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01화 (601/729)

# 601

제601장 포로가 되다

데빌앤트와의 전투가 너무 격렬했던 관계로, 협곡에 있는 다른 지능 생명체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천제현이 협곡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완벽하게 무장한 곤충령 부대가 협곡 바깥쪽을 에워싸고 있었다. 대부분이 거미족, 전갈족, 개미족 등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족들이었다.

대형 세력의 정예부대가 분명했다.

협곡 안에는 방금 죽은 데빌앤트들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상한 동정을 느끼고 급하게 달려온 곤충령들은 눈앞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데빌앤트 동굴에는 1만 마리에 가까운 데빌앤트들이 살고 있었고, 그래서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 금역’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 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많던 데빌앤트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죽어 있지 않은가.

천제현은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가 외쳤다.

“안녕!”

수천 곤충령의 눈이 천제현에게 집중되었다.

‘저게 대체 무슨 종이지?’

그들은 조상 대대로 지하에서 살아왔으며, 지상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곤충령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이 인간족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희한한 생명체를 본다는 듯한 눈빛으로 천제현을 훑어보았다.

“데빌앤트들을 죽인 게 너냐?”

“저 벌레들 말하는 것?”

천제현은 곤충령들의 언어가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사용하는 건 고대 곤충령 언어였기 때문에 어찌어찌 알아듣는 것만 가능할 뿐이었다.

데빌앤트는 몹시 위험한 괴물이다. 그놈들의 소굴이 협곡 안에 있었으니 주변 생명체들로서는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골칫거리를 천제현이 해결해 줬으니 영웅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맞다!”

천제현은 누가 공을 가로채기라도 하는 양 급히 대답했다.

“길을 지나다가 데빌앤트들을 봤다. 골칫거리일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술로 한 번에 소탕했다. 너무 감사할 필요는 없다. 악을 소탕하는 건 당연한 것. 그런데 내가 부상을 입었다. 갖고 있는 선약, 신약 같은 걸 감사의 표시로 준다? 난 굳이 거절하지는 않겠다…….”

천제현이 구사하는 곤충령 언어는 매우 어눌해서 바짝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놈이구나!”

“망할 자식!”

“우리가 키우는 데빌앤트를 전부 몰살시키다니!”

곤충령들의 언어는 매우 빠르고 발음도 기괴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명확하게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놈들의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건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 같았다.

‘이런 젠장. 말도 안 돼! 이 협곡에 있던 데빌앤트들이 전부 사육되고 있던 거라고?’

참 괴상한 취미 아닌가. 개미괴물을 키우다니.

데빌앤트는 몹시 희귀한 종이다. 그런 놈들을 몰살시켰으니 어떻게 그 손실을 보상해 준단 말인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저놈을 잡아라!”

“저 망할 자식을 잡아!”

천제현이 제대로 해명도 하기 전에 각종 무기들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어찌나 무섭게 공격하던지 피할래야 피할 수조차 없었다.

“아오, 진짜!”

“곤충령들은 외부 세계에서 온 친구를 이렇게 대하나?”

“이 몸은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지상의 모험자다!”

정신 타격을 받고 마력과 마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게다가 상대의 숫자가 저렇게 많으니 그들과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때, 상황이 긴박한 걸 느낀 새끼 여우가 봉혼병 몇 개를 토해냈다. 봉혼병들이 허공에서 터지면서 거대 쌍두원숭이, 금빛이무기, 은빛지룡, 그리고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머리 넷 달린 3급 마수가 소환되었다.

마수들은 소환되자마자 그 거대한 육체로 기세등등하게 돌진하는 곤충령들을 막아섰다.

3급 마수의 힘이 엄청나다고는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천제현은 급히 새끼 여우를 데리고 협곡 안쪽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런데 순간 이동 한 번 했다고 눈앞이 핑핑 돌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코 아래를 훔치자 피가 묻어 나왔다.

‘젠장, 정신 타격이 꽤 심했던 모양이군. 마력도 회복되지 않았으니 억지로 무공을 시전한다면 상태는 더 심각해지겠지.’

앞쪽에서 마수들의 단발마가 울려 퍼졌다. 새끼 여우가 소환한 마수들이 벌써 처치된 것이다.

‘이렇게 빨리? 생각보다 강한 놈들이군.’

곤충령 부대 안에는 고수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암벽을 기어오르는 건 물론, 비행까지 할 수 있었다. 이동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잔영이 몇 번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어느 틈엔가 놈들한테 포위당해 있었다.

“안 돼!”

“젠장 맞을!”

“거미여왕 폐하께 바치려던 알들까지 전부 가져갔잖아!”

“이 천하에 못된 도둑놈 같으니.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자!”

데빌앤트들의 알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곤충령들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노발대발했다. 그 알들은 헌납품이었다. 만약 이 일로 거미여왕이 노한다면 그들의 부족과 도시는 화를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천제현이었으니 곤충령들이 그를 놓아줄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천제현은 마력을 운용하여 칠흑처럼 새까만 보검을 소환했다.

곤충령 몇 마리가 다가오자 천제현은 즉시 허공둔을 시전해서 그들의 공격을 무효로 만든 후 신마검을 휘둘렀다. 신마검의 검기가 연속으로 몇 번 쓸고 지나가자 실력이 뛰어난 곤충령 몇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새끼 여우는 익룡 마수를 소환했다.

천제현이 익룡의 등으로 뛰어올라 그것을 타고 협곡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저놈을 막아라!”

무슨 비술을 부린 건지 사방에 널려 있던 바위며 돌들이 자석에 달라붙듯 전부 익룡의 몸에 가서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익룡의 몸이 무거워졌고, 날카로운 돌멩이들은 녀석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거대한 힘이 익룡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익룡의 몸에 달라붙은 돌멩이들 안에서 강력한 마력 파동을 느낀 천제현은 즉시 새끼 여우를 잡아들고 위로 뛰어 올랐다.

콰과광!

아슬아슬한 시간차를 두고 폭발이 일어났다.

익룡은 눈 깜짝할 새에 제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다른 곤충령들은 아직 허공에 머물러 있는 천제현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급히 품을 뒤져 진원단 하나를 복용한 후 새끼 여우를 잡고 공간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곤충령들 앞에서 사라졌다.

‘어디 간 거지? 아주 독특한 공간능력이군.’

곤충령들은 두리번거렸지만, 천제현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부상을 입은 것 같으니 멀리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곤충령이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는 마을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해라. 주변 지형을 뒤집어 놓는 일이 있더라도 찾아야만 한다!”

15분쯤 지났을까. 수만 곤충령들이 집결되었다. 그들은 주변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잡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들 중에는 추적의 고수도 있었다. 새끼 여우의 신안 덕분에 먼 거리에서 쫓아오는 적까지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현재 천제현의 몸 상태로는 더는 도망가는 게 불가능했다.

천제현은 한 동굴 안으로 숨었다. 그의 얼굴빛은 창백했고 온몸에서 진땀이 흘렀다. 외상은 없었지만, 정신타격이 매우 컸다.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타격은 육체적인 타격보다 더 큰 피해를 준다.

그 정도 타격을 받고 그렇게 움직였으니, 천제현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식물인간이 되었으리라.

“상황이 어때?”

새끼 여우는 발톱으로 큰 원을 그린 뒤, 다시 작은 원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박수를 쳤다.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고 있으며 얼마 안 가 여기까지 올 거라는 의미였다.

“젠장. 벌떼처럼 밀려오는군! 대체 여기가 어디길래 곤충령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말은 지하문명 세계에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았다. 곤충령들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정보를 캐낼 순 있을 것이다.

평소의 천제현이었다면 놈들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겁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조용한 곳에 가서 쉴 필요가 있었다.

다시 한 번 신안으로 주변을 탐색한 새끼 여우가 천제현에게 보고했다. 가까운 곳에 곤충령의 거대 도시가 있는데 수백만 명은 사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가 놈들의 소굴이겠지!”

그때, 새끼 여우가 뭔가를 감지한 듯 즉시 신안을 거둬들이고 끽끽거리며 천제현의 허리춤에 있는 두루마리를 가리켰다.

곤충령들이 거의 다가온 것 같으니 빨리 귀환두루마리를 사용해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돌아가자고?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이렇게 돌아간단 말인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천제현은 두루마리와 소지품들을 꺼내 새끼 여우의 체내 공간에 집어넣도록 했다. 새끼 여우는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거짓으로 투항해서 곤충령 도시에 들어간 다음 단서를 찾아볼까 해. 넌 조용히 내 주변에서 상황을 보면서 움직여. 알았지?”

천천히 계획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바깥쪽에서 곤충령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공충령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둑놈아,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 죽고 싶지 않다면 즉시 투항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천제현이 투항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곤충령들이었다.

그런데 그때, 천제현이 두 팔을 번쩍 들고 나오며 어눌한 곤충령 언어로 말했다.

“투항, 투항, 투항한다. 나를 죽이지 마라. 뭐든 말하겠다!”

그 모습을 본 곤충령 몇몇이 달려들어 그를 덮쳤다.

땅에 납작 엎어진 천제현의 몸에 검은 수정석 체인이 감겼다. 천제현은 체인에 체내의 마력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천제현은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됐다.

“데빌앤트의 알은 어디 있지? 말해!”

곤충령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다그쳤다. 알만 아니었어도 벌써 이 침입자를 찢어 죽였을 것이다.

“말한다, 말한다. 전부 내 동료가 갖고 있다!”

천제현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 데빌앤트들이 사육되는 놈들인지 몰랐다! 죽이지 마라. 데빌앤트 알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 어떤가?”

곤충령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의 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가 숨어 있던 곳에서도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많은 데빌앤트 알들이 어디로 갔겠는가? 혼자 힘으로 그 많은 데빌앤트들을 처리했을 리 없으니 동료가 있는 게 분명하다.

“지휘관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니크론으로 데려가 영주님께 보고한 후에 생각하자!”

천제현은 그렇게 꽁꽁 묶인 채 곤충령들의 도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몰래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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