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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98화 (598/729)

# 598

제598장 탐험

일반적으로 지하생명체와 지상생명체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단체로 뭔가 잘못 먹고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놈들이 나타난 이유가 아니었다. 암흑 생명체들은 몹시 위험한 존재다. 아직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놈들이 출몰한 곳은 기적성의 연구기지와 붙어 있다. 암흑생물들이 연구기지로 침입하면 기적성은 추정할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되리라.

“막아야 해요!”

천제현이 하늘로 번쩍 솟아오르며 두 팔을 뻗자 검기 두 줄기가 교차하며 번개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 검기는 순식간에 거대한 지네 한 마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리고 그의 몸이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신마검!”

정령이 소환되었다.

흑요석처럼 새카만 신마검의 손잡이에는 꽃무늬가, 검신에는 명문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고, 검 주변에서는 파괴의 힘이 일렁거려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손을 뻗어 검을 잡은 천제현이 공기를 가르며 동굴 입구로 검을 찌르자 대량의 검기가 수백 자루의 보검으로 변해 폭풍우처럼 동굴 입구를 베기 시작했다. 암흑생물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대단하십니다, 성주님!”

“마력이 성주님 수준에 이르면 그 정도의 파괴력을 갖게 되는 건가요?”

하프엘프들은 천제현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상검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체력 소모가 컸기 때문에 쉽게 시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놀라운 살상력 덕에 필살기로 삼기에는 충분했지만, 장기전이나 한 번에 많은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천제현은 무상검을 수련하면서 대주국 천검문의 전승 검결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천검문의 검법은 셀 수 없이 많았고, 한 종류의 검법에도 십여 개의 변형이 있었다. 그 수많은 검술 서적에서 정수만을 취해 자신의 경험과 결합하여 만든 것이 바로 ‘심검’이었다.

어째서 ‘심검(心劍)’이냐고? 검은 손이 아닌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유명검을 잃은들 무슨 상관이랴. 그는 더 이상 무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강력한 신식의 힘에 천검문의 어검술까지 더해져 검과 주인이 물아일체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이 살아 있는 한 그의 검 역시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암흑생명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심지어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물들까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철갑충이 암석을 부수며 암벽 틈을 비집고 나왔다. 놈은 광풍 같은 마력 공격을 맞으면서도 하프엘프 전사들의 몸을 밟으며 계속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놈을 본 천제현이 앞으로 다가가 검을 휘두르자 철갑충의 몸이 두 토막 났다.

파멸의 검기는 철갑충을 죽이고도 사라지지 않고 십여 미터 앞으로 날아가 전갈괴물 한 마리를 베었다.

천제현은 오른손에 검을 든 채로 왼손에 화염구를 소환해 나방괴물을 향해 날려 보냈다. 화염구가 폭발하면서 주변이 일시에 불바다가 됐다. 스치기만 해도 뭐든 삼켜 버리는 불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날아오던 나방 떼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안되겠습니다!”

클라크가 소리쳤다.

“괴물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거대지네, 철갑충, 흑뱀, 전갈괴물 등 온갖 지하괴물들이 끝없이 밀고 나오고 있었다.

하프엘프 주둔군의 숫자가 적은 건 아니었지만, 괴물들의 맹렬한 진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지하에 사는 생명체들은 흉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숫자가 많은 건 둘째치고, 일부 개체들은 진령급 전투력을 지닌 걸로 추정될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어떻겠는가.

천제현도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하프엘프들의 피해가 심각해질 것이다.

철수해야 하나?

그랬다간 연구기지가 위험해진다.

천제현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머리 위쪽 암벽이 갈라지더니 그 틈으로 나뭇가지 십여 개가 뚫고 나왔다. 그 통에 두터운 암반층이 우수수 무너지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뭇가지들이 순식간에 자라나더니 3~4미터 크기의 작은 엔트족이 되었다.

“세나리우스님!”

천제현은 세나리우스의 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깊은 지하기지에서 발생한 일을 지표면에서 감지하고, 그걸로 모자라 십여 개의 분신을 만들어 보내다니.

세나리우스는 혼돈의 숲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의 분신이 돕자 하프엘프들이 느끼는 압박도 많이 가벼워졌다. 이와 동시에 지하기지의 승강기들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동방호연이 지휘하는 기적성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제로의 효율은 대단하다니까.

이곳 상황을 알아챈 제로가 즉시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천제현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딱 적당할 때 오셨습니다!”

상황이 긴박한 걸 본 동방호연은 쓸데없는 말없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저 망할 버러지들을 소탕해라. 놈들이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적성의 고수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흉포하고 강한 괴물들이라 해도 그들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30분쯤 흘렀을까. 계속된 학살로 인해 악마의 입은 사체 천지가 됐다. 동료들의 떼죽음에 겁이 났는지 괴물들이 더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수비를 위해 병력을 남겨둔 천제현은 곧장 성으로 돌아가 공화련을 찾았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하에서 수시로 괴물들이 기어 나온다면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때, 동방호연이 결과를 보고하러 왔다.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습니다. 세어 보니 암흑생물 3만 마리를 죽인 것 같더군요. 암흑생물의 종류는 십여 개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십여 종이나 있었다고요?”

공화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 있죠?”

동방호연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이번에 출몰한 암흑생물들 중에 서로 천적 관계인 놈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공화련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한 건 아닐까요?”

“조종이라고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의심스러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천제현이 말했다.

“기를 쓰고 기어 나오는 모습이, 도망이라도 치는 것 같았거든요.”

도망이라고?

“제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하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요. 거기에 겁을 먹은 생명체들이 앞뒤 안 가리고 밖으로 튀어나온 거죠.”

공화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하세계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이번 일은 이렇게 넘어가선 안 될 것 같아. 지하에 용사들을 보내 조사하게 해야겠어.”

그녀의 말이 옳았다.

지하에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안 이상, 어떻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는가?

“큰아가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탐험대를 꾸릴 필요는 없어요.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 리도 만무하고요. 그냥 제가 직접 한 번 다녀올게요.”

천제현은 말을 하면서도 공화련이 동의할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하세계는 미지의 공간이다. 천제현 같이 중요한 인물을 그곳으로 보내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는 공화련이 입을 열기 전에 급히 덧붙였다.

“미지의 공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제가 가려는 거예요. 제 무공과 능력이면 어떻게든 살아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괜히 어리숙한 용사들을 데리고 갔다가 제대로 된 단서도 찾지 못하고 안에서 길을 잃지 않겠어요?”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공화련이 아는 천제현은 한 번 마음먹은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생각을 꺾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릴 생각도 못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철저하게 준비하고 가. 새끼 여우도 데려가고. 귀환두루마리도 챙겨.”

“큰아가씨, 걱정 마세요. 아직 서련 아가씨랑 결혼도 못했는데 죽을 순 없잖아요?”

공화련은 매서운 눈길로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련이만 생각나나 보네? 다른 사람은 염두에도 없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뻘쭘해진 동방호연이 인사하고 물러갔다.

얼굴이 새빨개진 공화련은 쌀쌀하게 쏘아 붙였다.

“너 때문에 열 받아 죽겠어. 따라와!”

천제현은 공화련을 따라 한 밀실로 들어갔다. 공화련은 두 개의 단약을 꺼내 조용히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기적상회에서 최근에 개발한 진원단이야. 값은 꽤 나가지만 효과가 아주 좋아. 마력이 진령 경지보다 높지 않은 한, 한 알만 복용해도 모든 마력이 회복되지. 단약을 만들 때 귀한 재료들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마력 상승에도 도움이 될 거야.”

기적상회의 신기술과 신상품은 크게 발전해서 기존 업계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단약과 부적 제조는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장사였기에 공화련은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천제현에게 배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이용하는 동시에 하프엘프들의 도움을 받아 단약 및 부적 연구센터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이런 전통 산업에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원단은 바로 그 연구센터에서 최근에 개발한 단약이었다.

진원단의 원가는 매우 비싸 한 알에 1만 마석이나 됐지만, 최상품 회복약일 뿐만 아니라 정령급 성약의 효과까지 갖고 있었다. 성질 또한 부드러워 부작용이 적은 관계로 장기 복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엄청난 가격 때문에 대량 판매는 불가능한 단약이었다. 그녀가 만든 두 병의 단약은 오직 천제현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은 천제현이 말했다.

“큰아가씨한테 제가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그러나 공화련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알면 됐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한테 신경을 쓰도록 해. 언제나 공평하게. 알았지?”

“네?”

“‘네?’는 무슨 ‘네?’야? 빨리 가서 준비나 해!”

공화련은 다시 한 번 ‘흥’하고 콧방귀를 뀐 후 찬바람을 일으키며 쌩하고 사라졌다. 억울한 듯한 마디를 덧붙인 채.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 줄 알아?”

천제현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공화련은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이었지만, 가끔 한 번씩 심술을 부리면 남궁혜 저리 가라였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단아한 외모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리라.

어쨌든 지하세계는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곳이었다.

천제현은 혼돈의 숲 지하가 거대한 공동(空洞)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정도로, 그곳은 지상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이 시대의 지하세계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시대의 지하문명은 또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이 질문들은 그가 무척 궁금해 하던 것들이었다.

“여우야, 준비해. 출발해야지!”

이번 여정에는 새끼 여우를 제외한 그 누구도 동행하지 않았다. 새끼 여우는 그동안 기적성에서 매일 같이 먹고 마시면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이참에 운동 좀 시키고 체중 관리를 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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