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26화 (626/729)

# 626

제626장 다시 기적성으로

심연세계는 더없이 불가사의한 곳이다.

천제현은 전생에 차원의 시대에 살았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제국과 대형 상회들이 차원 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천제현은 심연세계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혼돈의 숲은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심연 입구 중 하나였다.

그때 네간은 대륙의 특수구역으로 분류되어 어떤 제국이나 초대형 세력에도 귀속되지 않았다. 심연의 통로가 갖는 가치가 너무나 엄청나서 한 세력이나 국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간 특별구역은 부유하고 번화했으며, 어느 지역보다도 선진적이었다. 지금의 네간과 비교해 보면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대륙에 큰 재난이 한 차례 있었다고 한다. 그건 마력 과학기술 역사의 초중반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악마와 미지의 생명체들이 땅속에서 나왔고, 심연의 기운이 토지를 오염시켰다. 또한, 대륙의 주민들은 마화되어 잔인하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그 일은 유사 이래 가장 심각했던 재난 중 하나로, 백 년 동안 대륙에 사는 지성체 중 30%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1~2천 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사건은 네간의 봉인이 해제된 데서 시작했다. 봉인이 해제되면서 수만 년 동안 응축된 힘이 한 번에 폭발하듯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대륙 사람들은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심연의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고, 대륙 식민 시대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 일을 천제현이 만 년 먼저 해낸 것이다.

혼돈의 숲 지하에 있는 네간계는 고대인들이 각별히 신경 써서 봉인한 심연의 통로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심연으로 이르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이 유적에 남긴 수많은 보물들도 찾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천제현은 너무 일찍 심연의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 대륙에게 도움이 될지 화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현재 대륙의 과학기술 수준은 너무 낮아 심연을 개발할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무작정 심연으로 들어갔다간 떠돌이 악마들의 주의를 끌 수도 있다. 그 빌어먹을 심연의 기생충들이 대륙으로 기어 나오면 대륙은 큰 재앙을 맞게 되리라.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다. 네간계에는 다양한 악마의 문 구역이 있고, 그중 하나의 구역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꺼번에 붕괴될 가능성은 적었다. 즉, 심연의 문이 아직 제대로 열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천제현에게는 아직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악마의 무덤과 심연의 통로 안에는 수만 년 동안 축적된 힘이 있어서 지하에 수많은 보물들이 묻혀 있는 걸 알면서도 내려갈 도리가 없었다.

“악마의 무덤 안에는 수만 년 동안 응축된 사악한 기운과 심연의 힘이 있어요. 그 힘이 그곳 전체를 덮고 있죠. 며칠이 지나면 이 땅은 생명체가 살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될 거예요.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어요.”

악마의 무덤 안에 있는 마력의 타격을 받아 악마의 문의 결계는 몹시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굳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갈 필요 없이 유명화와 새끼 여우의 힘으로 새로운 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이번 모험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것 같았다.

상품 선약은 못 찾았지만 더 이상 찾을 마음도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악마의 문의 결계가 이미 많이 약해졌으므로 다음에는 때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찾아오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상품 선약을 찾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천제현과 메이나는 돌아가는 길에 암흑성에서 도망 온 패잔병 4~5천 명을 만났다. 메이나는 그들로부터 성주가 살해당했으며, 암흑성 부대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성 주민들이 투항했다고 했다.

이제 암흑성을 수복하는 건 불가능한 듯했다.

메이나는 도중에 만난 패잔병들을 은밀한 곳에 숨겨주고 싶어 했다.

그러자 천제현이 의견을 냈다.

“제 폭군 숙영지에 그들을 수용할 수 있을 거예요.”

“안 돼. 폭군 숙영지는 암흑성에서 너무 가깝잖아. 지금 그곳으로 가면 시선을 끌게 될 거야. 제 발로 함정에 걸어 들어갈 수는 없잖아?”

천제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전송탑을 짓고 다른 곳에서 접근하는 것뿐이었다. 천제현은 일단 공간광산 부근에 메이나를 숨기고 더 많은 암흑성의 부하들을 모으도록 한 후, 자신은 위험한 공간 균열을 통해 아공간 광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을 고생한 끝에 직접 공간수정석을 캐와 전송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전송탑은 공간광산의 정중앙에 위치했다.

천제현은 감개무량했다.

드디어 전송탑을 지었구나.

기적성을 떠난 지 보름이나 되었으니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적이 걱정되었다. 그는 메이나에게 지상으로 올라가 지원병을 데려 오겠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 아리송해 하는 메이나를 뒤로 한 채 전송탑을 통해 기적성으로 돌아갔다.

빛이 한 번 번쩍이더니 기적성의 전송지점에 천제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지하세계의 뜨겁고 혼탁하며 유황 냄새가 섞여 있는 공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청량감이었다.

곧이어 도시 관리원 제로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주님, 안녕하십니까. 부성주님께서 성주님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라 하셨습니다. 부성주님께 통지해도 되겠습니까?”

천제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원래 기적성의 전송탑은 야외에 있었는데 지금은 화려한 건물 내부로 바뀌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전송터미널을 만들다니, 공화련의 능력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천제현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몹시 걱정이 된 공화련은 제로를 시켜 아주 작은 동정이라도 발견되는 즉시 그녀에게 보고하라고 시킨 바 있었다.

그러나 제로는 기적성에서 가장 뛰어난 알파브레인이었다.

천제현의 성 관리 권한은 공화련보다 높았기에 제로는 그의 복귀를 즉시 공화련에게 알리지 않고 먼저 천제현의 의사를 물은 것이다.

“큰아가씨에게 내가 지금 간다고 전해.”

“네, 성주님!”

이윽고 제로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다행히 천제현이 걱정한 일은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안도하며 전송터미널을 나선 천제현은 눈앞의 광경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한 달도 안 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 있었다.

여기저기 거대한 마천루들이 우뚝 서 있었고 인구도 눈에 띄게 증가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교통수단의 변화였다. 기적성 상공에 수많은 비행선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비행선들의 크기는 전에 그가 봤던 것들과 비슷했지만, 구조적으로 많이 발전한 것 같았다. 특히 비행선 아랫부분에 추가된 거대한 기계구조의 양쪽에 엔진설비가 달려 있었다. 안에서 분출되는 하늘색 화염을 추진력 삼아 느리기 그지없던 비행선의 기동성과 속도를 크게 개선한 것이다.

비행선 외에도 처음 보는 교통수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제현, 천제현!”

멀리서 아름답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서련이 희한하게 생긴 비행도구를 타고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바퀴 두 개가 달려 있어 지상에서도 가동이 가능했으며, 차체 양쪽에 부유 마력진이 새겨진 접이식 날개가 있는 비행도구였다. 그 밖에도 하늘색 화염을 내뿜는 엔진이 탑재되어 공중과 지상에서 모두 사용이 가능한 교통수단이었다.

두 손으로 비행도구를 조종하는 공서련의 얼굴에는 귀여운 보안경이 씌워져 있었고, 하나로 묶은 머리채가 살랑거렸다. 그녀는 공중에서 훌륭하게 방향을 선회해 천제현 앞에 정지했다. 그러고는 손으로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한 후 뛰어내려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소리쳤다.

“그래도 돌아오기는 했네? 언니가 그러더라. 너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고. 그래, 가보니까 좋디? 이제야 돌아와? 오늘 날 잡은 줄 알아!”

천제현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화제를 돌렸다.

“서련 아가씨, 그건 대체 뭐예요? 엄청 재미있어 보이네요.”

“흥, 당연하지. 이 에어바이클은 요즘 제일 핫한 탈것이라고. 아직 테스트 중이라서 몇 개 없기는 하지만.”

공서련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우습게보진 마. 다섯 개 부서에서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낸 거니까. 마력진에서 설계도, 그리고 은월성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부분 우리의 피땀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엔진이야. 기적상회의 1세대 엔진인데, 최근 개발된 비행선들에 모두 이 기술을 적용했어.”

마력엔진은 기적상회의 많은 제품들과 비슷했다.

마력으로 가동되는 마력엔진은 기계에 동력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는 마력전지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마력전지가 모두 소모되고 나면 엔진 자체의 마력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편리하면서도 안정적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공서련이 에어바이클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타. 언니한테 데려다 줄 테니까!”

공서련의 에어바이클은 2인용이었다.

천제현이 자리에 앉자 공서련은 즉시 시동을 켰다. 에어바이클은 부르릉하는 엔진 소리와 함께 쏜살 같이 달려 나갔다. 일반인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가속도였으나, 마력이 심후한 술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기적상회 운문실험실의 테스트에 따르면, 1세대 엔진은 음속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초음속 엔진은 비행선이나 에어바이클과 같은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공장 설비에 탑재되어 동력을 제공했고, 심지어는 변속엔진의 특수성을 이용해 미사일 같은 무기에도 이용되었다.

공서련은 엘프족이 수많은 상회를 설립했다고 얘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영원의 숲 엘프시스템 상회’라는 곳으로, 우수한 직원 300명이 운문이 연구개발한 행렬언어를 배우고 있으며 시스템 프로그래밍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상회는 기적성의 휴대전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이제는 비(非) 지능형 개인설비 운영체제와 무기제어 시스템까지 개발 중이었다. 행렬언어는 매우 유용한 초현대화 프로그래밍 언어로, 마력 행렬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여기 조종대 좀 봐.”

공서련이 에어바이클의 앞쪽에 달려 있는 버튼과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에어바이클의 조작 시스템도 그 상회에서 만든 거야. 기적상회가 5천 마석으로 구매했지. 하지만 이건 우리가 개발한 다양한 제품들 중 하나에 불과해.”

천제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예요?”

“당연하지. 지금 기적상회 다음으로 전문성을 갖춘 게 바로 그 엘프상회라고! 우리가 개발한 설비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가동하려면 마이크로 시스템이 필요하거든. 쉴 틈도 없이 바빴는데 엘프족 엘리트들이 창업을 하면서 많은 일이 줄었어.”

공서련은 영악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 상회의 최대주주가 비비안이고 2대 주주는 바로 이 몸이야. 엘프은행에서 5만 마석을 대출 받았지. 현재 영원의 숲에서 중점적으로 키우고 있는 상회랄까?”

천제현은 엘프족들이 꽉 막히고 고루한 종족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 엘프들이 시스템 연구 개발부터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큰 역할을 할 줄이야! 엘프족들은 그런 기술들을 예술의 새로운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완벽과 정교함을 추구하는 엘프들의 성격이 대체 불가능한 능력으로 발휘되고 있었다.

엘프은행이 설립되고 엘프족의 개혁이 진행된 지 이제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엘프족 내부에 새로 생긴 상회의 수는 62개나 됐고, 크고 작은 공장의 개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백 개가 넘는 엘프족 제품들이 기적쇼핑몰에 전시되면서 북방 3국과 주변 나라들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엘프족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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