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9
제569장 데스윙
공화련이 가장 염려하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고대 생명수를 기적성에 심으면 숲의 거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기적성과 영원의 숲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요괴신교가 새끼여우를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 생명수는 나무 엘프에게는 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중요한 신물을 엘프가 어떻게 외부인 손에 두겠는가?
이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기적성의 실력은 영원의 숲 앞에서는 아주 미미했기 때문이다.
공화련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비비안이 영원의 숲에 전송탑을 지은 건 기적성과 영원의 숲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엘프의회의 의원 수십 명이 이동한 후, 모든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대 생명수는 2~3일 만에 벌써 1장 높이까지 자랐다. 더욱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가운데 그 능력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원 중앙에 심겨진 이 신수는 수 백리 주변 영맥을 관통해 영맥 심층에서 더 순수한 영력을 바로 추출함으로써 주변 토양을 열배, 백배 촉촉하게 적셨다.
그 효과는 가장 좋은 취영진보다 더 뛰어났다.
기적성의 영기는 날로 넘쳐흐르고, 모든 토양의 마력이 충만해졌다.
고대 생명수가 생명마력을 끊임없이 발산했다. 그 영향으로 주변 모든 동식물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특히 화원에 심겨진 영약들의 하루 성장효과는 과거 한 달에 걸쳐 자란 것보다 더 뛰어났다.
다시 말해서.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보여준 성약과 옥약의 성장속도는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1년 정도는 걸리는 수준이다.
약초 하나를 심고 여러 해가 지나면 바로 천 년 묵은 기약 수준이 되지 않는가? 기적성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어리고 진귀한 약초만 재배해서 되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 게다가 고대 생명수는 이제 깨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으니,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런 신물에 누가 마음이 동하지 않으랴?
더욱이 고대 생명수는 영원의 숲에 있는 엘프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단 심겨진 생명수는 옮겨심기가 아주 어렵다. 최소한 지금은 옮겨 심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별 다른 도리가 없는 영원의 숲 엘프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이다. 바로 기적성을 빼앗아 정식 엘프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비안은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너희들은 기적성을 보호할 능력이 없어. 고대 생명수를 지킬 능력은 더욱 없고!”
엘프의회 의원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대부분 천제현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이 나무는 엘프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엘프족 최고 신물이다. 설마 혼자 차지할 생각이냐?”
“옳소! 오늘부터 기적성은 영원의 숲이 나서서 지킨다!”
다른 엘프의원이 말했다.
“물론 너희가 영원의 숲을 위해 해준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
엘프의회는 유달리 의견 일치가 잘 되었다.
율리시스마저 엘프가 직접 도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련은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했다. 엘프의회의 태도는 아주 강경해 전혀 중재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기적상회가 기적성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대로 그냥 양보하라고?
“하하하!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아니면 단체로 기억상실이라도 걸렸나요?”
천제현은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기적성과 영원의 숲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영원의 숲 엘프의회와 엘프왕이 동의하셨잖아요, 기적성의 독립주권을 인정하고 영원히 침범하지 않겠다고요. 이 계약에 분명 각 의원들과 엘프왕의 서명이 있는데, 설마 법과 계약을 존중하는 엘프족이 이제 와서 이렇게 계약을 위반하겠다는 건가요?”
엘프의원들 모두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이제야 천제현의 덧에 걸려들었음을 알았다. 이 녀석은 며칠 전 일부러 영원의 숲과 경계를 확실하게 그은 것이다. 애초에 고대 생명수가 나타난 후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던 것이다.
천제현의 말이 이어졌다.
“늘 교양을 자랑하는 엘프족들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단 말인가요?”
엘프의원들의 안색이 변했다.
엘프족은 보수파와 개혁파로 나누어지지만, 그래도 어쨌든 엘프이다. 계약과 법전은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다. 어찌됐든 그것이 바로 엘프족의 정신이요, 지금까지 지켜온 엘프족의 높은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오거스트는 분노하며 일어섰다.
“인간, 이렇게 빤히 보이는 계략을 내놓다니, 엘프족은 생각이 없는 줄 아는가?”
“뭐라고 하시든 상관없어요!”
천제현이 하하거리며 웃었다.
“영원의 숲은 기적성보다 백배는 강하니 기적성은 절대적인 약자 입장이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신의를 저 버려 계약을 뒤집는다면, 제가 뭐 도리가 있나요? 마음대로 하세요! 고작 나 하나 죽이고, 엘프족의 위선을 세상에 널리 알리시죠!”
“천제현, 화내지 마!”
비비안은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보고 황급히 일어났다.
“의장님, 왜 천제현을 협박하는 거죠? 천제현이 없었다면, 기적성이 지금 남아 있었겠어요? 왜 협력하면 안 되는데요!”
“안심해라, 엘프족은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오거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속임수로 체결한 계약으로 영원의 숲을 묶어둘 수는 없어. 엘프족은 합법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기적성을 되찾겠다!”
천제현이 비비안에게 눈짓했다.
이렇게 고지식하고 케케묵은 자들을 상대하는 게 뭐 어렵겠나? 엘프족 성격의 결함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나이가 얼마가 됐든, 얼마나 오래 살았든, 지식이 얼마나 많이 쌓였든 간에 영원히 순진하고 융통성이 없다.
천제현은 눈 감고도 엘프족의 지루하고 잡다한 법률에서 수십 개의 허점을 찾을 수 있고, 엘프족은 일처리가 느려 터졌다. 천제현과 말싸움으로 결판을 내려면 어느 세월에 결판이 나겠는가.
천제현과 상대한 적이 있는 율리시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바로 의견을 냈다.
“천제현, 네가 기적성에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고, 엘프족도 억지 부리는 종족이 아니다. 더 좋은 성을 내어주겠다. 어떠한가?”
“성을 바꾸자고요?”
“지도를 가져와라!”
율리시스는 거대한 지도를 펼쳐 혼돈의 숲 남부의 한 지역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 숲은 은월숲이라고 불린다. 모든 부분에서 기적성보다 부족하지 않지. 은월성은 엘프족이 5천 년 동안 운영해왔고, 몇 백 년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진 기적성보다 몇 배나 번영한 곳이다. 주변 수 천리에 강적도 없고, 완벽한 천연결계와 성 방위 체제가 갖춰져 있다. 만약 이곳에 살게 되면 자원은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지. 여전히 성주 자리를 지키면서 자원과 재산은 10배나 늘어나는 거야!”
곁에서 듣고 있던 공화련은 말문이 막혔다.
‘이 엘프들이 정말 아끼지 않고 다 내놓는구나.’
다른 엘프의원들은 모두 난색을 표했다. 은월숲은 나무 엘프들에게 영원의 숲 다음으로 번영한 도시다. 기적성을 얻기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하다니, 정말 괴로운 일이다.
“안 바꿉니다!”
“너…….”
엘프의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이 방자한 인간 종족이!’
‘엘프가 이렇게 많이 양보를 해줬고, 딱 적절한 보상을 주겠다는 데 무슨 속셈이지?’
천제현이 은월성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은월성은 엘프성 중 하나, 엘프는 아주 배타적인 종족이다. 만약 천제현이 엘프성을 갖게 된다면, 엘프가 다 떠난 후에는 그저 텅 빈 성만 남을 뿐이다.
‘텅 빈 성 하나 받아서 어디다 써먹으라고.’
천제현이 어디 눈앞에 있는 그 정도 이익과 부를 신경 쓰는 줄 아는가?
그에 비해 기적성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천제현은 벌써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이곳에는 숲에서도 가장 좋은 실험실과 가장 많은 학자들이 있다. 혼돈의 숲 중앙에 위치해 앞으로 발전 잠재력도 크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고대 생명수는 천제현에게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걸 알아주세요.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의 숲과 엘프족을 생각해서 이러는 겁니다.”
천제현은 이 엘프들을 상대하려면 논리적인 설득과 감정적인 호소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영원의 숲이 기적성을 다스리는 데는 세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고대 생명수를 지킬 수 없음은 물론, 영원의 숲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된다!”
“허튼 소리 마라!”
천제현은 늙은 엘프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째, 기적성과 그 주변 수 천리는 다양한 종족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자체가 엘프족과는 맞지 않죠. 엘프족의 문화는 이곳에서 절대 실현될 수 없어요. 설마 엘프족이 이 수천만 명을 다 쫓아내겠다는 건 아니겠죠? 둘째, 엘프족은 너무 능률이 떨어지고 진취적이지 못해요. 일반도시라면 오랜 수명을 가진 여러분이니 천천히 도시를 세울 수 있겠죠. 하지만 기적성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위치에 있어요. 이제는 고대 생명수라는 도화선까지 생겨난 마당에 천천히 도시를 건설할 시간이 있겠어요? 셋째, 엘프족이 혼돈시대 유물인 고대 생명수를 손에 넣으면 자연스레 실력이 크게 성장하겠죠. 하지만 고대 생명수는 성장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여러분이 강대해지는 걸 다른 숲 세력이 가만히 두고 볼 것 같나요?”
천제현의 말이 아주 허튼소리는 아니다.
모두 엘프족이 직시해야 할 문제들이다.
영원의 숲이 기적성에서 어떻게 발전해가고, 또 수많은 압박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물론, 이런 문제는 엘프의회가 고려할 문제는 아니다. 엘프족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지만,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숲의 거물 몇몇과 싸우는 것은 두렵지 않다. 지금은 그저 고대 생명수를 되찾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고대 생명수는 엘프족에게 너무나도 중요했다.
오거스트가 천제현의 말에 반박하려 할 때였다.
“천제현의 말이 맞소.”
처음부터 아무 의견도 내지 않던 엘프왕이 입을 열었다.
“기적성의 일은 우선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지, 문제가 생길 것 같군.”
‘문제? 무슨 문제?’
모두가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뚫리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하늘 끝에서 몇몇 형체가 보였다. 그중 거대한 그림자 하나는 적어도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온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여 칠흑처럼 어두웠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는 데, 지나는 곳마다 그 강력한 기세에 눌려 숲마저 갈라졌다.
오거스트의 안색이 변했다.
“이건…….”
“용의 영주!”
엘프왕 랜슬로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데스윙 니드호그!”