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
제615장 변고
악마의 문 시련 참가자들이 모두 암흑성 대전으로 소집되었다. 메이나와 영, 천제현 외에 늙은 다크엘프와 매우 둔해 보이는 암마(巖魔)까지 모였다.
출발하기 전 메이나의 설교가 있었다.
“성주께서 중상을 입고 시련에 참가하지 못하시니 우리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반드시 조심해야 해. 이번 시련은 너희 개개인의 기회일뿐더러 우리 암흑성과도 관련이 있어.”
“부성주님, 알겠습니다!”
“인간족, 넌 악마의 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일단 이 자료를 좀 봐. 악마의 문 시련에 참가하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 네가 이 기회를 헛되게 하지 않길 바란다.”
‘이거 태도가 너무 불손하잖아!’
평소 성격대로라면 천제현은 이미 메이나의 요염한 얼굴에 뺨을 한 대 올려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기회를 잡았으니 엄밀히 따지면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악마의 문 시련은 확실히 매우 귀한 기회이다. 게다가 천제현은 여자와 싸우지 않는 데다 메이나를 이긴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지 않기로 했다.
“다크엘프 금위군 5천과 암흑마 시위군 5천은 곧바로 악마의 문 협곡으로 출발하라.”
메이나가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떠난 후 만일을 대비하여 성을 전면 봉쇄하고 최고 경비 태세에 들어간다.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폐관실에서 성주님을 모시고 나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메이나의 얼굴에 요염함이 흘렀다. 사실 그녀는 아주 착실한 일꾼이었다. 이점은 기적성의 재무부장 델로리스와 비슷하다. 천제현은 암흑성에 온 후로 성주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메이나의 관리로 암흑성은 질서정연했다.
“출발!”
드디어 서큐버스 메이나와 영이 다크엘프 부대 5천과 암흑마 부대 5천, 총 만 명의 암흑성 정예병을 이끌고 악마의 문 여정에 올랐다.
천제현은 메이나가 준 자료를 읽었다. 자료에 의하면 악마의 문은 한 곳이 아니라 네간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악마의 문은 거의 대부분 닫힌 상태이며 어떤 계기와 규율이 맞물려 떨어질 때만 열린다.
악마의 문 안에는 고대에 남겨진 보물들이 가득했다. 악마의 문 안에 봉인된 공간은 태고의 옥토라서 여러 진귀한 약재들이 자랐고 그중엔 선약도 있었다.
천제현은 자료를 대강 훑어봤다.
악마의 문이 마지막으로 열린 건 160년 전이었다.
암흑성은 마지막 시련에 참가하여 일개 성으로 고대의 보물 10여 점과 선약 아홉 개를 획득했다!
네간의 악마의 문 유적에 어떤 내력이 있는지, 악마의 문이 어떤 이유로 세워졌는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는 악마의 문이 고대의 어떤 막강했던 종족의 사육장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악마의 문에 세상을 놀라게 할 비밀이 숨어 있으며, 네간계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무슨 이유든 간에 악마의 문 유적은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이다. 네간계의 여러 세력은 악마의 문을 두고 쟁탈을 벌였다.
천제현이 손가락에 침을 묻힌 후 거칠게 비볐다.
정말 좋은 곳이군.
악마의 문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는 뭔가를 생각해냈다. 그는 악마의 문의 내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악마의 문이 설마…….’
천제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전방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있던 메이나가 입을 열었다.
“도착했다!”
천제현은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 엄청나게 거대한 마력 덮개를 보았다. 수십 리에 달하는 공간이 덮개에 덮여 있었다. 백 리 밖에서라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이 결계가 바로 그 악마의 문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결계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맥과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화산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군!”
제아무리 천제현이라도 이렇게 큰 진을 구축하려면 어마어마한 힘을 쏟아야 했다.
사실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이런 대규모 진을 구축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진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범상치 않았다.
다시 말해 이 진은 네간인들의 진입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 뭔가가 유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네간 각지에 악마의 문이 있다.
각 악마의 문에는 네간을 덮는 대규모의 진이 구축되어 있다.
‘이렇게 방대한 진은 영기와 정기를 얼마나 가둘 수 있을까? 또 이 정도의 진이라면 얼마나 많은 자원과 힘을 소모할까? 대체 뭘 가두고 싶은 걸까?’
천제현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하하하, 암흑성에서 왔군. 너무 늦었소!”
메이나가 부대를 이끌고 악마의 문 협곡으로 들어섰다. 네간의 여러 부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말을 건넨 자는 염마(炎魔)였다. 염마 역시 고급 악마로 매우 희귀한 반원소 악마이다. 염마의 살은 마그마로, 피는 화염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다.
“저자는 염마성의 부성주 기르단이야.”
영이 천제현에게 소개했다.
“염마성은 이 근처에서 가장 강한 네간 성 중에 하나야. 실력으로 따지면 암흑성보다 강해. 기르단의 실력 역시 가늠할 수가 없지. 아마 메이나보다 훨씬 강할 거야.”
“암흑성은 항상 행동이 굼뜨군 그래.”
이번에는 건너편의 악마가 말을 건넸다. 그의 주위에 몽롱한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남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눈코입이 계속 바뀌었다. 그는 마치 신비로운 그림자에 가려진 듯한 모습이었다.
“암흑성 성주께서는 안 오셨군요. 상처가 아직 호전되지 않으셨소?”
음영성의 부성주인 영마(影魔)족 조로였다.
영마족 역시 고급 악마족으로 예측하기 힘든 강력한 힘을 지녔다. 이들은 네간계를 떨게 만드는 자객이었다.
천제현은 다른 성에서 온 부대를 훑어보다가 발견했다. 염마와 영마 같은 악마족 외에 암흑거인과 암흑마수령 같은 암흑족도 있었다. 네간계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종족들이 모두 모였다.
메이나는 영마 조로의 떠보는 질문에 아주 침착하게 미소를 보였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성주께서는 많이 좋아지셨어요. 다만 며칠 푹 쉬셔야 해서 이번 악마의 문 시련에 참가하지 못하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염마성과 음영성 성주께서도 안 오신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가요?”
“하하하!”
염마 기르단이 다시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의 웃음소리에 협곡이 진동하고 마그마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
“암흑성 성주께서 참가하지 않으시는데 우리 성주께서 참가하시면 공평하지 않지요. 우리들은 네간계의 동쪽을 장악하고 있어요. 매우 밀접한 관계라 한곳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죠. 그러니 의리 없게 암흑성을 섭섭하게 할 수는 없지요!”
영마 조로는 시끄러운 염마 기르단과는 달리 조용하고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작아도 모든 사람의 귓가에 또렷이 전달되었다.
“우리 성주께서는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이번 탐험에는 참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메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간계에서 감정을 들먹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악마의 문 유적은 수백 년에 한 번 열린다. 네간의 여러 성주들이 동시에 이 기회를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걸까? 메이나가 아직 이 문제에 답을 찾지도 못했는데 암흑거인 하나가 암흑성 대오에서 천제현을 보고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저…… 저건 지상 세계에 산다는 인간 아니오? 암흑성에 대체 언제부터 인간이 있었소?”
메이나가 마지못해 소개했다.
“이 자는 지상 세계에서 온 모험가로 현재 암흑성의 객원장로입니다. 성주께서 악마의 문 시련에 참가하시기 어려워 이 자로 정원을 채웠어요.”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데려왔다고요?”
“하하하, 암흑성에 그렇게 쓸만한 자가 없습니까? 인간으로 쪽수를 채우다니!”
네간의 토착 부족들은 대놓고 무시하며 거리낌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악마의 문 시련 참가자는 모두 화령기 술사들로 천제현 하나만 진령 5성이었다. 이러니 어떻게 무시를 안 당하겠는가?
메이나는 별로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천제현의 실력을 직접 보았다. 천제현은 마력이 높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지닌 데다 모든 실력을 다 보여주지 않은 것 같았다. 무시를 당할수록 중요한 시점에 비밀병기로 활용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암흑마수령이 나섰다. 이 종족은 호랑이 같기도 하고 표범 같기도 하면서 늑대 같기도 했다. 게다가 체구는 평범한 마수령보다 훨씬 컸다. 대륙의 마수령과는 완전 딴판으로 네간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마수령 종족 같았다.
“결계가 최고로 약해졌습니다. 악마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이곳에 수다나 떨자고 온 게 아니었다.
염마 기르단이 메이나를 쳐다봤다.
“그럼 시작합시다!”
부성주나 성주 급 참가자들이 군소리 없이 모두 오래된 석판을 꺼냈다. 석판을 전부 끼워 맞추니 완벽한 원판이 되었다.
모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래된 석판에서 잠들어 있던 강력한 마력이 방출되었다.
석판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 광선 한 줄기가 악마 협곡의 결계를 비추었다. 봄볕에 눈이 녹듯 결계가 점점 무너지며 커다란 입구가 나타났다.
이를 본 메이나는 흥분하며 기뻐했다.
악마의 문이 순조롭게 열렸다.
이번 유적 탐험은 암흑성에도 메이나 개인에게도 몹시 중요하다. 효과 좋은 선약을 몇 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성주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고, 메이나 자신의 정체되었던 마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
천제현은 악마의 문 안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임을 알아차렸다.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안에서 분출되는 영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악마의 문은 네간의 영맥과 화산이 모이는 곳에 세워졌다.
이곳은 뭔가를 봉인하기에 좋은 환경이군. 선약이 자라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야. 문이 열렸으니 들어가야 하나?
“악마의 문이 열렸습니다.”
마음이 급한 건 천제현뿐만이 아니었다. 메이나가 다른 참가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왜 안 들어가고 있어?”
어깨에서 졸고 있던 여우가 갑자기 뭔가를 감지했는지 깨어나서 천제현을 향해 가볍게 짖었다.
“뭐라고?”
천제현과 여우는 마음이 통했다. 여우는 뭔가를 감지하고 즉시 천제현에게 알렸다.
“살기가 느껴져!”
“하하하, 서두를 것 없소.”
염마 기르단이 기분 나쁘게 웃어댔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지요.”
메이나가 멈칫하며 물었다.
“그게 뭐죠?”
“악마의 문이 열렸으니 암흑성 참가자는 이제 쓸모없어.”
기르단은 조금 전까지 호쾌한 웃음을 보였던 모습과는 다르게 음험한 얼굴로 살기를 가득 뿜어냈다.
“이제 죽어줘야겠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메이나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장도가 아무 기척 없이 등을 관통하며 정확히 심장을 꿰뚫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