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6
제616장 탈출
어찌됐든 메이나는 진령 8성 정점의 실력으로 진령 9성 문턱에 올라선 실력자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네간에서 일류급 강자에 속한다.
메이나는 근접전에 강하지 않지만 강력한 정신과 신식으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감지할 수 있다. 메이나 본인도 조심성이 매우 강하여 줄곧 암암리에 이들을 경계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 공격은 단순히 급소를 겨냥한 것만이 아니었다.
조로가 저주의 힘을 방출하자 메이나는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힘을 응집시킬 수 없게 된 메이나는 자신의 생명마력이 사라져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로, 네 이놈…….”
메이나는 공격을 받는 순간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차렸다.
자리에 있는 강자 중에서 기르단의 마력이 가장 높지만 이런 암살 능력을 갖진 자는 음영성의 부성주 영마 조로뿐이다.
이때 조로가 아무 기척 없이 메이나 등 뒤로 와서 오른손으로 주문이 가득한 장도를 쥐고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칼날 끝에서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분출되었다.
“방금 우리 성주가 어디 갔는지 물었지?”
조로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말해주지. 너희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암흑성은 공격을 받고 있었다. 우리 지역의 성주들이 연합하여 공격한 거지. 너희들은 끝났다. 완전히 끝났어.”
“이런 사악한 것들. 대체 왜 그런 짓을…….”
“네간에 이유가 어디 있느냐! 죽어라.”
“매영대법!”
메이나의 몸이 무수한 유령으로 변하여 조로의 봉인에서 빠져나와 매끄럽게 칼끝을 피했다. 이때 암흑성의 다른 일행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몰려들었다. 암마가 분노하여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주먹을 쥐고 돌진했다.
조로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암마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몸을 날려 쏜살같이 피했다. 동시에 장도로 암마를 몇 차례 공격했다.
그러나 암마는 방어력이 매우 강하여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영이 활의 정령을 방출하여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아무 기척도 없이 조로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가다가 환영으로 바뀌었다. 조로는 비술을 사용하여 이번에도 몸을 피했다.
암흑성 부대는 이 광경을 보고 모두 무기를 뽑으며 포위를 뚫고자 했다.
염마 기르단이 크게 웃었다.
“한 줌도 안 되는 것들이 저항하려고? 죽여라!”
염마성의 염마와 음영성의 영마, 다른 성의 암흑족, 악마족들이 달려들어 암흑성 부대를 포위했다.
메이나는 100미터도 못 가서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완전히 뚫린 그녀는 많은 피를 토했다. 악마에게도 심장은 급소이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내 장도에 찔리면 죽음을 면할 수 없어.”
영마 조로는 메이나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자이다. 게다가 메이나는 기습적으로 죽음의 마력이 담긴 저주의 장도에 급소를 찔렀다. 그러니 도망치는 걸 굳이 추격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메이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몹시 허약해진 상태로 도망칠 힘도 없었다. 암흑성 병사들은 여러 성이 연합하여 포위하자 점점 힘을 잃고 궤멸할 조짐을 보였다.
“투항하면 살려주겠다!”
기르단이 외쳤다.
“그러나 저항하면 이놈들과 함께 저승행이다!”
메이나가 초조해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갑자기 파문이 일더니 강력한 정신마력이 조로를 에워쌌다. 조로는 메이나에게 저항할 힘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정신마력에 휩싸이는 순간 조로는 지각을 잃었다.
“흥, 끈질기군. 그러나 의미 없는 저항이야!”
염마 기르단이 메이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무시무시한 마력이 화룡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암흑성의 암마가 이 모습을 보고 메이나 앞으로 달려갔다. 암마는 강력한 방어력으로 염마의 엄청난 공격을 받아냈다.
쾅!
거센 마력이 폭발했다.
암석으로 된 암마의 몸이 녹아내리면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메이나 역시 폭발의 여파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극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다시 공격을 받게 되자 메이나의 정신공격은 곧바로 중단되었다.
영마 조로는 정신공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암흑성의 또 다른 고수인 다크엘프 한 명이 이를 보고 눈알 형태의 정령을 소환했다. 눈 정령은 은신술을 깰 수 있어서 조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조로가 다크엘프 앞에 나타나 칠흑처럼 까만 장도를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칼에 다크엘프의 목이 잘렸다.
“안 돼!”
영이 소리를 지르며 화살을 쏘았지만 조로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암마와 기르단이 맞붙었다. 기르단의 마력은 진령 9성에 달했다. 마력으로만 치면 메이나보다도 더 강했다. 게다가 그의 무공은 거칠고 난폭하다. 몇 차례의 세찬 공격에 암마의 몸은 산산조각 났다.
엉망이었다.
전부 엉망진창이었다.
염마성과 음영성의 강자들이 선두에 나서 맹공을 퍼부었다. 영은 전투 중에 상대편 고수에게 중상을 입었다. 메이나는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다른 두 고수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당했다.
암흑성 정예부대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은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버티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기에 모두 저항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천제현은 마력이 가장 약하고 외부인이라 여러 성주들이 노리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공격하는 자들도 모두 각 성의 화령급 강자였다. 천제현은 전투력이 좋아 일대일 대결에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포위 공격을 당하니 힘이 부쳤다.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짜고짜 전투가 벌어지다니 네간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곳이었다.
휙!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음영성의 영마가 암영공격을 펼쳤다.
암영은 영마족의 강력한 비술이다. 영마의 은신술은 몹시 뛰어나 신식의 감지 능력도 피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천제현처럼 현성 경지에 오른 신식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울 경우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푸른 검광이 폭발하며 급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천제현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검광이 가슴을 스치며 눈부시게 부서졌다. 하마터면 천제현의 불멸체가 깨질 뻔했다.
천제현은 화가 치밀었다.
‘이 몹쓸 것들. 감히 나까지 죽이려 들어?’
영마족 강자는 첫 번째 공격에 실패하자 바로 다음 공격을 날렸다.
천제현의 두 눈동자는 이미 깊은 블랙홀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염마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천제현의 몸을 강타했다. 이번 공격은 화령술사의 방어력도 깨뜨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 그러나 천제현의 몸에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공격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힘이 천제현의 몸에 흡수되고, 나머지 힘은 성광체가 가볍게 튕겨낸 것이다.
“뭐지?”
영마가 예측한 결과는 이게 아니었다. 영마가 정신을 차렸을 때 천제현은 이미 신마검을 쥐고 강력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 가렵기만 하잖아! 내가 진정한 공격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천제현의 거친 검이 상대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 동강 난 시체가 100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꺼지라고!”
저 외지에서 온 인간이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모두 천제현을 전과는 다른 눈으로 봤다.
기르단과 조로, 다른 성주들도 천제현을 주목했다.
모두 놀라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천제현의 눈동자가 흰색으로 변했다. 천제현이 양손으로 공간파동을 일으켜 영과 메이나를 붙잡았다. 공간마력이 퍼지면서 영과 메이나가 순식간에 천제현 앞으로 붙잡혀왔다.
‘공간능력? 대단한 컨트롤이다!’
천제현의 눈동자가 다시 녹색으로 변하면서 정령이 생명의 힘으로 바뀌었다. 천제현의 양손에서 솟구친 생명의 힘이 영과 메이나의 몸으로 주입되었다. 영의 상처가 순식간에 완치되었다. 구멍 난 심장이 절반 이상 아물면서 메이나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생명능력? 엄청난 치유력이다.’
'천제현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암흑마수령이 정신을 차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천제현이 두 눈을 부릅뜨자 온몸에서 화염이 솟구치더니 거대한 방패로 변했다. 암흑마수령은 화염 방패에 부딪히자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협곡 아래로 추락했다. 암흑마수령의 몸은 온통 화염으로 뒤덮였다. 아무리 마력이 높아도 이 기이한 화염을 억누를 수 없었다.
천제현이 힘주어 숨을 내쉬며 화염을 토해냈다.
암흑거인 성주가 다급히 외쳤다.
“저 불에 닿으면 안 돼!”
천제현은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영과 메이나를 데리고 가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 적이 빽빽이 깔린 협곡을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천제현은 도망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마력으로 둘과 함께 악마의 문 앞으로 순간이동했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모두 정신을 차리고 맹공을 퍼부으려고 했다. 그러나 천제현이 한발 먼저 모습을 감추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염마 기르단이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어디에서 굴러온 놈이야!”
“걱정 마시오. 셋 밖에 안 남았잖소. 악마의 문으로 들어갔으니 놈들은 독 안에 든 쥐요. 여기만 지키고 있으면 빠져나갈 수 없소.”
영마 조로는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암흑성은 이미 포위되었으니 곧 함락될 거요.”
맞는 말이다.
세 명으로 뭘 어쩔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르단은 그들을 내버려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간족의 마력은 보잘것없소. 조금 전 공격으로 힘을 다 썼을 것이오. 게다가 암흑성 놈들은 중상을 입었소. 바로 추격해서 뿌리를 뽑아야지요!”
“옳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까맣게 그을려 볼썽사나운 꼴이 된 암흑마수령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사람은 천제현의 화염을 막을 수 없다. 이 암흑마수령은 유명화에 휩싸이고도 죽지 않고 중상을 입는 데 그쳤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역시 성주급에 해당하는 거물이었다.
기르단과 조로, 암흑거인, 암흑마수령이 화령급 강자 몇 명을 거느리고 앞장섰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나서서 천제현 하나를 추격하는데 놓칠 리 있겠는가? 어쨌든 악마의 문을 들어가야 한다. 악마의 문을 탐험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천제현까지 제거한다면 일거양득 아닌가? 기르단을 필두로 한 강자들이 잇달아 악마의 문으로 들어섰다. 나머지 병사들은 악마의 문 협곡을 물 샐 틈 없이 지키며 천제현이 나오면 즉시 포위 공격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