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8
제608장 암흑 땅 엘프의 비극
암흑 땅의 엘프가 부대를 이끌고 왔다.
맨 앞줄에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암흑 괴물이 포진해 있었다. 체형과 체급 모두 제각각인 데다 대부분 살갗이 회색과 검은색이었다. 사지가 뒤틀린 데다 머리 세 개, 팔 여섯 개를 달고 있어 마치 여러 생명체를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이는 어떤 종에 속해 있지 않은, 일종의 합성 생명체였다.
“연금마수!”
나비악마가 이 생명체를 알아봤다.
암흑 땅의 엘프는 악마 유적을 발굴하여 악마의 과학기술을 손에 넣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설의 연금술이었다. 연금술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비롯된 기술로, 생명의 비밀을 풀고 불가사의한 것들을 기적처럼 창조해낼 수 있다고 한다.
연금마수는 암흑 땅 엘프가 연금술로 만든 암흑괴물이었다.
암흑 땅의 엘프는 본래 약한 종족이나, 네간계에서 꽤나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이는 암흑 땅의 엘프가 네간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아예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었다.
쾅!
이때 범상치 않아 보이는 합성괴물이 걸어 나왔다. 녹아내린 밀랍인형처럼 흉물스러운 생김새를 가진 다른 연금마수와 비교하면, 이 괴물은 꽤 정상적으로 생긴 편이었다. 중간 정도 되는 키에 건장하고 단단한 체구, 울룩불룩한 종기가 피부 전체를 뒤덮고 있었으나 금속광택을 띠고 있었다. 뼈가 여기저기서 반대로 자랐고, 괴기스러운 두 눈동자는 선홍빛으로 반짝였다. 기이하지만 강력한 기운이 온몸에서 방출되었다.
“폭군!”
“폭군이다!”
나비악마가 이 합성생물체를 보자마다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폭군이 원래 있던 곳은 고대의 폐허였으나, 암흑 땅의 엘프가 점령한 후 숙영지로 발전시켰다. 이 암흑 땅의 엘프는 연금술 중에서도 특히나 복잡한 생물체의 합성에 능해 다양한 생물을 무시무시한 암흑괴물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폭군은 숙영지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숙영지의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되었다.
폭군은 가장 신선한 고급 악마의 사체에 살아 있는 생명체 10여 종을 합성해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폭군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운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현재 암흑 땅의 엘프에게 동일한 재료를 준다고 해도 두 번째 폭군을 합성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폭군은 가공할 전투력과 상대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졌고, 암흑 땅 엘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바로 이 암흑 땅 엘프에 절대 복종하는 폭군이 나무협곡 공격을 위해 출동한 것이다. 나비악마는 암흑 땅 엘프가 이토록 천제현에게 관심을 갖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폭군을 필두로 한 연금마수의 뒤에는 암흑 땅 엘프가 고용한 용병들이 있었다.
이 용병은 네간의 여러 지역에서 온 강한 전투력을 지닌 암흑족과 악마족이었고, 이중 영마족과 한마족 등 중급 악마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네간 용병은 모두 암흑 땅의 엘프가 개조한 병사였다.
암흑 땅 엘프는 애초부터 비용과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신체 건강한 자들을 바로 모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장애나 중상을 입은 용병을 높은 가격에 고용하여 악마의 연금술을 통해 취약한 부분을 보완했다.
따라서 용병도 생김새가 하나같이 괴이했다. 연금술로 빚어낸 용병의 신체 각 기관은 예전보다 약하지 않았고, 여기에 갖가지 불가사의한 기능이 더해졌다.
마지막 줄에는 암흑 땅의 엘프들이 서 있었다.
암흑 땅의 엘프측 군단은 총 2천여 명 정도로 그 수가 많지 않았으나 공중을 부양하는 무륜차, 바퀴 두 개 달린 오토바이, 육중한 캐터필터를 장착한 거대한 대포 등 각종 신기한 전쟁 무기를 동원했다.
또한 이들도 총기와 유사한 무기를 들었으나 천제현이 제작한 마력 병기와 크게 달랐다.
암흑 땅 엘프의 과학기술은 악마의 연금술과 고대 엘프의 전승 기술 등에서 비롯되었다. 연금술이 일종의 심오한 학문이라면, 전승 기술은 단순한 기계 동력에 관한 학문이었다. 땅의 엘프족 선조는 과거 이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지상세계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학문을 이곳에서 볼 수 있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땅의 엘프의 기계학은 지상의 인형술, 천제현의 마력 과학기술과 차이를 보였다.
이 기계학은 순수한 물리 과학에 더 가까웠다. 즉, 땅의 엘프는 지극히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 부품을 기초로 하나의 기계로 조립하여 운전하는 데 능했다. 다만 이것이 가진 단점은 어떠한 법술 도움 없이 오직 기계의 물리적 운동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밀한 기계일수록 쉽게 고장이 나는데, 부품 1~2개의 고장으로 기계 전체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인형기관술은 부적과 조종이 핵심이 되는 일종의 전투용 비술에 속했으며, 마력 과학기술은 마력진이 핵심이 되어 구동하고 배치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땅의 엘프의 순수 기계학은 미래에 전파할 가치가 없지만, 땅의 엘프족이 보유한 정밀 기계 제조 능력 자체는 높은 가치가 있었다. 천제현은 이미 대주국에서 영입한 기관술 분야의 인재와 함께 여기서 기계 설계사까지 얻을 수 있다면, 운문의 마력 과학기술과 결합하여 조금 더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백발이 성성하고 온몸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땅의 엘프 노인이 늠름한 모습으로 엘프 탱크에 앉아 있었다. 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땅의 엘프는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다. 10초를 줄 테니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나무협곡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세느라 괜히 시간 낭비 하지 마!”
무미건조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천제현은 험준한 나무협곡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나비악마, 가고일, 뿔악마, 그린고블린 등도 잇달아 나타나더니 천제현 뒤에 떼 지어 섰다. 폭군 숙영지와 사투를 벌일 각오를 한 모습이었다.
암흑 땅의 엘프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이 네 마을이 서로 싸운 게 아니었어? 어째서 함께 있는 거지? 게다가 저 이계 종족은 뭐야? 저놈은 언제 깨어난 거야? 지금은 또 무슨 상황이고?’
엘프 노인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보고도 모르겠어? 난 사장이고, 얘들은 내 밑에서 일하는 중이지.”
천제현이 암흑 땅의 엘프를 멀찍이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고철 덩어리에, 구역질나게 생긴 괴물에, 사지 불편한 용병까지. 고작 이런 것들로 감히 내 구역에서 날뛰는 거야?”
‘이 잠깐 사이에 이곳이 저 이계 종족의 영토가 되었다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암흑 땅의 엘프는 저 위험한 이계 종족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총과 칼로 뚫을 수 없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비롯하여 뭇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화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무한한 가치를 지닌 생물재료이니, 폭군보다 더 대단한 합성생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땅의 엘프가 차갑게 말했다.
“네간에 침입한 외부자여, 무슨 자격으로 이곳의 주인이라고 하는가? 얌전히 투항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엘프탱크의 대포가 위로 솟아오르면서 내는 굉음이 다음 말을 대신했다.
기다란 대포 속에서 포탄이 발사되었다. 땅의 엘프는 마력 과학기술에 아는 바가 없었지만, 방금 발사한 포탄은 마력 강도가 대단히 높은 수정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포탄이 한 발만 떨어져도 나무협곡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쾅!
천제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기가 빠르게 방출되더니 포탄을 공중에서 폭발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폭풍과도 같은 충격파가 일었고, 주변 일대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런 고철 덩어리를 감히 내 앞에 놓으려고?”
천제현이 깔보듯 코웃음을 쳤다.
“마력 중형포를 가져올 수만 있었다면 진작 너희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을 텐데!”
물론 천제현도 암흑 땅 엘프의 전차와 탱크에 흥미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땅의 엘프가 가진 무기는 품질이 매우 떨어진다. 실제 수정석을 탄약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나가고 위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 수정석은 통제가 불가능하여 위험도도 대단히 높았다. 또한 천제현, 비비안과 같은 공간조종 고수를 만나면, 이런 무기의 탄창 정도는 손도 대지 않고 폭발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반면에 기적상회의 마력 무기는 이러한 위험요소가 없다.
마력 무기는 자체적인 마력원인 마력 전지를 가지고 있다. 이 마력 전지는 안정적이라 마력진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안전상의 우려가 크지 않다. 더욱이 마력 무기는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며, 초기의 마력 대포라 하더라도 이런 무기 2~3개 정도의 위력에 맞먹는다.
땅의 엘프 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큰소리치기는 너무 일러!”
이때, 초월급 합성생물인 폭군이 걸어 나왔다. 폭군이 발산하는 마력과 기운으로 볼 때 화령 고수급에 상당한 생물무기였다.
“일대일로 붙자고?”
천제현이 두려운 기색 없이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나야 좋지!”
“폭군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군?!”
땅의 엘프 노인이 거슬릴 정도로 비아냥댔다.
“폭군의 본체는 고급 악마족 고수다. 연갑마의 사체에 10여 종에 달하는 생물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위대한 생명체지. 이 폭군은 진령 7성의 전투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방어능력도 진령 9성에 이를 정도다. 게다가 전투 기술도 수십 가지나 알고 있지. 그런 폭군을 네놈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느냐, 네놈은 그저…….”
“종알종알 말도 참 많네!”
천제현이 그의 말을 잘랐다.
“무상공검지!”
피식.
이 순간 위용을 자랑한 폭군의 전신이 흔들리더니 무형의 검날이 폭군의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베었다. 풀썩! 반 토막난 폭군이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화려한 장면이나 눈을 뗄 수 없는 요란한 광경이 아닌, 종이 자르듯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적막이 흘렀다.
장내 사람들은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빌어먹을! 꿈을 꾸는 건가?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무상검으로 마력이 절반 정도 소진되었지만, 효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천제현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죽거렸다.
“그냥 살짝 힘만 줬는데 이렇게 죽어 버렸네. 네 말이 맞군 그래. 저걸 다치게는 못했으니 말이야!”
“네, 네놈이…….”
“저놈을 죽여라! 저놈을 죽여!”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땅의 엘프가 집단으로 폭주했고, 다른 연금마수와 용병들도 명령에 따라 일제히 달려들었다. 천제현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두루마리를 꺼내들었다. 그가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봉인된 18개의 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새끼 여우도 더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순식간에 정령 6개와 3급 마수 6마리를 소환했다.
싸우자고? 좋아.
네간 토착부족에게 이 어르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지.
천제현은 무상검도 시전했고 신혈강시 18명도 모두 소환하였다. 천제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우물 안의 개구리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