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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21화 (621/729)

# 621

제621장 함정

기르단, 조로와 스무 명에 달하는 고수들은 숨죽인 채 황야에 매복해 있었다. 기운을 따라 쫓아왔는데, 앞에 그 유명한 악마의 무덤이 있었다. 기르단은 녀석들이 악마의 무덤으로 도망칠까봐 걱정이었다.

악마의 무덤이 얼마나 위험한 곳이던가?

메이나 무리들이 악마의 무덤으로 들어가 버리면, 더 이상 이 임무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

악마의 무덤은 고대에 수많은 마귀와 요괴들을 묻은 거대한 굴이다. 당대 가장 무시무시한 흉수와 마물들이 모두 이곳에 묻혔기 때문에 아주 강한 원념(怨念)이 생겼다. 이렇게 극단적인 환경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존재가 나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악마의 문 시련 중 악마의 무덤을 탐사하러 떠난 용자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메이나 무리에 아무리 대단한 포상이 걸려 있다 해도 그 정도로 모험할 가치는 없다.

염마성 부성주인 기르단은 악마의 무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메이나도 암흑성의 부성주니, 악마의 무덤에 들어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다.

메이나 일행은 분명 저 안에 들어가지 않고 악마의 무덤 주변을 계속 맴돌 것이다. 그렇다면 기르단에게도 기회가 있는 셈이다. 단 한번 뿐인 기회지만, 성공할 수 있는 지는 운에 맡기기로 한다.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르겠는 그놈의 교활한 인간!’

매번 추격할 때마다 거의 다 쫓아왔다 싶으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기르단은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 이 인간을 반드시 없애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넓은 악마의 문 지역에서 공간재능을 가진 자를 잡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괜찮다. 힘을 다 쓰게 만들어서라도 잡을 것이다.

‘공간능력이 마력을 얼마나 소진시키는지 모를 줄 알고?’

인간 혼자 도망치는 데만도 힘이 적잖게 들 텐데, 지금은 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고 있다. 몇 번 이동하다 보면 마력이 다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천제현은 지금까지 매번 성공적으로 추격을 피했다. 심지어 보물을 찾는 여유까지 있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기르단은 악마의 무덤까지는 추격하지 않았다. 천제현과 메이나의 행동을 보고 대략적인 궤적을 파악 후, 미리 도착할 곳에 매복했다. 추격이 안 된다면 숨어야지. 온 힘을 다해 기운을 숨겨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심해라, 놈들이 온다!”

기르단과 조로는 이번 계략이 성공한 것 같아 아주 흥분됐다. 저 멀리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암흑성의 부성주 메이나와 암흑성 성주의 아들 영이었다.

‘그 인간은 어디로 갔지? 모르겠다, 우선 저 두 사람부터 잡고 보자.’

성에서 이름 날리는 강자들이 저들을 잡겠다고 그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얼마나 많은 화를 억눌러 왔는지 모른다.

‘이제 겨우 잡게 생겼는데 쉽게 놓아줄 줄 알고?’

그 인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르단 쪽은 사람도 많다. 고작 인간 하나에 신경 쓰겠는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

조로는 귀신처럼 주변 환경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미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냥감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필살기를 날릴 것이다. 메이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그런데 이때.

“잠깐!”

메이나가 갑자기 멈춰 서서 곁에 있던 영에게 말했다.

“이곳은 뭔가 심상치 않아요, 돌아가죠!”

영은 두말없이 메이나를 따라 돌아가려 했다.

“메이나,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기르단이 바로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넌 독안에 든 쥐다! 잡아라!”

스무 명은 이미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 숨어 있었다.

메이나가 매복범위 안에 들어오기 전에 뭔가 눈치를 채긴 했지만, 도망가기엔 늦었다.

서큐버스와 다크엘프의 속도는 느리지 않았지만,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가다 보니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서둘러 하늘로 날아오른 메이나는 순식간에 몸을 수십 개로 변화시켰다.

“매영무!”

메이나와 영과 똑같이 생긴 수십 명의 분신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기르단이 주먹을 휘두르자 그중 대부분이 쓰러졌다. 나머지 메이나와 영도 다른 고수들의 공격에 사라졌다. 이때, 조로가 영마족 강자 넷을 데리고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마치 날카로운 5개의 사슬이 두 사람을 옭아매려는 것처럼 보였다.

영마족의 공격은 둘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속도를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강자들이 따라와 이 둘을 포위하게 될 것이다.

목표 달성이다.

사냥감은 이미 천제현이 지정한 구역까지 들어왔다.

메이나는 뒤쪽 기운이 더욱 강렬해짐을 느꼈다. 기르단과 조로의 공격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그녀는 다급해진 나머지 안색도 변했다.

“인간, 왜 안 나와, 우릴 죽게 놔둘 생각이야!”

“뭐가 그리 급해요? 여기 이렇게 왔잖아요!”

천제현은 공간이동으로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 위로 손을 얹었다.

“가요!”

“제길!”

기르단이 사납게 소리쳤다.

“또 공간능력을 시전하려 한다! 막아라!”

조로는 벌써 두 사람 앞에까지 달려와 검고 긴 검을 휘둘렀다. 천제현의 공간조종이 이루어지기 전에 두 사람을 두 동강 낼 참이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칼이 날아들었을 때는 세 사람이 이미 순간 이동한 뒤였다. 칼은 허공을 갈랐다.

“……도망쳤다. 또 도망쳤어.”

기르단과 악마들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분노할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화산이 분출하는 것처럼 저 멀리 유적 가운데서 거대한 녹색 불기둥 수십 개가 솟구쳐 올랐다.

“무슨 일이지?”

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녹색 불기둥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만 볼뿐,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초 만에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녹색 불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녹색화염에 타고 있는 운석이었다.

“함정이다!”

조로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도망쳐!”

하지만 너무 늦었다. 녹색 불에 타는 유성이 미사일처럼 수천 미터 반경을 뒤덮으며 떨어졌다. 마치 잠잠하던 수면 위로 돌멩이를 던지듯이, 평온하던 대지는 순식간에 분노의 파도에 휩쓸렸다.

유성은 거대한 마력 충격만 준 게 아니었다. 이 불타는 유성이 떨어진 곳에는 흉악한 화염악마들이 소환되었다.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화염악마들이 조로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성우가 계속 떨어지는 동안, 유달리 거대한 운석 열 몇 개가 쿵 하며 땅으로 떨어져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100척도 넘는 거인이 일어났다. 겉은 갑옷을 입은 듯 암석으로 싸여 있고, 벌어진 틈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화염이 흘러 나왔다.

“지옥화염악마.”

“지옥화염악마다.”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지옥화염악마.

천제현이 구덩이에서 발견한 흑녹색의 거대한 수정석은 바로 깊은 잠에 빠진 지옥화염이었다.

이번 천제현의 계략은 매우 간단했다. 기르단이 추격을 시작한 지 1~2시간이 지났다. 잡힐 듯이 잡히지 않고 도망치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그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메이나를 미끼로 삼아 지정된 위치로 그들을 유인한 것이다.

천제현과 새끼 여우가 지옥화염을 깨워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이 도착했을 때 공간능력으로 재빨리 도망치면, 이들은 지옥화염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예전에 지옥화염이 남하국 뇌주에 떨어졌을 때, 뇌주는 대재앙을 맞을 뻔 했다

하지만 지금 깨어난 지옥화염 열 몇 마리는 뇌주 때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다. 모두 진령 9성급의 전투력을 가졌고, 수백 수천의 화염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다. 필시 처참하고 장렬한 대혼전이 벌어질 것이다.

“복병이다!”

“죽여라, 죽여!”

기르단은 화염악마들을 맹렬하게 해치워 나갔다. 마지막에는 길을 막고 있는 지옥화염에게 한 방을 거하게 날렸다. 하지만 기르단이 아무리 대단한 마력의 소유자라 해도 지옥화염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맹공격에도 그저 몇 걸음 뒤로 주춤했을 뿐이다.

가슴 앞에 달린 암석이 일부 깨지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지옥화염이 분노의 의지를 표출하고, 불타는 주먹을 휘두르며 반격했다. 기르단도 지옥화염에 맞서 주먹을 휘둘렀다. 힘으로 보면 지옥화염에 뒤지지 않지만, 지옥화염은 안팎으로 가득한 심연의 녹색화염 때문에 그 파괴력이 더욱 강해졌다. 그렇기에 기르단이라 해도 상대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암흑거인족의 부성주가 지옥화염 셋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만 상대해도 버거운데 셋이 한꺼번에 덤비다니? 그중 한 마리는 겨우 처리했지만 포위망을 뚫는 것은 실패했다. 결국 온몸이 심연의 녹샘화염에 둘러싸여 비명을 지르면서 죽음을 맞았다.

같은 시간.

암흑마수령족도 포위 공격을 당했다.

지옥화염악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연의 녹색화염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집어 삼켜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유명화로 인한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지옥화염에게 둘러싸여 공격까지 받으니, 그저 한을 품은 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뚫어라!”

“뚫어라!”

기르단이 지옥화염 한 마리를 쓰러뜨렸고, 조로도 한 마리를 처치했다. 두 사람의 활약으로 결국 지옥화염악마와 화염악마의 절반이 제거됐다. 너무나 처절하고 힘든 전투였다. 하지만 이제 남은 군사는 여덟, 게다가 모두 지쳐 있었다.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천제현이 이런 함정을 파 놓고 자신들을 기다렸을 줄을.

인명피해가 너무 심각하기에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기르단과 조로가 추격을 포기하려 할 때, 세 사람이 이들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제현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느린데, 여기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인간!”

“겨우 지옥화염 몇 명으로 우리를 다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천제현의 음모에 당한 악마들은 모두 뼈에 사무칠 정도로 천제현이 미웠다. 천제현의 육신과 피를 갈아 마셔도 부족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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