좌우로 압박하는 상태에서 그는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그의 모습은 한심한 데다 꼴불견이 따로 없었으니, 어떻게 보아도 천역 경지까지 힘들게 수련한 일류 고수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이 악마는 아까 전만 해도 데스윙에게 거의 초주검 될 정도로 중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거의 다 회복한 건지? 악마족에게는 이런 재생 능력이 없는데.’

천제현이 추측하기도 귀찮은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놈은 어떤 종족이냐? 이름이 뭐지?”

“저는 흑마족입니다.”

동부의 왕이 서둘러 대답했다.

“전체 이름은 아도레이먼드카이턴피거아몬드…….”

악마족이나 암흑족 이름은 일반적으로 너무 길고 형편없다. 메이나와 영도 전체 이름이 수십 자나 되었다. 보통 악마족이나 암흑족을 부를 때는 약칭으로 불렀는데, 대개 앞에 있는 두세 글자만 취하면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관례로 그의 이름도 아도라 불렸다.

“흑마족? 이런 빌어먹을! 네놈 눈에 내가 바보로 보이나 보지?”

흑마족에 대해선 천제현도 잘 알고 있었다. 흑마족은 하급 악마로 그린고블린과 비슷한 수준인데, 천역 경지까지 수련했다고? 게다가 아도에게선 흑마족의 특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금속광택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한 데다 갈라진 선들도 보였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이놈이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감히 거짓말을 늘어놓다니. 내가 가장 경멸하는 놈이 바로 거짓말하는 놈이다. 하는 수 없군. 본때를 보여줘야지. 저놈의 사지를 모조리 절단해라!”

메이나가 형을 집행하려던 찰나였다.

“아, 아니, 잠깐, 잠깐만요!”

아도가 놀란 마음에 창백해진 얼굴로, 죽기 살기로 변론하기 시작했다.

“정말 흑마족이 맞습니다. 그저 우연히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지요.”

천제현이 손을 들어 메이나를 저지하곤, 이어서 물었다.

“무슨 우연?”

아도는 거짓 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사실대로 고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도는 일개 하급 악마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평소처럼 산에서 약초를 찾던 중, 실수로 지하 유적으로 떨어졌고,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십여 일이 지나 있었다.

아도는 허기와 갈증에 헤메던 중 지하궁에 널려 있는 선홍색 영지를 발견했고, 이 영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다음은?”

“그게 다예요!”

아도는 잔뜩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그것들을 먹은 후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이미 20년이나 지났지 뭡니까. 그 사이 제 몸이 이렇게 변했고 힘도 100배 이상 강해졌어요. 그 후, 반년 정도 수련을 했고, 지하궁에 기록된 비술들을 익혀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지요.”

“신비한 영약을 먹었다? 한숨 잤는데 20년이 지났다고? 깨어나 보니 몸이 변하고 100배가 넘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이 무슨 헛소린가.

“악마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제 말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아도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지하궁을 떠난 후에야 제가 천역 1성에 도달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때 그 염마성의 놈들을 만났고요. 제가 20년 전에 네간 성주들을 만났다면, 길가에 벌레와 다름없이 언제든 밟혀 죽었을 것입니다요. 허나 뜻밖에도 그 네간의 성주들이 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저를 동부의 왕 자리에 추대해 주었고요. 그러고는 암흑성을 공격하여 저의 도시로 삼을 생각에 그만…….”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군.

아도의 말에 거짓이 있든 없든, 그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났을 가능성이 컸다. 한 사람의 체질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약은 전설로 내려오는 신품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도가 이 영약을 생으로 먹고도 죽지 않은 것만도 엄청난 행운인데, 체질과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다니, 운을 타고난 것이 분명했다.

네간 성주들이 이번 일을 저지른 연유도 충분히 설명되었다.

이놈은 천역의 마력을 지니긴 했지만, 흑마족 수준의 사고력에 머물러 있고, 둔한 머리 회전에 시야가 좁은 데다 무력만 있을 뿐 세력이 없었다.

반면에 그가 가진 천역 고수의 신분은 굉장히 쓸모가 많았다.

사대 성주가 그를 앞세울 수 있다면, 모든 지역의 자원을 마음껏 독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불복하는 부족과 세력은 바로 귀순할 것이라, 이때부터 공물을 바치는 신하로서 감히 불경한 짓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네간 도시들에 엄청난 이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뜬금없지만, 아도가 동부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천역 강자가 옆에 있으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어 암흑성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이 전쟁이 벌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함께 작용했다.

첫째는 위력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암흑성은 동부지역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네간 도시였다. 동부 왕의 통솔 하에 이 암흑성을 멸망시키면, 수많은 세력을 공격하지 않고도 항복을 받아내 신하로 삼고 공물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 전쟁은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아도를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도는 천역 경지에 오른 고수이나 그 자신은 아무런 기반이 없는 존재였다. 그가 겪은 기막힌 우연이 그의 힘을 증폭시켜 주었지만, 지혜까지는 주지 않았다. 그러니 아도를 암흑성에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사대 성주는 자신의 세력이 위협받는 걸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될 터였다.

셋째는 암흑성의 쇠락이었다. 암흑성 성주는 중상을 입어 일어나지 못했고, 도시는 이미 쇠락한 상태였다. 따라서 지금 암흑성을 공략하면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암흑성은 수년간 이어온 네간 도시로서, 보유한 자원 역시 사대 성주의 군침을 돌게 할 만큼 풍족했다.

각자가 필요한 것을 취한다는 전제 하에 이번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천제현이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물었다.

“지하궁은 어디에 있느냐?”

아도는 자신의 명줄이 걸려 있어 사실을 숨기거나 속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구체적인 위치를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날 속이지 않은 건 칭찬할 만하군. 우선 저놈을 가두세요!”

천제현은 메이나에게 명령한 후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데리고 가 찾아보세요. 특별한 것이 발견되면 즉시 알려 주시고요.”

천제현은 아도를 변화시켰다던 그곳이 궁금했다.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보약이라니. 그렇다면 전설로 내려오는 신품일 것이다.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천제현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 하지.

이번에 암흑성은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으나 거두어들인 수확은 실로 엄청났다. 염마성, 음영성, 흑금성, 암수성 등 네간 도시 네 곳이 암흑성의 관할 도시가 되었다. 이 다섯 도시의 세력은 동부지역 절반의 자원을 독점할 정도이니 기적상회와 혼돈의 숲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게 분명했다.

메이나는 암흑성 성주로 임명되었고, 다크엘프 영은 암흑성 부성주가 되었다.

이번 일에 숲의 4인이 힘을 써주었으니, 천제현도 그들을 푸대접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사대 도시를 각각 영원의 숲, 용의 고개, 타이탄 산맥, 황야고원의 네간 경유지로 삼았다. 사대 거물은 네간도시를 직접 다스릴 권한은 없지만, 이 4개 도시를 기반으로 네간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얻을 수는 있었다.

“아버지, 천제현, 나 왔어요!”

비비안이 사람 열댓 명을 거느리고 도착했다. 그녀의 실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미 진령 6성 정점의 공간 고수로 성장해 있었다.

“이곳이 네간계군요! 정말 신기해요!”

랜스로드는 잠시 당황했다.

“어떻게 왔느냐?”

“놀라지 마세요. 제가 불렀습니다.”

천제현이 비비안을 보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 사람들은 기적상회가 거금을 들여 양성한 공간 재능자입니다. 현재는 비비안을 필두로 공간 엔지니어 조직을 만들어 공간광산 건설에 참여토록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공간 균열이 있는 지역에 외부 세계와 동일한 공간통로를 만드는 것이지요.”

암흑성과 사대 도시를 비롯하여 폭군 숙영지까지 천제현이 직접 관리하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천제현은 외부인인데다 지역마다 그 지역 나름의 규칙이 있게 마련이라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고유의 질서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천제현도 지하세계에서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이는 천제현 또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적상회가 네간에 본부를 세운다면?

천제현은 공간광산에 형성된 아공간이 최적의 지점이라 여겼다.

이곳은 기적상회에 진귀한 자원을 공급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공간을 이용하여 아공간 요새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비안이 거느린 공간 엔지니어들은 공간균열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난기류 중간에 공간통로를 개통하는 매우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 이 길은 기적상회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곳이 공격을 받게 될 경우, 공간통로만 폐쇄하면 공간균열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의 난기류가 침입자를 모조리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네간의 공간요새 건설작업 계획도 마무리 되었다.

메이나 역시 암흑성 및 사대 부속도시를 일차적으로 통합했다.

이로써, 천제현의 세력이 네간계까지 뻗치게 되었다.

메이나가 의견을 구했다.

“지하 감옥에 가둔 놈은 이제 처리할까요?”

“왜 처리하려는 겁니까?”

천제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 머리는 나쁘지만, 동부 왕의 신분은 여전히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게다가 네간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도 천역 강자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를 전면에 내세우면, 중소세력을 장악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그놈의 신체도 특수하니 분명 다른 곳에서 쓸모가 있을 거예요.”

메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메이나의 생각으로는 그놈을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훨씬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으니, 그는 동부지역, 심지어 네간계 전체를 통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천제현은 그가 후환이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자기 곁에는 랜스로드 등 엄청난 인물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때 영이 돌아왔다.

“아도가 제공한 정보대로 주변을 탐색한 결과, 지하 유적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좋아요. 잘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봐야겠어요!”

천제현이 랜스로드 등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여러분을 또 귀찮게 해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귀찮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이 네 사람이라고 아도가 겪은 기막힌 우연에 관해 관심이 없겠는가? 거기서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지도 모르는데! 이들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흔쾌히 따라나서기로 결정했고, 천제현은 이들을 대동하고 지하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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