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33화 (633/729)

# 633

제633장 시간의 모래시계

천역의 강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었다.

천역 경지는 수련만 해서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약을 먹고 돈을 쏟아 붓는다고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천역 강자는 종족마다 지닌 한계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하급 종족과 고급 종족을 가르는 지표와도 같다.

예컨대, 데스윙, 썬더, 클로 등은 모두 순수한 고급 종족의 혈통을 지녔기에 굳이 수련을 하지 않아도 성년이 되면 천역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종족 중 비교적 낮은 등급에 속한다. 인간 종족은 그 자체로 힘을 생산할 수 없어 오로지 노력을 통해서만 마력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도 진령 경지까지 수련하면, 천장에 가로 막힌 것처럼 더는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없다.

재능이 아무리 출중해도 단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용없다.

왜 그런 것일까? 이는 종족이 지닌 한계가 성장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천역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태생적인 속박을 깨부수어야 하는데,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전국에서도 천역 강자는 1~2명에 불과하다.

제국 안에서 천역 강자는 최상급 고수에 속하므로 천역 경지에 이른 강자는 적수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일대를 호령하는 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부의 왕은 거룡과 싸워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였기에 데스윙 니드호그를 공격한 것이다.

‘거룡이 뭐 어쨌다고? 용이라도 겨뤄봐야 알지! 설사 이기지 못하더라도 물러나면 된다.’

동부의 왕은 싸우지 않고 도망간다 해도 그리 체면 상할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동부의 왕이 백색의 불빛에 휩싸였다. 이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닌 천역 경지에 오른 고수가 강력한 힘으로 형성한 영역이었다. 영역 안에서 공간의 속박은 줄어들어 방출할 수 있는 힘도 크게 증폭할 수 있었다. 이것은 천역 경지에 오르지 못한 술사는 절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썬더는 어째서 백리 밖에서 암흑성을 폭발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썬더가 천역 6성의 초고수이기 때문이다.

뇌우는 대단히 안정적인 영역을 형성한다. 타이탄의 번개가 떨어질 때 그 주변은 썬더의 힘으로 영역이 형성된다. 이로써 아무리 먼 거리를 비행해도 힘이 줄어들지 않고, 심지어 목표를 명중시킬 때까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천역 고수가 가진 힘이다.

천역 이하의 술사는 결코 알 수 없는 힘.

동부의 왕은 천역 1~2성으로 영역 형성이 안정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힘은 산봉우리 하나는 족히 무너뜨릴 정도로 강했다. 그는 복잡하고 심오한 궁극의 무공을 수련하지 않으므로, 그에게 있는 거라곤 폭발적인 힘과 만물을 순식간에 산산조각낼 수 있는 가공할 기운뿐이었다.

쾅.

동부의 왕이 묵직한 주먹을 내리쳤다.

이 주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응집해 있어 주변 공간이 이 거대한 압력에 의해 뒤틀렸다. 이는 결국 요동치는 공간 물결로 변하더니 파죽지세로 니드호그를 내리쳤다. 이때 순간적으로 폭발한 거대한 마력 파동 때문에 흑룡의 비늘이 그 자리에서 일부 떨어져 나간 게 고작인 데 반해, 동부의 왕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저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데스윙 주변에 죽음의 검은 빛이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이는 데스윙이 시전한 영역의 힘이었다. 그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이렇게 약해서야! 내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겠군!”

동부의 왕은 족히 수십 미터나 튕겨 나간 후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생명체와 물체가 당해내지 못하는 공격인데, 흑룡은 고작 비늘 몇 개만 떨어졌을 뿐이라니.

이 흑룡이 자기보다 강할 것으로 짐작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백색의 불빛이 다시 떠올랐다.

동부의 왕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나 달아나 버렸다.

“도망가려고? 갈 수 있다면 가보시든지.”

데스윙이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성을 내지르자, 그의 거대한 몸집이 검은 그림자로 변해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의 몸집은 대단히 거대했으나 속력은 더욱 빨라져 금세 동부의 왕을 따라잡아 그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렸다.

소리도, 파동도, 빛도 없었다.

동부의 왕은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형체가 없는 강력하고 거대한 마력이 아래로 쏟아지더니 대지 전체가 움푹 들어가 버렸다. 동부의 왕을 감싸던 백색 불빛이 빠르게 사라졌고, 온몸의 뼈가 일제히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최소한 절반 이상의 뼈가 완전히 부러지고, 곳곳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는 천역 강자가 영역의 힘을 직접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데스윙 니드호그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천역 경지의 고수라 하더라도 저 세상 보내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데스윙이 동부의 왕의 명줄을 끊어 버리려 할 때였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동부의 왕으로 군림한 자가 땅에 무릎을 꿇고는 목숨을 구걸했다.

이를 보던 사람들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역 경지의 고수는 대륙을 통틀어도 그 수가 얼마 없어 대단히 존귀한 존재였다. 그런 자가 강자의 존엄도 내팽개친 채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애걸복걸하는 꼴이라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천제현이 말을 꺼냈다.

“데스윙 나으리, 이자는 이제 반항할 능력도 없습니다. 우선 살려주는 게 어떨까요?”

데스윙이 힘을 거두어들이자 몸집이 점차 줄어들더니 키가 3미터에 달하는 용족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번 싸움도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 짜릿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천제현이 메이나에게 손짓했다.

“메이나, 이놈을 잠시만 맡아 주세요. 제가 조금 있다가 직접 심문할게요!”

메이나가 황급히 공수하고는 답했다.

“네!”

이들 앞에서 메이나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깊은 전율과 무기력함만 남았다.

‘천제현은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을 달고 온 거지? 이 괴물들은 하나같이 네간을 통치할 만한 능력을 가진 고수들인데, 어째서 천제현의 말을 이렇게 잘 듣는 거야? 이 사람이 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동부의 왕은 초주검이 된 상태로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천제현은 엉망진창이 된 암흑성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좋은 도시 하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네요. 여길 수리하는 데 고생 꽤나 하겠어요.”

“굳이 나설 필요 없다. 내가 하지.”

줄곧 가만히 있던 엘프왕 랜스로드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천제현도 엘프왕이 뭘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엘프왕이 숲의 지팡이를 땅에 꽂고,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형체는 없지만 어느 공간에서나 느낄 수 있는 힘이 홍수처럼 빠르게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구역이 순식간에 랜스로드의 힘으로 덮여 버렸다.

성역.

데스윙, 썬더, 클로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랜스로드는 영원의 숲에서 왕위에 오른 지 100년도 안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와 겨뤄본 적이 없었으므로 다들 랜스로드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만 보면, 최소한 그의 마력은 데스윙 등 3인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그는 최소 천역 7성의 마력을 지녔으니 역대 엘프족 왕 가운데 가장 걸출한 인물로 꼽힐 만 했다.

쾅!

랜스로드의 정령이 소환되었다.

그의 정령은 상당히 기괴한 모습이었다. 매끄럽고 투명한 모래시계의 병처럼 표면에는 온통 정교하고 정밀한 주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천지의 법칙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방팔방에서 옅은 은색 광채가 대량으로 방출되었고, 이 광채가 전부 모래시계 병 속으로 응집되더니 은색 모래로 변하였다.

은색 모래가 아래로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어떤 기이한 마력이 구역 전체를 감싸더니 암흑성 곳곳에서 활활 타오르던 용의 화염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파괴된 건축물과 썬더의 일격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도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기묘한 힘 안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복원되었다.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물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기껏해야 5분 정도가 흘렀을까. 암흑성 전체가 망가지기 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동부의 왕을 결박하던 메이나가 엘프왕의 기묘한 힘을 보자 다시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아래턱을 문지르는 천제현의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했다.

“시간이군요. 시간 정령. 역시 엘프왕의 속은 정말 모르겠어요!”

랜스로드는 아직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숲의 지팡이만으로도 대부분의 강자와 충분히 겨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프왕의 속성이 공간속성보다도 희귀한 시간일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엘프왕의 힘을 본 사람들은 모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시간의 모래시계.

이것이 바로 엘프왕의 정령이었다.

랜스로드는 지나간 시간을 수집하여 이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기에 방금 전투에서 파괴된 건축물을 전부 복원할 수 있었다. 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월등한 힘 가운데 하나이다. 랜스로드는 시간 재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었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데스윙, 썬더, 클로 등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역시 랜스로드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군.’

엘프족은 종족의 세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그의 마력이 데스윙 등보다 조금 높더라도 완전히 능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숲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고,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까지 있으니 엘프왕의 실력은 이 삼대 거물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엘프왕과 정면충돌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군.’

무너진 암흑성이 완전히 복원된 후, 숲의 4인은 압도적인 힘과 기세로 암흑성을 손쉽게 되찾아주었다. 게다가 암흑성을 중심으로 염마성, 음영성, 흑금성, 암수성은 성주와 부성주 모두 고인이 된 관계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성 주민과 군인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댔다.

5개 도시가 모두 손에 들어왔다.

네간의 동부지역 절반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천제현은 암흑성을 정리한 후 사대 거물과 메이나 등을 대동하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동부의 왕은 이미 압송된 상태였다. 그의 부상은 가볍지 않아 보였으나 그 역시 평범한 종족이 아니었기에 생명력이 상당히 질겼다. 따라서 목숨에 위협이 될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동부의 왕은 무릎을 꿇은 채 연신 머리를 조아렸고, 그런 그의 모습에 데스윙 등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명색이 위풍당당한 천역의 강자란 자가 기개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니. 정말 보기가 민망할 정도군.

천제현은 느긋한 태도를 유지했다.

“너 하는 거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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