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600화 (600/729)

# 600

제600장 데빌앤트

데빌앤트는 매우 희귀하고 진귀한 신경계통 마수로, 한 마리 한 마리의 정신파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혼성술사 또는 심안을 지니지 않은 술사에게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떼를 이뤄 공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내곤 한다.

데빌앤트처럼 정신과 연결, 융합하는 희귀 마수는 천제현이 살던 미래에는 이미 멸종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천제현은 직접 놈들과 마주칠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터였다.

지하산맥이 진동하고 땅바닥에 널린 돌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수한 정신 마력으로 물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니, 현성 수준의 신식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정신 마력이 융합한 후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이렇게 크다니, 현성 경지의 최고 술사 열 명이 모여서 동시에 신식을 시전해도 이 정도 수준에 이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데빌앤트의 힘이 합쳐진 정신공격이었다.

엘프왕 급의 고수라도 정신방어 계열의 비술 없이 이 공격에 노출된다면 물러서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일반 술사는 어떻겠는가?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정령 덕분에 정신 공격에 면역력을 지닌 그였기에, 정신 계열 공격은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수천 마리의 데빌앤트가 한꺼번에 공격을 하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허공둔.

천제현은 허공둔을 시전하며 순간 이동으로 몸을 피할 준비를 했으나 조금 늦고 말았다.

정신공격이 순식간에 그를 덮친 것이다.

허공둔은 일반적인 공격은 모두 피할 수 있지만, 정신공격에는 영향을 받았다. 개미떼들은 그것을 알기라도 하듯 마력을 모아 순식간에 힘을 폭발시켰다.

‘말 그대로 정신 폭발이구나!’

천제현은 그 공격을 형용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대뇌가 주변의 산맥들처럼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산사태로 무너져 내리는 산맥 같이 무시무시한 정신력이 밀려들고 있었다.

삽시간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뇌가 파괴되는 기분이었다.

천제현의 정신은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육신은 그 거대한 힘을 맞고 거의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허공둔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데빌앤트들이 거대한 먹구름처럼 미친 듯이 천제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 위험한 생물들에게 포위되면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하다. 그는 다시 한 번 순간이동을 시도하려 했으나 거대한 정신 마력이 그의 마력을 차단하여 온몸의 마력이 사라져 버렸다.

큰일이다.

새끼 여우도 초조해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주인이 정신 공격에 면역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 않고 이곳으로 데려온 여우였다. 이런 상황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새끼 여우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찌어찌 일부 괴물들을 제압한다고 해도 먹구름처럼 밀려드는 저 거대한 개미떼를 막을 힘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때, 신식을 시전한 천제현이 놀랍게도 개미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협곡에 방해를 받기는 했지만, 거리가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신식이 개미떼를 뚫고 그가 원한 목표를 찾아냈다.

수천, 수만 마리의 시커먼 벌레들 한가운데 거대한 금색 데빌앤트 한 마리가 있었다. 그놈은 다른 데빌앤트들과 달리 단단한 등껍질 위에 악마와도 같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고, 여섯 개의 다리 또한 절지류 곤충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보였다.

‘저놈이구나. 앤트왕.’

하나로 연결된 데빌앤트의 정신파는 우두머리가 조종한다. 그 우두머리가 바로 다른 놈들과 다르게 생긴 이 앤트왕이었다. 폭발과도 같은 방금 전 공격도 그놈이 지시한 것이었고, 천제현의 마력을 차단한 기이한 비술도 그놈이 시전한 것이었다.

비록 마력은 차단되었지만, 천제현의 강력한 신식만은 남아 있었다.

데빌앤트의 무서운 점은 집단을 이뤄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놈들의 개별 능력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앤트왕이라 할지라도 신식과 정신 능력은 기껏해야 심등 절정에 불과했고, 현성 수준은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천제현의 신식이 놈의 몸을 포착했다.

신식에 포착된 걸 눈치챈 앤트왕은 강렬하게 저항했지만, 천제현은 힘들이지 않고 놈의 정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윽고 천제현의 신식과 앤트왕의 정신 마력이 연결되었다.

천제현은 앤트왕의 정신이 내뿜는 공포의 파동을 느꼈다. 그놈은 다시 한 번 주변의 정신파를 모아 정신 폭발과 마력 차단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천제현은 원래 정신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력이 차단되었다고는 하나 신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앤트왕이 정신 폭발과 마력 차단을 시도하는 동안 천제현의 신식은 그 모든 과정을 복제했다.

그야말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비술이었다.

그 비술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글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이러한 방법으로만 복제할 수 있었다. 천제현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머리를 굴려 엔트왕의 비술을 복제한 것이다.

“정신연소!”

둘의 능력차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앤트왕은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현성 능력 중 일부를 앤트왕의 몸에 주입했다. 앤트왕의 정신을 손아귀에 쥔 천제현은 신식공격으로 놈을 마비시킬 수도 있었고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었지만, 앤트왕 하나를 죽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놈을 죽여봤자 연합 공격만을 저지할 뿐이다.

마력이 돌아오지 않은 천제현은 저 개미떼에 순식간에 먹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럼 어쩐단 말인가?

천제현은 미치지 않고서는 시전하기 힘든 자폭 정신 비술을 사용하여 자신의 정신에 불을 붙였다. 정신이 앤트왕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불은 천제현의 정신을 태우는 동시에 앤트왕의 정신까지 함께 태우기 시작했다.

이 비술은 자신의 정신을 연소시켜 순간적으로 더 강력한 정신 마력을 갖게 되는 것으로 그 대가는 컸다. 정신력이 모두 연소되고 나면 그 대상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강력한 정령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제때 멈추기만 한다면 후유증은 좀 생길지 몰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앤트왕이 처참한 비명을 지르는 순간,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앤트왕의 울부짖음이 전염병처럼 무리 전체로 퍼져나가 다른 데빌앤트들까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연소.

광기 어린 연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정신 화염이 개미떼를 삼켜 버렸다.

사실 데빌앤트들이 연합공격을 할 때부터 천제현은 놈들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핵심 부분만 불태우면 눈 깜짝할 사이에 놈들 모두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묘한 한 수였다.

그의 일격에 수만 개미떼가 와해되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데빌앤트들이 정신이 연소되면서 놈들의 정신 마력이 순식간에 폭증했다. 두 번째 정신 폭발은 첫 번째보다 열 배는 강력했다.

콰과광!

사방의 산맥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천제현 역시 강렬한 통증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정신을 연소시키는 비술은 데빌앤트들을 상대하기에 적격인 무공이었으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다른 이였다면 절대 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의 몸을 포착해 정신 연소를 시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천제현은 땅바닥 가득 널린 데빌앤트들의 사체를 발견했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상처도 없었지만, 모두 확실하게 죽어 있었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구역질까지 치밀어 올랐다. 정신 타격으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후유증이 있을 것을 알고 시도했으니 누구를 원망하리.

다행히 마력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단시간 안에 완전히 회복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으므로 어딘가 안전한 장소를 찾아 운기조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녀석아, 너 때문에 이게 뭔 꼴이냐!”

천제현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새끼 여우를 노려봤다. 녀석이 이쪽으로 길을 안내하지 않았더라면 죽을 뻔할 위기를 겪을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그는 여우의 꼬리를 잡아서 들어 올리고는 놈의 엉덩이를 매섭게 한 대 때렸다.

새끼 여우는 끽끽 소리를 지르며 용서해 달라는 몸짓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모션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말을 믿을 천제현이 아니었다.

이번에 제대로 혼줄을 내주지 않으면 앞으로 또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그가 다시 한 번 손을 들었을 때, 새끼 여우가 발톱을 들어 앞을 가리키며 낑낑거렸다.

“말 돌릴 생각하지 마. 오늘은 정말이지…….”

천제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깊은 협곡 바닥 암벽에 사람 머리 크기의 투명한 뭔가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데빌앤트의 알인가? 많기도 하군.”

천제현은 그제야 데빌앤트가 매우 희귀한 마수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니 놈들의 알도 가치가 상당할 것이다. 저것들을 가져가면 둘도 없이 좋은 정신 약재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신식은 정신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었지만, 그 둘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신식은 깨달음을 통해서만 정진을 이룰 수 있지만,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는 재료가 있으면 신식 정진의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고급 신식의 경지까지 오를 순 없다고 해도 동급 고수들보다 강력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정신공격에 대한 저항력도 크게 늘어난다.

데빌앤트의 알은 천제현은 물론이고 큰아가씨, 공서련 등에게도 매우 귀중한 재료가 될 것이다.

새끼 여우는 잽싸게 알들을 향해 달려가 정신없이 그 알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이 말썽꾸러기가!”

천제현이 저장 호롱박을 꺼내 들고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싸울 때는 제대로 도움도 안 되는 녀석이 전리품 앞에서는 누구보다 빠르지!”

애완동물 버릇을 잘못 들여도 한참 잘못 들였다고 한탄하는 천제현이었다.

천제현과 여우는 사이좋게 데빌앤트의 알을 수거했다.

“나쁘지 않네. 이 알들이 있으면 신식을 더 강화할 수 있겠지.”

이번엔 좀 위험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귀하디귀한 데빌앤트들의 알을 만 개 넘게 손에 넣은 것 외에도 천제현은 협곡 안쪽에서 진귀한 3급 정신 속성의 성약 몇 개를 발견했다. 그것이 있으면 정신에 타격을 입은 천제현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훌륭해.’

천제현이 이렇게 생각하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협곡 입구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지능이 있는 생명체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와 동시에 부대 하나가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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