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74화 (574/729)

# 574

제574장 긴밀한 협력

랜스로드는 머리가 트여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엘프족의 개혁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생명수를 영원의 숲으로 가져가는 것이 개혁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원의 숲이 생명수를 손에 넣을 경우 세상으로부터 더 철저하게, 더 오래 격리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수만 손에 넣으면 엘프족은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생명수가 그들을 보호해 주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엘프들과 세상을 더 철저히 단절시킬 것이다.

그가 보기에 그러한 단절은 몹시 무서운 것이었다. 마수령과 인간족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는데 지난날 대륙의 주인이었던 엘프들은 갈수록 소외되면서도 자성할 줄을 모르고 있다. 당장 이 상황을 바꿔놓지 않는다면 만 년 후의 엘프들은 약소 종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엘프왕이 진행할 개혁의 관건은 기적성에 있었다.

어째서 기적성은 영원의 숲의 자원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인가? 엘프족의 인재들은 하프엘프들보다 많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자원은 혼돈의 숲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거늘.

***

“마석 운반이 끝났어.”

직접 수량을 점검한 비비안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천제현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직접 확인해 봐!”

“그럴 것 없어요. 제가 공주님을 못 믿을까 봐요?”

그 말을 들은 비비안은 순간 뭉클해졌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하긴. 난 죽어서도 기적성의 귀신이 될 거야. 그러니 내가 기적성에 피해 줄 일을 할 리가 없잖아? 나만 믿어!”

옆에 있기가 민망해진 엘프왕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딸내미라고 하나 있는 게 자기 소속도 잊은 건가?’

기적은행의 마석 비축량이 단번에 십여 만 개로 늘어났다. 이 정도 자금이면 한동안은 문제가 없으리라. 이번 전쟁에서 입은 손실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성은 과감하게 그 돈을 가져다 쓰기로 결정했다. 천제현은 1년 후의 상환 문제 같은 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엘프왕 폐하, 생각보다 훨씬 통이 크신 분이셨군요. 그럼 저도 바로 서련 아가씨께 알파브레인을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이윽고 공서련이 알파브레인을 가져와 엘프왕 앞에 놓았다.

“엘프왕 폐하, 이것이 바로 기적상회에서 최근에 생산한 알파브레인입니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개선되었지요. 초당 13억 번의 연산이 가능하답니다. 인공지능체도 훈련을 거친 상태라 명령 식별과 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육은 더 시키셔야 하겠지만요. 사용하시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연산 속도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으시면 말씀만 해주세요. 비용 없이 기적성에서 전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엘프왕으로서는 이번 장사에서 남는 게 없었다. 마석 15만 개면 이자만 마석 수만 개에 달하는데, 그걸 포기하고 알파브레인을 얻은 것 아닌가. 현재 기적상회는 기계화로 생산성이 크게 올라갔으므로 스마트공장에서 생산되는 알파브레인의 원가는 마석 수백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거래를 그렇게 단순하게 물건 값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희소가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제 영원의 숲은 기적성 외에 최초로 알파브레인을 소유한 지역이 되었다. 앞으로 관리 업무가 한결 손쉬워질 테니 남는 시간과 정력을 다른 일에 쏟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어쨌든 영원의 숲에 마석을 쌓아놓고 있어 봤자 쓸 일도 없지 않은가.

천제현이 이어 말했다.

“저는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폐하께서 기적성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셨으니 영원의 숲과 함께 협력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고자 합니다. 흥미가 있으신지요?”

엘프왕이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이 인간이 또 무슨 꿍꿍이인 걸까?’

“엘프왕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사료됩니다만, 현재 기적상회는 수없이 많은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원과 인재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력 확장에도 문제를 겪고 있지요. 제가 보기에 영원의 숲의 상황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엘프들은 지난 수만 년간 쌓아온 방대한 자원과 재산, 그리고 혼돈의 숲 전체를 좌지우지할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요.”

엘프왕이 의구심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기적성과 영원의 숲이 손을 잡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뜬구름 잡는 얘기를 싫어하는 천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함께 숲을 개발하는 겁니다. 저는 각종 기술을, 폐하께서는 인력과 자금을 제공하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은 공평하게 분배하는 거죠. 예를 들어 영원의 숲에는 대량의 공간수정석과 귀한 공간 능력 인재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있는다면 100년이 지나도 쓸 데가 없겠지만, 기적성에 맡겨 주신다면 둘도 없이 귀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자원과 인재를 제공하시고, 저희가 공간 기술을 내놓으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전송탑과 공간창고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죠. 그거야말로 윈윈 아닐까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엘프왕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천제현의 말이 맞다. 그렇게만 된다면 양측 모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엘프족에는 엄청난 부와 자원이 축적되어 있지만 그게 다다. 그것을 사용해 어떤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 반면 기적성은 수많은 상품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력이 약한 탓에 단시간 내에 큰 성장을 이루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 둘이 긴밀한 협력을 이룬다면 눈부신 발전을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비비안이 부추기듯 말했다.

“정말 훌륭한 생각이네요! 아바마마, 우리, 해요!”

“엘프족의 수많은 인재를 이렇게 놀리는 건 낭비입니다. 기적성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천제현은 솔깃해하는 엘프왕의 모습을 보고 더 강력하게 주장했다.

“인재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엘프족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대가 원하는 건 어떤 인재인가?”

“진법이나 약초 원리에 정통한 학자 등, 실질적인 학문에 조예가 있는 인재라면 모두 좋습니다. 이 밖에, 특별히 요청 드리고 싶은 인재는 공간 속성, 정신 속성, 생명 속성의 학자들입니다. 이 분야의 인재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욕심이 많군. 엘프족 내부에 인재가 많다고는 하나 대부분 이름난 인물들일세. 만약 엘프의회에서 알게 된다면 딴지를 걸고 늘어질 테니 골치 아파지지 않겠나.”

천제현은 어깨를 으쓱한 후 말했다.

“그건 폐하가 하시기에 달린 일 아닙니까? 저는 폐하의 결심이 천고에 길이 빛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훗날 폐하는 엘프족 역사에 가장 중요한 개혁가로 이름을 남기시겠죠. 그런 폐하께서 그 정도 반발을 마음에 두시는 겁니까? 폐하께 어울리는 패기와 박력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만!”

엘프왕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말이야 쉽지.”

“소인은 폐하께 큰 도움을 받았기에 성심으로 영원의 숲에 도움이 될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그 정도 일조차 해결을 못 해주신다면 저는 용성으로 가서 용의 영주와 손을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제현은 방법이 없다는 듯 두 팔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용의 영주가 갖고 있는 자원도 영원의 숲에 뒤지지는 않겠지요. 용의 영주라면 돈이 되는 일을 거절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천제현, 안 돼!”

천제현이 흑룡과 손을 잡겠다는 말을 들은 비비안은 조급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더 이상 그 늙은 꼰대들한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엘프왕이 보기에 천제현의 말은 반이 공갈이었다. 용의 영주와 손을 잡겠다고? 그게 그리 쉽게 되겠는가. 협력이란 무릇 양측의 실력이 비슷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세가 약한 기적성이 용의 고개와 협상을 한들 제대로 된 대접이나 받을 수 있겠는가? 흑룡의 탐욕은 숲에서 모르는 자가 없다. 기적성을 탐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과 손을 잡는 건 그야말로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천제현이 영원의 숲과 협력을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실 기적성으로서는 영원의 숲을 제외하면 다른 상대가 없었다.

“알겠네. 굳이 자극적인 말까지 할 필요는 없네.”

엘프왕은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일단 계획부터 말해 보게나.”

“엘프족에서 갖고 있는 공간수정석으로 전송탑을 만들면 저희가 숲 안에 전송망을 구축하겠습니다. 그 다음, 공간 능력이 있는 엘프 인재들을 기적성으로 보내 주시면 비비안 공주님의 지도 하에 되도록 많은 공간창고를 만들고 물류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밖에, 기적성이 엘프성과 주변 지역에 통신 기초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물적 교류, 인적 교류, 정보통신.

그것은 모든 발전의 기초이다.

“문제 없네.”

엘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송탑과 공간창고로 얻는 수익은 어떻게 분배할 건가?”

“기적성이 8할, 영원의 숲이 2할을 갖습니다. 엘프들은 사용 및 이익 배당 권한만을 가질 뿐, 관리 권한은 없습니다.”

“너무 인색하군.”

엘프왕은 얼굴을 굳혔으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영원의 숲에서 인력과 자원을 모두 제공하는데 2할만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기적상회에서 가져가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자 천제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간수정석이 매우 진귀한 물건이라고는 하나, 기적상회가 뚫어놓은 재료 조달 루트를 통해 구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기적상회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요 재료인 성안을 내놓을 것이며, 알파브레인으로 시스템을 통제할 겁니다. 이것들은 대체 불가능한 부분이지요.”

“잊지 말게. 엘프족이 없었더라면 기적상회가 혼란의 숲에서 이만큼 발전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말일세. 영원의 숲의 지원과 허가가 없었다면 기적상회가 어찌 엘프족의 땅에서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안 그런가?”

엘프왕이 이어서 말했다.

“6대 4로 하세. 우리로서는 최대한 양보한 걸세. 기적상회에서 그 정도 성의는 보여주길 바라네.”

그러나 천제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엘프왕 폐하, 양측의 수요 측면에서 보면 기적성에 대한 엘프족의 의존도가 더 높다는 데에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기적성이 없다면 폐하의 개혁은 언제 시작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반면, 기적상회는 어떻습니까? 엔트족이 지켜주고 있으니 최소한 생존의 위기는 없는 셈입니다. 느리기는 하겠지만 천천히 발전해나갈 수 있겠죠. 정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면 최악의 순간에 기적성을 버리면 그만입니다. 저희가 보유한 기술력과 인재들이라면 대륙 어디에 가서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희가 양보를 해드릴 이유는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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