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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23화 (623/729)

# 623

제623장 신상

함정 근처로 돌아온 일행은 지옥화염 일고여덟과 수백 마리의 화염악마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대지에서는 녹색 화염이 일렁여 초록빛 숲처럼 보였다. 지옥화염악마의 사체에서 나온 심연의 불꽃이었다.

메이나가 천제현에게 말했다.

“심연의 악마는 상대하기가 몹시 까다로운 놈이야. 악마들을 유인하는 데 성공했으니 저놈들을 피해 악마의 무덤 신전으로 들어가자.”

“아뇨, 그렇게 아까운 짓을 할 수는 없죠.”

천제현은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새끼 여우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새끼 여우는 두말 않고 휙 몸을 날렸다.

곧이어 회색 안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여우가 악마들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나와 영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지옥화염악마는 진령 9성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반원소의 특성을 띠기 때문에 급소가 없어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르단이나 조로가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녹색화염악마는 천 년 동안 살아온 놈으로, 실력이 적어도 진령 1~2성은 될 것이다. 그런 놈들이니만큼 피할 수만 있다면 행운이었다. 그런 상대들을 왜 굳이 다가가서 건드린단 말인가.

새끼 여우를 본 악마들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영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저 영수가 위험합니다!”

그러나 천제현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새끼 여우 또한 느긋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녀석의 작은 몸 안에서 옅은 자줏빛 기운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가 모든 악마들을 뒤덮었다. 기이한 힘에 휩싸인 악마들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됐겠지.’

한참 동안 자줏빛 기운을 토해내던 새끼 여우가 이번에는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내려앉은 자줏빛 기운이 일렁이며 여우에게 돌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해일이 이는 것 같았다. 녹색화염악마들은 강력한 자석을 만난 쇳가루처럼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나 여우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마리의 녹색화염악마가 사라졌다.

남아 있는 녹색화염악마와 지옥화염악마들도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메이나와 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제현조차 살짝 놀라고 있었다.

지난번 뇌주에서 새끼 여우는 차원을 뛰어넘은 지 얼마 안 돼 몹시 약해져 있는 지옥화염악마를 상대했었다. 그것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제압하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1~2년 만에 이렇게 성장하다니.

어느 정도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심연의 악마들은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전의를 상실한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다음 장면은 더더욱 놀라웠다.

광기 어린 잔인함으로 악명 높은 심연악마들이 도망갈 준비를 했다.

“놈들을 놓치지 마!”

천제현이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빨리 없애 버려!”

천제현이 말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쉽게 악마들을 놓아줄 여우가 아니었다. 새끼 여우가 연속으로 몇 번 숨을 토해내니 녹색화염악마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지옥화염악마도 극도로 약해졌다. 놈들은 새끼 여우의 공격 범위 안에서 발이 묶인 듯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영이 활시위를 매겼다.

피융!

몸 안팎으로 화염에 휩싸여 새끼 여우에게 흡수되고 있던 지옥화염악마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영의 화살이 몸을 꿰뚫자 놈의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좀전의 무시무시한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놈의 육신은 화살을 맞은 도자기처럼 우르르 부서졌다.

영의 실력으로도 원거리에서 그 강력한 악마를 저격했으니 그보다 강한 메이나와 천제현은 어떻겠는가? 세 사람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지옥화염악마를 전부 처치했다. 기르단 일행과는 180도 다른 상황이었다.

악마들을 소탕한 자리는 돌멩이나 옥이 부서진 듯 자잘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놈들을 구성하고 있던 불의 근원이 남은 것이다.

천제현이 원하던 게 바로 그것들이었다.

천제현의 온몸에서 유명화 십여 줄기가 솟구쳤다. 유명화는 심연의 녹색 화염을 하나씩 휘감아 천제현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엄청난 힘을 지닌 심연의 녹색화염 십여 개를 흡수하면 제 아무리 뛰어난 진령 고수라도 잿더미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런 것을 전부 체내로 집어넣다니 그런 미친 짓이 또 어디에 있을까.

만약 환경과 조건이 동일했더라면 심연의 녹색 화염은 유명화에 뒤지지 않는 힘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여 제련한 천제현의 유명화는 빙령화를 포함, 대량의 자원과 귀한 영물들을 흡수해 이미 선품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심연의 녹색 화염은 성품 수준에 불과했으니 유명화가 녹색 화염을 무리 없이 삼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영화(靈火)들을 흡수한 유명화의 강도가 대폭 상승했다. 기령 유명의 힘이 지금까지 진령 7성 정도였다면, 녹색 화염을 삼킨 후 바로 9성까지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천제현을 무엇보다 흡족하게 한 것은 심연의 녹색 화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십여 개의 최상품 성단을 한꺼번에 복용하기라도 한 듯 마력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그의 마력은 진령 5성 정점으로 일약 도약했다.

성장.

또 한 번의 성장.

이번 모험에서 아직 이렇다하게 얻은 건 없었지만, 실력의 눈부신 성장만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너무하잖아!”

메이나가 잔뜩 성이 나서 천제현의 앞에 다가왔다.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이었다.

“네 실력이 엄청난 것도 알겠고 재간이 뛰어난 것도 알겠는데, 다음번에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면 안 돼? 우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미안하게 됐어요. 전 워낙 깜짝 놀라게 해주는 걸 좋아해서 말이죠.”

천제현은 미안한 기색 없이 시시덕거리며 대꾸했다.

“앞으로 제가 시키는 일을 많이 하게 될 테니 이런 일에 일찌감치 적응해 놓는 게 좋을 거예요.”

메이나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일단 암흑성부터 수복한 다음에 얘기해!”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네간과 기적성을 잇는 전송 통로를 구축하기만 하면 기적성의 힘으로 암흑성 하나 수복하지 못하겠는가?

어쨌든.

기적성을 떠난 지도 한참이 지난 터라 그곳 상황이 궁금한 천제현이었다.

공화련의 능력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고, 기적상회에도 인재들이 즐비하니 별문제야 있겠느냐만, 천제현은 혼돈의 숲의 대형 세력들, 특히 데스윙의 존재가 걱정되었다. 만약 그들이 기적성에 손을 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기적성은 기적상회의 본진이다. 다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기적성만은 그래선 안 된다.

천제현은 더 이상 네간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빨리 성안을 손에 넣고 공간수정석을 찾아 전송탑을 건설해야 한다.

“알았으니까 들어가죠!”

그는 더 이상 농담할 생각이 없었다. 새끼 여우가 악마의 무덤 안에 있는 신전들에서 많은 보물을 발견했지만,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 다른 것은 접어두고 성안부터 손에 넣어야 했다.

악마의 무덤에는 고대의 금제와 함정들이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일행은 천제현의 강력한 신식과 새끼 여우의 기지 덕에 기관들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전 안에서는 사방에서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악마문 구역 한가운데 있는 그 신전은 악마의 무덤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신전 내부의 제단과 조각상들은 전부 귀한 금속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시간의 풍파로 인해 신전 겉 부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식되어 있었지만, 내부의 조각상과 제단들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메이나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악마문 구역 안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발아래 수많은 고대 악마들을 파멸시켜 만든 악마의 무덤이 있었으니까. 수만 년 동안 그 안에서 무엇이 생겨났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영은 작은 칼을 빼어 들고 물었다.

“신상의 눈을 원한다고 했죠?”

“맞습니다. 저 신상들의 눈은 꽤 품질 좋은 성안이거든요.”

천제현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성안들을 손에 넣으면 암흑성을 구할 수 있습니다.”

메이나는 두말 않고 두 날개를 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신상 하나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천제현이 급히 소리쳤다.

“조심해요!”

메이나의 손이 신상에 닿은 순간, 신상 안쪽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맑고 청량해서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은 그 소리는 공포스럽게도 바늘처럼 일행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헉!”

영이 입에서 피를 뿜었다.

정신력이 강한 편인 메이나는 심각한 타격은 받지 않았지만,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즉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각각의 신상에 강력한 금제가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신식으로 주변 신상을 살펴본 천제현이 말했다.

“무슨 힘이든 사용해 신상을 파괴하는 순간, 신상 내부의 금제가 자동으로 가동되어 종이 울리는 소리를 내는 거죠. 그와 함께 치명적인 정신파가 나오고요. 방금 신상을 살짝만 건드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죽지는 않았어도 전투력을 전부 잃었을 거예요.”

영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물었다. 여전히 머리가 핑핑 도는 듯한 표정이었다.

“엄청난 힘이군요. 이제 어쩌죠?”

“세상에 완벽한 금제란 없는 법이죠.”

천제현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분명 파해법이 존재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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