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7
제577장 태음산 전투
대략 백여 개의 사갈미사일이 분지 상공에서 요격되어 폭파되었다. 분지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5대 산 술사들은 현음종의 기습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그들 중 누구도 미사일이 터지면서 대량의 독극물이 퍼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폭발로 인해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서 고체 상태였던 독극물이 액화되어 강력한 기류가 만들어졌다.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든 무색의 기류는 매우 빠르게 주변으로 퍼졌고 순식간에 분지 전체를 덮어 버렸다.
“윽!”
“조심하시오! 독이오!”
여기저기서 술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갈독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독극물로, 중독된 것을 발견할 때쯤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 지난날, 심빙우도 청주에서 이 독에 중독되어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번에 사용된 독은 기적상회의 연구개발로 독성이 한층 더 강화된 것이었다. 혼성 술사 위주로 구성된 5대 산의 술사들은 속절없이 그 생화학무기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해져 있었다.
분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술사들이 하나 둘씩 중독되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치시오!”
5대 종파의 장로들은 제자들을 데리고 도망가려 했으나 현음종의 강시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1초가 지체될 때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술사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분지 전체가 공황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몰살도 시간문제였다.
“겨우 저 정도가 대주국의 주력군이란 말이야? 우스울 정도로 약하잖아!”
제대로 한 번 몸 좀 풀어보려고 벼르고 있던 남궁혜는 싸워보기도 전에 픽픽 쓰러지는 상대를 보면서 실망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천제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대주국은 대국이에요. 6대 영산은 그 대주국의 기둥 같은 집단이니 이렇게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변이 일어났다. 무수히 많은 검은색 그림자가 메뚜기 떼처럼 새까맣게 시야를 메우며 분지 안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남궁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
“저게 무슨 괴물이지?”
분지 안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몹시 기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코끼리만큼 크고 일부는 토끼처럼 작았으며, 대부분이 고릴라나 사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몸에 빛을 발하는 주문을 새겨 넣은 듯하나하나가 전부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놈들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기관술로 만든 기관갑충들이에요. 날 수도 있고 땅굴을 팔 수도 있으며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죠. 게다가 각종 진법과 금제까지 새겨놨어요. 그래서 독안개 속에서도 무사했던 것 같네요.”
천제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놈들의 기관술이 제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아요.”
“동소어가 갖고 있는 능력이네!”
남궁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하국을 통틀어도 몇 명 없잖아? 대주국에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것이 바로 신기문의 기관술사들이었다.
기관술은 잡술로 업신여김을 받곤 했으나, 현재 기적상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가 바로 기계 구조에 정통한 기관사들이었다.
기적상회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축적해 놓았다. 이제 천제현이 개발하고 싶은 것은 대형 무기나 비행선, 요새 같은 것이었고, 많은 기관술사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기적상회를 통틀어도 기관술사의 수는 몇 백 명에 불과해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문에는 그런 기관술사들이 수십 만 명이나 있었다.
천제현이 대주국에 자리를 잡는다면 경험이 풍부한 기관술사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기적상회의 인재풀은 열 배, 아니 백 배 이상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향후 설계와 제조 능력 모두 엄청난 개선을 이루지 않겠는가.
눈앞의 기계들은 대주국을 손에 넣고 말겠다는 천제현의 결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기관술사 고수들이 사갈독에서 도망치는 걸 시작으로, 다른 종파에서도 독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약왕곡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약물에 정통한 자들이라 몸에 각종 해독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진영을 정비하고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이뤄지게 가만히 있을 천제현이 아니었다.
“마력대포랑 파괴력이 강한 미사일을 준비해 주세요. 저 기계들이 기적상회의 폭탄들을 맞고도 멀쩡할지 보고 싶네요.”
미사일 발사대에 다시 미사일이 장전되었다. 마력중형포 십여 대 역시 목표물을 설정하고 포격 준비를 했다.
천제현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발포가 이뤄졌다.
기적상회와 한 번도 겨뤄보지 않은 대주국 술사들은 기적상회의 무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임시용 공간창고로 운반해온 무기들의 수는 결코 많지 않았으나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하는 미사일 십여 개가 적진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속력, 궤도, 공격지점 등 모든 변수가 알파브레인의 정밀한 계산을 거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거대한 불기둥에서 고온의 섬광이 방출됐다.
폭발의 살상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현장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 같은 두려움이 드리웠다.
탐측레이더에 뚫린 지점이 잡힐 때마다 파괴자기관총이 즉각 투입돼 마력 탄알을 쏟아냈다.
대체 무슨 무기란 말인가!
이토록 잔학무도한 공격이라니!
“계속 여기 묶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천검문 부문주 능응의 전음비술이었다.
“신기문이 기계야수를 이용해 봉쇄선을 뚫으면 저희와 현무종이 뒤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그리하리다!”
기관술사들이 입은 특수갑옷은 기껏해야 방어구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전투에서 진짜 위력을 발휘하는 건 그들이 조종하는 기계야수였다. 새, 호랑이, 표범 등 기계야수는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다. 하늘을 나는 것에서부터 육지를 달리거나 심지어는 물에서 헤엄치는 것까지, 쓰임새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약왕곡의 단약이 타 종파 소속 술사들에게도 분배됐다.
“이 해독약이면 잠깐은 독안개를 버텨낼 수 있을 거요. 다 같이 진격합시다!”
“회오리 방패 부적!”
영허동에서도 값비싼 부적을 아낌없이 풀었다.
“회오리 방패를 생성해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부적이오. 독안개만이 아니라 적의 공격도 막아줄 거요.”
“기계야수들을 출격시키겠소!”
“전진!”
“또 그 괴상한 불화살이오!”
“천검문, 검진!”
날아오던 미사일이 어지럽게 얽힌 보검에 막혔다.
속도와 방어력이 특기인 현무종은 좌우 및 후방을 치고 들어오는 강시를 맡았다. 극도로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5대 종파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내는 중이었다.
총알받이로 나선 기계야수와 현무종의 뒤쪽으로는 술사 수만 명이 따르고 있었다. 봉쇄선이 뚫리면 승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때.
마력중형포 십여 개에 장전을 마친 남궁혜가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전진하는 적들을 보며 포수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발사! 모조리 날려 버려!”
마력중형포의 위력이야 말해 입 아프지 않겠는가.
빛의 구(球) 십여 개가 한 줄기로 모여 작열하는 백색 섬광을 이루더니 그대로 날아가 기계야수의 회오리방패를 인정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기계야수에게 걸려 있던 온갖 방어용 금제 중 제 효과를 발휘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최소 백 마리가 그 자리에서 새카만 숯덩이가 됐다.
피해는 기계야수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백색 섬광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체를 불태웠다. 체내에 수분이 있는 한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파죽지세!
천하무적!
주춤하는 적들을 본 남궁혜가 의기양양하게 웃어젖혔다.
“사대 도시 부대들만도 못한 놈들이잖아! 더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마력중형포가 연이어 불을 뿜자 기계야수들이 또다시 속속 나자빠졌다.
원진남은 이를 갈았다. 기계야수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선대가 남긴 귀중한 자원이 마른 장작처럼 불타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잿더미가 된 건 단순히 짐승 몇 마리가 아니라 신기문의 근간이었다.
애초에 이번 전투에 참여한 게 잘못이었다.
약왕곡, 영허동, 현무종 역시 섣불리 천검문을 따라온 게 후회막급이긴 마찬가지였다. 중형화기의 공습에 독안개의 위협까지, 맹독에 당해 쓰러지는 제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종파로서는 엄청난 손실이었다.
현음종이라고 어디서 이런 광경을 구경이나 해봤겠는가?
천제현이 끌고 온 인력과 장비는 솔직히 몇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5대 영산 술사들의 손발을 간단히 묶어 버린 것이다.
“거기 서서 뭐 하는 겁니까!”
천제현이 멍하니 서 있던 음무극을 나무랐다.
“탄약도 다 떨어져 가는 판에 구경만 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여기까지 밀고 올라오길 기다리려고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정신을 차린 음무극이 소리쳤다.
“태음산의 후예들이여, 현음종을 위해 싸울 때가 왔다. 전원 돌격!”
우물에 빠진 사람 위로 돌 던진다고 했던가, 현음종 술사들이 이때다 하고 총출동했다.
5:1이면 본래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으나 공격이 가로막히자 사기가 땅에 떨어진 5대 영산 측과는 달리 현음종은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었다.
“태음대진! 발동!”
태음산 호산진법이 발동됐다.
강력한 무공과 마력, 거기에 온갖 비술까지 갖춘 술사 수십만 명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난장판이 된 5대 영산 진영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현음종은 약 20만 명.
5대 영산의 술사들은 총 40만가량.
5대 영산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투지만큼은 인원수와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필사의 각오로 총출동한 현음종 앞에서 5대 영산 술사들은 덜컥 두려움을 느꼈다. 벌써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자들까지 생겨났을 지경이었다.
“대열을 유지하라!”
능응이 다급하게 외쳤다.
“놈들이 제 손으로 입구를 열어준 지금이야말로 현음종을 끝장낼 기회다! 수적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월등한 우리가 무엇을 겁낸단 말이냐? 나를 따르라!”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 리가.
다치고 중독되고 도망치고, 이미 난장판이 된 진영에서 현음종의 공세를 막아낼 힘이 나올 리 없었다.
현무교의 금규가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해 봐야 공멸일 뿐이오. 그만두겠소!”
“아니, 물러서기에는 늦었습니다. 게다가 아직 기회가 있어요!”
능응이 뭔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태음산의 금제가 풀렸으니 빙 돌아가서 괴상한 무기부터 파괴하는 겁니다. 저 무기만 사라지면 우리한테도 승산이 있습니다.”
몇 사람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좋소이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부딪쳐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