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5
제575장 대주국의 습격
천제현의 단호한 거절을 들은 엘프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발 더 물러났다.
“7대 3!”
그러나 천제현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폐하,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의 숲과 엘프들이 정말 그 이익을 원할까요? 아니요.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협력이 체결되면 엘프족은 전송탑과 공간창고의 사용권을 손에 넣게 될 것입니다. 그 기술이 가져다주는 직접적 수익과 부가가치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닐까요?”
이익 배당권이란 전송탑과 공간창고의 직접 사용권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100회 전송탑을 이용할 수 있다면 20%의 이익 배당권 소유 시, 전송탑을 20회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수속만 제대로 한다면 따로 신청을 하지 않고도 직접 사용이 가능하며, 공간창고의 사용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제현의 말마따나 엘프족에게 있어 전송탑과 공간창고를 통한 직접적 이익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엘프 도시의 발전이었으니까. 즉, 인적, 물적 교류에 있어서 엘프들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거대한 장벽을 깨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실 천제현은 엘프왕이 거절하지 못할 걸 잘 알기에 그렇게 인색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핵심기술을 외부인에게 그렇게 많이 사용하게 해줄 수는 없지.
20%는 그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엘프왕은 무슨 말을 해도 눈앞에 있는 인간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네. 하지만 조건이 있네. 엘프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해주길 바라네. 기초시설이 구축되면 나머지 자원으로 주변 지역을 개발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 밖에, 우리는 기적성 외곽에 엘프 마을 하나를 만들고 싶네. 기적성이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네. 마지막으로, 기적성이 영원의 숲에 교역 금지 상품들을 팔아줬으면 하네. 마력무기나 알파브레인 같은 것들 말이야.”
“그 정도쯤이야.”
삼대 세력이 호시탐탐 기적성을 노리고 있으니 엘프족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먼저 기적성과 엘프족의 자유무역을 이루고 힘을 키우는 게 맞다.
그렇게 엘프왕과 기적성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기적성은 혼돈의 숲 엘프지구에 열 개의 전송탑과 50개의 공간창고를 새로 구축하기로 약속했고, 정보통신망 규모를 현재의 30배로 늘리기로 했으며, 경기장, 시련장, 쇼핑몰, 주점 등도 100개 늘리기로 했다.
또한, 엘프들의 관할 구역에서 필요한 모든 인력과 자본은 엘프족 측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기적성 외곽의 숲에 만 명이 살 수 있는 엘프족 마을을 개발하기로 했으며, 그 마을에서 거둬들이는 세수는 기적성에서 가져가기로 했으나 따로 기적성의 통제는 받지 않는 걸로 했다. 또, 기적성은 엘프족에 마력무기, 알파브레인 등 아직 상업화되지 않은 상품들을 판매하기로 했다.
사실 그 물건들은 엘프왕이 먼저 말하지 않았어도 향후 기적상회에서 판매할 예정인 물건들이었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게 분명한 제품들을 갖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천제현이 써준 허가서를 손에 넣은 엘프왕은 어떤 방법으로 의회를 설득해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엘프 인재들을 되도록 빨리 엘프 마을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천제현이 원한 수백 명의 인재들이 포함되어야 했다.
어쨌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적상회는 향후 영원의 숲과 심도 있는 협력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엘프들의 도움에 힘입어 세력 확장을 하게 된다면 기적성은 혼돈의 숲 그 어떤 성보다 강해질 것이다.
천제현이 영원의 숲과의 협력 계약으로 정신이 없을 때, 대주국에서 시급을 다투는 소식이 날아들어 왔다.
대주국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심빙우와 린지아, 요더 일행이 5대 영산과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지만, 아직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요더가 이미 대주국 왕족의 유적 위치를 파악했고, 이제 찾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유적에 가기 전에 요더 선지자가 강력한 위험을 느꼈다나 봐. 너도 알다시피 드루이드 선지자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잖아? 위험을 느낀 요더 선지자가 이번 여정은 몹시 위험하다고 설명하면서 그들이 사흘 안에 태음산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태음종에 말해 놨대.”
“그게 며칠 전 얘기죠?”
“대략 닷새는 됐을 거야!”
“닷새라고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공화련의 아름다운 눈썹이 활처럼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쪽에서 보내온 정보를 보면 요더 선지자 일행은 태음산을 벗어나자마자 습격을 당한 것 같아. 태음종 역시 5대 종파의 포위공격을 받았고. 그렇게 며칠을 버틴 것 같은데 그 사이 우리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연락을 못 받은 거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렇진 않을 거예요. 전송 두루마리가 있으니 최소한 목숨을 잃을 일은 없었겠죠. 어떤 이유로 갇혀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정말 이상하네요. 요더 선지자는 화령 고수잖아요? 대주국에 그를 제압할 고수는 없을 텐데 말이죠.”
몇 초간 생각에 잠겨 있던 천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남궁 아가씨한테 인원을 모으라고 전달해 주세요. 제가 직접 가서 봐야겠어요.”
최근 기적성에는 처리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삼대 세력의 동향을 시시각각 감시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엘프족과의 협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했다. 하지만 대주국의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천제현은 다시 한 번 기적성의 일들을 공화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화련의 일솜씨가 뛰어났고, 알파브레인 수도 많아졌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남궁혜는 싸우러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즉시 수십 명의 인원을 모아왔다.
그들 대부분은 진령 3성 이상의 고수들로, 기적성에서 한가락하는 인물들이었다. 화원에 가서 약초 서리에 여념이 없는 새끼 여우를 잡아온 천제현은 그들과 함께 대주국으로 이동했다.
천제현 일행이 전송되어 온 것을 본 음무극이 허둥지둥 다가와 말했다.
“어째서 이제야 오는 거요? 종주님이 실종된 지 닷새나 됐소이다! 태음산도 닷새 내내 포위되어 있었소.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거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천제현이 손을 휘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기적성에도 문제가 생겨서 빨리 오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사태가 진정되었죠. 종주는 무사할 것이니 걱정 마시고 일단 상황부터 설명해 주세요!”
주변을 둘러본 천제현은 태음산에 큰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격전으로 인해 주변 산봉우리들이 파괴되면서 듬성듬성 큰 구멍이 나 있었고, 태음산의 주봉(主峯)에도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종파 입구에 있던 건물들은 무너져 있었고, 광장에는 지진이라도 난 듯 거대한 균열이 가득했다. 그중 몇 개의 균열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듯 화염과 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음무극이 어두운 표정으로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우리가 대주국의 왕족을 찾아 왕실을 부흥시키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다른 종파들의 격렬한 반대와 항의에 부딪혔소. 물론 그건 예상 범주 안에 있던 일이었소. 우리는 지난 백 년 동안의 관계를 이용해 5대 종파 중 한두 개 종파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거나 중립으로 만들어 시간을 끌면서 무력충돌을 피할 생각이었다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된 겁니까?”
“우리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소. 그렇게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기적성에서 온 요더 선지자가 유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하여 그곳을 찾으러 가려고 할 때였소.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음무극의 낯빛이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파리하게 질렸다.
“5대 종파가 연합하여 태음산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요. 호산대진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이곳은 폐허로 변했을 거외다.”
“며칠 만에 이 모양이 됐다고요?”
남궁혜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음산이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만년 호산대진은요? 빛 좋은 개살구였나요?!”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음무극과 현음종 장로는 민망함과 분노로 얼굴이 시뻘개져 소리쳤다.
“흥, 너희가 아니었다면 태음산이 다섯 영산과 원수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주국 왕족의 부흥 어쩌고를 외치다가 공공의 적이 된 것 아니냐.”
음무극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번의 전투를 거치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소. 5대 종파가 마수를 훈련시켜 전쟁에 투입했다는 거요. 그런 전투 방식은 대주국에서는 몹시 드문 것이오. 게다가 그들이 부리는 마수들은 대부분이 대주국에 서식하는 놈들이 아니었소. 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도 상당히 많았소!”
“어떤 고수 말입니까?
“정확히 모르겠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처음 보는 고수들이었다는 거요. 전투 스타일이나 움직임 모두 대주국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까.”
대주국의 6대 명산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겨뤄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대의 전투 스타일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언젠가 부딪힐 기회가 생기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정체불명의 고수들은 대주국의 고수들과 많은 부분이 달라 누가 봐도 대주국 사람이 아님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음무극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마지막 공격이 방금 전에 끝났다오. 내 생각대로라면 곧 새로운 공격을 시작될 것이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천제현이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새끼 여우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여우야, 그놈들 정체 좀 알아내 봐!”
여우는 곧바로 신의 눈동자를 시전해 태음산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술사들을 살펴봤다. 그들의 수는 대략 50만 명쯤 되었고 각 종파에서 손에 꼽히는 정예들이었다. 시선을 적의 진영 중앙으로 이동한 여우는 뭔가 발견한 듯 번쩍 머리를 들고 앞발을 휘두르며 입을 벌리고 발톱을 세워 굶주린 늑대의 모습을 취해 보였다.
“뭐라고? 마수령을 말하는 거야?”
새끼 여우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남궁혜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대주국은 인간들의 왕국이잖아? 대주국에 마수령이 나타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