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96화 (596/729)

# 596

제596장 개혁의 물결

영원의 숲에서 한 연설은 자영탑과 자음탑을 통해 혼돈의 숲 곳곳에 전해졌다. 엘프은행이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것은 혼돈의 숲을 뒤흔드는 빅 뉴스였다.

세상물정 모르고 오랫동안 사회에서 동떨어져 지내던 엘프족이 이제 세상으로 나서려 한다고?

여러 세력들이 추측에 들어갔다. 엘프는 숲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이자 최고의 종족으로, 어떤 세력보다 응집력이 뛰어나다. 엘프의 일거수일투족은 혼돈의 숲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엘프 수천 명이 계좌를 신청하는 등 엘프족 전체에 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다. 사실 엘프들은 완전히 앞뒤가 꽉 막힌 존재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조상의 유훈을 지키며 힘든 일이 있었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근거지를 빼앗기고,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가는 형제자매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조상의 유훈이 해준 게 뭔가? 그저 힘은 더 약해지고, 세력은 더 위축되기만 했다.

저 고고하신 엘프의회는 민심을 헤아릴 줄 몰랐다. 저 늙은이들은 찬란하게 빛나는 엘프족의 모습과 눈앞에 펼쳐진 평온한 현실에만 안주해 개혁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조상의 유훈이 이제 더 이상 엘프에게 맞지 않다면, 왜 계속 지켜야 하나?

엘프법전이 아무리 완벽해도 조상들이 편찬한 것이다. 조상들이 쓸 자격이 있다면, 후손들에게는 고칠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걸맞지 않는 내용을 지켜야 하는 것 자체가 엘프족을 속박하는 굴레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이제 엘프가 나서서 일할 차례다.

천제현은 연설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기적성으로 돌아와 다행히 늙은 엘프들에게 잡히는 일은 면했다. 그는 성에서 엘프은행 상황을 쭉 꼼꼼하게 지켜봤다. 엘프은행은 엘프족만이 아니라 기적성에게도 아주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엘프족 내부의 반대가 가장 걱정됐기 때문에 엘프족들의 감정을 건드리며 선동했다. 엘프족 내부의 반대를 뚫고 은행이 순조롭게 운영된다면, 다른 문제는 쉽게 해결되게 마련이다.

“천제현, 천제현!”

비비안이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기적성으로 돌아왔다. 모두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데이터를 가져왔어. 이틀 만에 엘프은행 1차 계좌 한도가 절반이나 찼어!”

이 소식에 모두 깜짝 놀랐다.

공서련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도요? 무슨 한도요? 한도가 얼만데요?”

“아바마마와 성주들이 상의해서 결정했어. 엘프은행은 종족내부 계좌에서 가져올 수 있는 한도를 잠정적으로 500만 마석으로 정했어. 지금 일반엘프들은 예금을 할 수 없어. 중산층과 고위층 엘프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고, 예금은 본인 재산의 50%를 넘을 수 없어.”

비비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이 많은데도 벌써 200만 마석이나 돼!”

엘프족은 정말 부유하구나.

하지만 공서련이 왜 예금한도를 설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이상한 규제들은 뭔지, 엘프들의 적극성을 방해하는 것 아닌가?

천제현은 당연히 이해됐다.

엘프족에게 이 엘프은행은 일종의 시도다.

최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여부를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게다가 엘프은행이 단번에 엘프족의 재산을 모조리 흡수해 버린다 해도, 그 많은 돈을 쓸 수나 있고?

기적은행으로 옮긴다면?

기적은행이 이 많은 돈을 감당할 수 있는가는 우선 차치하고, 설사 기적은행이 다 소화할 수 있다 해도 엘프왕이 종족 재산의 절반이나 되는 돈을 기적성에 넘길 리 없다. 기적성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거나 기적성이 돈을 들고 도망치면 어쩌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계좌 개설 대상을 제한 것은 부유한 계층의 리스크 대항 능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또 엘프은행 영업점 규모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십 만 명이 줄을 서서 계좌를 개설하는 건 힘들다. 그러니 돈이 많은 고객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첫 술에 배부를 일 없다.

한입 먹고 바로 거대한 뚱보가 될 거라 기대하면 쓰나.

비비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500만 마석 한도는 내부 종족에게만 설정한 거야. 엘프은행은 외부적으로는 한도를 정하지 않았어. 벌써 엘프족과 관계가 깊은 도시들이 사자를 보내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 도시 명의로 엘프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돈을 맡기려 하더라고. 절대 적은 돈이 아닐 거야!”

공서련은 놀라서 말했다.

“세상에, 이제 막 세워진 은행에 다른 종족이 돈을 맡기러 온다고요?”

“당연한 일이죠.”

델로리스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숲에서 엘프족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지금 엘프족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저런 도시들은 환심을 사기 위해서든 탐색을 위해서든 우선 엘프 편에 서고 보는 거죠.”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요!”

천제현은 완전히 안심했다.

“알파브레인의 생산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 영원의 숲에 더 판매해서 더 많은 은행을 만들게 합시다!”

비비안은 때를 놓치지 않고 비위를 맞췄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천제현이 한 계획이 순조롭지 않을 리가 있겠어?”

“흥, 쓸데없는 소리,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천제현이 염치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겸손한 사람이니 그런 말은 내 뒤에서 많이 해줘요. 앞에서 하지 말고.”

공서련은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만 좀 하지!”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성공한 것뿐이에요!”

공화련이 가볍게 기침소리를 냈다. 엘프은행의 첫 성과를 듣고 아주 기뻤지만, 경솔하게 넘어갈 그녀가 아니다.

“은행이 진짜 성공하는 지 여부는 자금흡수 능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은행이 선순환을 형성할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하죠.”

“그건 어렵지 않죠!”

델로리스가 참다못해 나섰다.

“엘프은행이 난처하다고 생각되면, 그 남는 돈을 우리 쪽으로 보내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공화련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는 엘프은행의 설립을 도왔어요. 물론 기적은행에 예금을 넣어줄 거라는 기대는 있지만, 이게 근본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엘프족의 노력이 다 기적성을 위한 것이 되니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도리에 맞지 않아요.”

“큰아가씨 말이 맞아요!”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엘프은행이 설립된 후 안정적으로 운영되게 해야 해요. 그렇게 해야만 엘프은행이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 혼돈의 숲 전체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은행이 될 수 있어요.”

공화련이 덧붙였다.

“우리와 엘프족의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엘프족은 충분한 이익을 얻고 세력도 성장하게 될 거예요. 우리 기적성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셈이죠. 그렇게 되면 우리 외교부와 상무부가 먼저 나설 필요 없이 많은 세력들이 우리와 협력하려고 찾아올 거예요!”

비비안은 감동했다.

‘천제현과 공화련 언니는 정말 의리 있는 사람이야.’

공서련도 두 사람의 의견을 지지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간단해. 엘프은행의 설립을 도왔으니 그 다음에는 엘프 일반 시민들의 창업을 도와야지!”

공화련이 비비안과 공서련에게 말했다.

“비비안 공주님과 공서련, 이번에 두 사람에게 엘프족 지역 발전을 촉진하는 임무를 맡길 거예요. 공서련, 넌 생산부 부장이니 모든 자원을 엘프도시와 주변지역 공장건설에 동원하고, 엘프족이 창업할 수 있게 도와줘. 우리 기적상회 기술 중에 핵심기술만 아니면 기술의 부분적 권한은 다 엘프들에게 위임해도 돼. 예를 들어 전등 같은 작은 제품이나 요리마력진, 영화제작 등 여러 가지 기술 말이야.”

공서련이 벌떡 일어나 답했다.

“알았어. 내가 잘 해볼게.”

비비안도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엘프의 대은인이야.”

“별 소리를, 어서 가요!”

천제현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아, 우리 미녀 델로리스가 최근에 그리 바쁘지 않은 것 같던데, 여우족 상인들을 데리고 가서 돕는 건 어때요. 엘프들이 장사 쪽으로는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요!”

델로리스가 적극 나섰다.

“저도 여우족 상인들을 데리고 엘프지역에 가서 상업전략을 세워주고 싶어요!”

공화련은 잠시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죠!”

“우리 출발하자!”

의욕이 충만한 비비안이 말했다.

“엘프족과 혼돈의 숲의 아름다운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내는 거야!”

세 사람이 회의실을 떠났다.

공서련은 생산부 사람들을 꾸리러 갔다.

델로리스는 여우 상인들을 모으러 갔다.

비비안은 여정과 계획을 짰다.

세 사람의 이번 여정은 오로지 엘프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공서련은 엘프지역에 가서 엘프들이 공장을 많이 세울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엘프들과 합자해서 만든 공장이니 결국 무엇을 생산하든 기적상회의 뜻을 따르지 않겠는가? 델로리스는 상인들을 데리고 엘프지역에 가서 평범한 것들을 훌륭하게 탈바꿈시키는 방법을 가르칠 예정이다. 아무 가치 없던 광산과 자원 생산장을 아주 귀한 재산으로 만드는 법, 아주 흔한 특산품을 쇼핑몰에서 인기상품으로 만드는 법을 엘프들에게 가르쳐 상회를 설립하게 만들면, 이 역시 결국에는 기적상회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엘프족이 번영하고 숲이 번창할수록 기적성과 기적상회도 날로 번영한다. 이 자체가 바로 하나의 선순환이다.

며칠 후.

엘프은행의 예금이 처음으로 500만 마석을 기록했다.

엘프족은 수명이 길어서 3~5년 정도의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3년 이상 예금을 한다. 즉 엘프들이 단기간에 맡긴 예금을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놀랍게도, 외부 종족의 예금은 100만 마석에 달했다.

여러 도시가 함께 저금한 것으로, 도시 별로 10~20만 마석 정도를 저금했다. 개별 도시에게는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엘프들에게 환심도 사면서 그 김에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어 모두 만족해했다.

돈이 너무 많이 모였다.

엘프은행이 어디에 다 쓴단 말인가?

엘프은행은 운영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200만 마석을 5년 정기금으로 빼서 기적은행에 5년 동안 맡겼다. 기적상회의 5년 이자는 엘프은행의 드 배에 가깝기 때문에, 맡긴 돈 이자만으로도 엘프은행 전체의 이자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엘프은행은 곧 종족 내부의 대출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엘프왕과 각 성 성주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엘프족의 모든 도시에서 생각보다 아주 적극적으로 대출을 신청한 것이다.

약제상점, 부적상점, 약재판매, 가죽판매, 공장설립, 광산개발 등 대출 항목도 여러 가지였다. 예술과 오락 산업에는 더 많은 이들이 몰렸다. 엘프의 마력식당, 엘프의 영화 스튜디오, 엘프의 시련장 제작…… 그 수는 상상 이상이었다.

엘프족이 자기 종족을 신뢰하지 못하겠는가?

엘프족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불만 지피면 된다. 모험과 창업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있고, 머리만 조금 굴릴 줄 알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엘프은행은 자기 종족에게는 저당도 안 잡을 정도로 아주 관대했다. 사업과 사람이 갖춰지고, 합리적으로 대출을 신청하기만 하면 다 통과였다. 그 결과, 대출은 며칠 만에 200건이 넘어 그 규모가 총 100여 만 개의 마석에 달했다.

엘프왕은 잠이 안 올 정도로 흥분했다.

이번에 빌려준 것들은 마석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이다. 엘프왕은 이제 자신의 개혁목표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엘프들의 열정이 불타고 있는데, 엘프왕과 각 성주들이 지원을 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곧바로 엘프은행의 예금업무를 개방해 기존보다 500만 마석을 추가했다.

엘프왕은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본전을 못 찾는다 해도 침체된 엘프족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돈을 더 들여도 살 수 없는 가치.

게다가 기적상회가 관리감독을 해주고 알파브레인이 위험성도 체크해주니 엘프족이 손해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엘프족은 이번 변혁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당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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