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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603화 (603/729)

# 603

제603장 네간계 입성

10여 분 후, 니크론성 감옥이 발칵 뒤집혔다.

“여기, 여기 빨리 와봐! 네간 첩자랑 지상세계 도둑이 사라졌어!”

탈옥 소식은 날개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니크론성 전체로 퍼져나갔고, 곤충령 전사들이 즉각 발 벗고 체포에 나섰다.

하지만 성 전체를 뒤집어엎어 탈탈 털다시피 했는데도 탈옥수들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나는 다크엘프고 다른 하나는 지상세계 생물, 운 좋게 감옥에서는 빠져나갔다 해도 어딜 가든 단번에 눈에 띌 텐데 무슨 수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말인가?

“총지휘관님, 땅 위에서 온 놈한테 공간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미…….”

“닥쳐!”

총지휘관으로 보이는 곤충령 장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니크론성 곳곳에 설치된 신식 간섭장벽 때문에 성 밖으로 전송은 불가능했을 거다. 게다가 상처까지 입었으니 더더욱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 찾아내, 못 찾아내면 네놈들 목이 대신 날아갈 줄 알아라!”

“하지만…….”

총지휘관이 뿜어내는 살기에 토 달 생각이 싹 사라진 곤충령이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예,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성 안팎을 샅샅이 수색하겠습니다.”

“잠깐!”

뭔가 떠오른 듯 총지휘관이 부하들을 불러세웠다.

“첩자 놈은 네간으로 돌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중앙통로 관문의 경계를 강화해라.”

총지휘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충족 곤충령 몇몇이 허겁지겁 날아 들어와 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총지휘관님, 관문이 정체불명의 놈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뭐라?!”

총지휘관이 노발대발 소리쳤다.

“만 명이 넘는 최정예들이 고작 그 몇 놈을 못 막아?”

곤충령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공간 재능을 가진 자가 있어서 관문 결계와 방어벽은 아예 소용이 없었고,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통로로 들어간 뒤였습니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놈들뿐이니!”

총지휘관이 호통을 쳤다.

“당장, 당장 추격해! 절대 네간으로 넘어가게 둬서는 안 된다!”

네간으로 통하는 관문 앞에 정예 전사 2만 명이 집결했다. 곧이어 구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묵직한 관문이 서서히 열렸다.

장교들의 명령이 떨어지자 2만 병력이 밀물처럼 통로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

긴 복도 같은 길이 이어지리라는 천제현의 예상과는 달리 관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광활한 지하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땅 위에서 가쿠계까지 내려오면서 거쳤던 지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미로처럼 복잡한 지형이었다.

문제는 일행 둘 다 탈진 직전이라는 점이었다. 정신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천제현이나 몇 날 며칠을 고문에 시달리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다크엘프나 기진맥진하긴 마찬가지였다.

천제현이 결국 걸음을 멈췄다. 눈앞이 빙빙 돌고 귀에서는 삐 소리까지 들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가 말했다.

“얼마나 더 가야 돼요?”

“네간과 가쿠는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수백 킬로미터예요. 중간에 헤매지 않는다고 쳐도 사흘은 넘게 걸릴 거예요.”

“뭐? 사흘?! 지금 장난해요?”

중간에 길을 잃지 않는 가정하에 사흘이라니.

이곳은 지하 심층부였다. 가쿠계와 네간계 사이의 중간지대는 지표에서 온 종족이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기이한 생명체 대부분은 천제현조차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천제현이 꼼짝할 줄을 모르자 다크엘프가 초조한 투로 말했다.

“가쿠계 놈들이 쫓아올 겁니다. 따라잡히면 끝장이에요. 서둘러야 한다고요!”

“막무가내로 덤빈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이러다가는 금방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 거예요.”

“지금은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여기서 멈춰 버리면 죽는 수밖에 없어요!”

“그건 그쪽 걱정이겠죠. 어차피 나야 언제든 땅 위로 돌아가면 그만인데.”

“당신…….”

귀찮다는 듯이 다크엘프에게서 고개를 돌린 천제현이 새끼 여우를 쳐다봤다. 천제현의 의중을 알아차린 새끼 여우가 즉시 천둥새 한 마리를 소환해냈다. 천둥새 등에 올라타 깃털을 꽉 잡은 천제현이 한쪽에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다크엘프를 향해 말했다.

“거기서 멀뚱히 뭐 해요? 얼른 타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천둥새가 번개처럼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무시무시하게 빠른 천둥새와 방향을 지시해 줄 신의 눈동자, 이 정도 조합이면 추격을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마음 편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천둥새가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꽁지 뒤쪽에 수 미터 크기에 달하는 나방들이 따라붙었다. 나방 위에는 곤충령 고수들이 타고 있었다. 추격병들에게 위치가 노출된 것이다.

“젠장, 벌써 쫓아온 건가?”

새끼 여우가 몸집은 키우지 않은 채로 나방마수들에게 술법을 걸었다. 여우의 눈이 요사스러운 녹색으로 빛나자 나방들이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토해낸 푸른색 화염에 다른 나방의 몸체 절반이 불타올랐다. 나머지 나방마수들도 서로 뒤엉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서 더 많은 나방들이 나타나 추격대열에 합류했다. 거대한 박쥐 등에 탄 곤충령들도 등장했다. 마수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 새끼 여우의 술법으로도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천제현이 천둥새의 깃털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속도를 높여!”

곤충령이 모는 마수 십여 마리가 주변을 포위했다. 특히 나방들이 뿜는 푸른 불꽃은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천둥새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새끼 여우는 천둥새를 조종해 화염을 피하면서 덤벼드는 나방을 술법으로 견제하는 일까지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막강한 위력의 고주파 마력이 날아들었다. 빗나간 마력파동이 산맥을 때리자 거대한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됐다. 연이어 날아들던 마력파동 중 한 줄기가 천둥새의 배에 명중하고 말았다. 깃털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천둥새가 괴성을 지르며 공중에서 몇 차례 빙글빙글 몸을 뒤집었다. 비행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천둥새의 부리 가장자리에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나도 내장 대부분이 이미 파열된 것 같았다.

천제현이 다급하게 정령을 불러냈다. 생명력을 뜻하는 녹색 눈동자로 바뀐 그가 천둥새의 몸에 초록색 광선을 주입하자 상처가 금세 치유됐다.

천둥새가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그때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산맥이 갑자기 끝나면서 눈앞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이 나타났다. 수만m는 될 듯한 협곡을 따라 붉은 용암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래로 머리를 튼 천둥새가 마치 창공을 가르는 유성처럼 웅장한 협곡 속으로 급강하했다.

검은 박쥐 몇 마리가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또다시 마력파동 공격을 준비하는 듯 박쥐 주위의 공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천둥새의 등에서 일어선 다크엘프가 검은색 마력 덩어리를 뭉쳐 거대한 활을 만들어냈다. 암흑속성 정령이 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다크엘프는 아마도 원거리 공격에 능한 궁수인 듯했다.

다크엘프가 검은색 화살 세 개를 만들어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는 동시에 시야에서 홀연 사라졌다.

곧이어 박쥐 세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화살 세 개가 각각 놈들의 몸통에 적중한 것이었다.

화살 하나로 즉사할 괴수들은 아니었지만, 추격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보니 다크엘프는 상당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얼핏 봐도 진령 7성가량일까?

지상에서든 지하에서든 그 정도면 일류고수였다.

게다가 희귀한 암흑속성 정령까지. 다크엘프가 쏜 화살은 마치 암흑 그 자체처럼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집요했고, 위력 역시 무시무시했다.

곤충령 추격병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 때.

돌연 기이한 감각이 천제현을 엄습했다. 중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몸이 붕 떠오를 것 같은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돌멩이들은 이미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무중력층.

천제현은 대륙의 상하층부 구조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무중력층은 서로 다른 마력의 충돌로 인해 중력의 진공상태를 보이는 공간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대륙에는 두 개의 무중력층이 존재했다. 하나는 지표면 상공 수백 킬로미터 지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땅 밑이었다. 중력이 없는 이 두 지점에서는 모든 물질이 공중을 둥둥 떠다녔다.

지금 천제현이 보고 있는 광경은 무척이나 기이했다.

수많은 산봉우리가 눈앞에서 허공을 표류했다. 위쪽에서 절벽을 타고 흘러들었던 용암과 화염이 안개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부글부글 끓는 바다를 보는 듯했다.

천제현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불의 바다를 보며 말했다.

“이게 대체…….”

다크엘프가 소리쳤다.

“네간과 가쿠의 접경지대에요. 저 화염을 통과해야만 네간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언뜻 무책임한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용암과 화염으로 이글대는 바다에 무작정 뛰어들라니? 이건 뭐 죽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땅 위에서 온 생명체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다크엘프가 상대를 안심시킬 방법을 고심하고 있던 때였다.

천제현의 몸에서 솟구친 청백색 화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천둥새와 다크엘프, 새끼 여우를 감쌌다. 화염에 휩싸인 천둥새가 바닷물에 풍덩 내던져진 바위처럼 불의 바다 깊숙이 몸을 던졌다.

불의 바다는 무중력층에서 발생하는 마력 대류현상의 결과물이었다. 겉보기에는 위협적이지만, 마력 분포가 불균형한 탓에 타이탄이나 베헤모스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 만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진령급 호신마력이면 무사히 통과가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

충분한 마력 또는 몸을 보호할 만한 도구만 갖춘다면 적절한 노선을 찾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새끼 여우가 신의 눈동자를 이용해 천둥새에게 방향을 안내했다.

불의 바다는 당초 천제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절반쯤 왔을 때부터 이미 힘이 부친다는 느낌이더니 3분의 2가량 지나자 한계가 닥쳤다. 4분의 5 지점에서는 급기야 유명화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더는 천둥새를 보호해 줄 수가 없었다.

고온에 노출된 천둥새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맨몸으로 막강한 마력의 흐름을 받아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빠져나가!”

“빠져나가야 해!”

촤앗.

새카만 숯덩이가 된 새 한 마리가 불의 바다를 뚫고 나왔다. 까마득한 고공에서 직선으로 낙하한 새는 쿵 하는 굉음을 마지막으로 숲 한가운데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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