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32화 (632/729)

# 632

제632장 천역의 경지

무력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상.

네간은 암흑족과 악마족이 대거 밀집한 지역으로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하고, 힘 있는 강자만이 군림하는 곳이다! 이 네 명은 지체 높은 성주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 강자로서, 이 정도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 도시를 통치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추앙 받는 대단한 인물들이 병든 닭 마냥 순식간에 무너지다니.

가공할 공격! 실로 드높은 사기를 한순간에 괴멸시킬 수 있는 공격이었다.

클로는 황야고원의 패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진 베헤모스, 그것도 황금 베헤모스였다. 종족의 특성상 타고난 기량 덕분에 자신보다 몇 단계 높은 단계의 술사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클로의 마력 자체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진령 9성 정점의 마력을 지닌 고수가 떼거지로 몰려온다고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클로는 아예 어린애 장난처럼 느낄 것이다.

“쾅!”

사대성 군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방금보다 열배는 강한 폭발음이 들렸다. 수백 리에 달하는 황야를 뒤덮은 가공할 위력 앞에서 모든 생명체는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잔혹한 살기가 천만년 동안 짓눌려 있던 화산처럼 순식간에 폭발했다.

클로가 모든 비술의 봉인을 해제하자 머리만 족히 2~30장(丈)에 달하는 거대 생물로 변하였다. 이 거대 생물은 고릴라처럼 보이긴 했으나 그보다 훨씬 우람하고 흉악했다. 암금색으로 도금한 듯한 피부와 털을 가졌고, 선홍빛 손톱은 광폭한 힘을 담고 있었다.

이것이 베헤모스의 진짜 모습이다.

베헤모스가 우람한 손을 들어 올리자 선홍색 손톱 주변으로 격동하는 마력 폭풍이 일었고, 이내 한 데 모이기 시작했다. 핏빛의 광폭한 마력이 쏟아져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력 회오리바람을 형성했다.

“악!”

“괴물이다!”

“괴물!”

핏빛의 회오리바람이 스쳐 지나간 곳은 지형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고, 사람이든 바위든 쓸고 지나가면, 모두 고속 마력 기류에 빨려 들어가 가루가 되고 말았다.

애초에 황금 베헤모스의 힘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당해낼 수 없었다.

이 네간 생명체들이 어디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존재를 본 적이 있었겠는가? 모두 겁에 질려 핏기마저 사라졌다. 수적으로는 절대적 우세를 차지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오로지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클로의 표정에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네간 생물체는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다. 10만 대군이면 그 자체로도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힘껏 싸운다면 클로 역시 어느 정도는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공격조차 못하고 도망칠 궁리부터 했다. 클로는 전투와 학살이 주는 희열을 누릴 수 없게 되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클로 나으리,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천제현이 말했다.

“저런 졸개들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클로가 경멸의 어조로 말했다.

“저 쓸모없는 것들을 보니 암흑성 수준도 알 만하군. 고작 이런 작고 약한 도시 하나 가지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냐. 네가 우릴 얕본 게로군!”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시고요. 여러분은 지금 네간에 여행 온 거라고요. 어서 가시죠!”

천제현이 메이나, 영에게 눈짓했다.

“지금 병사를 구하는 게 어떨까요?”

두 사람은 이미 사고능력이라도 잃은 듯 했다. 이 황금 베헤모스는 사대 거물 중 상대적으로 약한 인물인데 그런 그가 이토록 놀랄 만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면, 나머지 세 사람은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순간 용의 포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도망치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군대는 천지를 뒤덮는 용의 위력 앞에서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곧장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데스윙이 신체봉인을 해제하고, 날개를 크게 휘저으며 상공으로 날아올라 길이가 50미터에 달하는 거룡으로 변신하였다. 전신을 뒤덮은 검은 비늘 하나하나에 강력한 마력이 흐르고 파괴적인 암흑의 불꽃이 온몸을 휘감았다.

“용이다!”

“용이야!”

네간에서 베헤모스는 몰라도 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지상이든 지하든 용족은 매우 유명했기 때문이다. 거룡은 용족 중에서도 혈통이 가장 순수한 고등 용족이며, 특히나 방금 눈앞에 나타난 흑룡은 이미 성년이 된 거룡으로 무수한 세월을 지내온 존재였다.

흑룡의 위력과 실력은 베헤모스보다 3할 정도가 높았다. 그런 흑룡이 커다란 눈에 가늘고 긴 눈동자로 현장을 훑고 지나가자 네간 전사의 투지는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이 오만한 표정의 용의 영주도 저항할 의지라곤 전혀 없는 이런 무능한 자들은 죽일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그가 크고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흑성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

천제현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이요.”

천제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압도적인 힘이 장내를 짓눌렀다. 네간의 하늘이 처음으로 뇌운에 뒤덮였고, 무수히 많은 번개가 거칠고 맹렬하게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타이탄족 썬더 역시 자신의 봉인을 풀고 순식간에 백 미터 높이의 거인으로 변했다.

타이탄은 베헤모스와 거룡에 필적할 만한 고대 종족이었다.

타이탄족은 단단한 금속 피부에, 마그마로 된 근육, 번개로 된 피, 수정으로 된 뼈를 가진 종족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이 종족은 대륙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자 가장 탁월한 장인이기도 하다.

“타이탄의 썬더!”

썬더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뇌운의 마력을 양손에 집중시키자 삽시간에 천둥 번개와 폭풍이 몰려 왔다. 썬더가 양손으로 천둥과 번개를 문지르니 100미터 높이의 거대한 번개 화살로 변하였다.

“가라!”

썬더가 암흑성 방향으로 손을 내젓자 번개 화살이 날카로운 굉음을 내고 발사되었다. 번개 화살이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대지에 비추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이건…….”

메이나 등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이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암흑성을 향해 공격할 수 있다니?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쿵쿵쿵!

먼 곳에서 진동음이 전해졌다.

암흑성에 도착한 천제현 일행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암흑성 방어 결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도시 전체는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엄청난 타격에 성안에 있는 건물 10여 채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고, 100채 이상이 손상되었으며, 인명 피해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타이탄 거인이 수백 리 밖에서 쏘아 올린 화살 하나가 암흑성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이것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힘이란 말인가? 썬더의 파괴력이 이토록 강했다니.

이 정도 수준의 고수에게 평범한 결계는 그저 종이 한 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당초 썬더 등이 랜스로드, 세나리우스, 오거스트 등 혼돈의 숲 최고 고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기적성은 베헤모스의 분노, 타이탄의 번개, 흑룡의 화염으로 진작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암흑성에 도착한 데스윙은 암흑성에 운집해 있는 저항부대를 무시한 채 자홍색 화염을 입속에서 토해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도시 주변을 날면서 화염을 뿜어댔고, 암흑성은 자흑색 화염에 불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용의 화염 속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울부짖었다.

흑룡인 데스윙은 어둠, 저주, 죽음의 힘이 특히나 강했다.

데스윙이 내뿜은 화염은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다. 모두 죽음의 기운이 담긴 암흑룡의 불이었다. 이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어떤 방어든 괴멸시킬 수 있으며, 생물과 생명체를 불태워 불사의 괴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따라서, 데스윙이 내뿜은 죽음의 화염에 비명횡사한 생명체는 그 즉시 데스윙의 꼭두각시로 변했다.

용의 화염은 한꺼번에 수만 명을 태워 버릴 수 있는데다 이들을 광폭한 괴물로 다시 부활시킨다.

데스윙 눈에 하급 생물은 개미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많은 개미를 죽여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 하듯 데스윙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멈춰요! 멈춰!”

천제현이 암흑성의 상황을 보자마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전 온전한 암흑성을 원합니다. 다들 여기를 쓸모없는 폐허로 만들 작정입니까?”

메이나는 몹시 두려운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베헤모스, 타이탄, 흑룡, 게다가 아직 나서지 않은 엘프 모두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천제현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말투로 저들과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그만!”

곧 폐허가 될 위기에 놓인 암흑성 안에서 분노의 포효가 들려왔다. 한 그림자가 궁극의 속력으로 돌진해왔다. 군더더기 없는 마력의 광채에 온몸이 뒤덮인 채 맹렬하고 거친 모습으로 하늘에 떠 있는 흑룡을 향해 돌진했다.

랜스로드가 저 멀리 마력의 광채에 뒤덮인 인영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했다.

“천역 경지에 오른 술사가 아닌가?”

천역 경지는 술사의 네 번째 경지였다.

이 대륙에서 천역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술사는 많지 않다. 진령 경지의 마력을 지니면 일정한 지역 내에서만 고수라 불리지만, 천역 경지에 오르면 대륙을 통틀어 대다수 지역에서 명실상부한 고수로 불릴 수 있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는 실력자를 제외하고는 천역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륙에서 군림할 수 있었다.

“저자가 바로 사대 성주가 추대한 동부의 왕일 거예요!”

메이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의 실력은 가늠할 수도 없는데 그, 그…… 흑룡 나으리가 상대할 수 있겠죠?”

“하하하!”

랜스로드가 우아하면서 매력이 넘치는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귀족처럼 품격이 넘치는 자태로 말을 꺼냈다.

“천역의 경지도 강함과 약함이 있지. 저 악마는 범역 수준에 불과할 뿐, 마력이 성숙해지는 영역까지 수련하지 않았소. 반면에 데스윙 니드호그는 성역에 가까운 존재나 다름이 없지. 거룡 일족은 타고난 기량 자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진정한 성역 강자를 상대하더라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자들이네.”

천역의 경지는 범역, 영역, 성역으로 나뉜다.

데스윙 니드호그는 천역 6성 정점의 마력을 지닌 데다 성역 진입을 코앞에 둔 인물이다. 거룡족은 타고난 역량과 엄청난 기량을 지니고 있어 성역 술사를 상대하더라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동부의 왕이라 불리는 악마는 최소 천역 1~2성 수준으로 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차피 겨우 범역 수준의 술사일 뿐이다. 아직 힘의 영역도 수련하지 못했을 텐데 어찌 용의 영주의 적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