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0
제570장 사대 거물
니드호그, 숲에서 이 이름을 아는 자는 드물다. 다들 그를 용의 영주 또는 데스윙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데스윙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 지 아는 이는 없다. 수명이 수만 년인 용족에서 대략 중년쯤 되는 나이, 최소 1~2만 년은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데스윙은 혼돈의 숲에서 가장 나이 많은 존재 중 하나다.
데스윙의 본거지는 용의 고개에 있다. 전설 속 용성은 보물로 쌓아 만든 도시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많은 보물이 쌓여 있다고 한다.
용족은 모두 수집벽이 강했는데, 그중에서도 데스윙 니드호그가 으뜸이었다. 재물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는 수집과 노략질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능력을 가졌다. 무한에 가까운 수명과 모두를 업신여길 만큼 강한 실력 덕분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데스윙 니드호그는 혼돈의 숲에서 가장 유명한 수집가다.
또한 혼돈의 숲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 부자다.
이 용의 영주는 순수혈통의 흑룡으로, 암흑과 죽음의 힘에 능하다보니 그 수하 대부분은 사악한 무리다. 그중 지하에서 모집한 암흑종족, 예를 들어 다크엘프, 다크마수령, 악마 등등이 많았고, 심지어 리치들도 그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한 손으로도 하늘을 덮을 정도로 강대한 세력, 재채기 하나로도 혼돈의 숲 전체에 폭동을 일으킬 수 있는 자다.
너무 강하다.
너무 강한 위압감이다.
데스윙의 실력은 엘프왕과 동급이었다.
하지만 엘프왕은 아무 힘이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반면, 데스윙은 위세를 극도로 드러냈다. 보통 수준의 위압감이 아닌 용의 위력, 바로 거룡의 위력이다. 이 시대 최고 수준의 생명체가 하급 생명체에게 보이는 위세, 이는 마치 먹이사슬 최상단의 맹수가 땅 위에 기어 다니는 불쌍한 개미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이 거대한 위압감이 기적성에 드리우자 실력과 정신력이 약한 자들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다른 이들도 자리에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바들바들 떨었다.
공화련 일행도 새하얗게 질렸다.
‘이것이 바로 거룡의 힘인가?’
평범한 자는 감히 맞서지 못할 수준이다.
데스윙은 혼자가 아니었다. 열 마리가 넘는 비룡이 그를 따라왔다. 이 비룡들은 용족 다음가는 혈통으로, 영원의 숲 엘프의원들에게 결코 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졌다. 비룡마다 등에 리치, 시귀, 다크엘프 같은 생물들을 태우고 있어 양측의 실력 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랜슬로드?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데스윙의 거대한 몸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자, 수많은 심오한 주문들이 온몸에 펼쳐졌다. 4~5초 정도 지났을까, 빛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두 날개를 펼치면 40장 정도 되던 그 큰 몸집이 몇 초 만에 1장 정도 되는 인간 모습으로 변했다.
물론, 진짜 인간은 아니다.
데스윙의 건장한 몸 표면에는 여전히 용의 비늘이 가득 뒤덮여 있었다. 등 뒤에 펼쳐진 위풍당당한 용의 날개 끝은 날카롭고 창백한 뼈 돌기가 튀어나와 마치 스컬랜스 같았다. 짙은 금색의 두 눈의 동공은 파충류 같았고, 가느다란 모양에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몸은 작아졌지만 그 위엄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엘프왕은 반대로 온화하고 자연스러운 기운을 표출함으로써 순식간에 데스윙이 뿜어내는 살기와 균형을 이루어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한숨 돌릴 수 있게 했다.
“80년은 못 본 것 같군. 굳이 보자마자 살기등등하게 나와야겠나?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도록 하지!”
데스윙의 용의 날개가 흔들렸다.
“급할 게 뭐 있나? 다 오지도 않았는데!”
엘프왕은 순간 멈칫했다가 바로 뭔가를 알아차렸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엘프왕은 숲의 지팡이를 통해 100리 밖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지금 작은 산 두 개처럼 보이는 형체가 동시에 기적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둥둥둥.
천지가 흔들린다.
모든 이가 땅에 엎드려졌다.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거대한 위압감이 사방을 휩쓸고,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며 거인 15명이 나타났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누구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자들이 있다니.
40장이나 되는 거인 앞에서 인간은 발가락이나 다름없었다. 금속처럼 번쩍거리는 그들의 피부는 총칼도 들어가지 않고, 물불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몸 표면에 뇌전으로 만들어진 주문이 엄청나게 덮여 있었다. 눈 속에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오직 분노의 불꽃만 불타고 있었다.
타이탄.
타이탄족이다.
타이탄족은 가장 수준 높은 거인으로, 온 대륙에 얼마 남지 않은 아주 드물고 귀한 존재다. 타이탄은 선천적으로 무시무시한 천뢰의 힘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귀신도 막기 힘든 파괴력을 가진다. 모두를 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운 종족이다.
한편 다른 방향에서도 누군가 오고 있다.
수십 명의 거대한 형체가 움직이고 있다. 타이탄보다 키는 조금 작지만 몸은 더 건장하다. 언뜻 보기에는 큰 오랑우탄 같은데 매서운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이 보인다. 시뻘겋게 벌린 입으로는 만우 네다섯 마리도 너끈히 삼킬 것 같다.
이 거대한 마수는 지나는 곳마다 잔혹, 살기, 광포 등 오래된 흉수 같은 기운을 뿜어내 모든 생물을 물러나게 했다.
베헤모스.
베헤모스족이다.
베헤모스족 역시 오래된 종족으로, 번식력이 좋지 못해 아주 적은 수만 남아 있다. 베헤모스족은 아주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베헤모스는 100마리 중 99마리가 베헤모스 거대마수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힘만 세고 머리는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헤모스 거대마수는 뛰어난 실력의 타고난 전쟁병기다. 성격도 잔인해서 파괴와 살육에 대한 욕구로 가득하다.
100마리의 베헤모스 중 1마리는 지능형 베헤모스이다. 이 베헤모스는 타고난 백수의 왕으로 마수령의 왕이자 선천적으로 타고난 지도자이다.
“황야고원과 거인산맥에서까지 다 온 건가?”
이 상황을 본 천제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군!”
타이탄과 베헤모스는 기적성 바깥에서 머물러 있었다.
이때, 두 인영이 기적성으로 향해 돌진했다. 하나는 난장이만한 키의 장한이었고, 또 하나는 몇 십 배나 몸을 축소시킨 미니 베헤모스였다. 두 사람의 기운은 엘프왕에 뒤지지 않았다. 이들 모두 데스윙처럼 자신의 몸을 축소시킨 것 같았다.
대형 타이탄―썬더 시에스터.
황금 베헤모스―클로 누카잔.
둘 다 전설 속 인물이다 하나는 거인산맥의 최고 지도자요, 다른 하나는 황야고원 백수의 왕이다. 여기에 용의 영주 주인과 영원의 숲 제왕까지 모였다. 혼돈의 숲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네 사람이 모두 모인 것이다.
백 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광경이다.
엘프의회 의장인 오거스트가 엘프왕 곁으로 다가가 냉정한 눈길로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엔 무슨 일인가?”
썬더는 난장이처럼 작게 변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오거스트를 힐끗 보고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이 늙은 엘프, 아직도 살아 있군? 쉽지 않은 일인데!”
오거스트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썬더, 격식을 차리게!”
타이탄 썬더, 베헤모스 클로, 용의 영주 데스윙, 이들은 아주 긴 수명을 가진 존재다. 아무리 엘프족이라 해도 이들 앞에서는 벌써 몇 번이고 세대가 바뀌어 왔다.
물론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은 다 그마다의 장점이 있다.
엘프족은 강자가 가장 많고, 엘프왕 랜슬로드의 실력은 이 세 사람 못지않았다. 그 외 엘프족 의장인 오거스트도 같은 수준의 강자다. 엘프족이 다스리는 여러 숲의 최고 엘프 지도자들도 이들보다 조금 약할 뿐,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들이다.
대륙의 공평한 법칙이다.
수명이 길면, 번식력이 약하고 성장이 느리되 개별적인 힘이 강하다.
수명이 짧으면 번식력이 강하고 성장이 빨라 조직적인 힘이 강하다.
인간종족이 대륙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 때문이다.
클로는 굵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랜슬로드, 내 사람을 죽인 데 대해 설명을 해야 하지 않나?”
엘프왕이 미소를 지었다.
“기회를 주었지만 스스로 놓치고 말았지.”
클로의 눈이 붉은 빛으로 가득해지며 잔혹한 살의가 차올랐다.
“영원의 숲 이번 엘프왕의 풍채가 선대를 뛰어 넘는다던데. 이제 자리에 앉은 지 100년 되었나. 아직 제대로 겨뤄본 적이 없군. 이번 기회에 대결해 보는 게 어때!”
두 사람 다 숲 최고의 강자다.
기적성에서 싸우기라도 하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둘이 겨루는 건 상관없어.”
데스윙은 이들과 싸우는 데는 전혀 흥미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시간은 아주 귀하다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고대 생명수의 냄새를 맡았다. 이런 물건이 세상에 나타났는데, 엘프는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을 생각인가?”
그 말을 들은 썬더는 온몸을 번개처럼 빛내며 말했다.
“이건 숲 전체의 공동의 보물이야. 설마 엘프족이 독차지하려는 건 아니겠지?”
베헤모스족 클로의 살기가 순간 사라지고 거리끼는 표정이 드러났다. 만약 영원의 숲이 고대 생명수를 차지한다면, 영원의 숲 세력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다. 영원의 숲은 싸우는 걸 싫어하는 종족이지만, 그래도 어느 누가 강한 세력을 곁에 두려 하겠는가?
“혼돈시대의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 이렇게 상서롭지 못한 물건은 바로 없애야지!”
고대 생명수는 분명 좋은 물건이다.
하지만 용의 고개, 타이탄산맥, 황야고원은 모두 이것이 영원의 숲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 손에 쥐지 못할 바에야 철저하게 파괴해야지!’
엘프들이 강한 경계 태세를 보였다. 오거스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능력이 있다면 가져가 보시지!”
3대 2, 엘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엘프의회 구성원이 다 모였고, 영원의 숲 수십 명의 강자도 함께한다. 고대 생명수로부터 힘을 받아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아예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숲의 사대 거물의 통솔 아래 수십 마리의 비룡과 타이탄 십여 명, 베헤모스 거대마수 십여 마리, 그리고 수백 명의 엘프 강자가 모두 모였다.
만약 이들이 싸우기 시작한다면.
기적성이 남아날까?
“저기…….”
일촉즉발 위기 상황인 이때, 아주 미약한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제가 한 마디 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