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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83화 (583/729)

# 583

제583장 전화위복

유명화가 천제현의 몸에 응집되자 염마변의 비술처럼 사람이 마치 화염에 휩싸인 악마처럼 변하였다. 천제현이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유명검을 대신하여 기령과 화염을 받아들였다.

빙령화가 비웃는 듯한 기운을 내뿜으며 천제현 주위를 휘감고는 유명화의 힘과 천제현을 동시에 삼키려고 하였다. 이 둘은 힘의 차이가 현저했고 환경 역시 천제현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으므로 빙령화가 천제현을 통째로 삼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빙령화가 천제현의 몸을 휘감는 순간, 눈부신 백색 화염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일이 닥치자 빙령화의 의지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빙령화가 감싼 것은 화염과 생명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거대한 블랙홀과 같았다.

빙령화는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제현은 양손으로 법인을 누르니 전신이 주 정령의 기운을 옭아맸다. 두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는 심오하고 텅 비어 있는, 블랙홀처럼 궁극의 흡입력을 가진 눈동자였다. 천제현이 빙령화를 모조리 삼키자 그 힘은 갈수록 약해졌고, 유명화가 이 틈을 노려 반격을 가했다.

쾅!

빙령화가 발화했다.

그것은 끝까지 발버둥 쳤으나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는 빙령화의 불찰이었다. 이미 쇠약해진 상태에서 내력을 알 수 없는 천제현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천제현에게 역전의 기회를 제공해 준 격이 되었다.

천제현은 위험을 무릅쓰고 빙령화를 빨아들였다. 정신에서부터 힘까지, 의식에서부터 마력까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빙령화가 발악하면 할수록 힘은 빠져나갔고, 유명화는 기세를 몰아 빙령화를 완전히 태워 버렸다. 화염이 천제현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유명화의 본질은 마력을 태우는 것으로, 빙령한천처럼 가공할 마력도 이 순간만큼은 기름이나 다름없었다.

불길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얼음교룡들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결국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새끼 여우도 이 광경을 보자마자 재빨리 달아났다.

요더 등 사람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비비안이 황급히 손짓하며 말했다.

“저길 보세요! 빛이에요!”

그녀가 짧게 이 한마디를 할 동안 빛이 얼음 구멍 전체를 가득 메웠다. 금속보다 더 단단한 수정에 금이 가더니 엄청난 힘의 파동이 얼음궁전 중심으로 방출되었고, 설원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파급력은 수백 리까지 이어져 동시다발적인 눈사태가 발생했다.

얼음호수는 잠깐 사이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졌고, 균열의 틈 사이로 청백색의 화염이 분출되었다. 한편의 장관을 이룬 이 장면은 세기말적인 모습과 닮아 있었다.

요더 등 일행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모든 얼음호수의 물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불타오르는 화염을 뒤덮었다. 대체 이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화염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얼음호수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얼음 밑의 깊은 곳은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비비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천제현을 구해야 해요!”

천제현은 유명화가 빙령화를 삼킨 후 빙안을 중심으로 모든 빙맥을 태워 버렸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기억해냈다. 이 엄청난 마력은 순식간에 천지를 휘감았고, 천제현까지도 완전히 집어삼켰다.

“거참! 난 운이 좋단 말이야. 이래도 안 죽다니 말이야.”

천제현은 정신이 들자마자 손발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는 태음산 치료 동굴에 누워 있었다.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보자 온몸이 다 찌릿했다.

“어! 뭔가 이상한데?!”

의식을 회복한 천제현은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먼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예전과는 딴판이었다. 천지만물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는데, 이를테면 원소와 원소의 접촉, 공간 안의 마력과 물질의 흐름, 거기에 미세한 변화까지, 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제현은 심지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먼지 입자의 형태와 개미굴 안에 있는 개미와 그 융털 한 올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의 신식과 비교할 때 수십 배 이상 증폭된 힘이었다.

‘그래!’

천제현은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주 정령의 흡입력을 활성화하여 빙령한천의 마력과 혈투를 벌였고, 열세에 있던 유명화가 결국 신비한 빙령화를 흡수했다. 그 결과 천제현은 빙령화의 정수를 제련하여 빙안에서 수십 만 년 이상 진화한 신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천제현의 신식은 거듭 한계를 뛰어넘어 ‘심등의 경지’를 능가한 ‘현성의 경지’에 다다랐다. 신식 수련은 마력과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피차 독립적인 관계로서 존속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신식은 생명의 영혼과 정신의 근원을 발굴하는 힘이다.

반면에 마력은 천지만물의 영력을 흡수하여 자기 방식대로 사용하는 힘이다.

전자는 근원을 밝히는 것이고, 후자는 물질로서 태생적인 결함은 메우는 것이다. 누가 강하고 약한지는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 없으나, 신식은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 그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다르게 마력은 마력을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원동력으로, 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연장할 수 있어 효과가 더 빠르고 분명하게 나타난다.

신식은 수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천재일우의 기회와 기연 외에도 자신의 깨달음과 이에 합당한 재능까지 갖춰야 한다. 이처럼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아 수련자들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신식은 생산성, 수련 시 보완성, 전투력 등의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직접적인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자라면 단순히 힘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천제현은 힘만 가지고는 극한의 경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천제현이 신식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신식을 높이려면 스스로 합당한 능력을 지녀야 하고, 천재일우의 기연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다 갖추었다고 해도 신식을 얻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 소득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모험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천제현은 죽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열흘이나 보름 정도는 충분히 요양해야 할 정도로 자신의 부상이 심각한 상태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어느 곳 하나 다친 데가 없었고, 오히려 마력이 크게 상승하여 마력이 두 단계나 껑충 뛰어올랐다. 진령 2성 정점에서 진령 3성 정점으로 단숨에 높아진 것이다.

진령 3성 정점과 진령 4성 사이에 장애요소만 없다면 체내에 응집된 막대한 마력으로 이미 4성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마력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상승할 수 있는 건가?’

이는 분명 유명화가 빙령화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일궈낸 성장이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전투 도중에 검이 산산조각 나 빙안 깊은 곳에 떨어졌다. 유명검 없이는 전투력이 반감될 것이다.

‘잠깐. 유명검이 없는데, 그럼 유명화는?’

검 자체가 지닌 가치는 사실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유명화였다. 천제현은 자기 몸을 자세히 살핀 후 자신의 경맥과 단전에 화염과 마력이 완전히 결합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화염의 기운이 이토록 익숙한 것은 유명검에 휘감겨 있던 유명화이기 때문이다.

유명화는 빙령화 절반을 삼킨 덕분에 힘이 더욱 커졌고, 엄청난 수준으로 진화하여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해졌다.

쾅!

천제현의 오른손에서 갑자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청백색 화염이 타오르더니 그의 손가락 끝을 유연하게 오갔다. 유명화는 빙령화를 흡수했지만, 그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이 둘은 서로 융합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먹어치운 것이며, 먹힌 쪽은 상대가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불의 정령도 얼음의 정령도 없는데, 어째서 불을 마력 안에 융합시킬 수 있었을까?’

이는 대단히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불편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로 인해 실력이 대폭 향상될 수 있었다.

“유명, 지금 어떤 상태야?”

“빙령화를 삼킨 후 엄청난 진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유명검을 벗어나 주인님의 마력과 완전히 융합되었습니다. 지금은 주인님이 가지고 계신 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천제현은 정령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력 자체만으로 엄청난 힘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명 역시 크게 진화하여 인공지능에 가까워지고, 천제현과 주종관계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새끼 여우와 천제현 사이와는 조금 다른 관계이다.

천제현은 새끼 여우의 주인으로서, 여우가 죽어도 천제현이 죽지는 않지만 천제현이 죽으면 새끼 여우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끼 여우는 워낙 성격이 강해 주종계약은 단순히 새끼 여우의 목숨만 속박할 뿐 여우의 생각까지 속박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명은 정신이자 영혼이자 생명체로 이 모든 것은 천제현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있다. 따라서 유명은 새끼 여우처럼 개성이 강하지 않고, 오히려 절대적인 충성과 신뢰로 주인만을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유명은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이 된 것이다.

초월 마력을 더해 행렬 연산을 강화한다면, 천제현이 슈퍼 인공지능을 뇌에 장착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는 가공할 능력과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천제현은 돌아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천제현, 드디어 일어났구나!”

인기척을 느낀 비비안이 바로 뛰어들어왔다.

“걱정돼 죽는 줄 알았잖아.”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예요? 다른 일은 없었고요?”

“정말 몰라?”

비비안이 선망의 대상이라도 보듯 천제현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빛 모두 다소 과장되다 싶게 변했다.

“천제현, 네가 설원의 영맥을 모두 불태워 버렸어. 그러자 대량의 영력이 분출해서 우리도 적잖이 도움을 받았고, 내 마력도 크게 상승했다니까. 린지아는 진령 5성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죽음의 설원은 아직 지맥이 불타고 있어. 방출된 영기만 해도 6대 영산을 능가할 정도야. 설원이 6대 영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산이 되었다니까.”

이것은 천제현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천제현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빙우 누님의 상태는 어때요?”

“빙우 언니는 이미 깨어났어. 하지만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을 거야.”

“가보죠. 직접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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