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
제610장 공간 광산
천제현은 신혈강시 18명과 새끼 여우를 앞세워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일주일 동안 네간 마을 10곳을 장악했고, 최소 2만 명에 달하는 하급 악마가 그를 위해 싸웠다.
천제현은 이따금 네간이라는 곳이 참 좋았다.
이곳은 능력 있는 자가 싸웠고, 싸우지 못하면 투항했다. 이런 일에 대해서 명예나 충성심을 따지지 않은 채 간단명료한 법칙이 적용되었다. 이곳은 본인이 상대보다 강하면 무슨 짓을 해도 허용되는 것처럼 약육강식이 네간 토착민에게 불변의 법칙처럼 자리 잡았다.
네간계에서는 약자는 강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니 누구에게 복종하든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까닭에 네간의 토착부족은 멸족의 위협을 받게 되면 지금 어느 세력의 비호를 받던 상관없이 본인에게 위협이 되는 쪽으로 바로 돌아선다. 네간의 법칙에 따라 항복하는 종족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되지만 약탈자인 두 세력 간에는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만약 대륙에서 네간계처럼 침략 전쟁이 이토록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전응국이 주변 지역을 진작 통일시켰을 것이다.
“수령님! 최근 저희가 얻은 전리품입니다!”
흰나비가 천제현 앞에서 예를 표했다. 이윽고 그녀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백옥처럼 흰 피부에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어린 나비악마 열 명이 수정석, 보약, 각종 신기한 보물 등을 두 손 가득 받친 채 천천히 들어왔다. 여기에는 천제현도 여태껏 본적 없는 네간 특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천제현이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진귀한 3급 성약 몇 개와 네간계의 희귀 재료들을 골라냈다. 그러던 중, 층층이 쌓인 전리품 가운데에서 수정으로 된 병 속에 있는 불꽃이 눈에 띠었다.
“어, 이건?”
이것은 그냥 평범한 불꽃이 아닌 연료 없이 연소할 수 있는 불꽃이었다. 그런데 주변 공간의 영기가 이곳에 응집되는 것이 마치 토납 기공을 수련하는 것 같았다.
흰나비가 설명했다.
“수령님, 이것은 지심진염(地心眞炎)의 불씨입니다.”
네간은 지하세계로 수억만 년 동안 화산과 용암호수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천지의 기운을 받은 영화(靈火)가 잉태되었다. 지심진염은 유명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따. 하지만, 이 온도가 굉장히 높은 진양화염(眞陽火焰)은 유명화와 성질이 조금 달랐다. 게다가 이것은 단지 불씨일 뿐이라 지금처럼 고도로 진화된 유명화가 이것을 삼킨다 해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제법 괜찮은 불씨이니 허투루 쓰면 안 되겠군.’
천제현은 남궁혜가 가진 불의 정령을 떠올렸다. 타고난 신급 봉황의 불은 영화와 필적할 정도이긴 했으나 봉황의 화염은 열반과 부활에 더 적합했다. 만약 강력한 화염으로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전투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좋아! 이건 이렇게 처리하자.’
천제현이 불씨를 챙긴 후 다른 것들도 한번 훑어보았다.
“다른 것들은 필요 없을 것 같군. 가져가서 다 같이 나눠 가져.”
“감사합니다. 수령님, 감사합니다!”
흰나비가 감격스러운 마음에 하마터면 바닥에 엎드려 천제현에게 절이라도 할 뻔 했다.
수령은 참으로 신비한 인물이다. 아무리 봐도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이 전리품은 모두 값진 것들이라 혼자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부였다. 설령 엄청난 재력가라고 하더라도 군침을 삼킬 게 분명했다.
그러나 수령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그냥 쓸만한 것 몇 개만 골라갈 뿐 나머지는 모두 부하들에게 하사했다. 이런 대범함은 평범한 인물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일을 잘 도와준다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때, 천제현이 돌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내가 말한 자료는 준비되었느냐?”
“수령님께서 분부하셨는데 어찌 잊어버리겠습니까.”
나비악마가 커다란 상자 몇 개를 들고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검은 옥간이 쌓여 있었다. 천제현이 아무거나 집어 들고 펼치자 빽빽하고 어지럽게 새겨진 악마의 문자와 기호, 주해가 보였다. 천제현이 말한 연금술 자료가 분명했다.
“좋군. 큰 도움이 되겠어. 잘했다!”
“수령님을 위한 일이라면, 저희에겐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흰나비가 말을 마치고 돌연 탐문하듯 물었다.
“여기에 있는 제 동족들은 모두 저희 마을에서 혈통이 가장 고귀한 나비악마입니다. 다들 자발적으로 수령님을 섬기고자 온 이들이지요. 수령님이 원하시는 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천제현은 갑작스러운 말에 살짝 당황했다.
나비악마는 이계 종족의 특성이 많이 띠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의 미적 기준에 부합했다. 나비 모양의 날개, 악마의 꼬리, 뾰족한 귀에다 백옥 같은 피부까지, 이계 종족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인간 나라의 웬만한 귀족이라면 모두 좋아할 타입이었다.
흰나비가 대놓고 유혹하려는 듯한 말을 꺼냈다.
“나비악마는 모두 수령님을 성심성의껏 모실 것이옵니다. 수령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저희들 중 누구라도 취하실 수 있어요. 물론 저도 포함되고요.”
“너희의 충심은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모로 바쁜 상황이니 너희는 이만 돌아가거라.”
“네, 알겠습니다!”
흰나비와 다른 나비악마들 모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천제현이 원하지 않는 이상 그녀들도 일단은 포기할 수밖에.
천제현이 미녀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는 이미 미녀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악마족 미녀에게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악마족과 암흑족은 모두 ‘박쥐’와 같은 종족이다. 지금은 그녀들이 천제현 앞에서 신하의 예를 갖추고 그에게 복종하는 것 같지만, 이는 순전히 천제현이 강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더 강한 인물이 나타나 천제현을 꺾는다면, 충성심에 불타오르던 부하들 모두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칼끝을 겨눌 것이다.
저들이 위협에 맞서 싸우든 이익을 앞세운 회유를 거절하든 상관없이 악마족이란 종족은 원래부터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종족마다 이례적인 사례가 존재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악마족은 권력과 부에 빌붙는 소인배였다. 천제현이 힘과 돈으로 저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더 이상의 힘과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네간 재료로 단약 몇 개를 제조하여 복용했다.
네간의 보약은 혼돈의 숲보다 가격이 낮았는데, 이는 재료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보약의 가격이 낮은 덕분에 평범한 마을의 하급 악마도 평균적으로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네간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땅도 매우 넓었다. 하지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적어 인구가 많지 않았다. 대륙의 제국 하나의 인구수보다도 적었다.
그러나 미발굴 지역이 굉장히 많아 네간은 미지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천제현이 이곳에서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천제현이 단약을 삼키자 마력이 팽창되는 걸 느꼈다. 진령 5성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폭군 숙영지에서 수탈한 연금술 서적을 꺼내 들었다. 사실 천제현도 연금술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연금술은 후대에 들어서 명맥이 끊기는 바람에 마치 샤먼교의 주술처럼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었다.
천제현이 아는 바로는 진정한 악마연금술은 심연세계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차원 시대의 서막을 열 즈음, 인간의 마력 과학기술은 이미 정점에 올라 있었다. 심연 안에서 악마연금술에 접촉했으나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고, 게다가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소수에 불과했다.
천제현은 마력 과학기술 분야에서 대현자에 속했다. 다만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든 풍부한 지혜와 시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전의 꽃을 피울 수 없다. 게다가 문명발전은 특수성을 가지므로, 지금의 시대에서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문명을 똑같이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천제현은 더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흡수하여 유일무이한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이다.
“수령님, 보고 드립니다!”
가고일 우두머리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천제현이 연금술 서적에 몰입해 있는 상태에서 방해를 받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이냐?”
가고일이 급히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수령님, 공간수정석 수집에 진전이 있어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찾았느냐?”
“찾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희가 광산을 찾았습니다. 공간수정석 광산이요!”
“공간수정석 광산?”
천제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 것이냐?”
“저희가 어찌 감히 수령님을 속이겠습니까? 정말 공간수정석 광산이었습니다. 다만 채굴하기가 녹록치 않을 거라는 게 문제지요.”
천제현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가자, 앞장서라.”
공간 재료는 대륙에서 가장 희귀한 재료 중 하나이다. 공간마력을 품고 있는 물건이라면, 등급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기적성은 전송탑을 건설하기 위해 도처에서 공간수정석을 수집했다. 그러다 결국 엘프와 협력하여 혼돈의 숲에 전송탑 열 댓 개를 세우고, 엘프 지역의 전송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기적성과 기적상회는 공간수정석이 대단히 많이 필요했다.
현재 엘프 역시 공간수정석을 소량만 겨우 공급할 수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적상회가 전송탑의 수량을 늘리려고 해도, 공간수정석이 부족하여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간 창고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으니 천제현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제현은 가고일을 따라 폭군 숙영지를 떠난 지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고일 우두머리는 머리꼭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령님, 보십시오. 이곳이 바로 공간수정석 광산입니다.”
공간 광석은 일반 광석과는 달리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 광산은 하늘, 심연과 같은 특정 환경에서 발견되며, 그 형태 역시 일반적인 광산과는 차이가 있었다.
천제현이 해당 구역에 가까이 가자 심하게 어지러운 공간 파동이 느껴졌다. 이럴 경우, 공간 균열이 존재할 수 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가고일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하늘 전체에 수정석이 촘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것들은 바깥에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짜 공간 광산은 내부에 있지요. 하지만 그곳에는 신비한 마수가 살고 있는데, 이를 본 사람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답니다.”
가고일이 공간 광석 쪽으로 날아가 잡으려고 하자 마치 어떤 허공에 손을 갖다 댄 듯 바로 스쳐지나갔다.
“수령님, 보십시오. 저렇게 떠다니고 있어도 결코 쉽게 얻지 못하는 물건이랍니다.”
공간광석이 존재한다. 이는 주변 공간의 파동만 봐도 알 수 있다.
가고일이 광석을 잡지 못한 까닭은 공간마력을 가진 광석이 공간을 굴절시켜 실제로 이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광석은 다른 위치에서 굴절되어 보이는 것이며, 허공둔 무공과 마찬가지로 다른 공간차원에 있는 것이라 이런 광석은 대부분 채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