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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24화 (624/729)

# 624

제624장 촉수괴물

천제현의 신식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빠르게 신전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신전에 세워진 신상들은 전부 신비한 심연의 재료로 만들어져 신식을 차단하고 있었으므로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무작정 달려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신전 안에 분명 금제를 통제하는 핵심 부분이 있을 것이다. 힘을 공급하는 핵심 부분과의 연결을 끊어 놓거나 파괴하면 신전의 방어벽은 사라지고 신상들도 파괴될 게 분명하다.

그때, 제단에서 뭔가를 발견한 영이 천제현을 불렀다.

“제단 안에 통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단? 그래, 제단이다!”

이 신전을 만든 게 어떤 종족인지, 어떤 문명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제단이야말로 신전의 중추이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일단 제단에 손을 써보는 것이리라.

신전의 면적은 매우 컸는데, 제단은 그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높이 80장, 최대 직경은 100장에, 계단 형태를 띤 제단의 표면에는 구멍이 가득했고 꼭대기는 비어 있었다. 이 제단이 신전 안에 있지 않았더라면 외계인의 창조물이라고 착각했을 만큼 기괴한 건축양식이었다.

제단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차단되어 있었는데, 천제현의 신식으로서는 안쪽을 들어볼 방법이 없었다. 어슴푸레하게나마 몹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우야, 네가 먼저 들어가 봐.”

그렇게 해서 새끼 여우가 제일 먼저 제단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녀석은 영리하고 민첩한 데다 기운을 감출 수 있으니 주의를 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니 안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새끼 여우가 제단에 들어간 지 30초나 지났을까. 새끼 여우가 황급한 모습으로 허둥지둥 도망쳐 나오면서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된 거야?”

제대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천제현이 물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진과도 같은 진동이 신전을 휩쓸었다. 제단 표면에 나 있는 거대한 구멍들에서 가시가 달린 거대한 촉수들이 빠져 나왔다. 각각의 촉수는 짙은 붉은색이었으며, 칼날 같은 가시가 달린 것 외에도 고대의 신비한 주문과 도안들이 가득 새겨져 강력한 힘과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의 촉수는 천 미터나 뻗어 나와 천제현 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즉시 신마검을 소환했다. 금속성을 내며 나타난 신마검이 뻗어 나온 촉수를 막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촉수 표면의 주문들이 빛을 발하더니 안쪽에서 강력한 힘이 폭발했다.

그러자 베헤모스의 발톱에 얻어맞기라도 한 양, 신마검이 부들부들 떨리며 검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포스러운 힘이 천제현의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신전 끄트머리까지 날아가 벽에 육중하게 부딪혔다.

“저게 대체 무슨 괴물이야? 빌어먹을, 세기도 하네!”

천제현의 온몸에서 희미한 성광이 빛을 냈다. 성광불멸체 덕에 큰 타격은 입지 않았지만, 괴물의 강력한 공격력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릴 정도였다.

신전을 지키는 수호수일 것이다.

‘촉수 하나만도 이 정도의 힘을 내는데 백 개의 촉수가 한꺼번에 공격하면 무슨 수로 막지?’

신전 안쪽에서 들리는 울부짖음이 점점 더 커지는가 싶더니 백 개의 촉수가 한꺼번에 공격을 시작했다. 그중 4~5개는 영과 메이나를 향했다. 촉수 표면의 주문들이 엄청난 힘을 내뿜었고, 가득 박힌 가시들은 요동치는 칼날 같았다. 누구든 그 촉수에 한 대라도 맞으면 바로 곤죽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때, 검은 화염을 실은 화살이 한 대 날아갔다.

영이었다. 영이 화살로 촉수 하나의 표면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별 효력이 없는 듯 괴물의 공격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메이나가 7~8개의 잔영을 만들며 몸을 날려 순식간에 영을 데리고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매영질참!”

메이나가 공격을 시전했다. 어찌나 빠른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잔영이 남았다. 그녀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칼날을 내리치자 거대한 촉수 하나가 잘려 땅으로 툭 떨어졌다.

어쨌거나 메이나도 진령 9성의 고수였다.

서큐버스의 장기가 정신공격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마력이 높은 관계로 육탄전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무공은 속도가 매우 빨랐으며, 공세 또한 날카로워 영마족의 최고급 살수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두꺼운 촉수가 잘렸는데도 괴물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반 토막 나 바닥에 떨어진 촉수는 물 밖에 나온 미꾸라지처럼 퍼덕거리면서 육안으로 분간 가능한 속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제단의 구멍에서 빠져나온 반 토막의 단절 부위에서는 연기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잘린 부분이 재생되었다.

“말도 안 돼. 불사의 괴물인 거야?”

메이나가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신전 안에서 낮은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더니 백여 개의 촉수가 날아왔다. 괴물의 이번 공격 대상은 침입자들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촉수가 신전 안에 있는 신상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망했다. 괴물이 신상을 공격하고 있어.”

신전의 수호수가 신상을 파괴할 리 없다. 방금 전 메이나가 실수로 신상을 건드렸을 때 강력한 정신공격이 이뤄지지 않았던가? 백 마리의 괴물이 백 개의 신상을 이용해 공격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괴물이 타종이라도 하듯 신상을 치자 신상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정신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천군만마라도 순식간에 쓸어 버릴 힘이었다. 그 힘 앞에서 셋에 불과한 천제현 일행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영은 말할 것도 없고 메이나조차 살아날 확률이 없었다. 백여 개의 신상이 동시에 만들어낸 정신폭풍은 악마협곡 안에서 만났던 데빌앤트들의 정신 공격보다도 강력했다. 진령 경지의 고수라도 이런 공격 앞에선 십중팔구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정신 공격의 범위가 너무나 거대했으므로 도망치는 것도 이미 늦은 듯했다. 천제현이 공간 이동을 시전해도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가진 못하리라.

“모두 제 눈을 보세요!”

위기일발의 시점에 천제현이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변하며 신식이 시전되었다.

“영면의 눈!”

메이나와 영은 천제현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무언가 거대한 힘이 영혼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영은 즉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메이나는 그 비술을 방어할 능력이 있었지만, 천제현의 생각을 알아채고 모든 방어를 해제한 뒤 천제현의 힘이 그녀의 정신을 봉쇄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두 사람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봉쇄되었다.

정신이 완전히 닫히고 사고능력이 정지하면 정신공격은 어떤 작용도 하지 못하며, 타격도 최대한도로 줄어든다. 천제현은 두 사람을 구할 방법이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정신을 봉쇄했는데도 불구하고 메이나와 영은 큰 타격을 받고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렸다. 천제현 또한 극렬한 두통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의 천제현은 데빌앤트 협곡 때와 비교했을 때 정신, 마력, 신식 모두 큰 성장을 한 데다 정신 공격에 면역을 가진 덕분에 심각한 피해는 피해갈 수 있었다.

새끼 여우 역시 정신 공격에 면역력을 갖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받았다. 녀석은 술이라도 취한 양 비틀거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새끼 여우는 잔뜩 성이 나 영혼 나무인형을 꺼내 화염조를 소환했다. 진령 9성 정점의 힘을 지닌 공포스러운 존재가 제단으로 날아가 눈 깜짝할 새에 십여 개의 촉수를 태워 버렸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 촉수들 역시 괴물의 급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륙 최고의 고수가 와서 모든 촉수를 잘라 버리더라도 순식간에 다시 재생될 것이다. 괴물은 제단 안에 숨어서 제단을 보호하는 한편, 제단을 갑옷 삼아 공격하고 있었다. 제단은 진령 경지, 아니 그 이상의 고수가 온다 해도 부수지 못할 보루와도 같았다. 저놈을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괴물의 시커멓게 탄 촉수가 회복되자 수십 개의 촉수가 다시 한 번 신상을 때렸다. 허공에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화염조는 무시무시한 정신파에 타격을 입고 수많은 불씨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화염조처럼 강한 생명체가 눈 깜빡할 새에 사라지다니.

“그런다고 내가 못 죽일 것 같아?”

천제현이 새끼 여우를 보며 소리쳤다.

“저놈을 꽉 잡아!”

새끼 여우는 한동안 화염조를 소환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녀석의 무기가 어디 그것 하나뿐이랴. 여우가 허공을 향해 연속으로 다섯 개의 녹색 영혼을 토해냈다. 그 영혼체들은 작열하는 화염 운석이 되어 서로 다른 다섯 방향에서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운석들의 파괴력은 진령 9성 정점 고수의 통한의 일격보다도 엄청났다. 운석에 얻어맞은 괴물은 바로 몸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지옥화염악마는 제단을 둘러싸고 촉수괴물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이다!’

순간 이동으로 제단 앞에 나타난 천제현은 거대한 촉수 하나를 밟고 제단 안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천제현의 의도를 알아챈 촉수괴물의 가시 돋친 거대한 촉수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꼭 고기 가는 기계가 가동된 것 같았다.

허공둔.

천제현은 허공둔과 순간 이동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여 고깃덩어리가 될 위험을 몇 번이나 피하며 긴 통로를 통해 제단의 핵심 구역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마침내 괴물의 본체가 눈에 들어왔다.

정체가 드러난 녀석은 문어처럼 생긴 연체동물이었다.

유선형의 머리통에 거대하고 푸른 눈 하나가 달려 있었고, 눈 아래쪽으로는 하얀 이빨이 빽빽하게 자라난 쩍 벌린 입이 있었다. 사악하고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심연의 악마였다.

“이제야 보게 되는구나!”

천제현이 신혈강시들로 공세를 펴려고 할 때였다. 채 공격 태세도 갖추기 전에 촉수악마의 흉악스러운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 팔 만한 작은 촉수들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 나왔다.

‘너무 빠르잖아!’

괴물은 삽시간에 천제현과 신혈강시를 전부 꽁꽁 묶어 번개 같은 속도로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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