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30화 (630/729)

# 630

제630장 동맹 결성

기적성 전송터미널의 전송탑이 번쩍 빛남과 동시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의 늘씬한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니, 돌아왔군요!”

줄곧 전송탑 앞에서 기다리던 공서련은 남궁혜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표정이 됐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다친 데는 없는 거죠?”

용의 영주에게 붙잡혀 있긴 했지만, 천제현이 제때 구해 준 덕에 남궁혜는 이렇다 할 고생이랄 것도 한 게 없었다. 그저 혼돈의 숲에서 가장 으리으리하다는 도시를 한 바퀴 구경하고 온 정도랄까.

“걱정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무려 대장이 나섰는데 감히 날 어쩌겠어!”

남궁혜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간 너무 바빴어.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비비안 불러서 셋이 한잔하러 갈까?”

공서련, 남궁혜, 비비안은 의자매까지 맺었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지만, 최근에는 각자 일이 바쁜 탓에 예전처럼 어울려 다닐 기회가 거의 없던 참이었다.

전송탑이 몇 차례 더 번쩍였다. 이번에 도착한 건 천제현과 랜스로드,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 셋이었다.

낯선 세 명은 품이 넓은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어 얼굴을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3미터가 넘는 체구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 앞에 선 공서련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자신보다 우월한 생명체 앞에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압감이었다.

“손님을 데려왔어? 이분들은?”

“뭘 굳이 물어봐요. 당연히 용의 영주, 그레이트 타이탄, 골든 베헤모스님이죠.”

천제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큰아가씨한테 긴급회의를 열어야겠다고 알리세요.”

공서련은 놀라서 펄쩍 뛸 지경이었다.

“뭐? 데스윙, 클로, 썬더?. 그 셋이라면 기적성의 최대 적수 아니었어? 어쩌자고 여길 데려온 거야?”

천제현의 태연자약한 모습과 그 옆에 서 있는 엘프왕만 아니었더라면 공서련은 천제현이 협박당해 끌려온 줄 알았을 것이다.

공화련 역시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출 작전이라면서 가서는 남궁혜만 구해온 게 아니라 덤으로 삼대 거물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 혼돈의 숲을 대표하는 거물급 인사 넷이 전부 기적성에 모인 셈이었다. 게다가 얌전히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숲이 한바탕 뒤집히고도 남을 일이었다.

데스윙을 비롯한 삼대 거물은 두 달 전 이곳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기적성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기적성은 완전히 자동화, 스마트화된 초현대식 도시였다. 기적성의 전송네트워크, 기적성의 정보통신망, 기적성의 알파브레인과 각종 첨단과학설비. 무엇 하나 막대한 저력을 품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제 고대 생명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삼대 거물 역시 이 순간부로 확실히 깨달았다. 혼돈의 숲 안에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보짓이라는 사실을. 이 광활한 대륙, 이 거대한 세상을 보라. 이들은 지금 하늘이 내린 기회를 붙잡은 참이었다. 혼돈의 숲 사대 거물은 따로따로 떼어놔도 각각 어지간한 전국 하나에 맞먹는 세력을 자랑했다. 기적성을 연결고리로 사대 거물이 연합한다면 숲을 통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고, 그때는 대륙 전역으로 뻗어 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데스윙, 클로, 썬더와의 협상 테이블에는 공화련이 직접 등장했다.

“거룡은행, 타이탄은행, 베헤모스은행을 만들되, 각자 은행의 주식 20%와 기적은행 주식 5%를 상호교환하는 게 조건이에요. 동의한다면 은행 설립을 지원해드리죠.”

엘프은행은 영업개시 한 달 만에 벌써 찬란한 성과를 거뒀다.

숲의 부(富)가 모조리 엘프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삼대 거물들이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슨 수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엘프와 경쟁하려면 따로 은행을 만들어 영역 내의 자본과 자원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대 거물에게는 저마다 각기 다른 강점이 있었다.

마석이 넘쳐나는 용의 고개는 혼돈의 숲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곳의 주인인 용의 영주는 만 년을 살아온 거룡, 절대적으로 강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타이탄산맥의 타이탄들은 혼돈의 숲에서 가장 많은 광산과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술자의 수도 그 어느 종족보다 많았으며 만들어내는 물건의 수준 역시 남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자체 은행이 설립되면 각종 공업생산의 틀이 순식간에 갖춰질 테고, 거기에 기적쇼핑몰이 더해져 대륙 전체로 무기가 팔려나간다고 생각해 보라. 타이탄산맥은 모든 세력들을 통틀어 현금조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집단이 될 것이다.

황야고원은 용의 고개만큼 부유하지도, 타이탄산맥만큼 자원이 풍부하지도, 엘프처럼 체계와 신용을 갖추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수령에게는 나머지 종족들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우위가 있었으니, 바로 인구였다. 황야고원의 인구수는 다른 거물들이 거느린 인구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마수령은 세대교체 기간이 짧고 개체 수가 방대하며 영토 확장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는 종족이었다. 설사 다른 강점이 없다 해도 마수령들은 오로지 인구만으로도 은행을 지탱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삼대 거물이 가진 강점이라고 해봐야 엘프와 비교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엘프족은 이미 한참 먼저 은행업에 뛰어든 상황. 엘프은행의 마석 비축량은 벌써 800만 개에 육박했고,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엘프은행의 발전은 곧 기적은행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삼대 거물이 끼어들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어쨌든 공화련은 이번 협상으로 상대의 면을 최대한 세워준 셈이었다.

기적은행과 기적성은 지금도 충분히 순조롭게 커나가고 있었다. 혼돈의 숲 전역의 안정이라는 대국적 고려가 아니었다면 공화련은 절대 저들에게 기적은행 주식을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데스윙, 클로, 썬더는 결사적인 흥정 시도가 무색하게도 결국 공화련의 요구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기적은행은 거룡은행, 베헤모스은행, 타이탄은행의 설립을 인가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삼대 은행은 기적은행과의 주식교환에 각각 지분 20%를 내놨고, 그밖에 지분 10%를 더 떼어 엘프은행과 2:1 비율로 주식교환을 진행했다. 주식 교차소유의 목적은 훗날의 안정적인 협력관계에 있었다.

은행 설립 건은 이렇게 일단락이 났다.

삼대 거물은 그제야 크게 한시름을 놓은 기분이었다.

천제현과 랜스로드도 마음의 짐을 덜어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협력안으로 혼돈의 숲은 통일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앞으로는 기적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기능하는 가운데 사대 거물 소유의 은행들이 이 지역 자본 대부분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모인 자본은 향후 혼돈의 숲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역내 안정에도 일조하게 되리라.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다.

나머지 항목과 각종 개혁안은 하나씩 천천히 상의해나갈 예정이었다. 데스윙의 가장 큰 희망 사항은 용의 고개에 전송시스템을 구축해 상인들이 대륙 각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썬더는 장인들의 질 좋은 제품을 대륙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기적쇼핑몰을 이용하게 해주기를 바랐고, 클로는 영토확장에 동원할 마력 무기 조달을 위해 기적상회 무기부서와 접촉하기를 원했다.

“자, 자, 급할 거 뭐 있습니까. 이렇게 동맹을 맺었으니 그런 사안들이야 앞으로 자연히 이루어질 일들이고요.”

천제현은 이제 삼대 거물과의 줄다리기에 신물이 나려는 참이었다.

“그전에 약속부터 지키셔야죠.”

데스윙의 기다란 동공에 보일 듯 말 듯한 빛이 스쳤다.

“뭐든지 편하게 얘기해 봐라.”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네간계에 전송탑을 하나 지었는데 최근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여러분께서 해결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뭐라? 네간?!”

네간계 생명체들이 땅 위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의 종족들 역시 네간계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아예 그런 세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디에든 예외는 존재하는 법. 지금 이 자리에는 보통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이력의 거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라면 네간계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을 만도 했다.

엘프왕 랜스로드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

“네간계에 갔었다고?”

대체 이 젊은 성주의 한계는 어디란 말인가.

하다 하다 네간계에까지 손을 뻗치다니.

“네간계를 단순히 자원이 풍부한 지하세계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곳에는 대륙 전체의 운명을 바꿀 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천제현이 자못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네간은 정말 중요한 땅이에요. 좋은 물건이 있으면 혈맹끼리 나누는 게 당연하죠. 기적성은 여러분과 함께 네간계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사대 거물은 뜻밖의 횡재를 만난 기분이었다.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네간계의 존재도 알고 네간계 생명체를 본 적도 있는 그들은 지하에서 나는 희귀자원에 줄곧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사대 거물이라 해도 수천 리에 달하는 암석층을 뚫고 네간계까지 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기에 지하세계 개발은 그저 환상으로만 묻어뒀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천제현이 네간계까지 곧장 가는 전송통로를 뚫어뒀다고 하지 않는가. 기적상회의 과학기술과 그 특유의 수완이라면 혼돈의 숲이 네간계를 접수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데스윙, 썬더, 클로는 쾌재를 불렀다.

이 시점에 기적성과 연맹을 맺은 건 정말이지 현명한 선택이었다. 설마하니 기적성과 손을 잡자마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줄이야.

셋 중에는 베헤모스인 클로가 역시 가장 단순했다.

“우리 마수령은 가진 게 병력밖에 없는 종족이다. 원한다면 기꺼이 돕겠다!”

“마수령들이 얼마나 용맹한지야 온 대륙이 다 아는 일이죠. 당장 급한 건 네간에 든든한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에요. 네간계 토착세력들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에요. 외부인이 자기 땅에 너무 깊게 개입한다 싶으면 분명 집단으로 반감을 표출할 겁니다. 현지 세력 중 하나를 장기간 지원하는 게 가장 현명한 접근법일 듯싶어요. 부탁드릴 일도 바로 그거고요.”

천제현이 네간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사대 거물들에게 상황을 숙지시킨 뒤 천제현은 이들과 함께 전송탑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랜스로드 한 명만 데려갈 생각이었건만, 예상 밖에 사대 거물이 몽땅 모였다.

나무엘프인 랜스로드가 다크엘프와의 접촉을 꺼리더라도 이제 클로, 썬더, 데스윙이 함께이니 걱정이 없었다. 셋 중에 누굴 골라잡든 어차피 대륙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초일류 고수이긴 매한가지 아닌가.

고작 암흑성 따위가 뭐나 된다고?

천제현이 전송진을 발동하자 다섯 개의 그림자가 곧 눈부신 섬광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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