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5
제585장 대무상검
‘이건 대장의 힘인데? 어째서 나한테 나타난 거지?’
천제현의 음성이 그녀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유명의 힘을 아가씨께 보냈어요. 지금의 힘으로는 저들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예요. 저들을 몽땅 쓸어 버리세요!”
“하하하, 고마워! 대장!”
남궁혜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녀는 천제현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해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남궁혜는 자신의 몸을 감싸는 가공할 힘을 느끼며 즉시 크게 소리쳤다.
“분천권!”
유명화와 봉황화가 결합하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장응국 사람 두 명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강하다니!”
남궁혜조차 자신의 힘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잠시 정신을 판 사이 장응국 고수의 우두머리가 비술을 펼쳤다. 구부러진 모양의 검이 남궁혜에게 닿는 순간, 그녀가 수 미터 밖으로 날아갔으나 여전히 다친 곳은 없었다.
“왜 이리 멍청하게 굴어요?”
천제현의 음성이 다시금 남궁혜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다시 보내드릴 테니, 빨리 저들을 없애 버리세요!”
남궁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속에 파고드는 엄청난 기운을 느꼈다. 이때 장응국 고수가 기세를 몰아 다시 공격을 감행했고, 그의 공격이 남궁혜에게 다다른 순간 대량의 유명화가 그녀 주위로 응집되더니 순식간에 악마의 모습을 형성했다.
“염마변!”
‘저건 천제현의 비술이잖아?’
좌중 모두 넋이 나간 사이 남궁혜의 오른손에서 검기가 나타났다. 그녀가 앞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려하고 눈부신 화염의 검광만이 끊임없이 이어진 파도처럼 허공을 찢었다. 이 순간 망토를 두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우두머리만이 가까스로 버티긴 했으나 유명화염의 검결 위력과 남궁혜의 폭발력으로 호신 마력이 파괴되고 말았다.
남궁혜의 검기가 상대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장응국 고수는 죽는 순간에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령 술사 수준에도 못 미치지는 자가 이토록 놀라운 힘을 발산할 수 있다니.
천제현 주변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남궁혜는 천제현에게 ‘빙의’된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천제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금색으로 변한 눈동자가 점차 제 색을 되찾았다. 그가 눈을 감고 가볍게 숨을 돌리자, 식은땀이 그의 귀밑으로 흘러내렸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현성의 경지’에 오른 신식은 대단히 드문 일일뿐더러, 더구나 주 정령으로 강화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신식의 경지는 깊이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입미는 자기를 고도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심안은 신식의 관측 능력을, 심등은 영향을 주고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현성 경지에 이르면 상징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빙의’가 가능해진다.
빙의는 완전한 정신 통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특징적인 능력을 신식을 통해 상대의 몸 안에 주입한다는 게 더 맞는 설명이다. 방금 전 천제현은 현성의 능력을 통해 유명의 힘을 남궁혜에게 주입했다. 이로 인해 남궁혜의 능력은 폭발적으로 커졌고 천제현의 일부 능력과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성의 대단함이다.
대륙의 전국급 강국 가운데 화령 마력을 지닌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으나 현성급 신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국급의 강국에서 한 명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어쨌든 대륙 전역에서 현성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진령 3성 정점의 마력으로 현성의 경지에 올랐으니 뭇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천검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이분이 바로 너희 종주가 모시는 자다!”
남궁혜가 신비한 인물의 진짜 정체를 밝혀내자 천검문 제자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고, 사기도 크게 곤두박질쳤다. 천검문은 결국 5대 문파의 연합 작전에 저항하지 않았다.
천검문 사람들이 잇달아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고, 사원은 이미 함락되었다.
남궁혜는 천제현의 지시에 따라 투항 의사를 밝힌 천검문의 장로급 인물을 천제현 앞에 데려왔다.
“대장, 다 데려왔어. 다른 일은 없고?”
“좋아요. 수고했어요.”
천제현이 이들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간단히 말했다.
“전 천검문의 물건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순순히 그 물건을 제게 주시면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뿐더러 이후의 풍족한 생활을 보장하겠습니다.”
‘이미 우리 천검문은 끝났건만, 저놈은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천검문의 장로가 바로 질문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천검문에서 전승되는 검술은 역사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륙의 일류 전승 검결을 열 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들었고요.”
“저희가 천검문의 무공을 전부 드릴 테니 저희를 풀어 주십시오!”
천제현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런 검결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지요. 제가 갖고 싶은 것은 천검문의 소무상검(小無相劍)뿐입니다!”
“뭐라고? 소무상검!”
“그, 그건…….”
천검문 장로들이 서로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남궁혜는 유려하게 뻗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우리 대장이 관심을 가지는 걸 영광으로 알아! 대장이 말한 그 무슨 검이라는 거 빨리 가지고 오지 못해!?”
장로 한 사람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저희가 원한다고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무상검은 천검문 시조가 검총에서 30년 동안 폐관하여 만드신 궁극의 검결이자 천검문의 가장 중요한 무공이기도 합니다. 오직 장문인만 소유할 자격이 있어 저희는 검결이 어느 곳에 묻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돼!”
남궁혜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릴 속이려 했다간 네놈들 목숨줄을 아주 처참하게 끊어줄 테야!”
“살려주십시오!”
장로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저흰 정말 모릅니다!”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만에 재미있는 무공 하나 발견했는데 설마 이렇게 놓치고 마는 건가?’
“대장이 나설 필요 없어.”
남궁혜가 천제현에게 말했다.
“그 무공은 분명 천검문 안에 있을 거야.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천검산을 샅샅이 뒤져볼게. 그 정도로 찾으면, 안 나올 리 없어!”
“그렇게 수고할 필요 없어요.”
천제현이 장로들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 시조께서 무공을 창조했다던 그 검총이 어디에 있나요? 제가 가보죠!”
“그, 그건…….”
남궁혜가 손을 들었다.
“무공을 내놓으라니까 왜 이리 꾸물거리는 거야? 지금 당장 우리를 그 망할 무덤에 데려가라고 하는 데도 미적대고 있네. 너희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
“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그곳은 비밀 무덤이 아닙니다. 단지 그 검총은 이미 저희가 속속들이 다 살펴본 상태라서요. 소무상검의 수련검결이 그곳에 숨겨져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
남궁혜가 천제현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쩌지?”
천제현이 의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검문의 시조가 검총에서 소무상검을 깨우쳤다는데, 나라고 못하라는 법 있어? 저를 검총에 데려가 주세요!”
천검문 시조가 생존한 시기에는 대주국이 건국되기도 전이었다. 이 시조는 ‘무상검성’으로 불렸는데, 사실은 소무상검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대륙 최고의 고수였다. 그런 무상검성도 30년이나 걸린 일이다. 그런데 이 젊디젊은 녀석이 그걸 어찌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남궁혜 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 이런 촌구석의 왕이 천제현과 비교가 되려고? 천제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기적이 얼만데, 겨우 검결 하나만 못할까?
“그만 지껄이고, 빨리 길이나 안내해!”
천검문 장로는 어쩔 수 없이 검총의 대문을 열었다.
천검산의 검총은 고대 유적으로 천검산 중턱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지하궁에 비견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고 그 안에는 수백만 개에 달하는 보검이 매장되어 있었다. 보검 하나하나가 쉽사리 보기 힘든 최상품으로 이는 고대 유적의 전승 검술이 매우 고강했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강시협곡의 만시고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문파임이 틀림없었다.
“와! 보검이 정말 많네!”
남궁혜, 공서련은 천제현과 함께 검총에 들어갔다. 검총의 규모는 대단히 컸으나 수백만 개의 보검이 땅에 꽂혀 있을 뿐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이 검들은 팔괘와 비슷한 진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마치 모종의 고대 검진과 같이 느껴졌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나 검총 안에 있는 검들 대부분이 녹이 슬어 그 당시의 기운을 발산하지 못할 뿐이었다.
천제현이 검총의 돌다리를 지났다. 이런 기다란 돌다리는 검총 안에 꽤 있었다. 좌우 양쪽으로는 각양각색의 검들이 꽂혀 있었고, 돌다리 밑은 더 많은 검들로 빼곡했다. 큰 것은 수십 미터에 이르렀고, 작은 것은 1~2미터에 불과했다. 세상 모든 검이 다 있어, 마치 검 전시관 같았다.
“여기가 천검문의 검총입니다.”
천검문 제자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천검문의 거의 모든 무공은 신비한 보석과도 같습니다. 모두 이 검총에서 발굴한 것이지요. 이미 오래전에 검총에서 발굴할 만한 건 다 발굴한 상태입니다. 이곳에서 더는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남궁혜가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대장, 정말 이곳에서 폐관할 생각은 아니지?”
‘폐관? 말도 안 돼.’
천제현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있겠는가.
천제현은 소무상검의 위력을 직접 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천검문 사람이 이런 검결을 만들어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조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지리적, 시대적, 경험적 제약이 있는 만큼 30년은 말할 것도 없고, 100년을 준다고 해도 절대 이런 무공을 만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 좀 비켜주세요!”
천제현이 눈을 감고 신식을 방출하여 검총 전체를 에워쌌다. 그러자 모든 검들이 반응하듯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청량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검들은 실제로 눈앞에 떨어져도 얻기가 힘들다는 불멸 혼기였다. 이 혼기들은 천제현의 힘에 반응하며 그를 인정했다. 즉, 천제현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곳의 어떤 검이든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무기를 찾는 게 아니었으므로 이런 검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 있다!”
천제현이 펄쩍 뛰어올라 검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빼곡하게 박혀 있는 칼자루 위를 밟으며 중앙에 있는, 강철 고리로 묶인 부러진 대검 앞에 섰다.
장내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천제현을 바라보았다.
공서련이 물었다.
“이 부러진 검이 뭐가 신기하단 거야?”
이 부러진 큰 검 위에는 무수히 많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이 검은 오랜 세월동안 중앙에 꽂혀 있었다. 검날은 이미 심각하게 녹슬어 있었다. 이처럼 부러진 검들이 무덤 곳곳에 널려 있었고, 이 검 역시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거야!”
천제현이 부러진 검 앞에 서서 그 위로 손을 뻗어 신식을 이용해 살폈다. 부러진 검이 몇 번 흔들리더니 이윽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공서련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냥 부러진 검이잖아. 잘못 안 거 아니야?”
천제현이 잘못 알 리가 없다.
이 부러진 검속에 현묘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으나, 다만 어떻게 봉인을 해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궁혜가 말했다.
“이 검은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검총 안에 있었잖아. 만약 검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천검문 사람들이 진즉에 알아냈을 거야. 그런데 그들이 여태껏 비밀을 풀지 못했다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봉인은 아닐 거야.”
맞는 말이었다.
쉽게 풀 수 있는 비밀이라면, 오늘날까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