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
제609장 폭군 숙영지
신혈강시 18명은 천제현의 핵심 전투력이었다.
모두 진령 6성의 마력에다 불멸불사의 존재라 절대적인 살상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신혈강시를 땅의 엘프가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노가 극에 달해 이성을 잃어버린 땅의 엘프들은 천제현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용병으로 개조한 전사들이 앞으로 돌격했고, 땅의 엘프들도 각종 무기를 들고 이를 도왔다. 용병의 사지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몸과 조화를 이루지도, 미관상 좋지도 않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신식 빙의.’
양측이 교전하려는 순간 천제현이 자신의 의지를 신혈강시들에 불어넣자, 신혈강시들이 거의 동시에 청백색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신혈강시는 이미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유명화까지 더해졌으니 조악한 연금마수 몇 마리나, 개조된 용병들 백여 명이 덤빈다 한들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신혈강시가 연금마수를 향해 주먹을 날리자마자 연금마수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었다. 거기다 유명화까지 연이어 방출되니 연금마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펑!
용병이 육중한 형태로 개조된 팔을 들어 신혈강시를 뒤에서 급습했다.
그러나 신혈강시는 미풍이 스쳐 지나간 반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습한 용병이 꼬리 밟힌 고양이마냥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유명화가 그의 팔을 따라 삽시간에 전신으로 번졌고 아주 짧은 시간에 화염에 완전히 잠식되었다.
방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없어지다니.
게다가 공격한 당사자가 말이다.
신혈강시는 원래부터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여기에 유명화까지 더해지니 번개와 같은 빠르기로 순식간에 상대 진영을 뚫고 지나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연금마수든 용병이든 모두 처절한 비명과 함께 공중에서 재가 되어 버렸다.
이에 비하면 용병들의 공격과 방어는 모두 장난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천제현 등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파죽지세로 적을 초토화시켰다.
“죽여라! 저들을 죽여!”
엘프 노인이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여 소리치자 땅의 엘프들이 허둥지둥 무기를 꺼내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 손안의 기괴한 관 형태의 장치에서 보라색 수정 가시가 마치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는 땅의 엘프가 만든 수정가시총이었다.
땅의 엘프가 제조한 무기는 대부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주로 높은 마력을 함유한 수정가시를 발사하여 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수정가시도 연금술을 통해 만든 것이라 물체를 뚫는 힘이 대단했다. 적의 호신 마력 혹은 호신 무공을 뚫고 들어가 폭발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신혈강시들은 이런 공격 따위는 안중에 두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공격에 방어하고자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저들이 아무리 무차별 공격을 가해도 신혈강시들의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대포! 대포를 준비하라!”
땅의 엘프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면서 대포를 발사했고, 거대한 포탄이 신혈강시에게 떨어졌으나 화염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왔다. 피부 표면에 작은 생채기가 났지만 이마저도 금세 회복되었다. 신혈강시는 이런 시시한 공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공격해 나갔다.
모두 불사의 괴물이다.
신혈강시들이 거침없이 땅의 엘프 진영으로 돌진했다. 이 괴물들이 부딪히는 것마다 전차, 탱크, 대포할 것 없이 모조리 부서졌다. 주먹 한 번에 초주검이 되거나 두 세 조각으로 절단 나 진짜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이젠 정말 두렵기까지 했다.
이계 종족이 약하지 않다는 것은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터무니없이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본래 그를 잡아 생물재료로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무기로 만들려고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폭군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용병들도 모두 혼비백산 뿔뿔이 흩어졌으며, 땅의 엘프가 수년 간 고생하여 만든 무기와 장비들도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재주는 다 부린 거야?”
천제현이 팔짱을 낀 채 마치 재미있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엘프들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언짢은 듯 말했다.
“이거 실망인데, 너희가 뭔가 신선한 걸 가지고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됐어. 난 긴말하는 거 딱 질색이니 거두절미하고 물어보지. 순순히 항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 선택해!”
흰나비 등 다른 촌장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들은 이제야 천제현의 진짜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폭군을 단박에 반 토막을 내고 총칼로 뚫을 수 없고 죽지도 않는 전투 꼭두각시까지 소환할 수 있다. 게다가 옆에 붙어 있는 저 작은 동물조차도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경악할 만하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자신들이 빨리 항복했기 망정이지 그의 분노를 샀다면 마을이 삽시간에 불타 없어졌을 것이다.
“이 침입자 놈아! 이런 쳐 죽일 간신배 같으니! 네놈이 고작 이런 재주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엘프 노인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러댔다.
“우린 암흑성의 비호를 받고 있다. 네놈이 감히 우리를 건드렸다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암흑성은 너희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디 한번 나를 공격해 보거라!”
천제현이 훌쩍 뛰어올라 바로 엘프 노인 앞에 섰다.
그의 검기가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자 엘프 노인이 수십 미터 밖으로 나가 떨어졌고, 이어서 화염이 그를 덮쳐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쉴 새 없이 조잘대며 날뛰던 자가 단 일초 만에 흔적도 없이 불타 버렸다.
“또 누가 할 말이 있지?”
천제현이 땅의 엘프 전차에 올라 황제가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굽어보듯 쳐다보며 말했다. 타고 나기를 서글서글하고 자유분방한 그가 이토록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다니. 마치 사람 자체가 아예 바뀐 것 같았다.
“어서 나오너라!”
땅의 엘프의 사기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항복하겠습니다. 항복하겠어요!”
숙영지의 우두머리 모두 목이 달아난 마당에 누가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땅의 엘프 모두 항복하였다.
이 외부인이 혼자만의 힘으로 수천 규모에 달하는 엘프 부대를 격파하고, 이들을 항복시켰다.이런 일은 네간계 통틀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 암흑 땅의 엘프는 숙영지 전체에서 영향력 있는 세력이 아닌가.
천제현은 흰나비 등에게 명령하여 부대를 소집한 후 친히 그들을 이끌고 암흑 땅 엘프의 폭군 숙영지로 갔다. 그는 네간계에서 세력 기반이 없는 관계로 한동안 암흑성에 입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하급 악마의 마을처럼 작고 약한 곳이 오히려 그가 거점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폭군 숙영지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혼돈의 숲을 기준으로 보면, 중간 정도의 도시 규모에 속했다.
폭군 숙영지를 본 천제현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곳은 대단히 특별한 곳이었다. 암흑 땅의 엘프 숙영지도 전체가 기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에서부터 바깥쪽까지 구리로 된 파이프가 깔려 있었다. 여기에 마력이 이동하면서 숙영지 전체를 보호하는 것 같았다. 숙영지를 둘러싼 장벽에도 암흑 땅의 엘프가 발명한 기계와 장치, 장총 및 대포를 배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그러나 땅의 엘프가 보유한 과학기술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켰다.
폭군 숙영지의 배관을 통해 악취가 나는 오염물이 주변의 호수로 유입되었고, 그 일대에 움푹 파인 구멍 안으로 초록빛을 띤 산업 및 연금술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울긋불긋한 이끼들이 사방에 깔렸고 숙영지 안에 있는 수십 개의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배출되고 있었다.
천제현은 이점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어차피 임시 거점이라 생각하여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천제현은 암흑 땅의 엘프가 저항할 것을 염려하여 장벽으로 순간 이동한 다음 신혈강시를 이용하여 저항하는 모든 엘프들을 제압했다. 대군을 이끌고 숙영지에 들어선 천제현은 암흑 땅 엘프의 집집마다 간이 연금술 공방이 있는 걸 발견했다. 숙영지 안에는 대규모 실험실, 각종 기계 작업장 등이 즐비했으며 땅의 엘프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한 종족은 물리적인 힘을 발전시키고 약한 종족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법이다.
땅의 엘프는 안쓰러울 정도로 약한 종족인 데다 성장 잠재력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네간계에서 기술의 힘으로 지위를 얻게 되었으니 이 부분만큼은 높이 살만했다.
“이 숙영지는 이제부터 내가 다스릴 것이다!”
천제현은 침입자 신분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내 말이 곧 법이다. 날 음해하려는 자는,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네!”
“수령님으로 받들겠나이다!”
촌장들과 땅의 엘프족 고위 인사들 모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네간계에서는 강자가 곧 법이었다. 어느 곳에서든 힘이 우선이었고 이것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과연 누가 천제현 보다 강할까? 네간계에서 천제현이 숙영지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천제현이 불법 침입자임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폭군 숙영지에는 암흑 땅의 엘프 1만 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비록 암흑 땅의 엘프에게 전투력이 없다고 해도 모두 뛰어난 기계 엔지니어인데다 악마의 연금술까지 알고 있다면, 이들의 실력은 충분히 발전시켜나갈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더 많은 마을과 숙영지를 공격하여 더 많은 사람과 영토를 빼앗는 것이다! 둘째, 공간수정석을 수집해 오거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천제현은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고는 인근에 있는 크고 작은 마을과 숙영지를 표시했다. 천제현은 가장 먼저 점령해야 할 목표 지점 수십 개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천제현이 물었다.
“이견이 있는가?”
“수령님께서 네간 종족이 아니라 여기 규칙을 잘 모르시나 봅니다. 병력을 남용하여 영토를 확장하다가 엄청난 재앙이 닥칠까 염려되옵니다!”
흰나비가 나서서 충고했다.
“이번에 폭군 숙영지를 빼앗은 것으로 암흑성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약 계속 막무가내로 확장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천제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건 너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너희는 오로지 내 명령에만 복종하면 된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더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물론 대단히 위험한 계획이지만, 어쨌든 수령의 화염에 불타 죽는 것보단 나았다.
네간 사람들에게 천제현은 악마보다도 무서운 존재였다. 그들이 쉽사리 이견을 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천제현도 흰나비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제현은 네간에서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일을 진행한다면 안정적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기적성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 이왕 하기로 한 이상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