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17화 (617/729)

# 617

제617장 오색선수(仙樹)

진원단을 한 알 삼킨 후, 천제현은 다시 한 번 아름답고 유능한 큰아가씨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큰아가씨가 준 진원단이 있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제현이 네간에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까?

진원단의 효과는 아주 빨랐다. 천제현은 마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공간능력을 발휘해 메이나와 영을 데리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도망쳤다. 저들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공간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단시간 내 추격은 불가능하다.

천제현은 진원단을 또 하나 삼켰다.

“잠시 안전해졌어요.”

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나를 구해줬군.”

“어때요? 암흑성 정원에 제가 추가된 게 전혀 쓸데없지 않죠, 최소한 이렇게 쓸모가 있잖아요!”

천제현은 거드름을 피우며 서큐버스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악마족 여인, 기억해요. 만약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당신은 벌써 죽은 목숨이에요.”

메이나는 구상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실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기려 드는 성격도 아닌지라 천제현과 말싸움하기도 귀찮았다.

“그럼, 내가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까?”

“그건…….”

천제현은 이방인의 느낌을 풍기는 메이나의 몸을 훑어봤다.

“몸으로 갚을 필요는 없어요. 주변에 미녀는 넘치니까요. 내가 악마를 데리고 돌아간다면, 날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하고요.”

‘이 녀석 어디서 수작이야. 누가 몸을 허락하기나 하고? 악마? 악마족이 뭐 어때서! 우리 악마들이야말로 너희 같은 인간들은 눈에 차지도 않거든!’

메이나는 천제현을 무시한 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피하기는 했지만 암흑성은 아마도…….”

“큰일이군. 이번에 작정하고 암흑성을 상대로 음모를 꾸민 거야. 악마의 문이 열린 틈을 타 암흑성을 삼키려는 거지.”

영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안색이 변해 벌떡 일어섰다.

“아버님이 위험해, 반드시 돌아가야 해!”

메이나가 가볍게 기침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주 힘없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악마의 문은 이미 봉쇄돼서 나갈 수도 없는걸요. 도와주러 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요.”

“설마 이대로 암흑성 함락을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영은 천제현을 바라봤다.

“인간, 너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과 물건들이 있지, 방법이 없을까?”

천제현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제가 무슨 신인 줄 알아요.”

암흑성과 네간은 모두 전송진이 없기 때문에 유능한 천제현이라 해도 순식간에 그곳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천제현은 암흑성에 빚진 것도 없다. 악마의 문 시련에 참가하게 됐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이익을 본 것도 없다. 기회를 준 부분은 영을 2번, 메이나를 1번 구해 준 것으로 갚은 셈이다.

천제현으로서는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포기한 채, 죽음을 각오하고 포위망을 뚫으면서까지 암흑성으로 갈 의무는 없다.

“우리 세 사람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낮아요. 게다고 네간성 성주들이 직접 군대를 끌고 와서 포위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바로 돌아가는 건 목숨을 갖다 바치는 격이죠. 난 절대 사서 죽을 짓은 안 해요.”

천제현은 자신의 입장을 똑바로 밝혔다.

“오히려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다가 판을 뒤집을 기회를 찾는 게 어때요.”

영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않다. 자기 신변 안전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암흑성 포위 문제를 어찌 논하겠는가? 게다가 암흑성 성주는 부상이 심각해 이번에 3급 상품 선약을 구하지 못하면 잠시 위기를 벗어난다 해도 어차피 살기는 힘들다.

천제현도 돕기 싫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의 근거지도 아니지 않은가.

전송탑을 지을 수 있다면, 천제현이 엘프족에 한 공헌과 인정을 생각해서 랜스로드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랜스로드라는 최강자가 온다면 암흑성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은 이럴 수밖에.’

영과 메이나 모두 부상을 입었다. 영은 천제현에게 치료를 받아 큰 문제는 없지만, 메이나는 상황이 좀 달랐다. 그녀는 음영성 최고 강자인 조로에게 공격당해 급소인 심장이 뚫린 데다 영마족 비술에 정통으로 맞았다. 천제현이 강력한 치유마력으로 상처를 진정시켰지만, 완치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무리하면서까지 맞설 수 있겠나?

상대편에는 강자들이 구름처럼 많다. 천제현이 대단하다지만 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인원이 몇이나 되겠나? 영과 메이나는 부상 때문에 완벽한 전투력으로 싸울 수 없다.

지붕을 가린 자홍색의 대형결계는 마치 하늘같았다.

악마의 문은 이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화초부터 나무와 산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수정처럼 변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예술품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오색찬란한 보석의 빛과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빛나고 있다. 이 모습 어디가 악마의 땅 같단 말인가?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이 초대형 결계는 수 천리 멀리 있는 영기를 한데 모아 독립적인 폐쇄 환경을 만들어냈다. 악마의 문 결계 내 영기는 외부세계의 수백 배다. 이렇게 하면 만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각종 진귀한 것들, 심지어 선품급도 배양할 수 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지?

새끼 여우가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좋은 물건을 발견했는지 천제현 몸 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흥분해서 소리를 냈다.

천제현은 이 여우가 다른 능력은 없어도 보물 찾는 데는 아주 탁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 짖어, 대체 뭘 발견한 거야?”

새끼 여우는 앞 쪽 몇 곳과 다른 방향의 몇 곳을 가리켰다.

“그만!”

천제현은 새끼 여우를 말렸다.

“우리는 쫓기는 몸이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좋은 것만 건져야 해!”

새끼 여우는 난색을 표했다.

여기 묻힌 보물들은 정말 괜찮은데.

여우는 인간처럼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결국 한 곳을 가리켰다. 영은 새끼 여우의 능력을 봤기 때문에 평범한 동물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메이나는 매우 놀랐다. 이 작은 짐승에게서는 어떤 마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털이 복슬복슬하니 작고 귀여워 그저 관상용 애완동물로 보였다.

“이렇게 영험한 애완동물이 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추격 부대가 곧 도착할거예요. 우리 빨리 움직입시다. 가요!”

지금의 메이나 상태로는 천제현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다. 그저 천제현의 지휘를 따를 수밖에. 세 사람은 새끼 여우가 가리키는 쪽으로 향했다. 그 끝에는 산골짜기 속 아주 기이한, 하늘을 떠받치는 것 같은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높이는 수백 미터 정도, 뿌리는 검은색, 줄기는 보라색, 가지는 붉은색, 나뭇잎은 녹색, 열매는 금색이었다. 머리부터 뿌리까지 모두 수정 모양인 이 나무는 영력을 왕성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수정 나무 가운데 다른 열매들과는 뭔가 다른 열매가 하나 달려 있었다.

마치 색깔이 다른 다섯 마리 교룡이 뒤엉켜있는 것 같은 열매였다.

메이나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이건 고서에 기록된 선품, 오색교룡과야. 3급 중품 선약 중 하나지. 다른 금색 열매는 금교과야. 오색교룡과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반선급의 진귀한 옥약이야!”

“뭐라고?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선약 하나만으로도 운이 좋은데, 반선급도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약이다. 만약 반선급 옥약 수십 개와 선약을 모조리 따간다면, 이것만으로도 천제현의 이번 일정은 헛되지 않다.

하지만 천제현은 눈앞의 이익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이런 진귀한 선품은 분명 영수가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부근에 인적 하나 없으니, 수상해요.”

메이나는 천제현이 조금 달리 보였다.

이렇게 거대한 유혹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300년 간 살아온 그녀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나이 어린 인간이 이렇게 침착하기는 쉽지 않다.

천제현이 영에게 말했다.

“우선 시험해 봅시다.”

영은 검고 긴 활을 꺼내 들었다. 손끝에서 강력한 에너를 뿜어내자 곧 불타는 검은 화살이 만들어졌다. 슉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오색과를 향해 날아갔다. 별다른 기운을 뿜어내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이 활은 사실 아주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다. 화령 강자라 해도 정면에서 막기 어려울 정도다.

검은 화살이 오색과를 명중시키려는 찰나, 오색선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금색 열매가 등불처럼 빛을 뿜어내 황금으로 만든 방어덮개를 만들어 냈다. 순간 검은 활은 먹물처럼 사라져 오색선수에 어떤 상해도 입히지 못했다.

강한 방어력이었다.

세 사람이 감탄하기도 전에 강력한 신식 파동이 태풍처럼 오색선수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신식, 그것도 현성급 신식이다.

천제현은 자신의 것보다 전혀 약하지 않은 신식에 깜짝 놀랐다. 이 신식은 천제현 무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수십 개의 금색 열매에게 달라붙었다. 신식이 주입된 모든 열매는 세차게 흔들리더니, 곧 오색선수에 달린 열매들이 땅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열매가 스스로 떨어지다니.’

세 사람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오색교룡과에서 땅에 떨어진 열매들에게로 오색 마력이 뻗어나갔다. 그러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강렬한 마력 빛 속에서 열매들의 형태가 제각각 변하기 시작하더니 수십 명의 괴물이 되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금색 괴물들은 머리는 교룡, 몸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화령급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고 있어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수십 명의 금색 교룡인간은 소환되자마자 바로 세 사람이 몸을 숨긴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색선수는 이미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약 근처에 왜 영수가 없나 했더니 자체적으로 강력한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구나.”

화령술사 경지에 가까운 괴물 수십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다니,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영이 연이어 수십 개의 강력한 검은 활을 쏘자, 그중 한 괴물이 활에 맞았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오색선과가 마력을 그 위로 쏘자, 금색 교룡인간의 상처가 금방 치유되었다.

“화령급에 가까운 괴물 수십 명은 상대하기 어려워. 게다가 불사신 같은 치유능력까지 갖고 있잖아.”

메이나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이 약은 손에 넣을 수 없어. 가자!”

악마의 문에는 진귀한 것들이 무수히 많으나 모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세 사람만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과감하게 포기하고 위험을 피하는 것이 낫다.

천제현이 헤헤 거리며 웃었다.

“당신들이 못가진다고 해서 나도 그런 건 아니죠. 가려면 가세요. 난 시도해 볼래요.”

천제현이 말을 마치고, 바로 두루마리를 펼치자 18명의 신혈강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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