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07화 (607/729)

# 607

제607장 수령 천제현

“무슨 무공이나 비술을 펼친 것도 아닌데!”

뿔악마와 그린고블린이 어느 방향, 어떤 각도에서 공격해오든 일정한 범위 안에 진입하기만 하면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저절로 불에 타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자연발화.

청백색 화염이 체내에서 체외로 삽시간에 온몸을 삼켰다. 악마의 강인한 몸은 본래 불 원소 마력에 내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온기라곤 전혀 없는 화염에는 오히려 얇고 투명한 매미의 날개처럼 손쉽게 바스러졌다. 순식간에 살과 뼈가 모조리 없어지고 한 줌의 재만 남았다.

강한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뿔악마, 그린고블린이 불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천제현을 죽이러 달려들었으나, 결국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잿더미로 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아무리 잔혹한 네간 토착민이라도 전투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천제현이 무언가 신기한 방법을 쓴 것 같아 보이지만, 원리만 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심화(心火) 공격은 현성의 경지에 오른 신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천제현이 뿔악마와 그린고블린이 돌진해올 때 저들도 모르는 사이에 신식으로 유명화의 불씨를 심은 것이다. 유명화가 얼마나 정확한가? 이 화염은 마력과 마력을 완전히 태운 후 더욱 맹렬하게 불타오르니 아무리 단단한 통뼈라고 해도 이런 공격에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되겠어. 너무 강하다!”

하급 악마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런 괴물을 잡겠다고? 평소 같았으면 가능한 멀리했을 것이다.

그린고블린, 뿔악마, 가고일 우두머리도 지배자가 되겠다는 천제현의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이계 종족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

“도망가려고?”

천제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우두머리가 있는 위치까지 도약했다. 가고일, 뿔악마, 그린고블린 우두머리는 반응할 새도 없이 흰색 나비악마 곁으로 잡혀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 명의 우두머리는 놀란 마음에 허둥대기 시작했다.

천제현의 몸에서 백색 수정과 같은 화염 네 개가 피어올라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천제현이 양손으로 살짝 밀쳐내자 백색의 화염 연꽃이 그들 몸속으로 파고들었고, 이내 피부 표면에서 저주의 표식인 ‘주인(呪印)’이 나타났다.

우두머리들의 얼굴은 핏기마저 사라졌다. 이 이계 종족이 다루는 불은 작은 불꽃마저도 위력이 대단한데, 방금 그가 응집한 화염 연꽃의 위력은 또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천제현은 한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마치 친구와 농담하듯 말했다.

“이건 내가 발명한 심화 주인이야. 방금 내가 유명화를 너희 몸속에 넣고 봉인해 버린 거. 그렇다고 너무 벌벌 떨 건 없어. 봉인된 상태에서 유명화가 너희한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헌데, 내가 생각을 약간만 바꿔 먹으면 너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재로 변하겠지.”

“이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뿔악마 우두머리가 공격 태세를 취하자 갑자기 등에서 작열감이 느껴졌다. 이내 주인에서 빛이 나더니 여기에 봉인된 유명화가 곧 분출할 것처럼 피어올랐다.

“아, 주의를 준다는 게 깜빡했네.”

천제현이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심화의 주인 안에 신식이 녹아 있어 내 생각에 따라 주인이 반응하지. 네놈이 내게 살기를 품으면 봉인이 느슨해지고, 공격이라도 했다간 내게 닿기도 전에 넌 새까만 재로 변할 거야. 그러니 괜히 기습하려고 힘 빼지마.”

네 명의 우두머리 모두 사색이 되었다.

세상에 이토록 잔악한 무공이 또 어디 있을까?

심화의 저주로 인해 이 네 사람은 천제현에게 목숨을 담보 잡힌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게다가 천제현에게 살기를 품으면 주인의 봉인이 풀어져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니! 이처럼 노예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천제현이 이런 비술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먼저 그가 고금을 막론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비술을 만들고 심법을 연구하는데 누구보다 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죽음의 설원에서 고대 빙천의 의지를 삼킨 후 신식뿐만 아니라 화염을 더욱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이제 천제현은 유명화와 한 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항복하든가, 그냥 이 자리에서 죽든가, 결정해!”

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끝내 체념하고는 다 같이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희가…… 항복하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물론 예상한 일이긴 하지만.”

네간은 암흑족과 악마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천제현은 암흑족과 악마족의 천성이 교활하고 간사하고 잔인하고 문란하고 믿을 수 없는 종족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곳에서는 재물과 감화만으로는 확실한 구속력을 갖기 어렵다.

천제현은 이곳에 이제 막 왔으니, 세력 기반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따라서 그는 오로지 공포심 유발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이들의 명줄을 틀어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악마족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네간계에서 약자는 강자에게 복종한다. 이는 그들 세계에서 불변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기개나 패기는?

이는 네간에서 찾아보기 굉장히 힘들다. 특히 약소부족일 경우 더욱 그러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즉각 항복을 선택한 것이다. 천제현이 이 지역의 상황을 들은 바로는, 그리 크지 않은 숲에 수많은 세력이 몰려 있고, 저 네 부족은 인근에서 가장 흔한 세력에 불과했다.

‘역시 약골이었어.’

나비악마, 뿔악마, 그린고블린, 가고일 등 네 개 종족은 서로 맞닿아 있어 사건이나 정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사실 이 부족들 모두 강한 세력이 아니라 혼돈의 숲에 떨궈놓으면, 어둠 숲의 법을 감히 위배할 수 없는 약소세력이었다.

거기다 이 네 부족 중 진령급 술사는 손에 꼽힐 정도로 극히 적어 천제현은 이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천제현이 여기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 네간의 토착부족 세력이 상당히 균일하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성년이 된 악마족은 모두 상당히 강한 혼성급 마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네간계에서 가장 평범한 토착민이 약간의 훈련만 더하면 바로 대륙에서 일류 사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암흑족과 악마족은 타고난 전사로서 지상에서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천제현은 네간계라는 군대 하나를 얻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숲은 암흑성의 영토 범위에 있다.

암흑성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지하성으로, 인구가 수백만에 달한다. 이 강력한 세력이 영향을 미치는 마을과 부족은 암흑성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으로 보아, 네간계와 지상의 세계가 큰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혼돈의 숲과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천제현은 이곳에 전송탑을 하나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간에는 지상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 자원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지상에도 수많은 자원과 재화가 있다. 만약 이를 네간계로 운송할 수 있다면, 분명 큰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기적성에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네간에서 지표면까지 직선거리로 따지면, 400km 이상이다.

게다가 이 사이에는 두꺼운 암석층, 화산 용암층, 마력 광산, 무중력층 등이 있어 기적성의 통신 신호가 아무리 잘 터져도 전송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네간계에 통신을 구축한다고 해도 현재의 통신 기술로는 지상과 연결할 수 없다.

아가씨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천제현은 재료를 수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네간계에 자원이 풍부하니 방법은 생길 것으로 자신했다. 게다가 여기까지 어렵사리 내려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천제현은 나무협곡에서 가장 큰 방안에 앉았다. 나비악마, 가고일, 뿔악마, 그린고블린의 주요 인물들이 그 앞에서 일렬로 서 있었다.

“내가 있는 지상의 세계는 법을 중시하는 문명화된 세계다. 그러니 너희가 규칙을 잘 지키면, 굳이 괴롭히진 않을 거야. 우선 간단하게 각자 마을에 대해 알려줘.”

흰색 나비악마가 나와서 말했다.

“수령님, 저희 나비악마 마을에는 4천 명 이상이 살고 있고, 거의 모두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청장년층이 3천 명 가까이 되지요.”

뒤이어 각 부족의 촌장이 말했다.

“그린고블린 마을에는 5천여 명이 있고, 청장년층은 3~4천 명 정도입니다.”

“가고일 마을도 4천 명 이상이고, 청장년층도 3천 명 정도입니다.”

“뿔악마 마을에는 6천여 명이 있으며, 이중 5천 명 이상이 강인한 전사들입니다!”

“음, 썩 괜찮은 편이군!”

천제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흰색 나비악마 촌장을 보며 말했다.

“너희 그 악마라는 이름은 듣기가 참 거북하군. 인간의 이름을 줄 테니 오늘부터 흰나비라 부르겠다.”

흰나비가 기뻐하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수령님!”

나머지 세 부족의 촌장은 수령이 나비악마를 더 챙길 거라는 생각에 질투 섞인 기색이 표정에 묻어나왔다.

“좋아, 너희는 잘 들어라.”

천제현이 일어나 선포했다.

“오늘부터 너희를 이끌고 영토, 자원, 인구를 강탈하여 세력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데, 나를 따르면 너희에게 눈부신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힘을 꾸준히 키워나가면, 암흑성을 손에 넣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좌중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뭐라고? 암흑성을 손에 넣는다고?.’

‘저놈 실성한 거 아니야?’

촌장들은 가슴을 졸였다. 이런 미친놈을 수령에 앉히다니, 아무래도 이번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 천제현은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훑어보기만 했을 뿐,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천제현이 도시를 점령하는 방법이야 널렸다. 네간에서 기적성과 연락할 수만 있다면, 기적상회의 힘으로 암흑성을 점령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좋다! 우선 단기 확장 계획을 알려주겠다!”

천제현은 지도를 꺼내 자세히 보기도 전에 나비악마들이 다급한 듯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암흑 땅의 엘프가 군대를 대거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저들 중 고수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좋은 일로 오는 건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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